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안보'가 CES2024의 메인 주제인 이유
[기고] CES2024의 진짜 의미
CES 2024의 슬로건 'All Together, All On'. CTA가 전달하고자 하는 전시회의 정신과 철학을 반영.
모든 인류를 위한 기술적 접근과 혁신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특히 현재 진행 중인 글로벌 이슈들과 증가하는 기후 위기 상황에서 특히 시의적절한 방향을 제시했다.
올해 CES 2024의 슬로건은 ‘All Together, All On’다.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난제를 모두 함께 기술 혁신으로 해결하자는 의미다. CES의 주관기관인 CTA(전미소비자기술협회)는 슬로건을 통해 CES라는 지구촌 최대의 기술전시회가 추구하는 정신과 철학을 담고 있다. 우리는 슬로건이라 하면 의례적 수사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CES는 다르다. CES 혁신상 선정이나 CTA가 제시하는 미래 트렌드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핵심 개념으로 세심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CES 2024의 슬로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작년 CES 2023에서 핵심 슬로건으로 제시된 ’모두를 위한 휴먼 시큐리티(Human Security for All, HS4A)’를 이해해야 한다.
미디어에서 ‘휴먼 시큐리티’를 ‘인간 안보’ 또는 ‘인류 안보’라 번역되어 의미가 제대로 마음에 와 닿지도 않고 그다지 큰 주목도 받지 못했다. 작년은 물론 올해 CES 2024에서도 CES 2023 슬로건 ‘HS4A’는 더욱 중요해지고 맥맥이 핵심 키워드로 자리잡고 있어 그 정확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휴먼 시큐리티'란 1994년 UN이 최초로 도입한 개념으로 식량, 의료, 경제, 환경, 개인, 공동체, 정치적 자유 등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7가지 분야의 심각한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HS4A는 일부의 기득권층이나 엘리트 계층만이 아니라 인류 모두를 위해 기술 혁신을 통해 ‘휴먼 시큐리티’를 이루어내자고 강조하고 있다. 즉, 기술 혁신을 통해 인류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가 지향하고 있는 비전을 실현하고자 한다는 뜻이다.
게리 샤피로 CTA 회장은 작년 10월 한국에 방문하여 ‘모두를 위한 휴먼 시큐리티’를 거듭 강조하며 CES에서 제시하는 혁신 기술이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다음 세대에 더 나은 미래를 주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코로나 팬데믹에 이어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신냉전 시대가 전개되고 기후 위기는 악화일로다. 이에 따라 세계인이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염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방향제시다.
올해는 여기에 기술역량을 의미하는 ‘기술에의 접근’이 추가되어 8가지의 분야에서의 ‘휴먼 시큐리티’를 지키기 위해서 새로운 기술혁신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굳이 번역한다면 ‘인류 안보’가 좀 더 본의에 가깝다고 하겠다.
세계인의 불안과 위협을 해소하여 ‘인류 안보’를 지키자는 8가지 분야와 사례를 보면 첫째로 ‘식량 안보 (Food Security)’다.
기후 위기로 농작물 생산이 세계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면 기아 중가는 필연적이다. 작년 세계적 농기계 회사 존 디어는 농업기술 혁신으로 세계인의 먹거리를 해결함으로써 식량 안보를 해결하겠다고 천명하여 세계인의 찬사를 받으며 일약 CES 2023 최고 스타기업이 되었다. 같은 맥락으로 올해 우리나라 스타트업 기업 미드바르가 세계 최초의 공기주입식 스마트 팜을 출품하여 이동성과 생산성이 뛰어난 혁신 농업기술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둘째로, 의료 혜택을 의미하는 ‘헬스케어에의 접근 (Access to Healthcare’)이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선진국조차도 공공 의료 시스템이 무너져 세계인은 엄청난 불안을 겪으면서 건강과 의료 서비스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크게 고조되고 있다.
CES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원격 건강관리 및 의료 등 헬스케어 분야가 최근 주요 분야로 급부상한 것도 같은 이유다. 올해는 미국의 건강 보험 및 관리 기업인 엘레반스 헬스가 기조연설을 하고 미국의 애보트, 프랑스의 위딩스, 로레알 등 헬스 및 웰니스, 뷰티 기업이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 스타트업인 텐마인즈가 코골이 완화 수면 솔루션을 출품하여 최근 부상하고 있는 SleepTech(수면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셋째로 ‘경제 안보 (Economic Security)’다.
CES에서는 특히 기술 스타트업의 참여를 대폭 확대함으로써 기술 혁신을 통한 경제 활성화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스타트업 기업들의 전시를 한 데 모은 유레카관을 운영해 왔는데 해를 거듭하며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올해도 전 세계 1,200여 개 스타트업 기업들이 참신한 혁신 기술로 경쟁하는 글로벌 경연장이 됐다.
CES 2024에 총 600개 스타트업‧벤처 기업이 참여한 우리나라는 유레카관에만 443개 스타트업이 전시하여 프랑스 180개, 일본 60개, 네덜란드 60개를 압도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넷째로 ‘환경 보호 (Environment Protection)’다.
210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파리기후협약의 목표는 이미 달성이 어렵고 제한온도 돌파는 시간문제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수면 상승, 이상기후, 해양 생태계 파괴 등 많은 위협이 인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CES에서는 매년 재생에너지, 에너지 절감, 순환경제, 플라스틱 대체 소재 등 많은 혁신적 에너지‧환경 기술을 선보이며 지속가능성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올해도 삼성전자, LG전자, 현대기아차, SK 등 우리 기업은 물론 대부분의 글로벌 전시기업이 지속가능성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며 탄소중립을 위한 다양한 혁신 기술을 전시했다. 파나소닉의 생분해성 및 고기능 플라스틱 수지 ’키나리(Kinari)’ 등 세계적 이슈인 플라스틱 대체 기술도 주목을 받았다.
다섯째로, ‘개인 안전 및 모빌리티 (Personal Safety & Mobility)’다.
최근 데이터, 정보, 프라이버시, 금융 등 많은 분야에서 개인 안전과 자유로운 이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많은 관련 혁신기술이 CES에 소개되고 있다. 특히, 모빌리티는 CES의 핵심 분야로서 글로벌 모터쇼에 필적하는 규모로 확대되고 있다. 올해 CES는 자동차는 물론 비행체, 선박 등 육해공 모빌리티를 망라하며 전동화 기술, 수소 기술, 소프트웨어 중심 기술(SDX) 등 혁신 기술이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했다.
여섯째로 ‘공동체 안보 (Community Security)’다. 물리적 공간은 물론 사이버 공간에서 많은 위험으로부터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기술 혁신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CES 2024에서 독일 보쉬가 학교 캠퍼스 내 총기 난사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내놓은 총기 감지 시스템이 좋은 예이다.
일곱째로 ‘정치적 자유 (Political Freedom)’다. 정부와 시민의 자유롭고 공정한 소통 및 정보 공유를 위한 디지털 기술의 혁신도 최근 CES에 소개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 스타트업인 지크립토가 내놓은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 투표 시스템이 2년 연속 최고혁신상을 받으며 주목을 끌었다.
마지막으로 ‘기술에의 접근 (Access to Technology)’이다. 이 분야는 올해 새로 추가된 분야로 기술역량의 확보를 의미한다. 기술 혁신이 가속되면서 AI 등 신기술이 일부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 되어 장애인, 노년층을 포함한 일반인들이 소외되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기술 혁신으로 혁신 기술이 일부가 아닌 모두에게 접근 가능하게 하자는 의미다. 올해 CES 최고혁신상을 받은 우리나라 스타트업 원콤의 시각장애인을 위한 쿼티 커뮤니케이터, 만드로의 로봇 손가락 의수가 좋은 사례다.
CES 2024에서 초미의 관심을 받은 생성형 AI를 비롯한 AI 기술 등 많은 혁신 기술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나, 그 ‘흐름’과 ‘방향성’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기술만 보는 것은 바다 표면의 파도를 보느라 심해의 도도한 저류를 놓칠 수 있어서다. 작년 CES부터 시작된 ‘기술 혁신’ 자체에서 ‘기술 혁신의 목적’으로 관점이 전환한 데 주목해야 한다. 즉 ‘기술을 위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인류의 당면 난제를 해결하고 비전을 실현하는 ‘인류를 위한 기술 혁신’이어야 한다는 것이 CES 2024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요, 시대정신이다. CES가 2년 연속 강조한 핵심 슬로건 ‘모두를 위한 인류 안보(Human Security)’와 올해 슬로건(All Together, All On)에도 이런 메시지와 시대정신이 녹아들어 있다.
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前 중소기업청장
주영섭 서울대학교 특임교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융합연구위원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GE그룹의 CEO,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 주력산업총괄 MD, 중소기업청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