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6, ‘AI 컨버전스’의 시대를 열다

reporter-profile
손재권 2026.01.17 16:06 PDT
CES 2026, ‘AI 컨버전스’의 시대를 열다
현대차그룹이 CES2026에서 공개한 '뉴 아틀라스' (출처 : 현대차)

[CES 2026 트렌드를 전략으로] ① AI 컨버전스 : 피지컬AI의 본격 등장
CES 2026은AI가 모든 산업을 관통하는 ‘운영체계’로 전환되는 분기점
AI는 개별 기능 아니라, 산업 구조와 비즈니스 모델 재설계하는 인프라
로봇·자율주행·스마트 인프라로 확장되는 ‘피지컬 AI’의 캄브리안 모먼트
산업 주도권과 국가 전략을 가르는 구조적 전환 의미

CES의 주 무대인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는 2026년부터 풍경이 바뀌었다. 약 8000억원을 들여 리노베이션 한 외관 뿐만은 아니었다. 지난 60년, 아니 지난 20년, 10년간 CES 무대의 주인공과 주력 산업이 바뀌고 변화하는 모습이 한번에 나타난 이벤트였다.

CES 2026은 단순한 기술 전시회가 아니었다. 4,100개 이상의 기업, 14만 8,000명의 관람객, 6,900개의 글로벌 미디어가 모인 이 거대한 무대는 2030년까지 글로벌 산업과 사회 전반을 관통할 'AI 컨버전스'라는 메가트렌드의 압축판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CES 현장에서 더밀크와 만난 게리 샤피로 CTA 회장에게 물었다. "올해 CES는 어떤지 평가해달라"라는 추상적 질문이었다. 그는 CES를 "아이스크림을 설명하는 것"에 비유했다. 맛이 어떤지 말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결국 직접 먹어봐야 안다는 것이다. 우문현답이었다.

그의 말처럼 CES는 세계의 리더들이 모여 미래를 보고, 탐색하고, 이노베이션이 태어나는 현장이다. 그런데 올해는 단순히 '맛보는' 수준을 넘어섰다.

과거에도 기술 융합은 있었다. IT와 통신이 만났고, 모바일과 인터넷이 결합했다. 그러나 이번 융합은 질적으로 다르다. AI는 융합의 '대상'이 아니라 융합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던 산업들이 AI라는 공통 문법을 갖게 되면서,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는 속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시작 단계'가 아니라 이미 실행 국면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AI가 '기능'이나 '옵션'이 아니라 모든 산업의 기본 전제가 되었다는 점이 눈으로 확인했고 실제로 만저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CES 2025에서 AI는 여전히 '특별한 기능'이었다. 자율주행, 생성형 AI, 스마트홈 등 개별 카테고리 안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차별화 요소로 전시됐다.

그러나 CES 2026에서 AI는 더 이상 '옵션'이 아니었다. 헬스케어, 자동차, 에너지, 제조 등 모든 산업이 AI를 기본 전제로 깔고 그 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이야기했다. 1년 사이 AI는 '있으면 좋은 것'에서 '없으면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위상이 바뀌었다.

실제 헬스케어 기업은 AI를 의료기기의 한 기능으로 설명하지 않았고, 자동차 기업은 자율주행 기술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데이터,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현장 운영, 인간의 역할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결합되는 구조를 이야기했다. 산업별 전시는 달랐지만, 그 밑바탕에는 동일한 아키텍처가 깔려 있었다. 이것이 바로 AI 컨버전스(The Great AI Convergence, 융합)의 실체다.

더밀크는 CES 2026 현장에서 확인한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7개의 핵심 트렌드로 정리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동향이 아니다. 2030년까지 글로벌 산업 지형을 재편할 구조적 변화의 신호탄이며, 한국 기업과 정책 입안자들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전략적 이정표다.

CES2026에서 샤르파의 로봇이 로봇 손으로 종이를 꺼내고 있다 (출처 : 더밀크)

CES 2026은 왜 'AI 컨버전스'의 무대였나?

CES 2026을 관통한 핵심 개념은 'AI 대융합, AI컨버전스(AI Convergence)'였다.

2022년 11월 오픈AI 챗GPT 등장 이후 AI는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이 시기의 AI는 대부분 '화면 속'에 머물렀다. 텍스트를 생성하고, 이미지를 만들고, 코드를 작성하고, 질문에 답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다. 사용자는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AI와 상호작용했고, AI의 출력물은 디지털 형태로만 존재했다. 이 시기를 '생 AI(Generative AI)'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더밀크는 이 생성 AI 시대의 다음 단계를 AI 컨버전스로 정의한다. 단순히 AI 기술을 여러 산업에 적용하는 수준을 넘어, AI가 산업, 조직, 인프라, 비즈니스 모델을 하나의 운영체계(OS)처럼 관통하며 재조합하는 구조적 전환을 뜻한다.

즉, AI가 기술 레이어를 넘어 산업 간 경계를 해체하고, 물리, 디지털, 조직, 자본 구조를 동시에 재편하는 현상이다. 즉, AI는 하나의 기능이 아니다. AI는 산업을 묶는 공통 인프라이자 전략 언어다.

AI 컨버전스가 기존의 AI 논의와 다른 점은 명확하다. 기존 AI의 초점은 기술 도입이었다. "우리 회사도 AI를 도입해야 한다", "이 업무에 AI를 적용하면 효율이 올라간다"는 식의 논의였다. 적용 방식은 개별 서비스나 업무 단위였고, 기대 효과는 생산성 개선이었으며, 주체는 주로 IT 기업과 플랫폼 기업이었다.

2025년 이후 질문이 달라진다. 초점은 산업 구조 전환이고 적용 방식은 전 산업의 동시 재설계이며, 효과는 가치사슬 재편과 권력 이동이다. 주체는 IT 기업을 넘어 제조, 모빌리티, 에너지, 도시 인프라까지 확장된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CES 2026 기조연설에서 AI를 단순 애플리케이션이 아닌 새로운 '컴퓨팅 플랫폼'으로 정의한 것은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과거 인터넷이 그랬듯, AI는 이제 특정 산업의 도구가 아니라 모든 산업이 그 위에서 작동하는 기반 인프라가 되고 있다.

이는 과거 디지털 컨버전스와도 다르다.

기존 디지털 컨버전스의 본질은 '도구의 통합'이었다. IT, 인터넷, 모바일, 클라우드가 결합되면서 기업 내부에서는 프로세스 전산화, 온·오프라인 채널 통합, ERP와 CRM과 SCM의 고도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핵심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인간이 설계하고, 시스템이 실행했다. 경영 관점에서 디지털 컨버전스의 본질은 "더 빠르고, 더 싸고, 더 투명하게"였다. 효율성(Efficiency) 혁신이었다. 사람은 그대로였고, 도구만 좋아졌다.

AI 컨버전스는 다르다. 무엇보다 주체의 본질이 바뀐다.

AI가 판단하고, 학습하고, 최적화를 수행한다. 인간은 실행자에서 설계자와 감독자로 이동한다. 기업 내부에서 벌어지는 변화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람이 하던 의사결정이 자동화되고, 부서 간 경계가 붕괴되며(기획, 개발, 운영이 통합), 제품보다 운영 시스템이 경쟁력의 핵심이 된다. AI 컨버전스의 핵심 질문은 '누가 판단하고, 누가 책임지는가'다. 권한, 역할, 조직 구조의 혁신이다.

도구가 아니라 '조직의 일부'가 바뀐다. AI 컨버전스 시대에 의사결정 주체는 AI와 인간의 결합이고, 경쟁력의 원천은 운영 데이터와 학습 구조이며, 전략의 단위는 플랫폼과 플릿과 모델이고, 조직 구조는 역할 기반 혼합 조직이며, 리더십의 핵심은 설계와 감독과 책임이다.

AI 컨버전스의 정의 (출처 : 더밀크 (노트북LM 활용))

CES 2026에서 드러난 AI 컨버전스의 네 가지 축

CES 2026에서 드러난 AI 컨버전스는 네 가지 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기술 컨버전스(융합)다. 생성AI, 로보틱스, 센서, 디지털 트윈이 결합해 피지컬 AI(Physical AI)로 진화하고 있다. AI가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움직이고, 결정한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빨래를 개고, 자율주행차가 도시를 누비며, 스마트홈이 집 안의 상황을 이해하고 개입하는 것은 모두 기술 컨버전스의 결과물이다. AI가 비트(bit)의 세계에서 원자(atom)의 세계로 진입한 것이다.

두 번째는 산업간 컨버전스다. 제조와 소프트웨어가 결합하고, 자동차와 AI 플랫폼이 융합하며, 에너지와 데이터센터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였다. 업종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CES 2026에서 자동차 회사 부스에서 엔비디아 칩과 구글 AI가 논의됐고 가전 회사 부스에서 헬스케어와 에너지 효율이 등장했으며 로봇 회사 부스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기술이 설명된 것은 산업 컨버전스의 단면일 뿐이다.

세 번째는 비즈니스 컨버전스다. 제품 판매 중심에서 운영, 서비스, 데이터 수익 모델로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하드웨어 기업이 AI 운영 사업자로 변신하는 현상이다. 테슬라가 OTA 업데이트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유료 서비스로 판매하는 것, LG에너지솔루션이 배터리를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로 최적화되는 운영 자산'으로 재정의한 것, 삼성이 스마트홈을 '기기 제어'가 아니라 '생활 맥락 이해 플랫폼'으로 제시한 것은 모두 비즈니스 컨버전스의 사례다.

네 번째는 조직 및 노동 컨버전스다. 인간, AI 에이전트, 로봇이 혼합된 조직이 등장하고 있다. 직무 단위가 아닌 역할(Role) 단위로 재편이 일어난다. CES 2026에서 등장한 휴머노이드들이 물류센터와 공장에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AI 오퍼레이터, 로봇 플릿 매니저, 산업 AI 트레이너 같은 역할이다. 이는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의 '성격'을 바꾸고 있음을 의미한다.

왜 CES 2026이 그 무대였나?

CES는 원래 '소비자 가전(Consumer Electronics)' 전시회였다. TV, 냉장고, 오디오 같은 가전제품이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CES 2026에서 가전제품은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가전제품'이라는 범주 자체가 의미를 잃었다. 모든 것이 AI와 연결되면서 산업 간 경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더밀크는 CES를 '기술 전시회'가 아니라 '산업 질서가 바뀌는 현장'으로 해석해왔다. CES 2026에서 관측된 공통 신호는 명확하다. AI가 모든 산업의 공통 언어가 되었고, 경쟁력의 기준이 기술 성능에서 운영 능력으로, 다시 생태계 장악력으로 이동하고 있다.

CES 2026의 전시장을 걸으면 이 변화가 체감됐다. 모빌리티, 스마트홈, 헬스케어, 로보틱스, 에너지라는 별도의 산업 카테고리가 있었지만, 그 모든 카테고리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 분모가 있었다. 바로 AI였다. 이것이 CES 2026이 AI 컨버전스의 무대가 된 이유다.

엔비디아가 자동차 산업의 AI 스택 표준을 제시하고, 지멘스가 제조업의 AI 운영체제를 정의하며, 삼성이 스마트홈의 상황 인지 플랫폼을 선보이고, 수십 개의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이 피지컬AI의 캄브리안 모먼트를 연출한 것은 모두 같은 이야기의 다른 장면이다.

AI가 디지털 세계를 넘어 물리적 세계로 확장하면서, 모든 산업이 AI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CES 2026은 AI가 기술을 넘어 산업, 비즈니스, 조직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엮어, 새로운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내는 구조적 변화를 드러낸 AI 컨버전스의 무대였다.

CES 2026 이후 모든 기업, 모든 국가, 모든 개인이 답해야 할 질문이 "AI를 전제로 한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설 것인가"가 된 이유다.

LVCC 웨스트홀에 전시된 웨이모 로보택시 부스 (출처 : 더밀크 )

1. 피지컬 AI의 캄브리안 모먼트 : AI가 육체를 얻다

CES 2026에서 가장 뚜렷하게 부각된 키워드는 단연 '피지컬 AI(Physical AI)'였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기조연설에서 "피지컬 AI가 ChatGPT 모멘트에 접근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CES2025에서 젠슨 황 CEO가 대중에게 처음 '피지컬AI'에 대해 언급한 이후 1년만에 급속도로 CES 핵심 키워드로 등장하며 쇼 무대를 장악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피지컬 AI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지금 '캄브리안 모먼트'라는 표현이 등장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피지컬 AI란 무엇인가

피지컬 AI는 인공지능이 디지털 세계를 넘어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모든 형태의 기술을 의미한다. 기존의 AI가 텍스트를 생성하고, 이미지를 만들고, 코드를 작성하는 '화면 속' 존재였다면, 피지컬 AI는 실제 공간에서 사물을 인식하고, 움직이고, 조작하는 '육체를 가진' AI다.

중요한 것은 피지컬 AI가 로봇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지컬 AI의 스펙트럼은 넓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가장 눈에 띄는 형태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스스로 환경을 인식하고 주행 경로를 결정하는 자율주행차, 공장 전체를 디지털로 복제해 시뮬레이션하고 최적화하는 산업용 디지털 트윈, 집 안의 상황을 파악하고 조용히 개입하는 상황 인지 스마트홈, 사용자의 생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건강 상태를 추론하는 웨어러블 기기, 농작물의 상태를 파악하고 필요한 곳에만 물과 비료를 주는 정밀 농업 시스템 모두가 피지컬 AI다.

공통점은 하나다. AI가 센서를 통해 물리적 세계를 '보고', 알고리즘으로 상황을 '판단'하며, 액추에이터나 제어 시스템을 통해 물리적 세계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 인식(Perception), 추론(Reasoning), 행동(Action)의 결합이 피지컬 AI의 본질이다.

CES 2026은 왜 피지컬AI의 '캄브리안 모먼트'인가?

캄브리아기는 약 5억 4천만 년 전, 지구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하고 역동적인 시기였다.

선캄브리아기 지구에는 해면이나 해파리 같은 단순하고 비슷한 형태의 생명체만 존재했다. 그러나 약 1,000만 년이라는 지질학적으로는 찰나에 불과한 시간 동안, 갑자기 눈(Vision)과 감각 기관을 갖춘 생명체들이 등장했다. 오늘날 존재하는 거의 모든 동물 문(Phyla)의 원형이 이 시기에 한꺼번에 출현했다. 과학자들은 이 폭발적 진화의 원인을 '시각의 획득'에서 찾는다. 생명체가 '보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포식과 방어 활동이 복잡해졌고, 생존을 위해 다양한 형태로의 진화가 폭발했다는 것이다.

CES 2026에서 피지컬 AI가 '캄브리안 모먼트'로 불리는 이유는 정확히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AI가 마침내 '눈'과 '손'을 얻었다. 생성 AI의 지능이 센서, 액추에이터, 제어 시스템과 융합하면서,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가진 지능형 기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로봇은 공장 안에 고정된 팔(Arm) 형태이거나, 정해진 경로만 따라가는 청소기 같은 단순한 기계에 불과했다. 그러나 CES 2026에는 스스로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지능형 기계'가 폭발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다.

CES 2026 전시장에 갑자기 등장한 것들

LVCC 전시장을 걷다 보면 피지컬 AI 기기는 피해갈 수 없는 존재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 현대자동차의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새로운 아틀라스를 공개했다. 로보테라, 노에틱스, 아지봇 등 수많은 기업이 물류, 제조, 생활 공간을 겨냥한 휴머노이드와 서비스 로봇을 선보였다. LG의 AI 홈 로봇은 냉장고 문을 열고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는 시연으로 주목받았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버트 플레이터 CEO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10년간 우리는 유튜브 영상용 파쿠르(달리기, 뛰어넘기, 매달리기, 올라가기, 구르기, 균형잡기 등 인간 고유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하는 운동)를 했다. 어려운 건 실제로 쓸모 있는 일이다" 이 말은 로봇 산업의 전환점을 압축한다. 구경거리에서 실용으로, 시연에서 배포로의 전환이다.

그러나 피지컬 AI는 로봇에 국한되지 않았다. 자율주행 시스템은 파일럿에서 양산 단계로 이동하고 있었다. 웨이모와 죽스는 더 이상 "자율주행이 가능하다"를 증명하는 대신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 엔비디아는 차세대 AI 컴퓨팅 모델 알파마요를 통해 레벨4 자율주행의 표준 AI 스택을 제시했다.

스마트홈 영역에서는 삼성의 엣지어웨어(EdgeAware) AI가 집 안의 소리와 활동을 분석해 12가지 이상의 상황을 구분하고, 필요시 긴급 대응 서비스를 자동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이것도 피지컬 AI다. 카메라와 센서로 물리적 환경을 인식하고, AI로 상황을 판단하며, 물리적 세계에 개입(알림, 조명 조절, 긴급 연락)하기 때문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지멘스가 AI를 "공장과 전력망에 연결된 운영체제"로 정의하며 디지털 트윈과 결합한 자율 공장의 비전을 제시했다. 공장이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조절하는 구조다. 이 역시 피지컬 AI의 핵심 영역이다.

헬스케어에서도 피지컬 AI가 부상했다. 해플리 로보틱스(Haply Robotics)의 햅틱 장치는 원격 수술 중 외과의가 조직의 저항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수술 로봇이 느끼는 것을 인간이 느끼는 감각 루프를 만드는 것이다.

생명체가 시각을 획득해 종의 대폭발을 일으킨 것처럼, AI가 센서와 액추에이터를 통해 '눈과 손'을 얻으며 물리적 세계로 진입하는 '피지컬 AI'의 캄브리안 모먼트가 도래했다. CES 2026은 AI가 단순한 소프트웨어를 넘어 스스로 환경을 인식하고 움직이는 다양한 지능형 기계로 폭발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증명한 현장이었다. (출처 : https://www.openhorizons.org/)

피지컬 AI, 왜 2026년인가? 세 가지 이유

피지컬 AI가 CES 2026에서 주류 테마로 부상한 데는 이유가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기술적 단계가 성숙 수준으로 도달했다는 것이다. 센서, 엣지 컴퓨팅, 로보틱스, 배터리, 에너지 효율 기술이 동시에 성숙기에 진입했다.

개별 기술로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이들이 결합해 실용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은 최근이다. 특히 생성 AI와 파운데이션 모델의 발전이 결정적이었다. 로봇이 자연어를 이해하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며, 인간과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대규모 언어 모델과 멀티모달 AI 덕분이다.

또 생성 AI의 한계가 명확해졌다. 지난 2년간 생성 AI 도입은 폭발적이었지만, 실제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챗봇은 고객 서비스를 개선하고, 이미지 생성 AI는 마케팅 콘텐츠를 만들었지만, 공장에서 불량품을 골라내거나, 물류 창고에서 상품을 분류하거나, 건설 현장에서 위험을 감지하는 일은 하지 못했다. 이런 영역에서 필요한 것은 콘텐츠 생성이 아니라 물리적 작업의 자동화다. 피지컬 AI는 이 간극을 메운다.

시장 규모와 투자 논리도 피지컬AI를 향하고 있다. 생성 AI 시장은 이미 오픈AI, 구글, 앤스로픽, 메타 같은 빅테크가 장악했다. 후발 주자가 진입할 여지가 좁다. 반면 피지컬 AI는 완전히 새로운 성장 축을 연다. 전 세계 수십억 대의 자동차, 가전제품, 산업 기계, 의료 기기에 AI를 배포하는 시장이다. 엔비디아가 자동차 산업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지멘스가 산업 AI에 집중하며, 삼성과 LG가 스마트홈 AI를 강조하는 것은 모두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피지컬 AI의 부상은 AI 산업의 경쟁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생성 AI 시대에는 알고리즘과 데이터가 경쟁력의 핵심이었다. 가장 큰 모델을 가장 많은 데이터로 학습시키는 기업이 승리했다. 그러나 피지컬 AI 시대에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제조 역량, 운영 노하우가 동시에 필요하다. 알고리즘만으로는 로봇을 만들 수 없고, 하드웨어만으로는 지능을 구현할 수 없다.

CES 2026은 그 탐색의 시작점이었다. 캄브리아기에 눈을 가진 생명체들이 폭발적으로 진화했듯, AI가 눈과 손을 얻은 지금, 피지컬 AI의 폭발적 진화가 시작됐다. 5억 년 전 캄브리아기가 오늘날 모든 동물의 원형을 만들어냈듯, 지금의 피지컬 AI 캄브리안 모먼트가 향후 수십 년간 산업과 일상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롤랑드 부시 지멘스 회장이 CES 2026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 : 지멘스)

트렌드를 전략으로 만드는 더밀크의 제언 : 피지컬 AI, 한국에 주는 의미와 3대 전략

여기서 한국에 대한 전략적 함의가 분명해진다. 한국은 챗GPT나 클로드 같은 LLM 경쟁에서는 오픈AI, 앤스로픽, 구글을 따라잡기 어렵다. 그러나 피지컬 AI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이는 소프트웨어만의 싸움이 아니라 하드웨어, 제조, 현장 데이터, 시스템 통합의 총체적 경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샘 알트만 오픈AI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이 한국을 경쟁적으로 찾은 것은 이유가 있었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현대차와 기아의 자동차 제조,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현대로보틱스와 두산로보틱스의 산업용 로봇, 그리고 수십 년간 축적된 정밀 제조와 공정 자동화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피지컬 AI의 핵심 자산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자산들이 지금까지 개별 산업의 경쟁력으로만 활용됐다는 점이다. 피지컬 AI 시대에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세 가지다.

현장 데이터를 국가 자산으로 인식해야 한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의 공정 데이터, 현대차 울산 공장의 생산 데이터, 포스코 제철소의 운영 데이터는 단순한 기업 내부 정보가 아니라 피지컬 AI 학습의 핵심 자산이다.

이를 보호하면서도 산업 간 공유할 수 있는 데이터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일본이 제조업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업 AI를 육성하는 것처럼, 한국도 현장 데이터 중심의 AI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② 길목 기술을 개발하고 장악해야 한다. 중국은 완제품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은 엔비디아처럼 플랫폼 레이어를 장악하고 있다. 한국의 기회는 그 중간, 즉 없으면 시스템 전체가 작동하지 않는 핵심 부품과 서브시스템에 있다. 이 것을 '길목 기술'이라고 한다.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목'에 있는 기술이다.

로봇의 정밀 모터, 자율주행차의 센서 퓨전 시스템, 스마트 팩토리의 엣지 AI 컴퓨팅 모듈 같은 영역이다. 이는 규모의 경제로 압도하기 어렵고, 현장 경험과 기술 노하우가 결정적인 영역이다.

더밀크와 CES 2026 기간에 함께 한 전문가 그룹(밀크쉐이커)인 주영섭 서울대 특임교수는 "중국의 목표는 한국 기업을 대체하는 것이다. 한국은 초정밀 공정 장비 , 고신뢰 부품(센서·모터·전력반도체·열관리), 제조 공정 소프트웨어(SDF, 제어 OS), 안전·신뢰·인증이 필요한 시스템을 잡아야 한다. 길목기술 전략을 잡아야 한다. 미국 중국 양쪽의 러브콜을 받을 수 있는 기술을 전략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③ 한국을 '피지컬 AI'의 실험장(테스트베드)이자 글로벌 수도(캐피털)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은 좁은 국토에 첨단 제조, 물류, 의료, 교통 인프라가 밀집돼 있다. 5G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피지컬 AI 기술을 빠르게 테스트하고 검증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넘어 적극적인 실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지자체와 협의를 통해 '피지컬 AI 실험 도시'를 재빠르게 지정하고, 자율주행 로봇, 배송 드론, 스마트 인프라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을 피지컬 AI의 '리빙 랩'으로 선택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도 대중소기업 할 것 없이 기업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각 기업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AI 기술과 자체 개발한 기술을 합쳐, 피지컬 AI 구현자, 중기적으로는 산업 통합자가 되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핵심 컴포넌트에서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피지컬 AI는 기술 경쟁이 아니라 '프레임 전쟁'이다. 산업 포지셔닝의 문제다. 이 선택을 미루는 기업은, 선택당하는 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할 것이다.

한재권 에이로봇 CTO(한양대 교수)가 CES 2026 맥스 얼라이언스 부스에서 공장용 휴머노이드 로봇을 시연하고 있다 (출처 : 더밀크)

회원가입 후 뷰스레터를
주 3회 무료로 받아보세요!

단순 뉴스 서비스가 아닌 세상과 산업의 종합적인 관점(Viewpoints)을 전달드립니다. 뷰스레터는 주 3회(월, 수, 금)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