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혁신 선진국 탈락... CTA 혁신 지수, 충격의 26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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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익 2023.01.08 15:57 PDT
한국, 혁신 선진국 탈락... CTA 혁신 지수, 충격의 26위 왜?
(출처 : 디자인=장혜지)

한국, CTA 혁신 순위 20위에서 26위로 떨어져
조세 제도 등 17개 범주에 걸쳐 총 40개 지표 측정
“지속가능성·다양성·보안 개선 없이 혁신 불가능”
CES2023, 주력 소비자 교체 트렌드 두드러져

한국이 혁신 중진국으로 전락했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는 “CTA(미국소비자기술협회)가 집계한 ‘글로벌 혁신 스코어카드(2023 Global Innovation Scorecard)'에서 한국이 26위를 기록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글로벌 혁신 스코어카드는 CTA가 집계해 발표하는 국가별 혁신 순위다. 올해는 조세 제도(tax friendliness), 환경(environmental quality), 무역 정책(trade policy), 인터넷·통신(broadband access) 등 17개 범주에 걸쳐 총 40개의 지표를 측정, 점수가 산정됐다. 

미국, 캐나다, 스위스,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독일, 프랑스, 싱가포르, 일본 등 25개국이 포함된 ‘혁신 챔피언(Innovation Champion)’ 그룹에 한국이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발표한 ‘2022 글로벌 혁신지수(6위), 2021년 발표된 ‘블룸버그 혁신 지수(1위)’ 등 다른 평가 기관의 결과와 비교하면  상이한 결과다. 

특히 이번 결과는 CES2023에서 한국 기업들이 맹활약을 펼치며 '혁신 국가'로서의 위상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제기된 시점에서 나온 리포트여서 충격을 주고 있다. CES를 주최한 CTA에서 선정한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혁신을 위해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세계지식재산기구가 발표한 글로벌 혁신지수 추이. 한국(연보라색)의 순위는 2021년 5위에서 2022년 6위로 한 계단 떨어졌다. (출처 : WIPO)

한국, CTA 혁신 순위 20위에서 26위로 떨어져

CTA가 글로벌 혁신 스코어카드를 처음 발표한 건 2018년이었다. 한국은 당시 순위에서 20위를 기록했고, 이듬해인 2019년에는 24위를 기록한 바 있다. CTA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 컸던 2020~2022년에는 순위를 집계해 발표하지 않았다가 올해 집계를 재개했다. 

한국이 포함된 혁신 리더 그룹에는 말레이시아, 라트비아,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동남아시아, 동유럽 국가들이 주로 포진하고 있다. 혁신의 '중진국'이란 뜻이다.

올해 분석 대상국에는 9개국이 추가돼 총 70개국 순위가 공개됐다. 일본은 한국보다 한 계단 높은 25위에 랭크됐다.

CTA 혁신 지수는 자유도, 인적 자본, R&D 투자 등 포괄적인 혁신 지표 외에도 창업 활동(Entrepreneurial Activity),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등 스타트업 관련 지표, 드론(Drones), 원격 의료(Telehealth), 자율주행차(Self-Driving Vehicles), AI(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 지표를 별도의 범주로 구분해 평가하는 게 특징이다.   

한국은 사이버 보안에서 F등급을 받았다 (출처 : CTA)

CTA의 혁신 지수는 다양성(Diversity), 회복탄력성(Resilience) 등 혁신을 뒷받침하는 백그라운드 요소를 중요 범주로 나눠 분석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1위를 한 ‘블룸버그 혁신 지수’는 GDP 대비 연구개발비에 높은 가점을 준다. 하지만 CTA 지수는 혁신의 문화적 배경에 더 집중했다.

전 세계가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를 겪은 후 재개된 집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첨단 기술을 활용해 어떻게 인간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평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게리 샤피로(Gary Shapiro) CTA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전 세계 혁신가들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놀라운 속도로 백신을 개발하고, 국경을 넘어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며 “2023년 혁신 스코어카드 결과에는 이런 기업가 정신의 폭발적 성장이 포착됐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혁신 챔피언 국가들은 혁신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시장에 출시해 수백만 명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 : CTA)

“지속가능성·다양성·보안 개선 없이 혁신 불가능”

전문가들은 한국의 순위가 부진했던 건 R&D 투자 규모, 인적자본 같은 인프라나 첨단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같은 문화적인 측면, 조세 제도 같은 규제 항목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사이버 보안 분야에 대한 인색한 투자, 높은 위험도 수준 역시 악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실제로 한국은 주요 평가 항목 중 다양성 항목에서 D학점이라는 저조한 점수를 기록했고, 세금 친화적 환경을 측정하는 조세 제도 부문 역시 C학점에 그쳤다. 사이버 보안 부문은 F학점이라는 최저점을 받았다.  

손 대표는 “CTA의 올해 혁신 순위 평가 결과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y), 다양성(Diversity), 보안(Security) 없이는 혁신이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는 걸 보여준다”며 “판의 전환이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이번 CES에서 삼성전자가 에코 패키징을 비롯한 지속가능성을 강조한 것이 소비자 트렌드 전환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CES 전시관 입구에 가장 먼저 보이도록 ‘지속가능성’ 섹션을 마련해 TV 박스를 책꽂이, 선반, 반려동물용 집 등으로 활용한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다양성 역시 색다른 아이디어 발현을 위한 중요한 토양으로 여겨진다.

손 대표는 “올해 CES는 미국 소비자들이 환경 보호, 다양성 같은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선호하는지 보여줬다”며 “메타버스, 게임 기업의 참여 및 전시가 강조된 것도 밀레니얼 세대에 이어 Z세대의 부상이라는 주력 소비자 교체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스티브 코닉(Steve Koenig) CTA 리서치 담당 부사장이 테크 트렌드 6가지를 발표했다. (출처 : CTA)

CTA 역시 올해 CES 주제를 ‘모두를 위한 휴먼 시큐리티(Human Security for All, H4SA)’로 잡고 개막 행사인 ‘주목해야 할 기술 트렌드’ 에서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한 바 있다. 스티브 코닉 CTA 리서치 담당 부사장은 “강력한 새로운 기술 혁신의 물결은 불황기에 일어난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에 4G LTE 모바일 브로드밴드, 스마트폰이 보급되며 소비자를 위한 기술 혁신이 일어났다”고 했다. 

휴먼 시큐리티는 인간 생존과 번영을 위한 식량, 의료 접근성, 소득, 환경 보호, 개인 안전, 지역사회 안보, 정치적 자유 등을 나열한 개념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공급망 붕괴, 코로나19를 비롯한 글로벌 팬데믹 등으로 인해 ‘기술로 휴먼 시큐리티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전 지구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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