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격변 시대, 집단사고는 실패한다 : [새책] 불길한 예감
‘머니볼’, ‘빅 숏’, ‘플래시 보이스’의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신작 ‘프리모니션(불길한 예감)’
바이러스에 맞서는 미국의 영웅들 이야기
2003년이었다.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에 사는 중학교 2학년생 로라 글래스는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컴퓨터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녹색 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빨간색 점도 있었다. 녹색 점은 빨간 점을 만나면 빨간색으로 변했다.
로라는 빨간 점이 녹색 점을 감염시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 모델을 이용해 전염병이 어떻게 퍼지는지 연구할 수 있느냐고. 로라의 아버지는 로버트 J. 글래스(Robert J. Glass)라는 과학자. 복잡한 시스템이 작동하거나 실패하는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전문가다.
글래스 부녀는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로라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학교 학생들의 사회적 네트워크 모델을 만들었다. 로라가 만든 모델에 따르면 학생들은 교실에서나 스쿨버스에서나 너무 가깝게 붙어있기 때문에 전염병을 퍼뜨리는 거의 완벽한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학생들의 네트워크를 토대로 전염병이 퍼지는 방식을 조사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전염병이 도는 인구 1만 명인 도시의 학교를 닫으면 500명이 병에 걸렸다. 반면 학교를 닫지 않았을 땐 인구의 절반인 5000명이 병에 걸리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토대로 아버지 글래스 박사는 학교를 닫는 것과 같은 거리 두기가 백신이나 약이 없을 때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전세계인 누구나 알게 된 ‘사회적 거리 두기’의 개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미국에서 5월 초에 발간된 마이클 루이스의 새 책 ‘Premonition(불길한 예감)’의 첫 부분에 나오는 내용이다. 루이스는 ‘머니 볼’과 ‘빅 숏’, ‘플래시 보이스’와 같은 베스트셀러를 양산해 내는 작가. 세상의 거대한 편견이나 불의에 맞서는 사람들의 얘기가 그의 단골 이야기 꺼리다.
‘머니 볼’에서는 데이터 야구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메이저리그 만년 꼴찌 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연승 가도를 달리는 팀으로 바꾼 빌리 빈 단장 얘기를 다뤘다. ‘빅 숏’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부동산 시장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모두와 반대로 투자해 결국은 큰 돈을 번 투자자들의 이야기다. 두 책 모두 영화로 만들어져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겪기 전부터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경고를 해온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결국 세간의 편견과 타성을 이기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점일 것이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의 관료주의와 전반적인 미국 헬스케어 시스템의 낙후함,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의 무능함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책에 대해 “싸움에서 지는 슈퍼히어로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