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고장났다" 팔란티어, 고졸 인재 채용... AI 시대 '학위 무용론' 본격화
팔란티어 '실력주의 펠로우십' 출범... 고교 졸업장으로 인턴 채용
기술기업 CEO 200명 "컴퓨터·AI 교육, 고교 졸업 필수과목" 촉구
대학 교육도 변화... 美 아메리칸대학교, AI 연구소 설립
대학을 다니면서 빚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세뇌당하지 마세요. 팔란티어의 학위를 받으세요.팔란티어 웹사이트
챗GPT 등 생성AI의 확산이 미국 고등 교육의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전통적 대학 학위의 가치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는 가운데 AI 기업들이 기존 채용 관행을 재편하려는 것. ‘간판 대학 졸업장은 곧 취업 보증수표’라는 공식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곳은 시가총액 2000억 달러(약 277조원)를 넘어선 데이터 기반 소프트웨어 솔루션 기업 팔란티어(Palantir)다. 최근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과 이스라엘-이란 간 전쟁 여파로 국방 기술 부문에서 팔란티어의 기술력도 재조명되고 있다.
팔란티어는 최근 고등학교 졸업생 및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실력주의 펠로우십(Meritocracy Fellowship)’ 프로그램을 출범했다. 이 프로그램에 선발된 참가자는 오는 가을부터 4개월간 뉴욕 본사에서 근무하며 기술적 과제 해결 등 실무에 투입된다. 월 5400달러(약 750만원)의 급여도 지급된다.
지원 자격은 대학에 재학 중이지 않은 고교 졸업생 또는 졸업 예정자로 파이썬(Python), R, SQL 등 프로그래밍 언어 및 통계 패키지 사용 경험이 있으면 우대받는다. 참가자는 SAT 1460점 또는 ACT 33점 이상의 성적을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자격은 기존 '대학'에 입학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이들에게는 이른바 '팔란티어 학위(Palantir Degree)'가 수여되며 성과가 우수한 경우 정규직 채용 면접 기회도 주어진다.
팔란티어 측은 “미국 대학들의 불투명한 입시 기준은 실력주의와 탁월함을 밀어냈다”며 “주관적이고 피상적인 기준 때문에 자격 있는 학생들이 교육 기회를 잃고 있다. 이번 펠로우십은 그런 대학 입시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술기업 CEO 200명 "컴퓨터과학·AI 교육, 고교 졸업 필수과목으로" 촉구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미국의 공교육 시스템도 변화하고 있다. 지난 5월 200여 명의 미국 주요 기업 CEO들이 주정부 지도자들에게 AI와 컴퓨터 과학 수업을 고교 졸업 필수 요건으로 의무화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에 서명했다고 악시오스가 보도했다.
현재 앨라배마, 아칸소, 노스캐롤라이나, 로드아일랜드 등 12개 주에서는 고교생들이 졸업하기 위해 컴퓨터 과학 학점을 취득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에어비앤비, 링크드인, 세일즈포스,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우버, 줌 등 주요 기술 기업 CEO들이 참여한 이번 서한은 K-12 공교육에서 컴퓨터 과학에 대한 체계적 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 변화를 반영한다. CEO들은 "이는 수 세대 동안 지속된 기술과 소득 격차를 줄이고, 미국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 주정부들은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웨스트버지니아는 관련 법안을 이미 통과시켰고,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 교육을 권장하는 비영리단체 Code.org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5개 주가 컴퓨터 과학 교육 도입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0년 18개 주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교육계에서는 AI가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 능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기술 업계는 지속적인 AI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이런 도구를 안전하고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AI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활용해 창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이런 흐름에 발맞춰 지난 4월 청소년기부터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도록 육성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아울러 K-12 학생들에게 AI 교육을 확대하는 민관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백악관 AI 교육 태스크포스도 설립했다.
이는 AI 시대 미래 세대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창조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은 교육뿐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변화다.
美 아메리칸대학교, AI 연구소 설립…"모든 학생 AI 능통해야"
미국의 주요 대학들도 속속 AI 과정을 신설하는 등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
미국 아메리칸대학교 경영대학원은 학교 전체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하기 위한 '응용 인공지능연구소'를 설립한다고 2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일부 대학과 고등학교가 여전히 챗GPT 등 생성형 AI 도구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가운데 아메리칸대학교는 오히려 AI 교육을 전면 도입하는 길을 택한 것.
새 연구소에는 현재 대학 전체에서 15명의 교수진이 참여하고 있으며, 추가 채용도 계획 중이다. 지난달에는 AI 스타트업 퍼플렉시티와 파트너십을 맺어 경영대학원 모든 학생에게 AI 도구 무료 이용권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아메리칸대학교 코고드 경영대학원의 데이비드 마치크 학장은 "모든 학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AI 응용 프로그램에 능숙해야 한다"며 연구소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텍사스 A&M 대학교는 인공지능(AI)과 비즈니스를 융합한 새로운 부전공 과정을 신설한다. 해당 과정은 2025년 가을학기부터 매이스 비즈니스스쿨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전공과 관계없이 3학년 이상 학부생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이번 부전공은 실무 중심의 AI·머신러닝 교육을 통해 차세대 비즈니스 리더에게 필요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커리큘럼은 생성 AI, 비즈니스 스토리텔링, 머신러닝, 멀티모달 AI 에이전트, 딥러닝 응용 등 총 5개의 특화된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AI 전문 교수진이 직접 강의를 맡는다.
네이트 샤프 학장은 “AI를 중심으로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책임 있는 AI 활용을 통해 혁신을 이끌 수 있는 리더 양성에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더밀크의 시각: 의대 쏠림 K 교육계... 대학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AI 시대의 도래는 대학의 존재 이유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대학은 지식이나 기술만 배우는 공간이 아니라, ‘공부하는 법’을 배우고, 사회로 나가기 위한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훈련장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은 여전히 이 목적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채용 기준에서 학위보다 실무 역량, 문제 해결 능력, 창의적 사고를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무엇을 배웠는가’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 것.
미국 대학 현장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조지아주의 한 인문계 학과 교수는 “AI의 등장은 교육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버렸다. 이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또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커리큘럼을 어떻게 짜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한국의 교육 현실은 어떤가. 여전히 주말에도 학생들로 붐비는 서울 대치동은 사교육 열기의 상징이다. 한 학원 교사는 “요즘 수험생들에게는 의대 진학 아니면 해외 유학이 가장 확실한 길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서울 주요 대학의 공대와 자연과학 계열에서 빠져나간 수재들의 행선지는 대부분 의대였다. ‘명문대 졸업 = 의사’라는 등식이 굳어지며, 대학은 더 이상 미래의 꿈과 혁신을 설계하는 공간이 아닌, ‘의전 준비소’로 전락하고 있다.
이는 대학이 디지털 전환, 기후 변화, 고령화 등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금의 대학은 산업과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기보다, 단지 안정된 직업을 위한 통로로만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제 대학 교육의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AI, 로봇공학, 바이오헬스, 에너지 전환 등 신산업 분야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이들 분야에서는 기술 역량은 물론, 윤리적 판단, 정책 이해, 데이터 해석 등 다각도의 사고력이 요구된다.
기업들은 더 이상 단순한 ‘전공자’를 원하지 않는다. 이질적인 문제를 연결해 해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 해결자’를 찾는다.
무엇보다 ‘성적’ 중심이 아닌 ‘역량’ 중심의 평가 체계가 절실하다. 고교–대학–사회로 이어지는 교육 생태계는 이제 입시 중심 선발에서 ‘성장 기반 선발’로 전환돼야 한다.
AI 시대의 대학 교육 혁신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