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같은 메타버스 추구... 경험의 장 만들고파”

reporter-profile
박원익 2022.11.05 23:40 PDT
“‘뉴욕’ 같은 메타버스 추구... 경험의 장 만들고파”
이진하 스페이셜 공동창업자 겸 CPO (출처 : 장혜지)

[뉴욕의 도전자들] 뉴욕 기반 유망 스타트업 ‘인뎁스 인터뷰 시리즈’ 1편
메타버스 플랫폼 ‘스페이셜’ 사용자 급증... 업계 주목
비틀스 드러머 ‘링고스타’도 이용하는 문화·예술 중심 플랫폼
글로벌 경매 업체 크리스티, 패션지 보그 등과 협업
이진하 공동설립자 “‘뉴욕’ 같은 메타버스 추구... 경험의 장 만들고파”

2011년 여름 미국 워싱턴주 레드먼드.

마이크로소프트 응용과학그룹(ASG, Applied Sciences Group)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디자이너 겸 공학자 이진하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하면 보다 편리하게 ‘3차원(3D)’으로 상호작용(interaction)할 수 있을까?”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이 미래’라는 예측은 많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실제로 사용 가능한 3D 상호작용 도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2D 기반인 기존 데스크톱 환경에 3D를 융합한 인터페이스 ‘스페이스톱(SpaceTop)’은 이렇게 탄생했다.

SpaceTop (출처 : TED)

반응은 뜨거웠다. 와이어드는 당시 “컴퓨터 혁명의 역사는 맥(Mac)에서 아이패드(iPad)로, 그리고 스페이스톱과 같은 3D 데스크톱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보도했고, CNET은 “스페이스톱과 비교하면 현재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은 매우 구식으로 보인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DSLR 카메라를 머리에 붙이고 연구를 진행했을 정도로 뜨거웠던 그의 열정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삼성전자 최연소 그룹장을 거친 후 2017년 2월 공동창업자 아난드 아가라왈라(Anand Agarawala)와 함께 뉴욕에 ‘메타버스(Metaverse, 3차원 가상 세계)’ 스타트업 ‘스페이셜(Spatial)’을 설립했다. 연구자에서 창업가로 타이틀은 바뀌었지만 ‘보다 나은 3D 인터페이스, 경험을 구현한다’는 그의 미션은 그대로였다.

스페이셜은 기술력 및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2500만달러(약 355억7500만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총 투자 유치 금액은 4730만달러에 달한다. 최근에는 글로벌 경매 업체 크리스티(Christie's), 패션지 보그 싱가포르 등과 협업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등 메타버스 업계 주요 플레이어로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흥미로운 건 VR 헤드셋 ‘오큘러스 리프트’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킥스타터(Kickstarter)’에 처음 등장한 시기 역시 2012년이었다는 점이다. 오큘러스를 인수한 메타(페이스북 모회사)는 올해 10월 ‘메타버스의 미래를 위한 기기’로 평가받는 퀘스트 프로를 출시했다. 제대로 된 3차원 인터페이스, 경험을 구현하려는 시도들이 10년이라는 ‘축적의 시간’을 거쳤고, 다양한 형태로 발현하기 시작한 셈이다.

“에어비앤비가 부동산을 여행자의 ‘경험’으로 바꾼 것처럼 스페이셜은 디지털 컨텐츠·자산을 ‘경험’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맨해튼 소호에 위치한 스페이셜 본사에서 이진하 공동창업자를 만나 메타버스, 스페이셜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출처 : Spatial )

스페이셜을 한 문장으로 소개해 준다면.

문화·예술 컨텐츠 중심의 메타버스 플랫폼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아티스트, 크리에이터가 3차원 가상 공간을 쉽게 만들어 웹사이트처럼 공유하고 팬 커뮤니티를 조성해 함께 즐길 수 있다. 3차원 공간을 갤러리처럼 활용해 NFT(대체불가토큰) 등을 전시하고 공연을 할 수도 있다. 인터넷은 정적인 2차원 경험에서 실시간 경험, 3차원 경험으로 발전하고 있다. 

메타버스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는데. 

인터넷이 왜 메타버스로 진화할 수밖에 없는지는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함께 경험을 나누고 공유함로써 관계가 깊어지는 게 인간의 속성, 본질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기본적으로는 소통 수단이다. 공동 경험(co-experience), 경험의 매개체로 진화하는 게 당연하다. 2차원 경험과 비교하면 3차원, 실시간 경험이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든다. 그냥 친구와 이야기만 나눌 때와 함께 밥을 먹거나 여행을 갈 때의 차이를 떠올려 보라. 

크리에이터가 아닌 일반 사용자들은 어떻게 스페이셜을 즐길 수 있나.

누구나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공간에 아바타로 참여해 작품을 감상하거나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 VR 헤드셋 없이 PC나 스마트폰으로도 쉽게 접속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내 취향에 맞는 작품, 영상, 공간을 발견하는 3D 소셜미디어에 가까운 형태가 될 수 있다. 내 친구들이 좋아할 장소,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상 공간을 추천해 주고 친구와 같이 그 공간을 여행 다닐 수 있는 메타버스 세상을 그리고 있다. ‘가장 접속이 쉽고 아름다운 메타버스(most accessible beautiful metaverse)’가 모토다.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가상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깊게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웹 기반 서비스를 선보인 이유는 무엇인가.

웹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사용자가 크게 늘었다. 장기적 관점에서 AR·VR 하드웨어가 중요하겠지만, 거기에 의존하지 않고 웹 기반 가상 공간으로도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봤다. 

스페이셜은 현재 웹뿐만 아니라 VR 앱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더 발전된 AR·VR 기기가 나오더라도 그대로 사용가능할 것이다.

메타버스 플랫폼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다른 플랫폼과 스페이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현재 메타버스 플랫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포트나이트 게임처럼 고성능 하드웨어 사양이 필요하지만, 윤택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있고, 웹에서 쉽게 접속 가능하지만, 해상도가 낮은 메타버스가 있다. 

스페이셜은 양쪽의 장점을 모두 가진 플랫폼이다. 건축 공학 기반으로 만든 실제 같은 공간, 해상도를 제공하며 웹에서 쉽게 접속할 수 있다. 

윤택한 사용자 경험, 해상도를 강조하는 까닭은.

웹에서 댓글로 친구와 소통할 수도 있지만, 친구와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누리면서 실시간으로 대화 나누는 경험이 훨씬 좋다. 윤택한 사용자 경험이 중요한 이유다.  

또 해상도가 높으면 나를 더 잘 대변할 수 있다. 내 아바타가 실사에 가까운 3D인 경우 표정이나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복장 등 취향도 더 다양하고 세부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2D는 그렇지 않다. 

예전부터 ‘점토를 만질 때의 촉감’과 같은 인간적인 경험을 어떻게 디지털 세계에 반영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메타버스로 공간적 제약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들이 인간다웠으면 한다.

(출처 : Spatial)

크리에이터들의 참여가 중요할 것 같다.

인플루언서, 크리에이터들이 빠르게 증가하며 스페이셜 초기 생태계가 형성됐다. 다양한 활동들이 일어나고 있다. 

핫한 공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이벤트가 있으면 더 잘 보이도록 노출하고, 크리에이터가 팬들과 더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 등을 제공해 더 많은 크리에이터를 끌어들일 생각이다.

그래미상을 수상한 음악 프로듀서 ‘일마인드(Illmind)’, 비틀스의 드러머 ‘링고스타(Ringo Starr)’도 스페이셜에서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스페이셜이 팬 커뮤니티를 만들기에 좋은 도구라고 생각하는 창작자들도 많다. 

NFT업계에서도 스페이셜을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안다. 웹3와 메타버스는 어떻게 연결되나?  

‘웹3(web3)’는 쓰고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소유할 수 있는 웹으로 정의된다. 그중에서도 NFT는 디지털 이미지 같은 작품을 소유, 거래하거나 원본 증명이 필요할 때 널리 사용되는 기술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본다.

웹3 환경에서는 NFT, 압호화폐 지갑 등을 통해 특정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증명할 수 있다. 즉, 내 관심의 정도를 더 빠르고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고, 그 결과 비슷한 생각 혹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빠르게 구성할 수 있다. 

연대하는 건 인간의 본능인데, 웹3로 인해 그 시간과 에너지를 줄일 수 있게 된 셈이다. 커뮤니티가 생기면 상호작용할 공간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메타버스다. 

(출처 : Spatial)

메타버스 플랫폼, 생태계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까?

하나의 플랫폼이 지배하는 형태가 아니라 여러 메타버스가 공존할 것으로 본다.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서로 호환해 사용할 수 있는 성질)이 더 발달할 것이다. 

도시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도시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process)이다. 생물처럼 계속 변하고 발전한다. 메타버스도 도시처럼 라스베이거스 같은 곳, 혹은 디즈니월드 같은 곳이 있을 수 있다. 

스페이셜은 ‘뉴욕 시티’ 같은 메타버스를 추구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과장되거나 상상 속에 존재하는 메타버스가 아니라 다양성이 존재하면서도 그 속에서 비즈니스가 일어날 수 있는 현실감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각 분야의 컨텐츠를 가지고 들어와서 스스로를 표현하며 위화감 없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스페이셜과 뉴욕은 닮았다.    

메타버스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까.

메타버스 환경이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게 구현되는 시기가 오면 도시 계획 및 부동산 비즈니스에 큰 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생각한다. ‘강남 8학군’ 같은 교육 1번지가 생긴 이유는 주거 지역과 학교의 물리적 거리가 중요했기 때문인데 이런 공식이 깨지는 날이 올 것이다.

실제 공간은 더 미니멀해질 것이다. 가구가 거의 없는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고, 그 위에 증강현실 그래픽을 얹는 방식이 널리 활용될 수 있다. 

제일 의미 있는 변화는 ‘어디에서 태어나느냐’와 같은 지리적 요건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비슷한 정보, 비슷한 일의 기회가 주어지면 지역별 경제적 격차도 줄어들 수 있다. 

목표가 있다면.

모두가 쉽게 접속해 나 자신을 온전한 형태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쉽게 연대할 수 있는 ‘경험의 장’, 그런 인터넷을 만들고 싶다.

회원가입 후 뷰스레터를
주 3회 무료로 받아보세요!

단순 뉴스 서비스가 아닌 세상과 산업의 종합적인 관점(Viewpoints)을 전달드립니다. 뷰스레터는 주 3회(월, 수, 금)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