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인플레이션을 인정했을까?
[더밀크오리지널 : 파워 오브 파월 #9]
인플레이션이라는 회색 코뿔소는 진작 방안에 있었습니다
파월과 옐런은 미국 재건이라는 공동 목표를 갖고 있었죠
연임과 성공이라는 각자 목표도 갖고 있었습니다
파월은 이겼지만 옐런은 졌습니다. 둘 다 미국 재건엔 실패했습니다
제롬 파월 스토리 아홉번째 이야기는, 파월이 인플레이션을 인정한 순간입니다
이젠 파월이 옐런을 도와줄 차례였다.
2021년 12월 재무부 장관으로서 자넷 옐런의 실패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었다.
옐런은 미국경제를 재건하기는 커녕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빌드 백 베터 법안조차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2022년 8월 7일 미국 상원을 우여곡절 끝에 통과한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은 사실 빌드 백 베터 법안의 축소판이다. 빌드 백 스몰러가 된 셈이다. 사실 1년 전만 해도 빌드 백 낫씽이 될 판이었다. 옐런의 실패였다.
바이든 행정부의 재무부 장관으로서 옐런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첫째도 둘째도 빌드 백 베터의 의회 통과였다. 빌드 백 베터 법안이 통과돼야 옐런이 재무장관으로서도 연준의장으로서도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서도 시종일관 추구했던 아메리칸 드림의 회복을 시도할 수 있었다.
빌드 백 베터 법안은 크게 미국 구조 플랜, 일자리 플랜 그리고 미국 가족 플랜이 있었다.
미국 구조 플랜의 골자는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현금 지급이다. 코로나로 인해 훼손된 수요를 견인한다는 게 명분이었다. 개인에게 1400달러를 지급하고 여기에 실업수당으로 주당 300달러씩을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미국 구조 플랜을 통해 옐런 장관은 연준의장 시절엔 직접적으로 지원할 수 없었던 실물경제(메인 스트리트)를 도울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미국 구조 플랜은 엄밀히 말하면 옐런 장관과 바이든 대통령의 작품이 아니었다. 코로나 창궐이 시작됐던 트럼프 대통령 시절부터 상당 부문 준비됐던 부분이었다. 덕분에 나름 진통은 있었지만 미국 구조 플랜은 상하원을 결국 통과할 수 있었다.
나라로부터 호주머니돈을 받게 된 개인들이 환호했던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이 호주머니에서 몰래 돈을 털어갈 거란 사실은 당시엔 알지 못했고 설령 알았어도 무시하고 싶던 '불편했던 진실' 이었다.
옐런 장관의 의회 정치력이 제대로 시험대에 오른 건 빌드 백 베터 법안의 가운데 토막인 미국 일자리 플랜과 미국 가족 플랜에서였다.
각각 인프라 법안과 복지 법안으로 요약될 수 있는 2개의 빌드 백 베터 플랜은 합치면 거의 6조 달러에 육박하는 재정을 시장에 푸는 거대한 경기부양책이었다.
연준이 2년째 제로금리 통화정책은 고수하는 상황에서 6조 달러의 재정정책까지 더해지는 셈이었다.
당연히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적어도 인프라 법안과 복지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는 인플레이션 논란이 공식화돼서는 절대 안됐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벤 버냉키 의장과 자넷 옐런 부의장과 파월 위원은 세 차례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시중 달러가 인플레이션으로 기화되는 끊는점이 자신들의 생각보다 훨씬 높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학습했다.
2020년 코로나 위기에서 '파월발 이지 머니'를 공격적으로 풀 수 있었던 배경이다.
2021년 1월 재정권력을 틀어 쥔 옐런이 다시 '정부발 이지 머니'를 풀겠다고 나선 배경이었다.
인플레이션은 쉽게 오지 않다는다는 생각이었다.
오직 우려할 건 인플레이션에 대한 여론의 우려였다.
두려워할 건 인플레이션 그 자체가 아니라 오랜 기간 잊고 있던 인플레이션 '경험'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적어도 연준 의장과 재무부 장관은 그렇게 믿었던 게 틀림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