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조직은 다오(DAO)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DAO란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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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익 2022.04.10 06:56 PDT
회사・조직은 다오(DAO)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DAO란 무엇?
1602년 등장한 최초의 주식회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이미지 (출처 : Gettyimages)

블록체인 기술 기반으로 작동하는 자율 조직의 시대
탈중앙화는 기존 조직 문제 해결하려는 시도...투명성 높아
빠른 속도·효율성 보여 주기도...“한계 있지만, 계속 발전할 것”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기회가 여기 있습니다. 모든 기부금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시민을 돕는 데 사용됩니다"

지난 2022년 2월 26일. 암호화폐 업계 록스타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은 자신의 트위터에 짧은 글을 남겼다. 우크라나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하늘색, 노란색 이미지가 포함된 트위터 계정과 링크를 공유한 것이다.

‘우크라이나DAO(UkraineDAO)’의 존재는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360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그의 영향력에 힘입어 ‘좋아요(Likes)’, ‘재공유(Retweets)’ 숫자는 빠르게 올라갔다. 우크라니아DAO 홈페이지에 방문해 기부를 마쳤다는 인증 트윗도 줄을 이었다.

우크라이나DAO가 3월 2일 밝힌 바에 따르면 단 일주일 만에 쏟아져 들어온 자금 규모는 675만달러(약 82억원)에 달했다. 우크라이나 국기를 NFT(대체불가토큰)로 만들어 경매 방식으로 판매하고 기부금을 받았는데, 전 세계에서 3300여 명이 참여한 것이다. 우크라이나DAO는 NFT 판매 종료 후에도 암호화폐 ‘이더리움(Ethereum)’을 직접 기부하는 방식의 캠페인을 진행했고, 한 달여 만에 총 800만달러(약 98억원)를 모았다.

도대체 우크라이나DAO가 뭐길래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돈을 보낸걸까? 시가총액 2위 암호화폐 이더리움의 설립자인 비탈릭 부테린이 우크라이나DAO를 소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크라인DAO를 소개한 비탈릭 부테린의 트윗 (출처 : 비탈릭 부테린 트위터 계정 ‘@VitalikButerin’)

DAO의 정의...블록체인과 프로토콜이 핵심

우크라이나DAO는 영국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 ‘알로나 셰브첸코(Alona Shevchenko)’, 러시아 여성주의 펑크 그룹 푸시 라이엇의 멤버인 ‘나디야 톨로코니코바(Nadya Tolokonnikova)’ 등이 만든 탈중앙화자율조직(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이하 다오)다. 알로나는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등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활동을 하다 우크라이나DAO를 설립했다. 평소 다른 다오에서 활동을 해오던 친구들끼리 기금 마련을 위한 별도의 다오를 만들면 좋겠다고 뜻을 모은 것이다.

다오를 풀어서 설명하면 ‘블록체인 기술 기반으로 작동하는 자율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특성인 ‘탈중앙화(Decentralized)’가 기본 전제이며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처음 도입된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을 적용해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특정 조건에 따라 스스로 작동하게끔 만들 수도 있다. 명칭에 ‘자율(Autonomous)’이 붙은 이유다.

좀 더 범위를 좁히면 ‘조직 운영 규칙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프로그래밍돼 있는 조직’으로 규정할 수 있다. 소수가 규칙을 정하고 나머지 다수는 일방적으로 따르는 기존의 조직과 달리 권한과 영향력을 투표권을 가진 구성원 모두가 나눠 가진다. 한 명의 사람, 한 개의 개체(entity)가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기 때문에 탈중앙화됐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다오와 일반 조직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다.

다오의 개념을 처음 고안한 비탈릭 부테린은 2014년에 작성한 글에서 다오를 ‘블록체인 위에서 코드(code, 컴퓨터 언어) 기반 프로토콜(protocol, 규약)에 따라 상호 작용하는 조직’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다오를 설명하며 블록체인과 프로토콜을 강조한 것이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진정한 탈중앙화가 가능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프로토콜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에 자율적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전통적 형태의 회사와 다오를 비교한 표 (출처 : Aragon)

탈중앙화의 의미와 중요성

블록체인 업계에서 탈중앙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탈중앙화가 기존 조직이 가진 여러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다오에서는 특정 개인이 조직의 자금이나 자원을 마음대로 유용한다거나 홀로 규약을 고쳐서 특정인에게 유리하도록 바꾸기 어렵다. 권력이나 권한이 한 곳에 쏠림으로써 발생하는 부정, 부패, 검열, 비효율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조직의 목적 달성을 위해 규약 자체를 바꿔야 할 중대한 상황이 생긴다면 해당 다오 토큰(특정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동작하는 암호화폐)을 보유한 구성원들이 투표를 거쳐 수정할 수 있으며 모든 의사 결정 과정은 블록체인에 기록되고,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소수의 위계와 권력에 의해 조직이 좌지우지될 우려가 적고, 보다 투명한 관리가 가능해진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꼭 블록체인이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다. 주식회사나 협동조합 등 다른 조직 시스템으로도 민주적인 의사결정, 투명한 조직 관리가 가능하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탈중앙화’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개념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구성원 모두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면 오히려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VC) ‘안드레센 호로위츠(a16z)’의 파트너인 크리스 딕슨(Chris Dixon)은 이에 대해 “탈중앙화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며 “탈중앙화가 중요한 이유는 정부 검열에 저항하거나 자유지상주의적 이념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완벽한 이상향을 좇는 게 아니라 중앙 집중형 조직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중앙 집중형 조직(좌)과 탈중앙화 조직(우)의 차이점. 중앙 집중형 조직은 규칙이 일방적으로 정해지는 구조(하향식)를 가지는 반면 탈중앙화 조직은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규칙이 정해지는 구조(상향식)를 가진다. (출처 : fliphodl.com)

우크라이나DAO, 무엇이 달랐나?

다시 우크라이나DAO로 돌아와 보자. 결론부터 얘기하면 전 세계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한 줄의 트위터, 간단한 홈페이지만 보고도 돈을 보낼 수 있었던 건 블록체인 기술 덕분이었다. 이들이 판매한 우크라이나 국기 NFT 자체가 이더리움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들어진 토큰이었다. 기부자들에게 기념으로 지급한 ‘$러브($Love)’ 토큰도 이더리움 블록체인 위에서 작동하는 ‘ERC-20(표준 코드)’ 토큰이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송금 기록이 모두 남기 때문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보내는 게 가능했다. 우크라이나DAO는 ‘파티비드(PartyBid)’라는 NFT 공동구매 플랫폼을 사용했는데, 이 플랫폼에서 우크라이나DAO 프로젝트에 총 2258이더리움(약 790만달러)이 모였다는 걸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각 지갑 소유자들이 얼마씩 기부했는지도 나온다.

홈페이지 역시 마찬가지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에서 일어나는 활동 및 정보를 탐색할 수 있는 ‘이더스캔(Etherscan)’이 연동돼 있어 기부자들의 송금 시각 및 송금 금액, 지갑 주소까지 모두 투명하게 공개돼 있다. 기부자들은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Discord)’에서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고, 주요 공지사항은 트위터에도 공개됐다. 우크라이나DAO 측은 이미 비영리 단체 ‘컴백얼라이브재단(Come Back Alive Foundation)’, 우크라이나 정부 등에 대부분의 모금액을 전달한 상태다. 현재 우크라이나DAO의 암호화폐 지갑에 남은 돈은 115이더리움(약 40만달러) 수준이다.

다른 전통적인 모금 단체와 우크라이나DAO의 가장 큰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기금 모금을 위한 법인 설립, 각종 인허가 절차, 운영자에게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는 중앙 집중화된 플랫폼 없이 단 며칠 만에 다오가 탄생했고, 짧은 기간 동안 거액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모금액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투명하게 공개됐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인을 도우려면 빠른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다오와 블록체인의 힘을 활용했다는 게 알로나의 설명이다.

NFT 공동구매 플랫폼 ‘파티비드’ 우크라이나DAO 화면 (출처 : PartyBid)

비탈릭 부테린의 믿음…다오 시대 열릴 것

물론 다오가 완벽한 건 아니다. 일반 조직과 마찬가지로 다오 내에서도 사기나 범죄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으며 해킹의 위험도 존재한다. 실제 피해 사례도 있다. 알로나 셰브첸코에 따르면 비탈릭 부테린은 우크라이나DAO를 소개하기 전 그녀에게 직접 연락해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다오의 가능성을 믿는 그조차 신중에 신중을 기한 것이다.

중요한 건 다오가 ‘중앙 집중형 조직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라는 점이다. 2016년 등장한 ‘더다오(The DAO)’를 최초의 다오로 보면 다오의 역사는 6년에 불과하다. 비트코인이 탄생한 200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14년이다. 전문가들이 “향후 다오는 계속 발전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우크라이나DAO 사례에서 보듯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도 계속 등장하는 추세다.

비탈릭 부테린은 지난 2월 미국 덴버에서 열린 ETHDenver 컨퍼런스에서 다오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기대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블록체인 기반 기관·조직(institution)은 과거의 모습과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틀(same box)’은 같은데 기능만 나아지는 게 아닙니다. 자동차와 말(horse)을 예로 들어볼까요? 지금 우리는 자동차를 이동수단으로 사용하지만, 자동차와 말은 완전히 다릅니다.”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최초의 주식회사)의 등장 이래로 거의 바뀌지 않았던 조직의 형태가 크게 바뀌는 시기. ‘대전환의 시대’가 지금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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