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벤하이머와 AI의 오펜하이머 모멘트
[뷰스레터플러스]
오펜하이머 모멘트는 무엇?
실리콘밸리, 책임감을 가져라
AI에 맞서 '인터내셔널 깃발' 세울까?
지난 주말 미국에서는 모처럼 '영화 관람'이 크게 화제가 됐습니다. "영화 예매 했어? 무슨 영화 볼꺼야?" 이 말을 정말 오랜만에 들었습니다.
영화 '바비'와 '오펜하이머'는 현지시간 지난 금요일(21일) 미 전역에서 개봉했는데요. 개봉 전에는 바비와 오펜하이머를 합친 '바벤하이머'라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열광은 '실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개봉 첫날 '바비'는 7천 50만 달러(약 909억 원), '오펜하이머'는 3300만 달러(약 425억 원)를 벌어들인 것입니다. 바비와 오펜하이머는 관객 타깃층이 달라서 개봉일을 같이 잡았는데 오히려 밈(meme)을 일으키며 시너지를 낸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미디어 지형의 중심이 '스트리밍'으로 완전히 바뀐 상황에서 '바벤하이머' 의 선전은 올 하반기 극장 관람 경험의 부활을 점칠 수 있을 듯합니다.
실적은 '바비'가 앞서지만 '화제성'은 단연코 오펜하이머입니다. 인터스텔라, 인셉션, 다크나이트 등을 만들며 한국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가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금세기 최고의 영화 중 하나다. 올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면 바로 이 영화다.", "전율이 일었다", "흐느껴 울었다" 등의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2023년을 상징하는 영화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챗GPT를 시작으로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비즈니스를 강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영화의 모티브를 제공한 미국의 핵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와 이를 주도한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각성이 주는 시사점이 크기 때문입니다.
'오펜하이머 모멘트'가 온 것일까요?
오펜하이머 모멘트는 무엇?
오펜하이머 모멘트는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에서 직접 핵무기를 개발한 오펜하이머가 자신의 주도한 핵무기가 실전투입(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투하)과 그 참상이 알려지면서 핵무기 회의론자로 돌아서는 깨달음을 뜻합니다.
오펜하이머는 실제로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며 자책했습니다. 이 영화는 실험과 깨달음의 순간을 그렸죠. 이후 '오펜하이머 모멘트'는 새로운 기술로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과학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돌아봐야 한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인공지능이 '핵 개발' 맨해튼 프로젝트와 비견되는 이유는 개발 속도가 빠르고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순간까지 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현대 인공지능의 대부 중 한명으로 꼽히는 제프리 힌튼 교수, 전 구글 회장인 에릭 슈미트, 현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 등이 공통적으로 "AI는 핵무기처럼 다뤄야 한다."고 입을 모은 이유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개발 속도가 '기하급수적'이기 때문에 어디까지 갈지 '인간'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 책임감을 가져라
영화 '오펜하이머'의 개봉일인 지난 21일, 미 백악관과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엔트로픽, 인플렉션 등 생성AI 서비스를 개발하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7개 기업은 "AI 위험관리와 관련한 자율규제 안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합의에 따르면 AI가 생성하는 '차별적 행위'를 우선적으로 연구하고 외부 감사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또 사회적 위험을 조장하거나 국가 안보 문제를 유발하는 인공지능 모델은 회사 내외부에서 레드팀을 구성하기로 했으며 오디오 또는 시각적 콘텐츠가 AI로 생성되었는지 여부를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워터마크'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합의가 '면죄부'를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영화 오펜하이머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화와 인공지능 기술 개발의 상관관계를 떠올리며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책임'에 대해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일갈했습니다.
AI에 맞서 '인터네셔널 깃발' 세울까?
지금 헐리우드는 파업 중입니다. 헐리우드 배우들이 영화와 TV 제작을 보이콧하고 있습니다.
미국 방송 영화 배우를 대표하는 노조 'SAG-AFTRA'가 지난 13일부터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지난 5월 작가 파업에 이어 할리우드는 역사상 두 번째로 '더블 스트라이크'를 맞게 됐습니다. 특히 배우들의 파업은 1980년 이후 처음입니다. 그 동안 헐리우드의 파업은 '권리'와 '연봉'에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엔 AI시대, 작가와 배우 파업 모두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 AI사용 여부가 협상의 주요 쟁점입니다.
이들은 AI 부상에 따른 권리 보호를 원합니다. 향후 AI가 제작 현장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자신들의 대체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규제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AI활용에 따른 피해 보상, 장기적으로는 AI가 창작 작업을 대체하는 것을 막는 것이 목표입니다.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이에 따라 영향을 받는 사람과 직업에 대해선 대책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이 것은 한 국가만이 아닌 글로벌 수준에서 논의가 되야할 것입니다.
영화 '오펜하이머'가 개봉하고 미 백악관과 AI 7개 기업이 안전한 AI 개발을 위해 서명한 지난 21일, 저는 미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오픈AI 본사에 갔습니다.
오픈AI에 들어서니 입구에서 방문객에게 1장으로 프린트 된 '오픈AI 헌장(Charter)'을 나눠주더군요. 이 헌장에는 "우리의 임무는 일반 인공지능(AGI)이 모든 인류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라고 적혀있었습니다.(오픈AI와의 NDA에 의해 현장 사진을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임직원이나 방문객을 위해 회사 비전과 구호가 회사 곳곳에 볼 수 있도록 한 회사는 많은데 이처럼 '헌장'을 나눠주는 회사는 처음이었습니다. 만난 오픈AI 직원들에게선 '책임감'이란 단어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펜하이머 모멘트'에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AI기술에 대한 비관론이 70%, 낙관론을 309% 정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날 오픈AI 방문으로 낙관론이 5% 정도 올라갔습니다. 테크 커뮤니티 전반에 오픈AI의 '헌장'과 책임감이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