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美 대선...해리스로 결집 중인 민주당. 실리콘밸리 결심은?
[2024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 ‘유력’ 해리스, 바이든∙트럼프와 뭐가 다른가?
바이든 시대, 민주당이 실리콘밸리∙월가와 멀어진 이유
‘페이팔 마피아’-트럼프 협조 움직임
해리스도 기업 접촉 늘려….실리콘밸리와 월가 표심은 어디로?
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출렁이고 있다.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가 벌어진 지 약 일주일 만에 사퇴 압박에 시달리던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전격 사퇴했다. 카밀라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후임으로 사실상 결정됐다는 일각의 분석이 나온다.
이때 미국 테크 기업 성지, 실리콘밸리는 지금 정치적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지난 10여 년간 민주당 지지 세력으로 꼽혔지만, 세계화 시대의 축소, 포퓰리즘의 대두, 문화적 갈등 등으로 인해 정치적 딜레마를 겪는 중이다. 혁신과 진보의 성지였지만, 기업이 비대화하면서 세금 인상과 기업 규제를 주창하는 민주당의 정책 기조와 충돌한 게 한 예다. 이에 이번 대선에서 이들의 행보도 귀추가 주목된다.
해리스, 바이든∙트럼프와 뭐가 다른가?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해리스 부통령을 후임으로 지목한 이후,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등 민주당 중진들의 지지 선언이 이어지며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후보 지명이 유력시되고 있다. AP통신, 뉴욕타임스(NYT)는 "해리스가 대의원 과반을 거머쥐었다"면서 "그는 레이스 하루 만에 (대선 후보 지명에) 다가섰다"고 평가했다.
해리스는 민주당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임신중단권(낙태권) 보호, 총기, 기술 산업 규제, 기후변화 정책 등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및 공화당 후보와 달리하고 있다. 22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선대본부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여성을 학대하는 '포식자', '사기꾼' 등으로 칭하며 "만약 트럼프가 기회를 얻으면 그는 모든 주에서 임신중단을 불법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될 경우 복지와 기후변화 지원을 늘려 확장적 재정 정책이 강화될 가능성이 나온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해리스는 2019년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시절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위해 총 10조달러의 공공·민간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는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 중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서 친환경 에너지 산업에 지급하는 예산 1조 6000억달러를 6배가량 웃도는 수준이다.
해리스는 2017년 버니 샌더스 전 상원의원과 함께 모든 2년제 대학과 4년제 공립대학의 중산층 이하 학생의 수업료를 무상으로 제공하자는 법안을 공동 발의하기도 했다. 폴리티코는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주로 2년제 대학에 한해 무상 교육을 제공하는 데 주력했고 이 계획도 IRA 협상 과정에서 폐기됐다”며 “만약 해리스가 당선되면 이 계획이 다시 추진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해리스가 당선된다면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규제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바이든 정부는 AI 산업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규제보다 업계의 자율 규제를 선호하고 있다. 반면 해리스는 지난해 영국에서 열린 AI 관련 행사에서 “역사를 보면 정부의 강력한 관여와 규제가 없을 때 일부 기술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안위보다 돈벌이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고 비판한 바 있다.
민주당, 실리콘밸리-월가와 멀어진 이유
기술 업계와 월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감세 정책과 중국에 대한 그의 강경한 입장을 선호했지만, 선호와 불호가 강한 그의 이미지 때문에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실리콘밸리와 월가는 조 바이든 행정부 내 경제 정책 담당 최고위직 지명자 중 3분의 2가 사업 경험이 없었다는 점, 트럼프 행정부 시절 존재했던 직통 라인이 느슨해진 점에 불만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22일(현지시각)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경제학자 스티브 무어가 이끄는 번영촉진위원회(Committee to Unleash Prosperity)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바이든이 임명한 사람들의 평균적인 사업 경험은 2.4년에 그쳤고, 62%는 사실상 사업 경험이 전혀 없었다. 트럼프 행정부 내각이 평균 13년이었던 점과 비교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사설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과 그 결과가 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부족하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꼬집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 정부가 인공지능(AI)과 암호화폐 등 기술 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테크 산업 리더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페이팔 마피아-트럼프 협조 움직임 주목
반면 실리콘밸리의 주요 세력인 '페이팔 마피아'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연대는 심상치 않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던 실리콘밸리 성향에 계정정지 연타로 테크 기업에 분노해 온 트럼프가 최근 친밀한 행보를 보이다 못해 러닝메이트로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 출신 JD 밴스를 낙점한 것.
페이팔 마피아는 2000년대 초반 온라인 결제 서비스 회사 페이팔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을 일컫는 은어다. 페이팔이 이베이에 인수된 이후 각자 투자하거나 창업한 기업이 크게 성공해 그들의 입김이 실리콘밸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비롯해 기업용 인맥 소셜네트워크(SNS)인 링크트인 설립자 리드 호프만, 페이스북 최초 투자자 피터 틸, 유튜브 설립자 스티브 첸 등이 꼽힌다.
페이팔 당시 COO였던 데이비드 삭스 크래프트벤처스 CEO는 자신의 저택에서 트럼프의 선거 자금 모금 파티를 열거나 진행하는 팟캐스트 게스트로 트럼프를 초대했으며, 오랜 트럼프 지지자인 피터 틸은 자신이 후원하는 밴스를 트럼프에게 추천해 그를 부통령 후보로 앉히는 데 성공했다.
특히 일론 머스크(Elon Musk) 테슬라 창업자는 데일리와이어(Daily Wire)와의 인터뷰에서 소문처럼 트럼프의 캠페인에 월 4500만달러를 약속한 건 아니지만, 슈퍼PAC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수억달러 규모의 실리콘밸리 화력을 집결시킬 가능성이 있는 PAC이다.
실리콘밸리와 월가 표심은 어디로?
다만 실리콘밸리 ‘대세’가 누구인지는 아직 모호하다. 이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도전 포기 발표 이후 민주당의 유력 후보로 꼽힌 해리스가 그들을 되찾을 수 있을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세마포는 “월스트리트의 중도주의자들은 민주당 기부 테이블로 돌아올 이유를 찾았을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왼쪽으로 기울었다고 느끼는 정당으로 돌아올 이유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리드 호프만이 바이든에서 재빨리 해리스 지지로 선회했고, 억만장자 벤처자본가 비노드 코슬라(Vinod Khosla)는 공개 대회를 촉구했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조너선 그레이 블랙스톤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 피터 오르작(Peter Orszag) 라자드(Lazard) CEO, 블레어 에프론(Blair Effron) 센터뷰 파트너스 공동창업자, 로저 알트먼 에버코어(Evercore) 수석회장 등이 지지를 표명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실리콘밸리 인사와도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년에 걸쳐 벤처 캐피털리스트 존 도어, 셰릴 샌드버그 전 메타 최고운영책임자(COO), 한때 애플 디자인 책임자였던 조니 아이브, 스타트업 투자자 론 콘웨이 등 중량급 기술 인사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다. 그의 매제인 토니 웨스트는 우버의 최고법률책임자(CIO)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기술진 임원들은 해리스와 기업 간 관계가 개선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부통령 임기를 시작할 때 업계에서는 회의론이 나왔지만, 이후 그는 민주당의 거대 기부자이자 투자 은행가인 블레어 에프론이 조직한 행사를 비롯해 점심, 저녁 식사를 통해 기업 리더들과 비공식적으로 접촉했다. 매체는 “많은 기업 거물이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면 바이든보다 자신들의 제안을 더 반영하고, 기업 출신 인사들에게 주요 행정부 역할을 맡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