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서 존재감 드러낸 현대차. 정의선이 꼽은 2가지 청사진
[CES2024] 현대차의 모빌리티 가치사슬
"차는 너무 좁다" 큰 그림은 모빌리티 넘어 스마트시티
자동차는 이제 완전한 IT기기. SDV 넘어 SDx 제시
기아 맞춤형자동차, 슈퍼널 에어택시도 점찍어
기존 완성차 업계에서 화두는 단연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이다. 전기차(EV), 자율주행 시대로 자동차 제작이 간편해지면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진단에서다. 이때 현대자동차그룹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현대차의 큰 그림은 한 차량이 아닌 스마트시티다. 차량을 인공지능(AI) 기반 소프트웨어로 혁신하고 맞춤형차량, 에어택시 등 다양한 형태의 모빌리티 혁신을 통해 스마트 시티 안의 일부가 되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그룹은 8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CES2024 미디어데이 프레스컨퍼런스에서 수소와 소프트웨어, 목적기반모빌리티(PBV) 등 주력 모빌리티 산업과 미래항공모빌리티(AAM)로 대표되는 신사업에 이르는 그룹의 청사진을 내놨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프레스컨퍼런스 직후 인터뷰에서 "모빌리티는 기아의 목적기반차량(PBV)도 있고, 슈퍼널의 e-VTOL(전기 수직 이착륙기)도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업체 전시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이 볼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오는 9∼12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4'에 역대 최대 규모로 참가한다. 현대차가 2009년 CES에 처음 참가한 이래 최대 규모로, 주력 계열사인 현대차와 기아는 2019년 이후 5년 만에 함께 나선다.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슈퍼널, 제로원이 총출동했다.
행사에는 정의선 회장을 비롯해 각 계열사 대표이사와 주요 임직원 등 1000여명의 현대자동차그룹 구성원들이 참석해 모빌리티 기업 이미지에 힘을 실었다. 정 회장이 행사장을 찾은 건 CES 2022 이후 2년 만이다.
이날 행사에는 정 회장 이외에도 장재훈 현대차 사장, 호세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최고운영책임자(COO) 사장, 송창현 현대차 SDV 본부장 겸 포티투닷 대표, 팻 윌슨 미국 조지아주 경제개발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이 자문역으로 영입한 미국 정통 외교 관료 출신 성 김 전 대사도 정 회장과 함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까지 미국 주인도네시아 대사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겸직한 김 전 대사는 미 국무부에서 은퇴한 뒤 올해부터 현대자동차그룹의 해외 시장 전략, 글로벌 통상·정책 대응 전략, 대외 네트워킹 등을 자문한다.
SDV 그 너머로. 모빌리티와 스마트시티의 만남
현대자동차그룹이 내건 비전은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를 넘어선 ‘SDx(모든 것이 소프트웨어 기반인 차량)’ 전략이다. 인공지능(AI) 기술에 기반한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차량을 ‘모든 것’(X·Everything)과 연결해 사용자 중심의 모빌리티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SDx는 차량 개발 체계부터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꾸는 전략이다. 모든 이동 솔루션 및 서비스가 자동화, 자율화하고 끊김 없이 연결되는 시스템이 목표다. SDV를 통해 이동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인공지능(AI) 기술과 접목해 이동 솔루션 전반으로 확장, 로지스틱스(물류), 도시 운영 체계와 연결된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SDV로의 전환이 우선해야 한다고 봤다. 차체와 소프트웨어를 분리해 개발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차량 아키텍처(구조)를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바꾼다.
소프트웨어 기반 개발이 보편화하면 운송·물류·유통 등을 목적으로 하는 차량인 ‘플릿’ 비즈니스 솔루션을 강화할 수도 있다. 차량의 정확한 위치와 상태를 정교하게 실시간으로 확인해 차량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서다.
SDV로 전환해 차량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강화하고 편의를 높일 수도 있다. AI 기능을 다양하게 구현하고 데이터 수집, 전처리, 모델 학습, 평가부터 배포까지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머신 러닝 프로세스(MLOps)를 인포테인먼트에 적용하는 방법이 그 시작이다.
이를 위해 현대자동차그룹은 외부개발자들과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를 공유한다고 밝혔다. 다른 사람들도 SDV용 ‘킬러앱’을 직접 개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자체 개발한 대형언어모델(LLM)기반 음성 어시스턴트와 AI내비게이션을 적용해 사용자가 보다 안전하고 편리하게 차량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사용자 경험(UX)을 구현하는 게 목표다.
모빌리티 혁신의 장, 자동차서 스마트도시로 확장
현대차는 향후 모빌리티 도시 인프라가 결합되는 ‘사람-디바이스-도시 연결’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수요응답형 셔틀과 자율주행 택시 및 호출플랫폼 등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를 국내 여러 도시에서 운영하고 지역을 확대해가며 ‘클라우드트랜스포테이션’의 구현을 위한 데이터 자산을 축적하고 있다.
행사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의 소프트웨어센터인 포티투닷(42dot)은 수소 사업과 함께 가장 비중 있게 다뤄졌다. 자체 개발 중인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의 방향성과 실증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다. 42dot 은 기존 SDV 및 AI 기술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활용해 차량 기능과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향상한 자체 SDV OS 솔루션을 선보였다.
포티투닷이 이날 선보인 SDV 플랫폼은 'AI 머신'이다. 자동차를 주변 환경 정보를 끊임없이 학습하는 러닝 머신(learning machine)이자 사람이 주는 데이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데이터를 만들고 수집해 목표를 달성하는 데이터 머신으로 정의했다. 단순하게 소프트웨어를 통한 기능 확장이 아닌 생활을 바꾸는 플랫폼으로 확장했다.
송창현 현대차 SDV 본부장(42dot 대표 겸임)은 “SDx의 핵심은 사용자 중심으로 구현되는 것”이라며 “세상의 모든 이동을 지식과 혁신의 원천으로 삼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최적화된 모빌리티 디바이스와 솔루션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친환경도 돈이 된다’ 수소 전면에
현대차그룹이 모빌리티 혁신과 함께 내세운 건 수소에너지다. 기자회견 45분 중 절반 이상을 수소에 할애했다.
올해 CES에서 현대차는 기존 연료전지 브랜드인 ‘HTWO’를 현대차그룹의 수소 밸류체인 사업 브랜드로 확장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수소 사회로의 전환을 앞당길 HTWO 그리드 솔루션을 발표했다.
수소 에너지는 청정하고 무한하며 세상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는 특징이 있다. 수소는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활용이 가능하고 다른 에너지원 대비 높은 에너지 밀도로 저장·수송에 강점이 있다. 동시에 특정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안정적 확보가 가능하고, 지역 내 수소 생산으로 에너지 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현대차는 1998년 연료전지 연구 초기부터 수소 관련 기술을 집중 개발했다. 이후, 2013년 투싼 ix35 수소전기차의 세계 최초 양산을 거쳐 25년 넘게 수소 에너지 기술에 투자해 수소 분야 리더십을 지속 강화해왔다.
현대차그룹의 수소 밸류체인 사업 브랜드인 ‘HTWO’는 그룹내 각 계열사의 역량을 결합해 수소의 생산, 저장, 운송·활용의 모든 단계에서 고객의 다양한 환경적 특성과 니즈에 맞춰 단위 솔루션(그리드)을 결합해 최적화된 맞춤형 패키지를 제공한다. HTWO 그리드 솔루션으로 수소 산업의 모든 밸류체인을 연결함으로써 생산부터 활용까지 수소 사업의 성장을 견인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승용 수소전기차(FCEV)분야에서도 시장 리더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넥쏘’ 후속 모델을 2025년까지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을 내세워 단순 차량을 넘어 이동 서비스와 다양한 기술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기아는 소재 과학 및 엔지니어링 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 고어와의 협약을 통해 차세대 연료전지 시스템에 적용될 최적의 전해질막을 개발하기로 했다. 현대차·기아는 차세대 전해질막을 적용한 연료전지 시스템을 탑재할 경우 기존 상용 수소 전기차보다 내구성 및 성능이 대폭 향상된 차량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창환 현대차·기아 수소연료전지개발센터장은 “우리는 연료 전지 연구 개발을 시작했다. 엑센트 연료 전지 트럭(Accent Fuel Cell Truck)은 진정한 게임 체인저”라면서 “연료 전지에서 그치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건설 차량, 버스, 트램, 기타 프로그램 등 모든 하이퍼 모빌리티 솔루션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정의선 회장은 수소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 “저희 세대가 아닌 후대를 위한 것"이라며 "(미래 세대를 위해) 준비해 놓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발언한 “기업보다 더 IT 기업다워야 한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안전을 위해 자동차에 IT을 많이 접목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한발 물러섰다.
역대급 규모에 CES 서 모빌리티 존재감 각인
이번 CES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의 존재감은 크다. 일단 전시 공간이 역대급이다. 총면적은 6437㎡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규정한 국제경기 규격의 축구장 크기와 맞먹는다.
현대차는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웨스트홀에 마련된 부스에서 '수소와 소프트웨어로의 대전환: 이즈에브리웨이(Ease every way)'를 주제로 전시를 연다.
현대차그룹의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제로원도 2년 연속 CES에 참가한다. 제로원이 스타트업 전시관인 유레카 파크에서 운영하는 부스에는 스타트업 11개사가 개별 전시 공간을 꾸려 현지 네트워크 확보, 투자 유치를 위한 미팅을 전개한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로템,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 등 주요 그룹사가 함께한다. 이 밖에도 수소에너지, 소프트웨어, 로보틱스 기술이 접목된 미래 모빌리티 3종과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물류 상하차 로봇 '스트레치'가 현대차 부스에서 전시된다.
세계 1위 자동차업체인 일본 도요타와 함께 ‘빅3’로 불리는 미국 3대 자동차 제조사 포드,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가 전미자동차노조(UAW)의 파업 등을 이유로 불참하면서 기업의 존재감은 더 커졌다.
정의선이 꼽은 기아, 맞춤형 자동차 PBV
정의선 회장은 주목하는 분야로 꼽은 목적기반차량(PBV)은 탑승자나 사용용도에 초점을 맞춘 차량이다. PBV는 자율주행차 시대가 되면 운전자를 고려하지 않아도 돼 설계가 혁신적으로 바뀔 것이란 전망에서 주목받고 있는 분야다. 현대차그룹에서는 기아가 PBV 사업을 진행한다.
기아는 2021년 브랜드 론칭 이후 처음으로 CES에 참가해 '준비된 기아가 보여줄, 모두를 위한 모빌리티' 비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회사는 PBV를 '차량 그 이상의 플랫폼'(Platform Beyond Vehicle)으로 정의하고, SDV 기반의 콘셉트 모델을 선보이는 등 고객 중심의 토탈 모빌리티 솔루션을 발표한다. 또 중형 콘셉트 3대와 대형 콘셉트 1대, 소형 콘셉트 1대 등 PBV 라인업을 최초로 선보인다.
이외에도 헤일링(차량 호출) 서비스 차량을 딜리버리 전용 모빌리티로 바꾸는 등의 라이프 모듈 변경 기술 '이지스왑'과 다양한 크기의 차체를 조립해 다품종소량생산을 하는 '다이내믹 하이브리드' 기술도 공개할 예정이다. 기아는 LVCC 센트럴 플라자에 야외 부스를 마련해 전기차 EV3 콘셉트와 EV4 콘셉트, EV6, EV9도 전시한다.
모빌리티의 새로운 챕터, 에어모빌리티도 전면에
정의선 회장이 꼽은 또다른 제품은 에어택시는 항공기와 자동차의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교통수단이다. 기존의 교통수단보다 빠르고 편리하며, 도심의 교통 혼잡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되면서 스마트시티 설계에서 자주 언급된다.
현대차그룹에서는 미국 도심항공교통(UAM) 법인 슈퍼널이 고급항공모빌리티(AAM)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AAM은 급부상하는 분야로 이번 2024에 새롭게 추가됐다. 슈퍼널은 민간수송용 전기수직이착륙(eVTOL) 항공기 제작을 위한 제조공장 건립 계획을 밝혔다. 항공기용 연료 대신 전기를 사용해 상업용 항공기를 항공 택시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있다.
슈퍼널은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인 UAM 기체의 신규 디자인을 공개하고, 실제 크기의 모델을 전시한다. 특히 LVCC 외부에 UAM 정거장인 버티포트를 연상시키는 공간을 마련해 관람객이 실제로 UAM을 이용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밖에 현대모비스는 자동차용 투명 디스플레이를 최초로 선보인다. 양산 적용이 가능한 모빌리티 신기술 20종을 선보인다. 고부가가치 기술이 집약된 '혁신 디스플레이' 시리즈와 고출력 통합 충전 제어 모듈(ICCU)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