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시장’ 진짜 크기를 아시나요?... “직관 믿지 말고, 고객 먼저 만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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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익 2024.04.02 14:29 PDT
‘美 시장’ 진짜 크기를 아시나요?... “직관 믿지 말고, 고객 먼저 만나라”
김성겸 전 블라인드 공동창업자 겸 CBO (출처 : 더밀크/디자인: 김현지)

[롯데-더밀크 엘캠프 실리콘밸리] 김성겸 전 블라인드 공동창업자
“특정 하위 부문 깊이 공략하면 한국보다 큰 시장 확보 가능”
직관 중심 제품 개발 방식 버려야 성공… “고객 먼저 만나라”
해외 진출 동기부여 필요… “빠른 의사 결정 이뤄지게 해야”

독시미티(doximity)라는 미국 기업을 아시나요? 아마 한 분도 없으실 거에요. 독시미티는 의사, 간호사를 위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이미 상장에 성공했고, 기업 가치는 7조원에 달합니다.
김성겸 전 블라인드 공동창업자 겸 CBO(최고사업책임자)

김성겸 전 블라인드 공동창업자 겸 CBO(최고사업책임자)는 “미국 하위 부문(segment) 시장은 어이가 없게 느껴질 정도로 크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에서 기업 가치가 조 단위에 달하는 회사가 나오려면 전 국민이 모두 해당 기업의 제품, 서비스를 사용해야 가능한데, 미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블라인드를 공동 창업, 글로벌 시장 진출을 진두지휘했던 김 전 CBO의 ‘스타트업 해외 진출’ 핵심 조언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① 버티컬 시장을 공략하라… “한국 전체 시장보다 커”

김 전 CBO는 “대한민국은 5000만 인구가 단일 민족, 단일 언어를 사용하며 수도권에 인구 50%가 집중돼 있는 매우 특이한 시장”이라며 “쿠팡, 당근마켓, 토스 같은 조 단위 기업의 공통점은 전 국민이 사용하는 서비스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김 전 CBO가 예로 든 독시미티 같은 기업은 미국에서도 특정 직군만 사용하는 서비스다. 해당 직군 외에는 그런 서비스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7조원 규모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건 해당 직군만 목표로 잡아도 한국 전체와 비슷한, 혹은 더 큰 규모의 시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김 전 CBO는 비슷한 사례로 스타트업 전문 온라인 급여 시스템 ‘구스토(Gusto)’도 언급했다. 구스토가 목표로 삼는 고객은 소규모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고객사였던 스타트업이 큰 기업으로 성장해 다른 서비스를 사용하게 될 경우에도 고객 유지에 큰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객이 성장하면 다른 시장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비상장 기업인 거스토의 기업 가치는 13조원에 달한다.

김 전 CBO는 “미국 시장, 글로벌 시장이 크다고 하는 건 단순히 인구가 많고, 소득 수준이 높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한국 시장에서 판매하던 제품, 서비스를 그대로 미국에 가져오면 10배로 뻥튀기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전체 시장이 아니라 특정 하위 영역을 깊게 공략했을 때 한국 시장보다 큰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이런 이해 없이 큰 시장에 대한 기대감만 가지고 무턱대고 미국에 진출했다가 실패하는 사례를 많이 봤다”고 조언했다.

독시미티 앱 화면 (출처 : Doximity)

②직관 중심 제품 개발 버려라… “고객 먼저 만나야”

3월 13일(현지시각) 김 전 CBO가 연사로 참여한 ‘엘켐프(L-Camp) 실리콘밸리’ 프로그램은 롯데벤처스와 더밀크가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현지 한인 창업가 및 VC들과의 순도 높은 네트워킹 및 IR(투자설명회) 기회를 제공한다. 2022년에 시작해 올해로 3회를 맞았다. 올해는 새롭게 설립된 롯데벤처스 미국 오피스에서 프로그램 참여 스타트업과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교류하는 IR(기업설명회) 행사도 개최했다. 

김 전 CBO는 미국 시장 진출에 나서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로 ‘직관 중심의 제품 개발’을 꼽았다. 한국의 경우 창업가들의 정체성과 한국 시장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직관 중심으로 제품을 개발해도 성공할 확률이 높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김 전 CBO는 “제품을 개발할 때 내 친구, 선배, 후배, 가족들이 어떻게 사용할까 떠올리며 만드는 경우가 많고, 창업가나 제품 개발자들이 한국에서 오랜 기간 살았기 때문에 이런 직관이 많이 쌓여 있다”며 “그러나 미국에 오면 창업가와 시장이 겹치는 부분이 사라진다”고 했다. 

그는 이어 “데이터 중심으로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며 “미국 시장은 다양성이 높기 때문에 특정 하위 부문을 찾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는 일”이라고 했다. 

김 전 CBO는 “미국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들은 다 깊이가 있고, 스타트업을 위한 제품, 대기업을 위한 제품이 다 따로 있다”며 “고객 데이터 수집을 통한 하위 부문 정의가 필요하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고객을 먼저 만나야 한다”고 했다. 

고객을 만나 사용자 목록을 만드는 데 6개월이 걸리더라도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6년을 허비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엘캠프 실리콘밸리에 참석한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출처 : 더밀크 박원익)

③동기가 필요하다… “빠른 의사 결정 이뤄지게 해야”

김 전 CBO가 글로벌 진출을 원하는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 마지막으로 강조한 내용은 ‘동기 부여와 빠른 의사 결정’이었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성장한 스타트업이라면 미국 등 글로벌 시장 진출과 한국 시장 내에서 성장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개척해야 하는 해외 시장 진출은 성과가 빨리 나기 어려운 반면, 기존 한국 시장에서는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보이기 때문에 회사의 자원을 미국 시장에 꾸준히 투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또 스타트업은 자원이 유한하기 때문에 시간을 오래 끌수록 해외 진출이 어려워질 수 있어 의사 결정을 빨리 내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 결정 권한을 지닌 회사의 CEO 혹은 공동창업자가 미국 시장에 나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 전 CBO는 “대표, 공동창업자가 직접 미국에 와서 하위 부문을 찾고, 어떤 제품으로 해당 시장을 공략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런 각오 없이 글로벌 사업 하면 안 된다”며 “‘한국에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매출 20~30% 오르겠네’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영원히 ‘제이 커브(J-curve, 급성장 그래프)’는 그릴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김 전 CBO는 미국에서 만난 이스라엘 출신 창업가들과 대화하면서 깨달은 교훈도 공유했다. 이스라엘 창업가들의 마음가짐이 특히 남달랐다는 설명이다. 

“이스라엘 창업가들에게 ‘글로벌 진출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는데, 뭐라고 답한 줄 아세요? 글로벌 진출이라는 말 자체가 없다고 하더군요. 이스라엘은 내수 시장이 작기 때문에 아예 내수 시장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거죠.” 

“이런 생각을 가진 이스라엘 창업가와 다른 창업가의 집중도 차이는 얼마나 날까요? 이들과 경쟁했을 때 누가 이길까요?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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