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세계화’는 끝났다.. 값싼 상품, 자유 이동은 추억으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래리 핑크 회장
오크크릭 캐피털 하워드 막스 회장
러시아-우크라 전쟁이 20세기 중반 시작된 '세계화'의 종말 선언
지난 주 투자업계의 거물 두 사람이 각각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글을 썼습니다. 1경(京) 원을 굴리는 자산운용업체 블랙록(티커: BLK)의 래리 핑크는 주주들에게 편지를 썼어요. 세계에서 가장 큰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CEO인 핑크는 CEO에게건, 주주에게건 편지만 썼다 하면 모두가 주목을 하죠.
투자자들에게 메모를 쓴 사람은 약 200조 펀드를 운영하는 오크트리 캐피털(티커: OAK-A)의 공동설립자인 하워드 막스였어요. 가치투자로 유명한 막스가 쓰는 메모는 시장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는 걸로 유명합니다.
핑크와 막스 두 사람은 천문학적인 수준의 금액을 운용하기 때문에 탈세계화, 인플레이션, 에너지 전환 등이 기업이나 고객 포트폴리오에 의미하는 바는 물론 장기적인 구조적 변화를 이해하는 전문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3월 23일과 24일 하루 차이로 공개가 된 두 개의 서로 다른 글이 모두 "우리가 아는 세계화가 끝났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와 함께 전세계 경제를 주도해온 키워드였습니다.
세계화로 인해 세상은 더욱 가까워졌고 경제는 계속 성장했어요. 글로벌 기업들이 인건비가 싼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 자본을 투자해 생산거점을 세우고 싼 가격에 생산한 제품을 자국으로 수입해 판매하는 방식은 너무나도 당연한 공식이 돼 버렸어요. 무역은 증가했습니다. 공산품뿐 아니라 석유와 석탄도 마찬가지에요. 자본시장 또한 커졌습니다. 하지만 세계화로 인한 소득 불균형은 많은 문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핑크와 막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이런 세계화에 제동을 걸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두 사람의 메시지를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핑크: 전쟁으로 인한 변화가 세계화에 종지부
1990년대 초, 냉전이 끝나면서 러시아는 세계 경제에 편입이 됐습니다. 글로벌 자본 시장에 접근이 가능해 지면서 세계와 연결됐죠. 특히 서유럽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어요. 전세계적으로 평화가 계속되면서 세계화는 확대됐습니다. 국제 무역은 늘었고 세계 자본 시장은 확장됐죠.
그러나 핑크 CEO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우리가 지난 30년 동안 경험한 세계화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으로 인해 러시아는 세계 경제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서방 세계가 러시아에 엄청난 경제 제재를 가했으니까요. 핑크는 “러시아의 세계 경제로부터의 분리가 전 세계 기업과 정부로 하여금 상호 의존성을 재평가하고 제조 상황에 미치는 영향을 재분석하도록 촉구할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사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이런 재평가와 재분석이 이미 이뤄지고 있기도 했죠.
지금 당장은 러시아의 석탄과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큰 문제가 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기업과 정부들이 다른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광범위하게 살펴볼 거라는 얘기에요. 값싼 인건비를 찾아 해외로 나갔던 제조와 같은 작업을 국내 또는 가까운 해외로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일명 니어 쇼어링)는 말입니다. 핑크는 “멕시코와 브라질, 미국 또는 동남아시아의 제조 허브와 같은 국가는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어요.
문제는 물가상승입니다. 이런 이동에는 많은 비용이 들고 기업은 마진에 압박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공급망의 대규모 전환은 본질적으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핑크의 전망입니다.
사실 전쟁 이전에도 이미 물가는 빠르게 오르고 있었습니다. 노동력 부족, 공급망 병목 현상을 포함한 팬데믹의 경제적 영향으로 인해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40년 만에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유럽연합(EU)와 캐나다 및 영국에서 인플레이션은 5%가 넘어요. 하지만 임금 수준은 이에 보조를 맞추지 못했고, 소비자들은 식료품과 에너지 등의 높은 비용에 직면하면서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가스, 전기, 식품과 같은 필수품에 임금의 더 많은 부분을 지출하는 저임금 근로자의 부담이 크죠.
핑크는 중앙 은행들이 금리를 얼마나 빨리 올릴 것인지에 대해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했어요. 중앙 은행들이 지정학적 갈등과 그로 인한 에너지 충격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직면하지 않은 딜레마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중앙 은행은 더 높은 인플레이션과 살 것인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느린 경제 활동 및 고용과 함께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했어요.
핑크는 전쟁이 국가들로 하여금 통화 의존도 또한 재평가하도록 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전쟁 이전에도 여러 정부는 디지털 통화 규제 프레임 워크를 정의하려고 했어요. 예를 들어, 미국 중앙 은행은 최근 미국 디지털 달러의 잠재적 의미를 조사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신중하게 설계된 글로벌 디지털 지불 시스템은 자금 세탁 및 부패의 위험을 줄이면서 국제 거래의 결제를 향상시킬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핑크는 이번 전쟁이 보다 친환경적인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화석연료 소비가 늘어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높은 에너지 가격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을 찾을 것이라는 전망이에요. 핑크는 팬데믹 기간 동안 위기가 혁신의 촉매제로 작용했다는 점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는 “높은 에너지 가격은 청정 기술과 신재생 에너지원에 대한 친환경 프리미엄을 줄이고 전기차와 기타 청정 기술이 경제적으로 훨씬 더 경쟁력을 갖게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막스: 유럽과 미국이 필수 재화를 다른 나라에 의존하게 된 이유
막스는 시장이나 삶을 설명할 때 왔다 갔다 흔들리는 시계추 비유를 즐깁니다. 사이클이 있는 시장과 마찬가지로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막스는 이번 메모에서 2가지를 예로 들며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세계화의 흐름이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해 멈출 것이라고 봤습니다.
하나는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입니다. 막스는 기본적으로 세계화로 인해 유럽과 미국이 각각 에너지와 반도체라는 안보는 물론 생존에 필수적이 돼버린 품목에 대한 대외 의존도를 키웠고 위기를 느낀 유럽과 미국이 반작용으로 세계화를 거스를 것이라고 설명해요.
우선 유럽의 러시아 의존도부터 보죠.
러시아는 유럽 석유의 3분의 1, 천연가스의 45%, 석탄의 절반을 생산합니다. 이 수치는 꾸준히 늘어왔어요. 천연가스를 예로 들면, 2016년 유럽이 소비한 가스의 30%가 러시아에서 왔습니다. 이 수치는 2018년 40%, 2020년 44%, 2021년 47%로 늘고 있어요.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 생산량을 늘리면서 동시에 자국 소비량을 줄이고 수출을 늘리기 위해 원자력 발전을 배로 늘렸습니다. 반면 유럽은 독일을 필두로 원자력 발전을 멈추고 천연가스 유전을 닫아 왔어요. 독일은 6기의 원자로 중 3기를 지난해 말에 폐쇄했고 나머지 3기는 올해 말에 닫을 계획입니다.
유럽은 왜 이렇게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높인 걸까요? 막스는 “유럽이 친환경적이 되기 위해서 였다”고 설명합니다. 자국 내에서 석유와 가스 생산을 줄이는 건 물론 위험하다는 이유로 원자력 발전까지 줄이면서 에너지원을 러시아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그렇다면 미국의 한국과 대만에 대한 반도체 의존은 어떻게 된 걸까요?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기업들은 인건비가 싼 아시아 등지에 공장을 지어왔습니다. 이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일자리와 경제성장을 제공했고 미국의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죠. 미국 소비자들은 싼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었고요. 하지만 동시에 미국에선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고 제조업에 의존하던 지역과 중산층의 몰락이 뒤따랐습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건 (앞서 핑크가 지적한 바와 마찬가지로) 이로 인해 지난 40년 동안 미국은 물가 상승이 크지 않았습니다.
막스는 말합니다.
“자본주의는 소득을 최대화하기 위한 욕망에 기초 한다. 세계화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곳에서 생산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두 가지(자본주의와 세계화) 강력한 힘의 결합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반도체가 이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예라는 게 막스의 생각입니다. 사실 반도체의 가장 중요한 초기 개발 중 많은 부분이 벨랩이나 페어차일드 세미콘덕터와 같은 미국 회사에서 이뤄졌습니다. 1990년 미국과 유럽은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80% 이상을 책임졌죠. 하지만 2020년 현재 미국과 유럽의 점유율은 약 20%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제는 삼성전자가 있는 한국과 TSMC가 있는 대만이 미국과 유럽을 제치고 최대 반도체 생산국이 됐어요. 막스는 "TSMC와 삼성은 아이폰에 들어가는 가장 진보된 5나노 칩을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라고 썼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유럽이 친환경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지도록 허용한 것처럼 미국 기업은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고 더 많은 이익을 제공하기 위해 점점 더 해외 소재, 부품 및 완제품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이 더 이상 반도체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다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수요는 늘고 있지만 팬데믹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문제가 생겼고 전쟁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유럽의 에너지와 미국의 반도체는 모두 필수 재화를 다른 나라에 의존하도록 허용한 사례에요. 유럽은 이번 전쟁으로 그 위험성을 깨닫고 있죠. 미국은 언제 피해를 보게 될지 모릅니다. 인텔이 오하이오에 새로운 반도체 팹을 세우고 있고 삼성으로 하여금 텍사스에 반도체 팹을 짓도록 한 것은 모두 이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막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세계화의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이제 시계 추는 로컬 소싱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가장 저렴하고, 가장 쉽고, 가장 친환경적인 공급망보다는 아마도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공급망에 프리미엄이 더 많이 붙을 것이다.”
더밀크의 시각
핑크와 막스의 예상대로 세계화의 속도가 줄어든다면 투자의 방향도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세계화는 전세계의 GDP 성장에 기여했고 낮은 비용을 찾아 해외로 나간 기업들에게 이익을 선사했어요. 하지만 이들의 예상대로라면 앞으로의 세계화는 로컬로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큽니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로컬 공급망이 떠오를 것이고 미국의 국내 제조업 일자리가 늘어날 것입니다. 막스는 이러한 전환 과정에서 새로운 투자 기회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