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적 평론에 좌초된 KPOP. 눈을 가늘게 뜨게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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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권 · Hyerim Seo 2022.12.09 16:36 PDT
인종차별적 평론에 좌초된 KPOP. 눈을 가늘게 뜨게 한다니...
지난 11월 20일, 뮤지컬 케이팝 오프닝 축하무대에서 루나(무대 가운데) 등 배우들이 연기를 마치고 인사를 하고 있다 (출처 : Gettyimages)

[심층보도] 좌초된 뮤지컬 'KPOP'의 브로드웨이 도전
기획사에서 연습생들이 가수로 데뷔하는 과정과 애환, 좌절 그려
뉴욕타임즈 평론가의 인종차별적 리뷰 기사 논란
티켓 판매 급감에 개막 17일만에 막내려
제작진 배우들 "인종차별적 기사" 반발.. 토론회도 개최

“눈을 가늘게 뜨게 하는 조명(squint-inducing lighting)이었다" 
제시 그린 뉴욕타임즈 수석 평론가

글로벌 뮤지컬의 메카 ‘브로드웨이'에서 지난 11월 27일 막을 올린 뮤지컬 ‘케이팝(KPOP).

소극장 중심의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지난 2017년 공연한 후 성공리에 브로드웨이에 본격 입성한 케이팝은 애초 2023년 4월까지 공연이 예정 돼 있었다.

하지만 개막 후 부진한 티켓 판매 등의 영향으로 오는 11일 개막 17일만에 서둘러 막을 내리게 됐다. 이 과정에서 뉴욕타임즈 유명 평론가가 백인 중심의 인종차별적 평론으로 읽힐 수 있는 평가를 내려 파문이 일었다. 제작자와 출연진들은 “뉴욕타임즈 차원에서 사과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제작팀은 11일 막을 내린 후 브로드웨이 내 인종차별적 시각에 대한 토론을 하기로 했다. 

케이팝은 2022년들어 BTS, 블랙핑크 등이 미국과 글로벌 시장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나 뮤지컬의 중심 ‘브로드웨이'에서 좌초된 상황이 됐다.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  

뮤지컬 '케이팝'의 한장면 (출처 : KPOP twitter)

케이팝 뮤지컬의 브로드웨이 도전 

뮤지컬 '케이팝(KPOP)'은 스타가 되기 위해 기획사에서 연습생들이 훈련을 거쳐 가수로 데뷔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그리고 아이돌 스타가 되기 위해 쏟은 노력과 열정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2022년 뉴욕 브로드웨이에 올려진 신작 중 유일한 ‘창작 뮤지컬(원작 없이 뮤지컬 무대를 위해 창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브로드웨이의 서클인더스퀘어 시어터에서 지난 10월 13일부터 약 44회의 프리뷰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후 11월 27일부터 본 공연을 시작했다.

뮤지컬 ‘케이팝'이 도전이 현지에서도 큰 관심을 모았던 것은 현재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흥행에 어려움을 겪은 후 ‘오페라의 유령’ ‘해밀턴' ‘라이언킹' ‘위키드' ‘알라딘' ‘북 오브 몰몬' 등 대중에 이미 알려진 베스트셀링 작품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뮤지컬 붐을 되돌리는데 어려움을 겪는 브로드웨이 전체가 '아시안'과 미국에서도 주목을 받는 장르인 '케이팝'을 주제로 내세운 작품이어서 관심을 나타낸 것. 데드라인 등의 언론에서는 이 뮤지컬이 "역사적이다(history making)"고 평가하기도 했다.

‘케이팝' 제작진도 지난 2017년 9월 소극장 중심의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호평을 받은 후 브로드웨이 공연 규모로 ‘업스케일' 하고 뮤지컬 넘버와 출연진을 보강해 뮤지컬의 본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출연진도 톱 걸그룹 f(x) 출신인 루나와 미쓰에이 출신 민(이민영), 또 다른 걸그룹 스피카 출신인 김보형, 보이그룹 유키스 출신이자 미국에서도 솔로 앨범을 낸 경험이 있는 케빈 우 등 과거 K팝 아이돌 육성시스템을 실제로 겪어낸 가수들을 캐스팅, 현실감을 높였다. K드라마, K팝 등에 이은 ‘K뮤지컬'의 본토 상륙의 의미도 있었다.  

뮤지컬 케이팝 공연이 펼쳐진 브로드웨이 '서클인더스퀘어' 극장 (출처 : 더밀크)
뮤지컬 케이팝 공연이 펼쳐진 브로드웨이 '서클인더스퀘어' 극장 (출처 : 더밀크)

논란의 뉴욕타임즈 비평

뮤지컬 케이팝은 데뷔 첫주 평균 22만4000 달러(약 2억9000만 원)의 수익을 기록, 순항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다음주가 되자 상황이 변했다. 수익이 반토막 난 것. 평균 관객 수도 4400명 대에서 3000 명대로 떨어졌다. 수익도 12만6493달러에 그쳐 운영중인 브로드웨이 공연 중 최하위를 기록했고, 평균 티켓 가격은 32.06달러로 업계 평균 128.34달러 대비 낮은 금액으로 판매됐다.  

이 과정에서 뉴욕타임즈의 수석 연극 평론가 제시 그린(Jesse Green)의 기사가 27일 게재됐다. 그는 '뮤지컬 케이팝에서 한국 팝과 브로드웨이가 너무 귀엽게 만났다(In KPOP, Korean Pop and Broadway Meet (Too) Cute'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줄거리의 미흡한 전개와 함께 노래 가사가 극중 인물의 상황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K팝의 열렬한 팬이나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 뮤지컬을 즐기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직격타를 날렸다.

그는 기사에서 ‘지나치게 귀여운’, ‘눈을 가늘게 뜨게 하는 조명’, ‘진부한 K팝 퍼포먼스 흉내 ‘ 등의 표현으로 작품을 평가를 했다. 

2017년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성공적인 반응을 얻은 후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뮤지컬이지만 그린은 “오프 브로드웨이 당시 훌륭했던 KPOP과는 비교도 안되는 불완전한 결과물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뮤지컬 케이팝  케이팝 제작자와 출연 배우들은 그린의 평론이 ‘인종차별적' 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평론은 객관적 잣대로 엄격하게 해야하는 것이 맞지만 이번 기사는 ‘백인 우월주의'를 암시하는 인종차별적 리뷰였다는 것.  

프로듀서 팀 포브스(Tim Forbes)와 조이 판스(Joey Parnes)는 뉴욕타임스 발행인(아서 그레그 설즈버거)과 평론 부문 에디터(니콜 헤링턴)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리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공식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즈의 '케이팝' 리뷰 기사.

눈을 가늘게 뜨게 하는 조명이라니.. 

'케이팝' 제작자와 배우들은 특히 ‘눈을 가늘게 뜨게 만든다'는 표현은 가는 눈을 가진 동양인들을 비하하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발언이라 지적했다. 뮤지컬 케이팝의 조명이 강렬한 군무가 특징힌 케이팝 콘서트 조명을 반영했지만 이 것이 ‘눈을 가늘게 뜨게 만든다'는 표현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는 것. 

또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즐기기 힘든 공연”이라는 주장도 “브로드웨이 쇼가 영어를 사용하는 백인 청중을 위해 만들어지는 경우에만 유효한가?” 되물었다. "공격적인 흉내(aggressive mimicry)"라고 표현한 퍼포먼스 스타일에 대해서는 “잘못 선택된 무지하고 무감각한 발언”이라 전하며 출연진 중 4명이 실제 K팝 아이돌 출신이라 반박했다.

그린은 케이팝을 ‘악기 연주자가 세명뿐인 전자음 위주의 공연’이라고 묘사했는데, 맥스 버논(Max Vernon) 뮤지컬 케이팝 공동 작곡자는 더밀크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만약 ‘락(Rock)’이라는 이름의 뮤지컬이 있었다면 아무도 ‘기타 소리가 너무 크다’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K팝은 신디사이저 중심의 일렉트로닉 음악이다. 그리고 이것이 K팝을 환상적으로 만드는 핵심 요소다”고 말했다. 문화적, 음악적 차이를 포용하지 못한 차별적이고 편견으로 가득찬 리뷰라는 것이다.  

조연출(Associate Director)을 맡은 김선재 디렉터도 더밀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뉴욕타임즈 비평 기사에서 안무가가 13살짜리 어린 연습생을 혹독하게 혼내는 장면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는데 이는 실제 케이팝 아이돌의 경험에서 나온 대사들이다. 한국의 교육 환경, 정서를 무시한 채 철저히 서구의 시각에서 비판의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고 반박했다. 

음악 장르로서 케이팝을 즐기지 않는 백인 남성의 시각이 있었으며 기존 브로드웨이 문법을 따르는 뮤지컬이 훨씬 우월하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것이다. 

극 중 보이그룹 F8의 멤버 ‘재익’으로 출연한 아브라함 림(Abraham Lim)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동영상에서 “뉴욕타임즈 평론은 아시아인이 창작한 예술을 비평하면서 동양인을 무시하는 ‘무례한’ 단어를 사용했다. 가는 눈으로 놀림을 받아온 아시아계 미국인이 아니라면 (그 같은 말을) 듣고 싶지 않다”고 울분을 토했다. 

대니 역을 맡은 존 이(John Yi) 씨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그린은 공연을 비판할 자격은 있지만 인종차별을 할 자격은 없다. 평론에서 ‘눈을 가늘게 뜨게하는 조명’과 같은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비열한 형태의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또 “뉴욕타임즈에서 이 같은 인종차별적 표현을 찾은 편집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그린은 출연진, 연출진, AAPI 커뮤니티 모두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즈는 그린의 리뷰가 “공평했다”며 그의 발언이 인종차별적이었다는 논란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뮤지컬 케이팝의 막은 내리지만 .. 

뮤지컬 케이팝은 11일 막을 내리게 됐다. 뉴욕타임즈의 평론이 직접적 영향을 줬다고는 볼 수 없는 것도 사실. 지난 11월 아일랜드 배우 가브레일 번(Gabriel Byrne)의 뮤지컬 ‘유령과 걷기(Walking With Ghosts)’ 도 흥행 부진으로 중단된 바 있다. 

그러나 ‘스테디셀러' 뮤지컬이 아닌 초연되는 창작 뮤지컬은 ‘입소문'이 흥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특히 뉴욕타임즈 평론이 큰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평론이 나간 직후부터 관객이 급감된 것은 영향이 없진 않았다고 보여진다.

평론가가 신작에 대해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혹평’은 할 수 있으나 그것이 인종차별적 시각이 바탕에 있었다면 관객에게 무대를 통해 제대로된 평가는 기회조차 받지 못한 계기가 된 것 아닌가란 지적이다. 

뮤지컬 ‘케이팝' 제작자와 배우들이 11일 마지막 공연 직후 AAPI(Asian American and Pacific Islander, 아시안 아메리칸) 문제를 논의하는 패널 토론을 개최할 예정인 것도 이 같은 인식 때문이다. 이날 공연 좌석 200석은 아시안 아메리칸 청소년들에게 기부하고, 쇼가 끝난 후 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토니상을 수상한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 극작가 헨리 황, 뮤지컬 KPOP의 작곡가인 헬렌 박 등이 참가한다. 

공연을 내리면서도 ‘토론회'를 개최한 이유는 이 뮤지컬이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을 깨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헬렌 박 작곡가는 뮤지컬 개막전 인터뷰에서 “아시안은 세계적으로 높은 인구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주류 미디어에서는 동양인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단순화돼 있다. 팬데믹으로 생긴 아시안 혐오 현상도 이런 인식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케이팝은 2022년 현재를 사는 젊고 다양한 아시안 캐릭터를 다루려고 노력했다"고 밝힌 바 있다. 

뮤지컬 제작 의도 자체가 ‘케이팝의 부흥'이 아닌 미국 내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깨기 위함도 있기 때문에 뉴욕타임즈 평론에 반발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제기하며 토론을 통해 확산하는 것이 맞다는 인식이다. 

지난 대선 당시 미 민주당 후보로 나왔으며 뉴욕 시장에도 출마한 바 있는 앤드류 양도 뮤지컬 케이팝을 본 후 트위터에 케이팝브로드웨이를 구하자(#saveKPOPBroadway)는 해시테그와 함께 “오늘 케이팝을 봤다. 놀라웠으며 흥겹고 희망을 줬다. 표를 사서 공연을 봐라"고 말했다. 

한편, 뮤지컬 케이팝은 소니 마스터웍스 브로드웨이(Sony Masterworks Broadway)를 통해 내년 2월 앨범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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