미 낙태법 폐지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어"저의 산부인과 의사 친구 A가 들려준 말입니다. 그가 인턴을 할 때 10대 산모의 출산을 담당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뽀얀 핑크빛 살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산모와 그의 어머니는 행여 누가 볼까 쉬쉬하며 입양절차를 밟았습니다. 아이의 눈 한 번 제대로 맞추지 않은 채 병원을 나서는 엄마와 태어나자마자 기관으로 가야 하는 아기에게 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입양시설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또다른 친구 B는 다시는 봉사를 못가겠다고 했습니다. 성인의 팔뚝보다 작은 신생아들이 주르륵 누워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데 수유 시간조차 사람의 품에 안길 수 없습니다. 아기를 안고 우유를 먹이려고 하자 기관에서는 한 번 사람 손을 탄 아기들은 자꾸 울어서 많은 아기들을 동시에 수유하기 힘들다며 일시적 온정을 거부했습니다. 아기들은 차가운 벽을 바라보며 세상에서의 첫 식사를 합니다. 첫 수유의 기쁨과 환희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 이야기가 더 가슴을 후벼팝니다.이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난 아기들이라면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치러야 할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습니다. 태어난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경건한 한마디로 모든걸 설명하기엔 현실은 너무도 냉정합니다.미국은 지난 반세기 임신의 무게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맡겨왔습니다. 낙태를 처벌하는 건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다는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이를 뒷받침해줬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24일(현지시각) 연방 대법원은 낙태를 합법화한 이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이제 낙태권의 존폐 결정은 각 주정부와 의회 권한으로 넘어갔습니다. 이후 곧바로 켄터키, 루이지애나, 사우스다코타주는 낙태를 금지했고 이를 둘러싼 시위와 분노가 주말 내내 미 전역을 뒤덮었습니다. 지금 미국 사회는 둘로 쪼개졌습니다.우리에겐 이 사건이 ‘강 건너 불 구경’일지도 모릅니다. 2019년 낙태죄는 헌법불합치 판결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을 단순한 미국 내 이슈라고 판단하기엔 너무도 중요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이 자랑하고 신봉하는 ‘법과 제도’, 그리고 전 세계인들에게 ‘현대적 기본권의 수호자’라고 자처하던 미국의 시스템이 무너져 내린 사건입니다. 낙태권 폐지는 그 시작일 뿐입니다.오늘 뷰스레터에서는 미국의 낙태권 폐지가 향후 우리 사회와 기업들에게 끼칠 영향에 대해 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