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은 금리를 올리려고 연준의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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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주 2022.08.27 22:58 PDT
파월은 금리를 올리려고 연준의장이 됐다
하우스 오브 트럼프. 2017년 11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연준 의장 지명자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장면 (출처 : Gettyimages, 그래픽: 장혜지)

[더밀크오리지널 : 파워 오브 파월 #3]
제롬 파월은 처음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뒤통수를 칠 작정이었습니다.
처음 트럼프를 만났을 때 파월은 자넷 옐런 연준의장이 연임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빚의 제왕 트럼프는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해줄 허수아비 연준의장을 원했습니다.
제롬 파월 스토리 세번째 이야기는, 파월이 트럼프를 배신한 순간입니다.

제롬 파월은 금리를 올리기 위해서 연준의장이 됐다.

2017년 8월 트럼프 백악관 참모진들과 차기 연준 의장과 관련한 사전 인터뷰를 끝내고 가까운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파월이 월스트리트에서 인수합병 전문 변호사로 일할 때부터 알고 지난 절친들이었다.

사실 파월은 연준 의장 자리에 큰 관심이 없었다. 파월은 정통 경제학자 출신이 아니라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솔직히 2017년 1월에 들어선 차기 트럼프 공화당 행정부에서 공화당원 출신 경제관료인 파월이 내심 원했던 자리는 연준 의장이 아니었다. 파월이 내심 고려한 자리는 정부 산하 은행감독기관의 부의장 자리였다.

파월은 1991년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일하면서 뉴잉글랜드 은행 파산과 솔로몬 브라더스 파산 같은 굵직한 금융위기를 해결한 경험이 있었다. 민간 부문의 칼라일 그룹에서 은행 인수합병을 다뤄본 파월한테 은행감독기관에서의 역할은 제법 잘 어울리는 자리였다. 그래서 트럼프 참모들과의 사전 미팅에서도 파월은 자넷 옐런 현직 연준의장의 연임을 강하게 주장했던 참이었다.

파월은 진심으로 연준의장직에 관심이 없었다. 진심으로 옐런의 연임을 바랬다. 그렇지만 사전 인터뷰가 끝나자 파월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옐런을 재임명하는데 한 톨의 관심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친구들은 파월한테 그렇다면 연준의장직을 맡아야만 한다고 조언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금리를 올릴 때가 됐기 때문이었다.

절친들이 파월한테 해준 말을 요약하면 이랬다. “시장이 연준을 잡아먹기 전에 연준이 시장보다 한발 앞서서 금리를 정상화시켜야만 한다네.” 솔직히 다들 알고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도 이미 10년 전 일이었다. 연준은 파티를 끝낼 때가 됐는데도 아직 펀치볼을 치우지 않고 있었다. 이러다 경제가 과열되기라도 하면 나중엔 경기침체라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수도 있었다.

2016년까지만 해도 자넷 옐런 연준의장은 기준금리를 0.50%로 낮게 유지하고 있었다. 까놓고 말해서 대선이 있는 해였으니 어쩔 순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인플레이션은 다행히 낮았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저금리에도 CPI는 1% 안팎에 불과했다. 실업률도 5% 미만이었다.

덕분에 자넷 옐런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모두 잡은 연준의장이 돼가고 있었다. 역대 모든 연준의장이 이루려던 업적이었다. 정작 이렇게 경제가 좋았는데도 2016년 11월 대선에서 민주당은 트럼프한테 정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민주주의의 아이러니였다.

그런데 오비이락처럼 2016년 11월 대선 직후부터 인플레이션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미국 CPI는 2017년 새해벽두 1월부터 순식간에 2%를 넘겨버렸다. 이때도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4년 뒤 2021년 4월 파월 시대에 미국 CPI가 2%대를 기록했던 것처럼 이때도 역시 인플레이션 여부를 판가름할 결정적 순간이었다.

옐런은 파월과 달랐다.

인플레이션을 있는 그대로 인플레이션으로만 바라봤다. 옐런은 즉각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서 맞대응했다. 대선이 민주당의 패배로 귀결돼서였을 수도 있다. 옐런은 더 이상 오바마 행정부를 고려해 낮은 금리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옐런은 민주당원이었다. 차기 트럼프 행정부를 위해서 낮은 금리를 유지할 필요 따윈 더더욱 없었다.

어쩌면 이때 이미 옐런 연준의장도 트럼프 행정부에선 연임이 어려울거란 사실을 직감했었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옐런은 인플레이션에 정치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2021년 4월의 파월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부분이었다. 연임에 연연하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독립적인 연준의장만큼 막강한 존재도 없다. 2017년 옐런이 그랬다.

파월 메이커스. 스티븐 무느신과 자넷 옐런은 트럼프가 파월을 차기 연준의장으로 지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7년 3월 17일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회담에 함께 참석한 무느신 재무장관과 옐런 연준의장. (출처 : Getty Images)

자넷 옐런 연준의장은 트럼트 대통령이 집권한 첫 해인 2017년 내내 매번 FOMC 때마다 0.25%포인트씩 따박따박 금리를 올렸다. 파월이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인터뷰를 하게 됐을 무렵인 2017년 9월 무렵엔 기준금리가 1.25%까지 상승해 있었다.

트럼프가 옐런을 기피했던 건 옐런이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민주당원이라서만이 아니었다. 옐런이 앞으로도 따박따박 금리를 올릴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통화정책은 이제 2008년 금융위기라는 비상상황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었다. 훗날 통화정책의 정상화야말로 연준의장 자넷 옐런의 레거시로 기록될 터였다.

바로 이 점이 트럼프를 열받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자칭타칭 빚의 제왕이다. 부동산업자로 성공한 트럼프한테 기준금리는 낮으면 낮을수록 좋은 것이었다. 트럼프는 중앙은행이 독립기관이라는 사실을 이해가 안 돼서 외워버린 대통령이었다. 트럼프는 뻣뻣한 옐런과는 달리 금리를 낮게 유지해줄 고분고분한 연준의장을 원했다. 트럼프는 재킷의 칼러깃을 빳빳하게 세우는 옐런 특유의 패션 스타일조차 싫어했다.

앙숙. 트럼프와 옐런은 대선기간 중에도 서로 날을 세웠다.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는 옐런 연준의장이 노골적으로 민주당편을 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늘 그렇듯 뚜렷한 근거는 없었다. (출처 : Getty Images)

트럼프의 1순위 선택은 파월이 아니었다.

트럼프의 1순위는 케빈 월시였다. 케빈 월시는 불과 35세에 연준 위원이 됐던 스타였다. 다만 월시한텐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월시는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월스트리트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 판매를 공개 지지했었다. 쓰레기는 포장해봤자 쓰레기였다는 사실을 드러나면서 월시의 명성에도 금이 갔다.

케빈 월시는 트럼프가 집권하자 권토중래를 노렸다. 최연소 연준의장이 목표였다. 지렛대는 트럼프의 절친인 자신의 장인 어른이었다. 백악관을 순식간에 패밀리 비즈니스화시킨 트럼프한텐 효과적인 접근법이었다.

정작 트럼프의 최측근 경제관료들이 케빈 월시의 야심을 불편하게 여겼다. 트럼프 경제팀의 쌍두마차인 재무부장관 스티븐 무느신과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한테 야심가 케빈 월시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반면에 정반대의 이유로 무느신과 콘한테 파월은 무난한 카드였다.

사실 파월은 연준 의장에 임명되기 전 트럼프 대통령과 어떠한 개인적 연결고리도 없었다. 그는 월시처럼 재무장관과 NEC 위원장을 우회해서 대통령과 독대할 가능성은 낮았다. 게다가 파월은 연준 안에서 소수파였다. 옐런과 아무리 돈독한 사이여도 파월은 비경제학자 출신의 공화당원이었다. 게다가 유대인도 아니었다. 역대 연준 의장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이렇게 파월한텐 세력도 없고 배경도 없고 힘도 없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무느신과 콘 모두 파월이 트럼프와 대적해서 연준의 독립성을 추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공화당판 옐런이 돼 주길 기대했을 뿐이었다. 인플레이션과 임플로이먼트의 적절한 균형을 지켜주길 기대했다는 얘기다. 물론 옐런과는 달리 금리를 올리지 않고도 말이다.

물론 재무장관과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파월이 백악관 인터뷰가 끝난 뒤 친구들과 작당모의를 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파월은 만일 자신이 연준의장이 된다면 옐런의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야한다고 믿었다. 옐런이 연임이 안 된다면 누군가는 옐런의 길을 이어 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또 다시 2008년 금융위기 같은 경제위기를 유발하지 않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파월은 그런 사람이었다. 심중에 칼을 숨겨두는, 그런 사람말이다.

파월의 속셈. 트럼프 백악관은 파월이 강경하게 연준의 독립성을 추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수였다. 2019년 9월 18일 파월 연준의장이 FOMC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당시 파월은 트럼프의 노골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끌어올렸다. (출처 : Alex Wong/Getty Images)

〈더밀크 오리지널 : 파워 오브 파월〉의 다음 네번째 에피소드는 한국시각 8월 28일 일요일밤 10시에 더밀크닷컴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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