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다음엔 리세션? 서머스의 입부터 막아라!
지금 시장의 변수는 바이든과 옐런과 파월 그리고 서머스의 입
연준과 달리 인플레이션을 예측한 래리 서머스 전 재무부장관
연준이 한발 늦게 인플레이션 대응에 나서자 한발 앞서 리세션 경고
영화 〈조커〉의 시대적 배경이 된 경기 침체와 대량 실업 사태가 현실이 될까
서머스의 입을 어떻게든 막아야만 했을 겁니다. 지난 6월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델라웨어주 레호보스 비치에서 기자들과 만났습니다. 델라웨어는 바이든 대통령이 1973년부터 상원의원을 지낸 정치적 고향입니다. 레호보스 비치는 바이든의 개인별장이 있는 곳입니다. 당시 바이든은 휴가 중이었습니다. 이틀 전엔 별장 인근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꽈당 넘어져서 해외토픽을 장식했었죠. 바이든 대통령은 휴가 중인데도 일부러 언론과 접촉한 겁니다. 미국의 백악관이든 한국의 대통령실이든 이럴 땐 반드시 정치적 목적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숨쉬는 것도 정치적이니까요. 바이든 대통령은 말했습니다. “아침에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과 통화했다. 리세션에 불가피한 요소는 없다.”
역시나 래리 서머스 전 재무부 장관의 입이 문제였습니다. 서머스는 지난 6월 13일 〈CNN〉에 출연해서 이렇게 전망했습니다. “나는 내년에는 경기 침체의 위험이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상황을 고려할 때 2년 이내에 경기 침체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서머스의 발언이 주목 받은 이유는 단지 처음으로 리세션을 전망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행보를 한발 앞서 읽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머스의 발언이 있고 나서 이틀 뒤 6월 15일 FOMC 회의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준 금리를 75bp 올리는 자이언트 스탭을 밟았죠.
시장은 처음엔 예상했던 일이라며 안도했습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돌아왔다고 평가했죠. 그런데 24시간도 채 안 돼서 월가의 센티멘트가 바뀝니다. 인플레이션에서 리세션으로 화두가 바뀌었죠. 서머스는 여기까지 내다보고 있었던 겁니다. 연준의 자이언트 스탭이 경기 침체 논쟁으로 이어질 거란 사실을 알았던 겁니다. 결국엔 미국 경제가 리세션에 한발 더 근접할 거란 사실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던 겁니다.
인플레이션은 경제적 문제입니다. 리세션은 정치적 문제입니다. 물건값이 오르는 인플레이션은 엄마들의 장바구니 물가와 아빠들의 주유소 기름값과 연관됩니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동반하는 리세션은 가족의 생계와 아이들의 미래와 관련됩니다. 인플레이션은 불평불만으로 끝나지만 리세션은 분노분열로 계속됩니다. 권위주의 국가에선 혁명이 일어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권교체로 이어집니다.
바이든 행정부도 리세션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우선 리세션이 올거라는 시장의 불안부터 잠재우려고 애쓰고 있죠. 시장은 심리니까요. 특히 파월의 자이언트 스탭 이후 우 화력을 집중시키고 있죠. 재닛 옐런 재무부장관이 바이든 행정부의 소방대장입니다. 옐런 재무부장관은 지난 6월 20일에도 〈ABC〉에 출연해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리세션을 피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도 비슷한 맥락으로 발언들을 했습니다. 중립적인 중앙은행의 수장인만큼 바이든 행정부의 재무장관인 옐런만큼 확언을 못할 뿐입니다.
지난 6월 15일 자이언트 스탭을 밟은 이후 파월의 입에서 나온 발언들은 딱 세 마디로 압축됩니다. “경기침체를 막는 건 매우 도전적이다.” “경기침체를 무조건 막겠다.” “경기침체는 불가피한 게 아니다.” 모두가 바이든 대통령이 레호비치 별장 앞에서 자전거를 타다 말고 기자들한테 했던 발언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사전에 입을 맞춘 것처럼 말입니다. 시장은 신용입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기 침체를 막을 수 있다고 시장이 신뢰하지 못하면 실제로 경기 침체를 막을 수 없게 돼버립니다. 문제는 지금 시장은 바이든도 옐런도 심지어 제롬 파월 연준의장의 말도 온전히 믿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전 재무장관인 래리 서머스의 발언에 더 관심이 많죠.
왜냐하면 서머스의 말이 맞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지난 1년 동안 이어진 인플레이션 논쟁에선 서머스가 맞고 파월과 옐런이 틀렸습니다. 서머스는 2021년 2월 “경험해보지 못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촉발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3월엔 “욕조에 너무 많은 물을 붓는다면 물이 넘치기 시작할 것”이라고 단언했죠. 5월엔 “지금 당장 긴축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급기야 11월엔 “연준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때마다 파월과 옐런은 서머스의 말을 무시하거나 일축했죠. 파월은 욕조에 물을 붓는 입장이었고 옐런은 욕조에 물이 빠지면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둘 다 욕조에 물이 가득해야 인기가 있는 바이든 대통령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2022년 6월 현재 욕조에 물을 너무 많이 부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구태여 41년만에 최고였던 5월 소비자물가지수 같은 통계를 인용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시장 참여자들도 물가 압력을 일상적으로 느낄 정도가 됐으니까요. 이제와선 욕조 바닥 하수구로 물을 조금씩 빼내기에도 너무 늦어버렸다는 사실도 드러났죠. 방법은 욕조를 기울여서 물을 한꺼번에 빼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면 욕조 안에 가득차 보였던 일자리도 상품도 상점도 기업들도 욕실 바닥에 다 쏟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경기가 바닥을 치는 게 리세션이죠. 이미 점점 더 많은 욕조 속 시장 참여자들이 욕실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서머스의 말이 맞아가고 있습니다.
돈은 연준을 믿지 않는다
〈더밀크〉의 권순우 기자는 리세션에 대한 억만장자들의 전망을 정리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건 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억만장자들이라면 경기 침체 여부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겁니다. 일런 머스크의 〈블룸버그〉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예측했습니다. “어느 시점에서 경기침체가 불가피하다. 가까운 시일 내에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머스크의 발언은 정확하게 파월 연준의장과 대척점에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CNN〉의 팟캐스트 〈파리드 자카리아 GPS〉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가 가까운 미래에 경기침체로 향하고 있다는 약세론자들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밝혔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라는 건 올해 안에도 경기 침체가 닥칠거라는 의미입니다. 이미 시장이 경기 침체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이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경고를 무시할 수 없을 정도죠.
제이미 다이먼과 칼 아이칸은 완곡어법과 직설화법으로 각각 연준을 비판했습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는 “JP모건은 향후 다가올 '나쁜 결과'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JP모건은 공식적으론 경기 침체 가능성을 높게 보지는 않습니다. 12개월 이내엔 리세션 가능성이 낮다고 코멘트하고 있죠. 12개월 이내 리세션 가능성을 15%에서 30%로 두 배나 올린 골드만삭스와는 대조적입니다. 투자은행이 주력인 골드만삭스와 달리 JP모건 체이스 그룹은 소매금융이 주력입니다. 금리가 올라가면 이자 수익이 늘어납니다. 파산이 늘어나도 담보를 줍줍할 수 있죠. 제이미 다이먼이 말하는 나쁜 결과는 JP모건한테는 나쁜 결과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월가의 황태자라고 불리는 다이먼이 완곡하게 연준을 비판한 이유죠.
반면에 칼 아이칸은 인정사정 없습니다. “경기침체, 혹은 그 이상의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연준이 경기 '연착륙'을 잘 유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아마도 칼 아이칸의 발언이 월가의 연준과 정부에 대한 신뢰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일 겁니다. 월가의 트레이딩룸에선 칼 아이칸보다 더 적나라한 뒷담화가 오고 가겠죠. 래리 서머스가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이들 가운데 누가 진실을 더 솔직하게 말하고 있을까요?
파월, 이 사람 믿어주세요.
이러니 지난 6월 23일 열린 제롬 파월 연준의장의 하원 청문회에 시장의 눈과 귀가 집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의원은 파월 의장에게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고 얼마나 확실하게 약속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파월 의장은 “무조건적”이라고 답했죠. 하원의 초점은 월가와는 다릅니다. 하원의 관심사는 유권자들의 지갑을 약탈해가고 있는 물가 상승에 맞춰질 수밖에 없죠. 연준 의장이라면 당연히 무조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약속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파월 의장은 또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 금리를 올려도 “경기침체가 필연적이지 않다”고 덧붙였죠.
그런데 이 발언 직후에 미국 3대 주요 주가 지수가 모두 상승했죠. 같은날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가 23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는데도 말입니다. 제조업 PMI는 대표적인 경기 선행 지표입니다. 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이고 50보다 낮으면 경기 위축이죠. 6월 제조업 PMI는 52.4입니다. 50에 빠르게 근접해가고 있습니다. 1년 전엔 62.6이었습니다.
〈더밀크〉의 크리스정 기자는 이런 모순적인 현상을 두고 “나쁜 소식이 좋은 소식이 된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경기 침체라는 나쁜 소식으로 물가 상승이 둔화되는 좋은 소식이 들리면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아주 좋은 소식이 들릴 거라는 월가 저변의 기대감을 정확하게 짚은 겁니다. 낮은 금리는 주식 시장한텐 언제나 희소식이니까요. 그런데 이건 2가지를 의미합니다. 경기 침체는 월가한텐 어떨지 몰라도 어쨌든 우리가 사는 메인스트리트에는 나쁜 소식이라는 겁니다. 길거리에 실업자들이 넘쳐날지도 모르니까요. 지금 연준이 믿고 있는 고용 지표들은 조만간 과거 지사가 될 겁니다.
또 월스트리트는 연준이 경기 침체를 우려해서 하반기엔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읽고 있다는 겁니다. 2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3% 아래로 떨어진 게 그런 의미입니다. 연준이 자이언트 스탭을 한 직후인데도 기준 금리와 연동되는 단기 국채 금리가 떨어졌다는 건 장차 파월 연준과 바이든 행정부의 스탭이 꼬일 거라고 시장이 예측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미국의 경제 정책은 완벽하게 읽히고 있습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부 장관은 지난 6월 19일 〈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기 침체는 온다. 연준이 경기 변곡점에서 이미 한발 늦었기 때문이다.” 경제정책당국이 월스트리트와 메인스트리트에 읽히면 인플레이션도 경기침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시장을 주도하려면 시장보다 한발씩 앞서가야 합니다. 서머스처럼요.
결국 조커가 올까?
서머스의 입을 막으려던 바이든의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싸이클링으로 건재함을 과시하려다 실패한 것처럼요. 지난 6월 20일 바이든과 통화한 직후 서머스는 런던에서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5년간 5% 이상의 실업률이 필요하다. 다른 말로 하면 2년간 7.5%나 5년간 6%나 1년간 10%의 실업률이 필요하다.” 이렇게도 덧붙였습니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1970년대 폴 볼커 연준의장이 맞닥뜨린 것과 같다. 미국은 볼커 의장이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추진했던 강력한 긴축이 필요하다.”
폴 볼커 의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극심했던 인플레이션에서 경제를 구한 영웅으로 평가 받습니다. 1979년 8월 취임한 볼커 연준의장은 기준 금리를 15개월 동안 22%까지 높였습니다. 결국 인플레이션을 잡았죠. 그렇지만 볼커는 심각한 경기침체를 야기했습니다. 기업들은 줄도산했고 상점은 줄파산하고 길거리엔 실업자들이 넘쳐났죠. 볼커는 조커의 아버지입니다. 실업자에서 범죄자가 되는 영화 속 조커는 1980년대 리세션이 낳은 괴물입니다. 볼커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잡았지만 조커라는 괴물을 낳았습니다.
서머스는 조커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바이든과 파월한테 레이건과 볼커처럼 할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아무도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겠죠. 특히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이 가장 듣기 싫을 겁니다. 조커가 등장한다면 레이건이 아니라 카터처럼 단임 대통령으로 끝날 수도 있으까요. 불변하는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언제나 진실이 가장 불편하다는 진실 말입니다. 서머스의 입을 막는다고 리세션이 오지 않거나 리세션이 오지 않는다는 정부의 말에 없던 신뢰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 결국 조커가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