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낙태법 폐지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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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라 2022.07.03 17:28 PDT
미 낙태법 폐지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
(출처 : Gettyimages)

미국, 균형이 무너졌다
분노하는 Z세대...기업들 '촉각'
주주 민주주의가 뜬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어"


저의 산부인과 의사 친구 A가 들려준 말입니다. 그가 인턴을 할 때 10대 산모의 출산을 담당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뽀얀 핑크빛 살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산모와 그의 어머니는 행여 누가 볼까 쉬쉬하며 입양절차를 밟았습니다. 아이의 눈 한 번 제대로 맞추지 않은 채 병원을 나서는 엄마와 태어나자마자 기관으로 가야 하는 아기에게 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입양시설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또다른 친구 B는 다시는 봉사를 못가겠다고 했습니다. 성인의 팔뚝보다 작은 신생아들이 주르륵 누워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데 수유 시간조차 사람의 품에 안길 수 없습니다. 아기를 안고 우유를 먹이려고 하자 기관에서는 한 번 사람 손을 탄 아기들은 자꾸 울어서 많은 아기들을 동시에 수유하기 힘들다며 일시적 온정을 거부했습니다. 아기들은 차가운 벽을 바라보며 세상에서의 첫 식사를 합니다. 첫 수유의 기쁨과 환희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 이야기가 더 가슴을 후벼팝니다.

이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난 아기들이라면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치러야 할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습니다. 태어난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경건한 한마디로 모든걸 설명하기엔 현실은 너무도 냉정합니다.

미국은 지난 반세기 임신의 무게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맡겨왔습니다. 낙태를 처벌하는 건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다는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이를 뒷받침해줬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24일(현지시각) 연방 대법원은 낙태를 합법화한 이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이제 낙태권의 존폐 결정은 각 주정부와 의회 권한으로 넘어갔습니다. 이후 곧바로 켄터키, 루이지애나, 사우스다코타주는 낙태를 금지했고 이를 둘러싼 시위와 분노가 주말 내내 미 전역을 뒤덮었습니다. 지금 미국 사회는 둘로 쪼개졌습니다.

우리에겐 이 사건이 ‘강 건너 불 구경’일지도 모릅니다. 2019년 낙태죄는 헌법불합치 판결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을 단순한 미국 내 이슈라고 판단하기엔 너무도 중요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이 자랑하고 신봉하는 ‘법과 제도’, 그리고 전 세계인들에게 ‘현대적 기본권의 수호자’라고 자처하던 미국의 시스템이 무너져 내린 사건입니다. 낙태권 폐지는 그 시작일 뿐입니다.

오늘 뷰스레터에서는 미국의 낙태권 폐지가 향후 우리 사회와 기업들에게 끼칠 영향에 대해 알아봅니다.

미국, 균형이 무너졌다

미 연방 대법원 앞에서 시위대가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을 종이 인형으로 만들어 풍자하는 모습 (출처 : Gettyimages)

이번 판결이 놀라운 건 9명의 대법관 사이에서 5대 4도 아니고 6대 3으로 판결이 났다는 점입니다. 미국 보수와 진보의 첨예한 각축장으로 불리며 민주주의의 최후 수호자로 신임받던 대법원이 보수 판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 배경에는 대법관이 임기 종신직이라는 맹점이 자리합니다. 조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기 전 32년간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각 16년 동안 정권을 나눠 가졌는데요. 임기 종신직 특성상 갑자기 공석이 될 경우 어떤 성향의 대통령과 의회가 집권하고 있느냐에 따라 성향이 달라집니다. 트럼프 임기 4년간 무려 3명의 보수적인 연방 대법관이 새로 임명된 게 따지고 보면 이번 판결의 도화선이 된 셈입니다.

급격하게 보수화된 연방 대법원이 총기 소유나 동성 결혼, 투표권과 의료보험과 같은 첨예한 사안에서도 줄줄이 보수적인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업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정치적 성향, 즉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은 지금 균형을 잃고 있습니다.

👉보수 6, 진보3의 미국

분노하는 Z세대…기업들 ‘촉각’

(출처 : Gettyimages)

어느 세대보다 다양성과 포용성에 큰 가치를 두는 Z세대는 이번 판결에 강하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Z세대 아이콘인 가수 빌리 아이리시(Billie Eilish)는 “미국 여성들에게 암담한 날”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낙태권의 찬반 여부는 개인의 철학이나 종교적 신념과도 연결돼 있어 옳고 그름을 쉽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Z세대 3명 중 2명은 낙태에 찬성합니다. 전국 평균보다 20%나 높은 수치입니다. 아이를 빌미로 원치 않는 가정을 꾸리며 폭력을 당하고 살아온 수많은 ‘엄마’의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이들 6명 중 1명은 난관을 묶거나 정관수술을 고려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움직임에 그 누구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주체는 다름 아닌 기업입니다. 특히 빅테크 기업들이 이번 판결이 존립마저 위태롭게 한다며 떨고 있습니다. 왜그럴까요?


👉미 기업이 위기에 대응하는 법

👉낙태법 폐지에 떨고 있는 빅테크, 왜?

주주 민주주의가 뜬다

(출처 : Gettyimages)

이처럼 소비자와 투자자, 직원들이 과거에 비해 적극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기업들이 변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문제에 대해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며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겠다는 기존의 태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일명 주주 민주주의(Shareholder Capitalism)라 부르는 흐름입니다.

팬데믹 이후 새로운 개념으로 떠오른 '주주 민주주'의란 무엇일까요? 왜 이 개념이 부상하고 있을까요? 실제 사례는 어떤게 있을까요?

👉주주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이번 판결로 미국은 연방 대통령제와 연방 의회에 이어 3권 분립의 최후 보루였던 연방 대법원의 위상마저 무너지게 됐습니다. 대법원이 낙태를 금지시킨 게 아닙니다. 대법원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며 손을 떼면서 스스로 기본권의 수호자 역할을 걷어찬 셈입니다. 당장 총기 소유나 동성 결혼, 의료보험이 다음 타깃으로 지목됩니다.

이처럼 3권이 모두 제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제4의 거버넌스로의 기업에 더 큰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미국 기업들의 변화는 곧 전 세계 돈의 흐름과 생태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이번 사건을 그저 강 건너 불 구경이 아닌 일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감사합니다.
송이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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