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몸을 갈아 넣어야 한다면 더 큰 시장에서"
[UKC2022 - IES 심포지엄]
한미 과학자, 기업가, 학계 1천여명 모인 한미과학자대회 열려
예비 창업가 경진대회 통해 선배 창업가, VC 투자자들과 만나
한국과 미국의 과학자와 기업가, 그리고 정책입안자들이 모여 학술토론과 정보교환을 통해 기술 혁신을 도모하는 '한미 과학자대회(UKC2022)'가 지난 17일~20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열렸다.
올해로 35회째를 맞은 한미 과학자대회는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KOFST), 그리고 한미과학협력센터(KUSCO)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과학, 기술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
'팬데믹 이후의 과학과 기술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행사는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적인 석학과 글로벌 기업 최고기술책임자, 과학기술 전문가, 한미 정부 관계자, 학계 권위자, 그리고 기술과 산업의 선봉에 서 있는 미국 내 스타트업 관계자들 참가했다. 행사에서는 기후 위기, 헬스케어, 양자 컴퓨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과학기술 연구 포럼과 세션들이 진행됐다.
특히 지난 200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존 매더 나사 고더드우주비행센터 선임 과학자가 기조 연설자로 참석했다. 그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제임스 웹이 성공하기까지의 여정을 소개하고, 여전히 관측하지 못한 새로운 우주 탐사를 목표로 꼽았다. 이어 반도체 분야의 석학으로 꼽히는 강성모 UC샌타크루즈 석좌교수(전 UC 머세드 총장, 전 KAIST 총장)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있어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고, 릴리아나 말도나도 알렉산드리아 리뉴 엔터프라이즈 최고환경경영자도 기조 강연자로 나섰다.
나흘간의 행사에서는 기업가 정신 심포지엄과 창업 경진대회를 통해 한국과 미국의 창업가들이 조인트 벤처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창업 프로그램 포럼'을 비롯해, 대학 총장 포럼, 직업 박람회, 과학기술 외교 포럼 등이 진행됐다. 또 학생들을 위한 리더십 훈련과 멘토십을 통해 취업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한편, 영 제너레이션 심포지엄, 데이터 사이언스 워크숍 등 배움의 장도 마련됐다.
"스타트업? 본질은 문제해결 과정"
올해로 제4회째를 맞은 혁신 및 기업가정신 심포지엄(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 Symposium, IES)은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예비 창업가들이 실질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교류의 장'이었다.
18일부터 사흘간 이어진 심포지엄에는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타트업 대표들이 참가해 성공 노하우를 제시했다. 참가자들은 지적재산권 보호에서부터 자금 유치에 이르기까지 미국 내 창업을 위한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했다.
18일(현지시간) 첫날 행사에는 김동신 센드버드(Sendbird) CEO가 'Going Global: The 2nd Miracle on the Han River'를 주제로 강연했다. 센드버그는 세계 1위 기업 간 거래(B2B) 채팅 플랫폼 기업이다. 그는 강연에서 한국과 미국의 투자 환경의 차이를 지적하면서 '미국 진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어진 AI, ICT,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세션에서는 해외의 창업가들이 혁신 기술과 업계 트렌드, 그리고 창업 여정 등을 소개했다.
물류관리자동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인 플리트업(FleetUP)의 에즈라 곽 CEO는 '2022년 글로벌 공급망 위기를 위한 AI 플릿 자동화 여정'을 주제로 강연했다.
곽 CEO는 "최근 공급망 혼란으로 인해 운송 산업에서 절도, 인력난, 유류세 급등, 운전자 안전, 보험료 급등과 같은 다양한 리스크들이 생겨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곽 CEO에 따르면 지난해 로지스틱스 운송 과정과 창고 등에서 1285건의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대부분이 컴퓨터와 같은 전자장비와 가정용 물품들로 전체 절도 사건의 49%가 캘리포니아, 텍사스, 그리고 플로리다 주에 집중됐다. 이로 인한 손실 규모는 5790만달러에 달했다.
곽 CEO는 "플리트업은 로지스틱스 과정에서 AI를 이용해 리스크 트렌드와 팩터를 분석하고 이를 리스트화 해서 고객사에 코칭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고객들의 문제 해결을 돕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은 솔 B2B SaaS 스타트업 '유아이플로우(Uiflow)' CEO는 B2B SaaS 스타트업 창업 과정에서의 교훈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가 제시한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IT 리더의 72%가 전략적인 '백로그'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언급했고, CIO 10명 중 6명이 기술 부족으로 인해 빠른 변화에 대처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은 CEO는 "기업 소프트웨어 구축하는데 인프라가 부족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소프트웨어 컴퍼니가 되기를 원한다"며 "누구나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게 돕는다는 비전으로 인프라를 지원해 기업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케빈 김 브레이브 터틀스(Brave Turtles) 설립자 겸 CEO는 '메타버스 게임 스타트업의 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펀드레이징 과정에서 제페토 측과 연결됐고, 메타버스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메타버스용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내년 출시를 목표로 프로젝트 Z라는 제페토 플랫폼에 출시할 게임을 제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메타버스가 미래인가'라는 물음에 "새로운 소통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규모가 큰 게임회사들이 아직 메타버스에 진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작은 스타트업 회사들에게 그만큼 기회가 있다는 것"이라며 "최고의 메타버스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제페토만 해도 유저가 3억 명에 달한다. 월간 활성 사용자수(MAU)는 1600만 명으로 이미 많은 이용자들이 있다"면서 "플랫폼 안에서의 게임 성공 사례가 나오면 글로벌 게임 기업들이 속속 진출하면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세션 2에서는 바이오테크 및 헬스케어 분야의 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참가한다. 박준 siRNAGEN 테라퓨틱스 대표, 케이 옴스테드 나노 파마솔루션 설립자 겸 CEO, 김기환 메디히어 설립자겸 대표 등이 한국과 미국의 생명공학 생태계 연결과 나노기술, 그리고 디지털 헬스 분야에서 직면한 이슈와 도전 등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19일에는 이민구 클리블랜드 애비뉴 매니징 파트너가 '식품 서비스 산업의 스타트업 생태계와 가치사슬'을 주제로 강연했고, 존 남 스트롱 벤처스 매니징 파트너는 '금융위기 속에서 스타트업을 위한 생존 기금 마련 방안'을 그리고 스펜스 남 KSV 글로벌 이노베이션 매니징 파트너는 '투자자가 창업 자금 조달과 출구 전략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주제로 강연했다.
스폰서 포럼에서는 손재권 더밀크 대표가 한국 스타트업 스토리를 영문 콘텐츠로 제작해 미국에 알리는 '대관령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목받았고, 공경록 매니징 파트너(K2G 테크펀드), 김길영 대표(신테카 바이오 USA) 등이 참석해 창업과 스타트업, 그리고 투자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시했다.
창업 경진대회 뜨거운 열기 ... 실제 투자로도 이어져
올해 IES 심포지엄의 하이라이트는 예비 창업가들의 '창업경진대회' 였다.
대회는 50만달러 이하의 투자를 유치한 11개 본선 진출 팀들이 출전한 '아이디어 피치 경진대회(IPC)'와 700만달러 이하 투자를 유치한 10개 본선 진출팀들이 경쟁한 '스타트업 피치 경진대회(SPC)' 등 두 개 카테고리로 나눠 진행됐다.
참가팀들은 3분간의 짧은 시간 동안 혁신 기술과 서비스가 담긴 창업 아이템을 선보였다. 심사위원으로는 김동신 센드버드 대표를 비롯해 공경록 K2G 테크 펀드 매니징 파트너, 은솔 유아이플로우 대표, 정태흠 SV 바이오 벤처스 대표, 존 남 스트롱 벤처스 대표, 이민구 클리블랜드 애비뉴 대표, 스펜서 남 KSV 글로벌 이노베이션 대표, 김덕호 존스홉킨스대 교수, 김용범 KIC DC 실장 등 스타트업, 학계,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주최 측에 따르면 IPC 그룹 참가자 절반은 한국 고려대와 성균관대 등에서 온 대학원생들로 구성됐다. KIC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온 35개 팀 중 5개 팀을 추렸다. 나머지는 미국에서 출전한 팀으로 구성됐다.
심사결과 아이디어 피치 그룹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눈 사진으로 헤모글로빈을 분석하는 기술을 선보인 '헤마크롬(HemaChrome)' 팀이 1위를 차지했고, 생리대와 기저귀 흡수제를 만든 '마린 바이오(Marine Bio)'가 2위에 선정됐다. 이어 이미지를 통해 갑상선 수술 방안을 제시한 '오토 서지컬(OptoSurgical)'과 굴 껍데기를 활용한 필터를 선보인 '블루랩스(Blue Labs)' 등이 각각 3위를 차지했다.
스타트업 피치 그룹은 이미 창업 후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기업들이 다수 출전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사이버 시큐리티 기술을 선보인 쿼드 마이너스(Quad Miners)가 1위를 차지했고, 바이오메디컬 기업인 루다큐어(RudaCure)가 2위를, 그리고 메드진 테라퓨틱스와 뉴라이브 코퍼레이션이 각각 3위에 이름을 올렸다. 1위를 제외하고는 메디컬 분야 기업들이 수상했다. 각 그룹의 1위 팀에는 각각 1만달러(SPC), 3000달러(IPC)의 상금이 수여됐다.
올해 IES 심포지엄을 주도한 양경호 박사(재미한인혁신기술기업인협회장, KITEE)는 "올해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의 팀들이 다수 출전했다는 점이 새로운 트렌드였다"며 "올해로 4년째를 맞았는데 해가 갈수록 출전팀들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느낀다. 특히 스타트업 피치 대회는 심사가 무척 어려웠다. 점수 차이도 크게 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스타트업계의 모범 사례에 대해 배우고, 창업경진대회를 통해 실제 투자 유치까지 이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며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규모를 확장해서 한국과 미국을 잇는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더밀크의 시각: 스타트업 씬에 겨울은 없다... 그저 봄을 준비할 뿐
UKC2022에 참석한 예비 창업가, 그리고 미국 진출을 꿈꾸는 창업가들은 심포지엄과 식사자리, 그리고 잠시라도 틈이 날 때마다 미국 스타트업 현장을 뛰고 있는 선배들을 찾아가 노하우를 듣기 위해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창업 경진대회에 참가한 학생 참가자들은 '피칭' 결과가 못내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기도 했고, 동료들은 "최선을 다했다"면서 서로를 격려하기도 했다. 실제 미국에서 창업에 성공한 업계 선배와 벤처캐피털 업계에 있는 투자자들과 만나고 이들로부터 받는 평가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아는 듯했다.
올해로 4회째 이어진 창업경진대회는 매년 투자유치로도 이어졌다. IES 심포지엄 체어를 맡은 양경호 박사는 "지난해에도 창업경진대회에 참가한 업체들 2~3곳이 실제 미국 VC로부터 투자유치를 받았다"며 "올해도 VC 업계 참가자로부터 2~3개 기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행사 후에 별도의 미팅을 갖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저녁식사 자리 역시 네트워크 미팅의 연속이었다. 한국의 한 사이버 보안 업체 관계자들은 테이블마다 돌면서 자신과 사업체에 대해 소개하고, 미국 진출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질문을 쉬지 않았다. 또 다른 헬스케어 업계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할인 쿠폰을 만들어 실제 자신들의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브랜드를 알리는데 집중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미국 시장 진출과 미국에서의 투자 유치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한 사이버 보안 업체 대표는 "최근 시리즈 A 투자유치를 마무리했다. 시리즈 B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진출하고 싶어 이번 행사에 참가했는데 나름 소득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네트워크 모임에서 선배 창업가들은 기탄없이 후배들을 향해 미국에서의 창업 경험담을 공유했다.
유니콘 센드버드의 창업자 김동신 대표는 예비 창업가와 미국 진출을 고심하는 창업가들을 향해 "어차피 몸을 갈아 넣을 스타트업의 길을 선택했다면 시장이 큰 곳에서 하는 게 맞다"라고 강조했다. 또 "회사 경영실적이 좋으면 분위기가 좋다가도, 나빠지면 금세 조직 분위기가 힘들어지기도 한다"면서 "성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동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의미 있는 협업'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업계 선배들의 일에 대한 열정은 예비 창업가 못지않았다. 김동신 대표는 "개인적으로도 펀드를 조성해서 투자를 하고 있는데 지금도 가능성이 큰 투자할만한 스타트업 대표를 만나게 되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가슴이 뛴다"라고 말했다.
또 20년 이상 투자업계에 종사한 공경록 K2G(Korea 2 global) 펀드 매니징 파트너는 최근 시리즈 A 투자 라운드를 마친 한 소프트웨어 업계 대표와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회사에 투자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말을 거듭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을 잇는 크로스오버 VC가 없다고 판단해 올해 4월 펀드를 론칭했다"면서 "한국의 초기 스타트업은 돈만 투자해서는 안된다. C레벨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리크루팅부터 기업문화 등 생태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침체 우려로 투자업계가 위축된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까에 대한 질문에는 예상치 못한 대답도 나왔다. 공 파트너는 "올해 경기침체 우려로 인해 투자업계가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미 바닥을 다지고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며 "(미국과 중국이 기술패권을 놓고 갈등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스타트업에 투자했던 자금이 한국 스타트업에 흘러들어 갈 가능성이 커졌다. 지금이 투자할 기회이고,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현장에 본 스타트업 씬에 '겨울'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봄이 오길 고대하며 때를 기다리는 업계의 역동성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