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의 퇴장, 킹의 등장… 영국은 '바람 앞의 촛불' 인가?
[뷰스레터플러스0910]
한국의 민주주의를 응원한 여왕
영국, ‘바람 앞의 촛불’ 될가
유럽중앙은행(ECB) ‘자이언트 스텝’
더밀크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미국에서는 추석이 ‘평일’이지요. 그래도 꼭 잊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 친지, 친구들과 영상 통화를 나누는 일인데요. 추석 당일인 9일 부모님과 양가 할머님들께 전화드렸습니다. 저는 친가 외가 모두 아흔을 넘긴 할머니가 살아계신데요. 통화할 때마다 세월의 흔적이 더한 두 분의 얼굴을 보면서 가슴 한편이 짠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지난 8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향한 영국인들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요. ‘영국’ 그 자체였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소식에 영국인들은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영국은 물론 세계의 언론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기리고 추모했습니다. 특히 영국 언론은 헤드라인에서 “여왕이여. 감사합니다(데일리 미러)”, ‘가슴이 무너집니다(Our Heart are broken, 데일리 메일)”, ‘우리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We loved you Ma'am, 더선)” 등으로 영국인의 상실감을 어루만졌습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이 추모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고, 바이든 대통령, 일본 국왕 및 총리 등이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10일엔 찰스 3세가 새로운 영국 국왕으로 선포됐습니다. 찰스 3세는 영국 전역에 방영된 첫 대국민 연설에서 “평생 헌신한다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약속을 오늘 여러분께 되풀이하겠다. 충성심과 존중, 사랑으로 영국인들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30일엔 옛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도 사망했죠.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영국은 현재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왕의 부재로 정신적 지주를 잃은 상황인데요. 새로운 리더십은 이 어려운 국면을 타개할 수 있을까요. 밀키스레터에서 다뤄봤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응원한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인자하게 웃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영국인들에게 여왕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인자한 할머니, 포근한 엄마와 같은 느낌 아닐까요.
엘리자베스 2세는 지난 1952년 26세의 나이로 여왕에 즉위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격동의 시기를 지나온 동안 영연방의 통합과 안정을 가져온 여왕으로 평가됩니다. 또 70년간 왕위를 지속하면서 영국 군주 중 최장기간 동안 재임한 군주로도 기록됐는데요. 바로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영국 군주제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왔습니다.
여왕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기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고,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버킹검궁으로 ‘국빈’ 초청한 바 있는데요. 여왕이 한국에 왔을 때, 한국 대통령이 ‘국빈’ 방문했을 때 한국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보면 지금도 시사점이 있습니다.
영국, ‘바람 앞의 촛불’ 인가
영국은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신임 리즈 트러스 총리가 지난 6일(현지시간) 취임했는데요. 그는 영국 역사상 세 번째 여성 국무총리에 오르게 됐습니다. 그가 총리가 된 지 이틀 만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임 총리가 여왕의 손에 입을 맞추고, 내각 구성을 요청하는 취임 승인 행사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마지막 공식 행사가 됐습니다.
트러스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시험대에 오르게 됐는데요. 최악의 영국 경제상황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은 10%대의 상승률을 보였고 파운드화 가치도 지난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기록한 1.50달러보다 낮은 1.15달러로 급락했습니다. 37년 만에 최저 수준입니다.
밖으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전쟁 여파로 영국 국민들은 에너지, 곡물 가격 급등에 따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찰스 3세와 결혼했던 고 다이애나 비의 장례식 때 엘튼 존은 ‘바람 앞의 촛불(Candle in the wind)’를 불러 심금을 울렸죠. 영국의 진혼곡이 될까요.
유럽중앙은행(ECB) ‘자이언트 스텝’
급등한 인플레이션은 세계 경제를 짓누르는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도 마찬가지 상황인데요. 유럽중앙은행(ECB)은 인플레이션이라는 급한 불 끄기에 나섰습니다. ECB는 지난 8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한 것은 유로화를 도입한 1999년 이후 23년 만에 처음입니다.
유럽중앙은행의 ‘자이언트 스텝’ 행보는 물가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커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요. 유로존의 지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1% 상승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ECB는 회의를 마친 후 성명에서 “물가상승률을 적절한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한 조치”라고 언급했는데요.
이제 시장의 관심은 다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에 쏠리고 있습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잭슨홀 회의에서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이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발언을 한 바 있는데요. 연준이 이달 말 다시 한번 기준금리를 0.75%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라.
통화를 마칠 때마다 두 분 할머니께서 꼭 해주시는 말입니다. 예전에는 그냥 평범한 인사말이라고 생각했는데 해가 갈수록 의미를 곱씹게 됩니다. 아흔이 넘은 노인이 자주 통화하기 힘든 손주에게 전하는 짧은 한마디의 말이 평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요.
사람마다 목표점은 다르지만 궁극적인 삶의 지향점은 ‘행복’에 있습니다. 건강은 그 행복을 위한 필수 조건이죠. 그러고 보니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의 인사말도 단출해졌습니다.
“별거 있냐. 건강하자. 그리고 행복하자.”
학창 시절 누군가에게 시집을 선물 받은 기억이 있는데요. 시의 한 부분을 공유하면서 레터를 마칠까 합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덧 가을의 문턱에 선 애틀랜타에서
권순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