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스타트업에서 일 할까? 회사 망해도 개인은 성장한다
[커리어 아카데미]① 김병학 아카사 AI 기술 총괄 기고문
세 번의 스타트업을 통한 압축 성장을 이룬 경험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서 나는 통나무집을 짓는 목수
알면 힘이 되는 스타트업에서 성공한 직장인이 되는 법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선배들의 조언은 틀림없는 말이었다. 미국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전자공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취업한 첫 직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대기업 마벨 반도체(Marvell Semiconductor)였다.
나는 마벨의 핵심 R&D팀에서 4년 동안 일했다. 마벨에서 경력을 쌓으면 보통 새로운 대기업과 대학교 등으로 일자리를 옮긴다. 하지만 그런 동료들과 다르게 눈에 보이는 안전하고 편안한 길 대신 스타트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기로 선택했다. 그 결과 지난 6년간 실리콘밸리에서 크게 세 군데의 AI 스타트업을 경험했다.
첫 팀은 카네기 멜론 대학의 스핀오프(spin-off) 회사인 음성인식 AI 스타트업 카피오(Capio)였다.
두 번째 회사는 구글 X를 창립하고 지금은 웨이모(Waymo)로 불리는 구글의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을 이끌었던 스탠포드 대학의 세바스찬 스룬(Sebastian Thrun) 교수가 시작한 에드 테크(EdTech) 유니콘 스타트업, 유다시티(Udacity)의 AI팀이었다.
유다시티 합류 후에는 회사 전체를 AI 기반 에듀테크 기업(AI-powered EdTech company)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주도했다. 유다시티의 대표 브랜드는 대학에서 전공 또는 부전공 학위가 아닌 취업 첫날부터 바로 일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프로젝트 중심의 나노디그리(Nanodegree)라고 하는 프로그램이다.
나의 연구 프로젝트들은 이 과정의 학생들이 더 잘 학습할 수 있도록 AI를 통해 돕는 것이었다. 그 기간에 유다시티는 CNBC선정 50개 혁신기업(Disruptor-50)에 3년 연속 선정됐다. 내가 주도한 AI 프로젝트들은 여러 미디어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스타트업 이직 ... 도전은 계속된다
사실 유다시티에서 마지막 프로젝트 마무리와 논문 제출로 무척이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던 2019년 3월, 갑자기 연쇄 창업가(serial entrepreneur)였던 상사가 결혼을 앞두고 새 회사를 창업 하기 위해 회사를 떠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회사 프로젝트로 너무 바빴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처음에는 매우 짜증이 났다. 하지만, 4월에 바쁜 호흡을 잠깐 멈추어서서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
사실 아직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는 극초기 스타트업팀에 다시 합류할 결심을 했다. 하지만, 6월 출산을 앞두고 있던 아내에게 허락받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또한 주위에서 아기 출산을 앞두고 있으니, 이제는 훌륭한 직원 복지를 자랑하는 실리콘밸리 대기업들로 옮기는게 어떠냐는 제안도 여럿 받았다.
하지만 열악한 미국 헬스케어 시스템의 심각한 몇 가지 문제점들을 AI를 통해서 해결하려는 팀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태어날 심쿵(태명)이가 자랑스러워할 일"을 하고 싶다는 나의 말에 아내는 허락했다.
그렇게 세번째로 나는 2019년 5월에 실리콘밸리 헬스케어 AI 스타트업 아카사(AKASA)에 첫 멤버로 합류했다. 유다시티 시절 상사였던 최고기술책임자(CTO)와 함께 머신러닝 기술 연구 개발을 이끌고 있다. 여기에서 나와 회사는 스텔스 스타트업(stealth startup)에서 유니콘까지 성장하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지난 3년여 동안의 여정을 함께 했다.
스텔스 스타트업에서 유니콘으로
네 명의 창업자와 나를 포함 총 다섯 명의 작은 팀으로 시작한 아카사는 현재 직원 300명 규모의 회사로 빠르게 성장했다. 2022년 5월 현재 미국 전체 병원 13%가 AI와 병원 직원이 휴먼 인 더 루프(expert-in-the-loop)로 연결된 아카사의 통합 자동화 솔루션(unified automation)을 사용하고 있다. 아카사의 휴먼 인 더 루프 AI는 사람과 AI가 상호 작용하면서 병원 워크플로우 자동화를 쉽게 하는 AI 시스템 구조다. 대용량 태스크 처리에 유리한 AI에 전문가 인사이트를 가진 인간의 손길을 더해 보완한 AI 시스템이다.
아카사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인 앤드레센 호로위츠(a16z)가 리드한 시드와 2019년 11월 시리즈 A 투자, 2021년 3월에는 매리 미커(Mary Meeker)의 인터넷 트렌드 보고서로 잘 알려진 본드 캐피털(Bond Capital)이 리드한 시리즈 B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아카사는 올해 2022년 3월에는 드디어 새로운 시리즈 C 투자유치로 유니콘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이 됐다.
겉으로 보기에 스타트업에서 계속 성공 가도를 달린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세 스타트업 모두 결코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스타트업, 특히 초기 스타트업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잡기가 매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현재의 금전적 보상을 옆으로 잠시 미루어 두어야 할 때도 있었다. 쉼 없이 계속되는 높은 강도의 스트레스에 따른 일상으로 체력과 정신력이 한계에 부딪힐 때도 자주 있었다. 특히, 첫 두 회사는 자금난을 겪었다.
창업한 10팀 중 9팀이 결국 실패한다는 통계가 있다. 대부분의 테크 스타트업은 성공은 커녕 생존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보는게 맞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사업이 실패하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개인에게는 무한한 성장 경험과 발판을 제공한다.
스타트업은 망해도 개인은 성장
필자의 경험상, 비록 사업이 실패해서 회사가 폐업해도 테크 스타트업에 몸 담았던 개인은 두 가지 면에서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성공과 성장을 경험한다.
첫번째는 소중한 동료와 사람을 얻는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커리어 성장 기회를 쫓아 가는데, 사실 실리콘밸리에서 크고 중요한 기회는 많은 경우 좋은 사람에서 나온다.
특히 테크 스타트업에서 함께 일했던 훌륭하고 영감을 주는 혁신적이고 유연한 사고와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통해 다음 기회가 계속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테크 스타트업을 통해 좋은 팀과 동료와 교류하고 확장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유다시티에서 높은 목표와 미션을 위해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퇴사 후에도 유다시티헤븐(#UdacityHeaven) 이라고 불리는 슬랙(Slack) 채널에 모여서 근황이나 정보를 나누곤 한다. 때로 최악의 경우 어떤 동료가 해고되더라도 서로 발벗고 돕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번째는 개인의 성장이다. 스타트업은 빠르게 성장하면서 개인의 성장에 필요한 시간을 압축한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개인은 압축적 성장(compressed growth)에 몰입하면서 중요한 문제에 새로운 도전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누구나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A급 동료(A player)로 성장한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본인이 테크 스타트업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누구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밀크를 통해 더 많은 분들과 내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특히 개인적 커리어 성장이 스타트업의 각 성장 단계마다 어떤 식으로 실현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대기업과 달리 스타트업에서는 회사의 빠른 성장과 함께 개인의 커리어의 변화가 신속하게 진행되지만 아쉽게도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고 사내 온보딩이 이뤄지고 나면 그 이후에 일어나는 커리어 변화에 관해선 아직 잘 다루어지지 않는듯하다.
눈부신 커리어 성장을 꿈꾸며 스타트업이라는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분들, 그리고 익숙한 평생 직장이 아닌 아직은 낯선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거나 도전하는 분들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초기 스타트업엔 '문제 크리에이터'가 필요하다
테크 스타트업 시작부터 직원 50명까지 성장하는 기간을 보통 초기 단계(early-stage)라고 부른다. 이 단계에 테크니컬 트랙(technical track)으로 조인하는 대부분의 개인 전문가(individual contributor, 실리콘밸리에서는 흔히 개인 전문가와 관리자 두 가지 유형으로 직군을 분류)는 새롭고 튼튼한 “통나무집(log cabin)”을 빠르게 잘 짓는 목수처럼 일하는 방법을 학습해야 한다.
이를 위해 특별히 새롭게 배워야 할 두 가지 역량은 무엇일까?
첫번째는, 흥미롭고 새로운 질문을 하거나 다른사람과 달리 새로운 방식으로 오래된 문제를 바라보는 문제 크리에이터(problem-creator)의 역량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테크 스타트업은 어떤 새로운 문제를 풀지 인풋 X와 아웃풋 Y를 결정(specify)한 후, 어디서 어떻게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를 찾고 모을 것인지부터 생각해야한다.
때로는 초기 스타트업에 가장 중요한 '프로덕트 마켓 핏(product market fit)'을 찾기 이전 단계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매 분기별로 큰 방향전환(pivot)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빨리 변화하는 프로젝트 환경에서 주니어들은 적응에 몸시 힘들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니어들은 더 넓은 범위의 프로젝트와 기술 경험을 보유하게 되는 것에 만족해 하기도 한다.
사실 대부분의 개인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자(problem-solver)와 문제 크리에이터(problem-creator) 중간 어딘가에 있다. 문제 해결자는 이미 정의된 문제를 잘 해결한다. 반면에 문제 크리에이터는 먼저 새로운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문제 해결자가 상대적으로 사회와 비즈니스 세계에 더 많다.
물론 문제 해결자는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s)이라고 불리는 대기업의 점진적인 개선에는 유리하다. 하지만, 테크 스타트업이 집중하는 부분은 산업 분류를 새롭게 하는 파괴적 혁신(category-defining disruptive innovation)이다.
문제 크리에이터의 역량이 필요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문제를 풀 가치가 있고 해결 했을 경우 시장에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찾는 것이 스타트업의 성공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반 교육환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정의된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문제 해결자로서 교육을 받는다. 반면, 테크 스타트업은 문제 크리에이터로 성장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다.
두번째, 특별히 이 시기에 커리어의 다음 단계로 성장 또는 승진하기 원하는 시니어 개인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잘해온 현재 프로젝트의 구현(project delivery)을 더욱 잘 수행하기 위한 기술적 우위를 추구하는데에만 시간과 노력을 집중해서는 안된다.
이 시기 스타트업은 빠른 시장 대응 능력(time-to-market)이 매우 중요하다. 아직 기술 진입 장벽이 높지 않다. 그래서 팀의 새로운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경영진의 기획과 판단(planning/judgement)에 도움을 주는 프로젝트에도 자신의 시간과 노력의 20% 정도를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특별히 사람과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스타트업에서 이 부분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필자의 개인 경험에서도 이것이 시니어가 기술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될 뿐 아니라, 회사 경영진의 신뢰 또한 독보적으로 쌓아 다음 단계로 올라가게 되는 중요한 매니징업(managing-up) 역량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2편에선,
개인 전문가에서 팀의 리더로 다시 조직의 경영진으로 성장하는 길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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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학 아카사 AI기술총괄
김병학 박사는 현재 실리콘밸리 헬스케어 AI 유니콘 스타트업 아카사(AKASA)에서 머신러닝 기술 연구 개발을 이끌고 있다. 고려대학교, 스리랑카와 캄보디아의 3세계를 거쳐 미국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전자공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졸업 후, 실리콘밸리 대기업 마벨 반도체(Marvell Semiconductor) R&D팀에서 4년간 일한 후, 지난 6년여 동안 세 곳의 실리콘 밸리 AI 스타트업을 경험했다. 음성인식 AI 스타트업 카피오(Capio), EdTech 유니콘 스타트업이자 실리콘밸리의 대학으로 불리는 유다시티(Udacity)의 AI팀을 거쳐 2019년 아카사에 첫 멤버로 합류했다. 여러 초기 스타트업들의 기술 고문(tech advisor), 실리콘밸리의 소중한 한국계 커뮤니티이자 네트워크인 베이 에어리아 K그룹(Bay Area K Group) 이사회에서 부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