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국에 수십조 투자하는데 왜 비자는 차별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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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우 2024.03.28 05:41 PDT
한국, 미국에 수십조 투자하는데 왜 비자는 차별받나?
(출처 :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권순우 )

미국, 한국 기업에 "공장 지으라" 해놓고 인력 충원은 나몰라라
동맹국 칠레 1400명, 호주 1만 500명, 싱가포르 5400명 취업 비자.. 한국은 0명
5수 고배 한국인 전용 취업비자 'E-4' 발의 ... 올해는 통과될까?
"기업, 정부, 민간 비자동맹 위해 조직적으로 한 목소리 내야"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취업(H-1B) 쿼터가 너무 부족하다. 비자를 취득하는 일이 메가밀리언 복권 당첨만큼 어려운 실정이다.
이영중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이사장

세계한인무역협회(이하 월드옥타) 이영중 이사장은 지난 23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한미경제포럼 위원회 출범식에서 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비자(E-4) 신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이사장은 이날 오전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 인근에 건설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공장을 둘러봤다면서 "3000 에이커의 부지에 역대 최대 규모의 공장이 세워지는 것을 보고 감격했다. 미국 동남부의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우리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미 경제 동맹에도 가장 시급한 사안인 취업비자(H-1B)와 E-4(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비자) 비자 문제가 여전히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유학생의 경우 전체 유학생의 5%만이 H-1B 추첨에 선발되고 있는데, 중국, 인도, 필리핀과 같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월등히 낮은 수치"라며 정부, 기업, 커뮤니티가 힘을 모아 비자 문제 해결에 힘을 쏟아야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형권 부위원장이 포럼 발족 취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출처 : 더밀크 )

미 진출 한국기업 '비자 장벽' 골머리

실제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비자 장벽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기술을 갖춘 엔지니어를 미국에 보내고는 있지만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는 기간은 불과 2~3개월에 불과하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유지보수가 퀄리티 유지에 가장 중요한 요인인데, 현지에서 테크니션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에 진출한 다수의 기업들이 표면적으로 '수요' 감소로 인해 공기를 늦추고 있지만, 적절한 인력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은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불만에 대응하고 있다. "현지에서 미국인을 채용하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고 미국인을 더 많이 채용하려면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고 한국인의 특성이 있는데 이를 미국 정부에서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엔지니어나 관리직 외국인 직원을 채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비자는 H-1B다. 해당 비자는 연간 쿼터가 8만 5000개로 제한되어 있다.

지난 2023~2024 회계연도 기준으로 신청자는 78만 명. 수요는 많은데 쿼터는 한정되어 있어 치열한 추첨 경쟁이 이뤄진다. 업계에서는 올해 신청자가 1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 대안이 바로 E-4 비자다. 한미경제포럼위원회에 따르면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칠레는 1400명, 호주는 1만 500명, 싱가포르는 5400명의 '전용 취업비자 쿼터'를 할당받았다.

한국이 안보 측면에서 동맹을 강화하고, 경제 측면에서도 배터리, 반도체 칩(한국, 미국, 일본, 대만 등과 '칩 4' 구축) 동맹을 강화했지만, 미국에서 우리 기업이 안정적으로 안착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고용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비자 동맹'에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황선영 한미경제포럼 위원장에 따르면 미국 의회에서는 지난 2013년부터 '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비자' 신설 법안이 매 회기 비슷한 이름으로 발의됐지만, 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법안은 한국인에게 매년 취업비자 1만 5000개를 내주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H-1B 비자 신청 거절률. 2018년 트럼프 행정부 당시 최고치를 기록했다. (출처 : 미국이민협회(American Immigration Council) )

한국인 전용 취업비자 'E-4', 올해는 통과될까?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의 정치권도 움직이고 있다. '파트너 위드 코리아 액트(he Partner with Korea Act)'라는 이름의 법안이 지난해 4월 연방 상하원에서 공동 발의된 것. 하원에서는 한국계 영 김(공화, 캘리포니아), 상원에서는 마크웨인 멀린(공화, 오클라호마)이 각각 HR-28207, S-1301 법안을 내놨다.

법안은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코리아 코커스(Korea Caucus)'의 게리 코널리 공동 의장을 비롯해 존 오소프 상원의원 등이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지난해 11월 현재 25명의 의원들이 지지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의회의 관심이 점점 시들해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올해로 6수를 맞는 법안에 대한 의회 내 관심과 지지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발의조차 안 될까 걱정"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월드옥타와 같이 미국에 네트워크를 확보한 단체들이 앞장서서 E-4 비자 법안 신설에 힘을 보태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미 경제포럼 위원회는 E-4 비자 법안 신설을 위한 목적으로 월드옥타 주도로 이날 애틀랜타에서 출범했다.

박형권 부위원장은 "월드옥타는 미국 내 20개 네트워크를 보유하면서 끈끈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며 "E-4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미국의 유권자들에게 그 필요성을 홍보하고, 지역구 의원들에게 유권자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월드옥타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이를 지원할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앞서 뉴욕에서도 한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미주한인상공회의소총연합회와 뉴욕한인회, 뉴욕한인경제인협회 등은 전자청원 플랫폼을 통해 E-4비자 법안 신설을 촉구하는 서명 페이지를 개설했다.

미 정치권과 한국 정부 차원에서도 지원에 나섰다. 맷 리브스 조지아주 하원의원(공화)은 포럼 출범식에서 "the partner with Korea act 법안을 지지한다"며 "조지아주 하원에서도 게스트워커 프로그램(HB 1432) 법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조지아주의 부족한 일자리를 채우고 한미간 노동력과 의료, 비즈니스 분야 협력을 위한 좋은 해결 방안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서상표 애틀랜타총영사도 "월드옥타가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해 경제 포럼을 출범했다는 생각 자체가 놀랍고 감사하다"며 "이제 한미 경제 교역을 통한 동맹은 시즌 2를 맞았다. 성공적인 시즌 2를 위해서는 비자 문제가 신속하게 해결되어야 한다. 총영사관도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맷 리브스 조지아주 하원의원이 E-4 비자 신설에 대해 지지의사를 밝히고 있다. (출처 : 더밀크 )

더밀크의 시각: "기업, 정부, 민간 조직적으로 한 목소리 내야"

미국의 취업비자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기업, 그리고 민간단체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이유는 '컨센서스'와 '전략의 부재'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직적인 대응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한국 외교당국을 비롯한 정부와 기업의 대관 조직 등은 지금도 미 정부나 정치권 인사를 만나면서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조직적인 가이드라인이나 하나의 창구를 통해서 논리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통과 당시 수억 달러 투자를 단행하기로 해놓고도 법안의 혜택을 받지 못한 현대차그룹의 사례를 통해서도 이를 경험한 바 있다. 현재로선 "자국인 전문 인력을 채용하라"는 미국의 논리를 이길 수 있는 대응 전략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미주 한인사회 차원의 노력도 쉽지 않다. 지역구 의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는 있지만, 그들의 당락을 좌우할 만큼 한인사회의 '보팅 파워'가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주정부 등에서 인센티브를 제공받으면서 미국 커뮤니티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나의 사안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전략은 제각각인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특정 현안 등에 대한 대외접촉은 계속 이어나가면서도 이런 정보를 민관이 공유하고, 서로 지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황선영 위원장도 "합법적인 의회 로비를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다"며 "민간단체가 자발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의 서포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오는 11월 미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도 변수다. 미 이민국에 따르면 전문직 취업비자 거절률은 트럼프 행정부 당시 24%에 이를 정도로 치솟았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의 2~4%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만약 트럼프 2기가 현실화할 경우, 우리 기업들의 대미투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이 받은 만큼 돌려주는 '기브 앤 테이크'에 관심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해외투자 유치에 관심이 많은 트럼프 정부를 향한 전략적인 '비자 동맹' 정책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한미경제포럼 위원회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출처 : 더밀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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