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1.2조달러 시장… AI는 이미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메타 AI 글래스, 연간 판매 700만 대 돌파…'포스트 스마트폰' 현실화
엔비디아·애플, 산업용 공간 컴퓨팅 맞손…자동차·제약·제조 현장 파고든다
신간 '넥스트 AI'의 핵심? "누가 인간의 본능을 인터페이스로 구현하나"
시어스랩, AI 글래스 무신사 단독 출시…패션 플랫폼으로 대중화 승부수
우리는 인터페이스 역사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에 서 있다. 핵심은 '누가 인간의 본능을 인터페이스로 구현하느냐'에 있다.전진수, 최형욱 대표의 신간 '넥스트 AI, 공간컴퓨팅' 중에서
스마트폰과 PC로 상징되던 ‘사각형 화면’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그 자리를 대신해, 현실 공간 자체가 인터페이스로 작동하는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27년 차 테크 전문가 전진수 전 SK텔레콤 부사장과 최형욱 퓨처디자이너스 대표는 신간 '넥스트 AI, 공간 컴퓨팅'에서 "인류는 또 한 번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면서 공간 컴퓨팅이 새로운 플랫폼 패러다임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제 정보는 더 이상 2차원 화면이나 디바이스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가 존재하는 3차원 물리 공간과 결합하며, 공간 자체가 곧 인터페이스로 기능한다. 사용자는 별도의 기기를 의식하지 않은 채,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증강현실(AR)의 확장이 아니라, 물류·헬스케어·제조 등 전 산업을 재편할 ‘물리 세계의 운영체제(OS)’의 등장에 가깝다.
자본 역시 이 흐름을 빠르게 따라붙고 있다.
벤처캐피털 아크틱 벤처스(Arctic Ventures)의 창업자 안톤 알리코프는 USA투데이 기고에서 “AI가 디지털 혁신의 ‘두뇌’라면, 공간 컴퓨팅은 물리적 세계의 ‘눈과 손’”이라고 평가했다. 생성형 AI가 인간의 사고 영역을 확장했다면, 공간 컴퓨팅과 ‘피지컬 AI(Physical AI)’는 현실 공간을 인식하고 반응함으로써 인간의 행동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메타의 궤도 수정... 일상으로 침투한 AI 글래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은 최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전략 수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한때 출퇴근을 가상 상호작용으로 대체하겠다는 비전 아래, 2021년 이후 메타버스 플랫폼 구축에 약 800억 달러를 투입했다. 그러나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며 결국 대폭 축소됐다.
메타버스 관련 저서 작가 와그너 제임스 우(Wagner James Au)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메타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메타버스'라는 용어에만 집착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메타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졌다. 올해에만 1150억 달러 이상을 AI 인프라와 데이터 센터 확장에 투입하며 'AI와 현실의 융합'으로 방향을 전면 선회했다.
이 같은 전략적 전환은 ‘안경’이라는 새로운 폼팩터에서 즉각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파트너사 에실로룩소티카(EssilorLuxottica)의 4분기 실적에 따르면, 메타 AI 글래스는 지난해에만 700만 대 이상 판매되며 2023년과 2024년 합산 판매량(200만 대)을 가볍게 넘어섰다. 특히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최신 모델은 미국 내 수요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급증해 글로벌 출시가 지연될 정도다.
메타의 방향 전환은 디지털 경험을 ‘화면’에서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산업 전반의 흐름을 반영한다.
저커버그 CEO는 실적 발표에서 "수십억 명이 시력 교정용 안경이나 렌즈를 착용하고 있다"며 "몇 년 후 사람들이 쓰는 대부분의 안경이 AI 안경이 아닐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고 단언했다. 메타가 조만간 시력 교정 착용자를 겨냥한 특화 모델(코드명 스크라이버, 블레이저) 출시를 앞두고 있는 것도 이러한 자신감을 반영한 결과다.
하이엔드 공간 컴퓨팅과 '피지컬 AI'의 융합... "산업 현장 혁신"
가벼운 스마트 글래스가 일상 대중화의 문을 열었다면, 하이엔드 공간 컴퓨팅 기기는 이미 글로벌 산업 현장의 워크플로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최근 미국 산호세에서 열린 GTC2026에서 애플 비전 프로(Apple Vision Pro)에 자사의 '클라우드XR(CloudXR) 6.0' 스트리밍 기술을 네이티브로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제프 노리스 애플 비전 제품 그룹 수석 디렉터는 "자동차 디자인부터 헬스케어, 항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의 업무 혁신을 가속할 고충실도 경험을 제공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엔비디아와 애플, 두 거대 빅테크 기업의 동맹이 산업용 공간 컴퓨팅의 저변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장에서도 구체적인 반응이 나온다. 볼보 그룹 디자인 총괄 미카엘 고르드(Mikael Gordh)는 "볼보 그룹 디자인에서는 먼저 디지털로 작업하며, 물리적 프로토타입은 필수적인 경우에만 제작한다. 공간 컴퓨팅, 애플 비전 프로, 클라우드XR 덕분에 사용자가 보고 만지는 모든 것을 수년 앞서 경험할 수 있게 됐다"며 1:1 스케일 모델 시각화의 가치를 강조했다.
카림 하비브 기아 글로벌 디자인 담당 부사장 역시 "비전OS용 엔비디아 클라우드XR을 통해 몰입형 공간 컴퓨팅을 워크플로우에 통합함으로써 애플 비전 프로에서 더 높은 선명도와 속도로 실제 크기의 디자인을 평가할 수 있게 됐다"며 "전 세계 팀과 실시간으로 비율·표면·색상·소재를 함께 경험하면서 프로세스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약분야로도 이런 움직임은 확산되는 추세다. 제약사 로슈는 생체 유체 분석 연구소 레이아웃을 실제 구축 전 시뮬레이션하고 있으며, 제조업체 폭스콘과 데이터센터 기업 스위치는 각각 공장 현장 워크스루 시각화와 완전 몰입형 디지털 트윈 모니터링에 이 기술을 활용 중이다.
시어스랩, AI 글래스 무신사 단독 출시…패션 플랫폼으로 대중화 승부수
글로벌 공간 컴퓨팅 플랫폼 시장은 2025년 1640억 달러에서 2035년 1조 2000억달러 규모로 성장이 예상된다. '넥스트 AI, 공간컴퓨터'의 저자들은 애플·메타·구글이 뛰어든 경쟁의 본질을 "누가 인간의 본능을 가장 자연스럽게 인터페이스로 구현하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한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국내 기업들도 이 전장에 뛰어들고 있다. 비전AI 기반 XR 전문기업 시어스랩(Seerslab)은 지난 30일 온라인 쇼핑 플랫폼 무신사를 통해 국산 AI 스마트 글래스 'AInoon(에이아이눈)' 모델 2종을 단독으로 론칭했다.
이번에 선보인 제품은 기존 ‘에이아이눈 G1’과 함께, 카메라 기능을 제외해 가격을 낮춘 보급형 모델 ‘에이아이눈 엑스(AInoonX)’다. 특히 에이아이눈 엑스는 28만 9천 원의 가격과 약 30g의 초경량 설계를 앞세워, 일상에서 부담 없이 착용할 수 있는 ‘생활형 AI 안경’에 초점을 맞췄다. 프레임 교체가 가능한 디자인을 통해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확장성도 확보했다.
업체 측에 따르면 전화 통화, 음악 감상, 사진 및 영상 촬영 등 기본적인 미디어 기능에 더해, 다양한 생성형 인공지능 모델을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중 인공지능 모델 기능’을 지원한다. 사용자는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고도 메시지 확인, 길 안내, 정보 검색 등 일상적인 작업을 안경 착용 상태에서 처리할 수 있다.
특히 국내 사용자 환경에 최적화된 개방형 응용 프로그램 생태계를 강점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특징이다. 향후 다양한 국내 앱과의 연동을 통해 메시지 확인, 음악 검색, 도보 길 안내 등 생활 밀착형 기능을 강화하고, 안경원 체험존 확대를 통해 사용자 접점을 빠르게 넓힌다는 전략이다.
정진욱 시어스랩 대표는 "무신사와 전략적으로 AI 글래스 시장을 함께 키워나갈 것"이라며 "전 국민이 가격 부담 없이 일상에서 안경을 통해 AI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더밀크의 시각: 공간 컴퓨팅 시대, ‘시야’를 둘러싼 패권 전쟁의 시작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의 핵심은 누가 인간의 '오감'을 점유하느냐에서 나온다. 공간 컴퓨팅 시대에는 사용자가 하루 종일 착용하는 디바이스, 즉 '폼팩터'를 장악한 기업이 곧 플랫폼이 된다. 빅테크들이 저마다의 스마트 글래스 전략을 앞다퉈 내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AI는 현실을 보고, 이해하고, 반응하는 '행동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 물리적 공간에 직접 개입하며 인간의 행동 자체를 재설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경쟁은 필연적으로 '인프라 전쟁'으로 확장된다. 메타가 AI 데이터센터에 천문학적 투자를 집행하고, 엔비디아가 클라우드 기반 공간 컴퓨팅을 밀어붙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공간 컴퓨팅은 막대한 연산력과 에너지를 전제로 작동하는 구조다. 결국 이 시장의 승패는 컴퓨팅 파워와 에너지 효율에서 갈릴 것이다.
개인의 정의도 바뀐다. 시야와 청각, 인지 능력이 AI로 확장되면서 개인은 점점 더 강력한 생산성을 갖게 된다. 적은 자원으로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 '슈퍼 개인'의 시대가 공간 컴퓨팅을 통해 현실이 될 것이다.
결국 기업의 성패는 '누가 인간의 일상과 감각 속에 가장 자연스럽게 머무를 것인가'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신간 소개] 넥스트 AI, 공간 컴퓨팅
현실 공간 자체가 컴퓨터가 되는 ‘공간 컴퓨팅’ 시대의 막이 올랐다. 27년 차 테크 전문가인 전진수 볼드스텝 대표(전 SK텔레콤 부사장)과 최형욱 퓨처디자이너스 대표가 공동 집필한 이 책은 챗GPT로 대변되는 생성형 AI 시대를 넘어, 인간의 '행동 영역'을 물리적으로 확장하는 '피지컬 AI'의 거대한 물결을 조망한다.
저자들은 애플, 메타,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차세대 인터페이스인 우리의 '시야'를 차지하기 위해 어떤 전쟁을 벌이고 있는지 산업적 관점에서 촘촘히 분석한다.
나아가 기술이 일상을 재편하는 2035년,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엄청난 성과를 내는 ‘슈퍼 개인’의 탄생을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