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 분야 투자? “단기성과 보려면 ‘진단 분야’ 주목하라”
<인터뷰> 바이오메디컬 공학자 여운홍 조지아 공대 교수
NIH 트레블 블레이저, IEEE 아웃스탠딩 엔지니어 상 수상
나노센서 분야 권위자… 웨어러블 센서, 수면 모니터링 등 연구
코로나19를 계기로 생명공학 분야가 급성장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제약 분야는 물론, 진단, 치료를 위한 장비, 인프라, 플랫폼 기업에 이르기까지 생명공학 분야는 그야말로 ‘르네상스’를 경험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기업들의 최근 행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존슨앤드존슨, 머크, 화이자 등 제약회사들은 최근 제약 사업 부문을 회사 내 소비재 분야와 분리하면서 '바이오메디컬' 분야로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생명공학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함께 주목받는 분야가 있다. 바이오메디컬엔지니어링, 즉 생명의공학(Biomedical engineering) 분야다. 의공학은 의학과 공학, 그리고 자연과학이 융합한 학문이다. 의료기기, 영상, 진단·치료기기를 비롯한 첨단 의료 기술 개발을 선도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최근 미국 생명의공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인 과학자 여운홍 조지아텍 기계·생명의공학 교수와 업계의 미래와 관련 산업으로의 투자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NIH, IEEE 등서 인정...잇따른 수상
여운홍 교수는 올해 잇따른 수상으로 업계 주목을 받았다. 그는 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로부터 ‘트레일블레이저 어워드(Trailblazer Award)’를 수상했다. 젊은 과학자들에게 주는 이 상은 3년간 65만달러의 펀드를 지원하면서 관련 연구 분야를 개척해보라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여 교수는 음식물을 삼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 연하장애(Dysphagia)를 위한 테스트 장비 개발 연구로 상을 수상했다. 그에 따르면 기존 연하장애 테스트는 동물에게 약을 투여하고, 약이 효과가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동물을 죽여서 티슈를 확인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테스트할 때마다 생명체를 죽여야 하는 윤리적인 문제가 뒤따랐던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여 교수는 테스트 대상이 된 동물에 센서를 착용하게 하고, 근육 움직임에 따른 시그널을 통해 약의 효능을 확인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약을 줄 때마다 실시간으로 정량적인 시그널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는 “연하활동에 대한 지속적이고 정량적인 평가를 제공하는 나노막 전자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며 “이 같은 실험방식을 통해 질병 치료를 위한 신약개발에 도움을 주는 웨어러블 플랫폼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최근 미국전기전자학회(IEEE)로부터 생체의료기기 개발과 관련 ‘아웃스탠딩 엔지니어 어워드’를 수상했다. 이 상은 남동부에서 가장 연구성과가 좋은 연구자에게 주는 상이다. 지난 1년간 논문으로 성과를 측정해 평가한다. 이 밖에도 ‘SharQ 탱크 혁신 대회’ 메디컬 혁신 글로벌 센터 분야에서도 1위에 오르는 등 연구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나노센서’ 분야 권위자 ... 홈 슬립 모니터 등 상용화
여 교수는 나노센서 분야의 권위자다. 현재 여 교수의 랩 산하에서 이뤄지고 있는 프로젝트만 25개에 달한다. 연구에 투입된 그룹 내 대학원생은 40여 명. 총 누적 펀딩은 2000만달러 규모다.
그의 연구팀은 나노센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술 로봇 시스템을 비롯해 웨어러블 센서, 수면 모니터링 바이오 패치 등 적용하는 분야도 다양하다. 여 교수팀의 장점은 이미 알려진 기술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여운홍 교수는 “몸에 착용하거나 몸 속에 투입해 환경을 조성하고, 이 시스템을 통해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질병 진단과 치료에 도움을 주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연구 분야로는 ‘브레인 머신 인터페이스’가 있다. 머리에 착용하는 장비를 이용해 머리에서 나오는 시그널을 측정하고, 외부의 기계를 컨트롤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사지마비나 팔, 다리 장애로 인해 의료 장비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기술이다. 여 교수는 “실제 이 기술을 통해 휠체어 제어가 가능할 정도로 연구가 개선됐다”며 “현존하는 기술 중 가장 발전한 것으로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홈 슬립 모니터'는 이미 상용화 단계에 있는 기술이다. 여 교수는 “집에서 수면 상태, 수면의 질, 수면 장애가 있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나온 제품들의 경우, 해당 제품에서 나오는 시그널만으로는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며 “센서를 활용하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새로운 물질과 매커니즘을 통해 시그널 퀄리티의 문제를 해결했다. 이 기술은 저명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 저널 심의를 통과해 다음 달 게재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여 교수가 공동 창업자로 있는 ‘헉슬리 메디컬(Huxley Medical, CEO 크리스 리)’은 현재 홈 슬립 모니터 상용화를 위한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 회사의 크리스 리 CEO는 조지아텍 박사 출신으로, 스타트업 회사를 매각해 수백만 달러를 거머쥔 자산가다. 헉슬리 메디컬은 현재 엔젤투자와 연방 펀드 등 총 1000만달러의 펀드를 지원받아서 제조 및 생산을 위한 채비를 갖추고 있다.
혈관에 나노센서 투입, 혈류 흐름 측정... 코로나 감염 막는 마스크 센서 개발도
여 교수팀은 몸 안에 센서를 넣어 상태를 측정하는 ‘임플란터블’ 기술도 연구하고 있다. 혈관에 나노센서를 투입하는 기술이다. 여 교수는 “가령 혈관을 뚫는 수술을 받는 환자들은 수술 후에 경과를 알 방법이 없다”며 “혈관 조영제를 통해 보는 수밖에는 없는데, 비용도 8000달러나 들고, 암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여 교수팀이 개발 중인 임플란터블 나노센서 기술은 혈관 조영제의 단점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다. 몸 속에 나노센서를 투입하고, ‘카테터’라는 관을 통해 배달하면 측정이 필요한 부위의 혈관 벽에 나노센서가 붙는다. 센서는 혈류나 혈압 등을 무선으로 측정하는 역할을 한다. 여 교수는 “이를 통해 환자의 치료 후 경과를 파악할 수 있다”며 “진단 보다 수술 후 치료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도움이 되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여 교수에 따르면 이 기술은 한국의 아산병원으로부터 4년간 8억원의 펀딩을 받았다. 또 한국 관상동맥용 스텐트 제조사인 시지바이오 측과 협업도 이뤄지고 있다.
애틀랜타에 거점을 둔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여운홍 교수팀은 최근 CDC의 펀딩을 받아 ‘스마트 호흡용 보호구’(Respirator) 개발에 나섰다. N-95와 같은 마스크 형태로, 마스크에 공기가 들어오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기술이다.
여 교수는 “코로나19 기간 중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분야 종사자들의 감염이 잇따랐다”며 “이는 착용한 마스크에 외부 공기가 새어 나갔기 때문인데, 공기가 새는지 여부를 원격으로 알려주는 센서를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를 위해 여 교수팀은 CDC로부터 34만 5000달러의 펀드를 지원받았다.
“바이오메디컬 분야? 인류 멸망 전까지 성장할 것”
여러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여운홍 교수는 '재미'에서 동기부여를 얻는다고 말한다. 그는 다작의 논문을 제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14년부터 올해까지 쓴 논문만 100여 편에 달한다. 1년에 20편의 논문을 쓴 셈이다.
원래 교수의 꿈이 없었다는 여운홍 교수는 대학 시절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의공학분야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가 좋아서 어학연수 차 미국에 왔다가 영어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관련 분야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었다”며 “사인을 모르거나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를 예방하고 추적하는 진단 장비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에 이 분야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여 교수는 연구에만 매진하면서 3년 만에 석•박사 통합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일리노이 공대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친 뒤, 2014년 버지니아 의대 교수가 됐다. 조지아텍(GT)에는 지난 2017년에 합류했다. 조지아 공대는 기계공학 분야와 의공학 분야에서 각각 미국 내 랭킹 2위의 대학이다. 기계공학 분야는 MIT 공대에 이은 2위, 의공학 분야는 존스홉킨스대에 이은 2위다.
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주목받고 있는 생명공학 분야의 전망에 대해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유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은 죽지 않고,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삶을 꿈꾼다. 사람들이 이런 꿈을 꾸는 한 관련 연구와 투자는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명공학 분야를 향한 투자나 사업적인 관심을 가진 이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여운홍 교수는 “생명공학 분야는 단기와 장기로 구분해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진단 분야는 기존에 있는 기기나 장비 등을 업그레이드 하는데 집중하기 때문에 비교적 단기간에 결과물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반면 치료 분야는 다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 아무리 관련 분야가 유망하다고 하더라도 개발이 끝내 이뤄지지 않으면 한순간에 해당 기업의 가치가 ‘제로’가 될 수 있다.
여운홍 교수는 “신약의 경우 동물을 적용한 실험에서는 성과를 봤다가 사람에게 적용했을 때 아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수두룩하다”며 “윤리위원회 승인만 해도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투자 시 해당 기업의 성격과 연구 분야에 대한 특성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여운홍 조지아텍 교수?
-인하대 기계공학과
-워싱턴대(University of Washington) 석•박통합
-일리노이공대(University of Illinois Urbana-Champaign) 바이오엔지니어링 및 재료공학 박사 후 과정
-버지니아 의대(Virginia Commonwealth University) 및 의공학 겸직교수 역임
-현 조지아텍(Georgia Tech) 기계공학 및 바이오메디컬엔지니어링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