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돌파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나 : 적을 만나라
때는 지난 2013년 5월 29일. 델 컴퓨터 창업자 마이클 델은 뉴욕 맨하탄에 있는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이는 칼 아이칸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아이칸은 기업의 지분을 획득한 뒤 주주 권리를 내세우면서 경영에 개입하는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투자자. 단기 실적 개선과 배당 확대에만 치중해 기업 주가를 끌어올린 뒤 팔아서 시세 차익을 남기는 걸로 유명하다.*기업명 ‘델’과 구분하기 위해 창업자는 모두 ‘마이클 델’로 표기.저녁 식사 자리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이칸의 부인이 손수 만든 미트 로프는 맛이 없었고 아이칸은 자기 자랑만 늘어 놓고 있었다. 마이클 델은 기회를 보다가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그래서, 계획이 대체 뭔가요?”마이클 델은 이 질문을 들은 아이칸의 눈에서 약간의 두려움을 엿봤다.둘은 어떤 이유로 이 저녁 자리를 가졌으며 아이칸은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그걸 알기 위해서는 2013년 당시 델이라는 기업이 처한 환경을 살펴봐야 한다.마이클 델은 자신이 대학교 1학년 때 기숙사 방에서 창업한, 자신의 이름을 붙인 기업의 사업 영역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고객의 개인화된 주문에 따른 맞춤형 PC로 유명했던 델이다. 델은 그런 PC 중심 기업에서 벗어나 서버와 스토리지, 보안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 관리, 네트워킹 등 모든 걸 포함하는 전반적인 IT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 중이었다. PC 사업은 여전히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다른 부문 매출이 조금씩 늘고 있었다. 하지만 시장의 눈에 델은 여전히 PC 제조업체일 뿐이었다.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인기를 끌던 2010년대 초반은 PC 사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던 때다. PC 시장 자체도 쪼그라들었지만 한 때 20%에 육박했던 델의 PC 시장 점유율 또한 2012년 10%를 약간 넘는 수준으로 줄었다. 2007년 30달러였던 주가는 9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마이클 델은 주식 시장에서 자신의 회사가 버려진 것 같이 느껴졌다.하지만 낮은 주가는 관점에 따라 기회가 될 수도 있는 법. 마이클 델은 델의 주식을 모두 인수해 비상장 기업으로 만든 뒤 장기적으로 기업의 구조를 바꿀 계획을 세웠다. 비상장 기업이 되면 분기 실적 보고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주주나 시장의 간섭 없이 장기적으로 기업의 체질이나 사업 구조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2012년 8월부터 차근차근 상장 폐지 단계를 밟아 나가던 마이클 델이 아이칸이라는 큰 암초를 만난 건 델의 상장 폐지 계획이 알려진 2013년 초였다. 아이칸에게 델은 좋은 먹이감이었다. 아이칸은 델의 상장 폐지 계획을 무산시키고 경영권까지 장악할 심산으로 달려들었다. 아이칸은 매일 CNBC 등 각종 방송 매체에 출연, 자신의 계획이 델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마이클 델을 공격했다. 때문에 창업자이자 CEO인 마이클 델이 '델'의 미래 성장에 도움이 안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마이클 델에게는 평생을 바쳐 일궈온 기업을 뺏길 수도 있는 위기였다. 이 같은 아이칸의 만행을 참다 못한 델은 뉴욕에 갈 일이 생긴 김에 아이칸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는 의사를 타진했다. 변호사의 의견도 구하지 않고 혼자서 감행한 일이었다. 델은 아이칸을 직접 만나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그가 가진 계획을 듣고 싶었다. 아이칸은 흔쾌히 응했다. 그는 마이클 델이 협상을 하러 오는 건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델은 운전기사도 없이 걸어서 아이칸의 아파트를 찾아 갔다.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기 위해서 였다. 혹시라도 아이칸을 만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적과 내통을 한다고 알려질 게 뻔했다.지난 달 발간된 마이클 델의 자서전 ‘플레이 나이스 벗 윈(Play Nice But Win)’에는 이런 델의 상장 폐지 과정이 자세히 나온다. 마이클 델 자신이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서 기업 사냥꾼으로부터 자신이 창업한 기업을 지켜냈는지, 그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새로운 리더로 거듭났는지가 드라마틱하게 그려진다.‘플레이 나이스 벗 윈’은 마이클 델의 부모가 그가 어렸을 때 자주했던 말. 의역하자면 품위 있게 이기라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델의 상장 폐지 과정과 그의 어린 시절, 창업 시절 이야기가 겹쳐 나오다가 다시 재상장하는 이야기로 매듭을 짓는다.책 내용을 더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