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독점'을 재정의하다...리나 칸 논문 분석
칸을 FTC위원장으로 만든 논문 내용 살펴보니
아마존의 독점 규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앞으로 빅테크 반독점 규제 교과서 역할 할 듯
미 공정거래(FTC)위원장에 임명된 리나 칸(32) 전 컬럼비아대 교수는 2018년 9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2018년 당시 칸 위원장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아직은 직장이 없는 ‘백수’일 뿐이었다. 그런 20대의 법대 졸업생을 왜 뉴욕타임스가 인터뷰를 한 걸까?
이는 2017년 초 칸 위원장이 로스쿨 재학 중 '아마존의 반독점 패러독스(Amazon's Antitrust Paradox)'라는 유명한 논문을 쓴 덕분이었다. 이 논문은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은 미국의 독점법을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예일대 로스쿨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거대해져만 가는 미국의 ‘빅테크’를 길들일 묘수를 찾고 있던 정치인들에겐 가뭄에 단비 같은 논문이었다. 사실상 칸을 미국 FTC위원장으로 만들어준 논문인 셈이다.
독점은 시장에서 공급자 또는 수요자의 수가 극히 적어 상품의 공급량 또는 수요량의 증감에 의해 시장가격을 좌우할 수 있는 시장형태를 말한다. 여기서의 방점은 시장가격 결정에 있다. 기업이 시장가격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때 독점이라는 얘기다. 빅테크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디지털의 속성에 힘입어 시장 가격을 높이지 않고 낮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테크는 분명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 같은데도 독점이라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빅테크 덕분에 가격이 낮아지니 소비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빅테크는 소비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시장 참여자에게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그래서 칸 위원장은 우리가 소비자로서는 빅테크 기업을 사랑하지만 노동자나 기업가, 시민으로서는 그들의 거대한 힘을 두려워한다고 말한 거다.
지금까지 반독점 법은 소비자 복지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아마존과 같은 빅테크 플랫폼의 시대에는 소비자 복지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전체 그림을 볼 수 없다. 낮은 가격을 유지하는 이면에서는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을 받고, 사업자들은 플랫폼의 횡포를 겪으며, 시민들은 부익부 빈익빈의 피해를 입는다.
칸 위원장의 논문은 새로운 시대에 빅테크를 포괄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식을 서술해 놓은 교과서라고 볼 수 있다. 93페이지가 넘고 무려 464개의 각주가 달린 그 논문 내용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