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CPI에 세 개의 인플레이션: "연준의 통제 벗어났다"
전쟁 물가 빠지자 ‘AI 물가’가 왔다…美 인플레이션의 세대교체
9월 금리인상 확률 55%→34%…월가가 안도한 ‘전쟁 물가’의 반전
수요는 이미 둔화: 3.4% 인플레이션이 통화정책의 문제가 아닌 이유
하나의 CPI에 세 개의 인플레이션…지금 물가를 움직이는 진짜 힘
GPU, 반도체에서 서버·전력설비·소프트웨어까지 오르는 ‘AI 물가’
📌 더밀크의 AI 핵심 브리핑
전쟁발 인플레이션은 빠르게 식었고 연준이 통제 가능한 순환적 물가(주거·서비스·수요)도 함께 꺾였다. 그 빈자리를 소프트웨어 21%·전자부품 28% 급등으로 대표되는 'AI 인플레이션'이 채우고 있으며, 이는 금리로 제어되지 않는 공급·설비투자발 물가다.
전쟁 물가 빠지자 ‘AI 물가’가 왔다…美 인플레이션의 세대교체
전쟁 물가가 빠져나간 자리를 AI 물가가 채운다.
7월 인플레이션 데이터가 공개됐다. 소비 시장의 최종 물가를 보여주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기업들의 도매물가인 생산자물가지수(PPI). 그리고 이 두 개의 데이터는 인플레이션의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방향이 정반대였던 두 개의 기록을 보자.
하나는 상추였다. 최근 미 동부에서 시클로스포라 감염 확산으로 수요가 무너지면서 상추 가격이 사상 최대폭으로 떨어졌다. 이 뿐 아니라 다진 소고기 가격도 1.6%나 내려 2020년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 식료품 물가가 3월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반면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액세서리는 전년 대비 21.2%나 폭등했다. 해당 통계가 집계된 이래 가장 높은 상승세다. 이로 인해 컴퓨터와 주변기기, 스마트홈 기기 가격도 4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두 품목은 같은 경제권 안에 있지만 전혀 다른 힘의 지배를 받았다. 상추 가격을 끌어내린 것은 위생사고였지만 식료품 가격의 하락은 소비 수요의 둔화때문이었다. 반면 소프트웨어와 컴퓨터 가격을 끌어올린 것은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이었다.
세계적인 메모리 반도체 품귀 현상이 만들어낸 AI 인플레이션이다.
9월 금리인상 확률 55%→34%…월가가 안도한 ‘전쟁 물가’의 반전
미 노동부는 7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대비 3.4% 올라 6월의 3.5%에서 소폭 둔화됐음을 발표했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전월 대비 0.2%, 전년 대비 2.5% 올라 시장의 예상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연간 기준으로는 2021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하루 뒤 발표된 생산자물가도 방향이 같았다. 전월 대비 기준으로는 0.0%로 움직임이 없었고 전년 대비 상승률도 4.7%로 6월의 5.5%에서 크게 둔화됐다. 에너지는 한 달 새 3.1%나 떨어졌고 운송 및 창고 비용도 1.8% 하락해 2023년 4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이 데이터들이 말하는 것은 동일했다. 전쟁 인플레이션의 급격한 축소. 지난 4월 이란 전쟁 이후, 가속화됐던 전쟁 인플레이션이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미 증시는 상승 출발했고 특히 금리 민감자산으로 재평가중인 반도체 섹터가 급등했다. 반도체 지수는 이틀 만에 약 5% 수준의 상승세를 기록했고 한국 코스피 역시 하루만에 3.5%가 뛰었다.
투자자들이 안도한 이유는 간단했다. 연준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옅어졌기 때문. 실제 연방기금 금리선물시장에서 9월 금리인상 가능성은 34%로 쪼그라들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이 비율은 55%에 달했다.
월가의 분석도 대체로 일치했다. 스테이트스트리트는 9월 이전에 물가 데이터 발표가 한 차례 더 남아있지만 이번 수치만으로 9월 인상은 사실상 배제됐다고 평가했다. 크리스 자카렐리 노스라이트 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모든 항목이 예상에 부합했다는 것 자체가 서프라이즈"라며 부진한 고용지표가 겹치면서 연준에 시간이 생겼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이번에 식은 물가는 하필 연준이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물가였다는 점이다.
수요는 이미 둔화: 3.4% 인플레이션이 통화정책의 문제가 아닌 이유
실제 이번 보고서에서 안정된 항목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금리에 반응하는 소비 수요 항목이라는 점이다.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항목은 주거비로 전월 대비 0.1% 오르는 데 그쳤다. 호텔 및 모텔 숙박료가 3.3%나 떨어져 1년여 만에 가장 큰 낙폭을 보인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임대료를 제외한 서비스 물가는 0.2% 상승에 머물렀다.
문제는 같은 날 발표된 다른 지표에 있었다.
물가와 임금 자료를 결합한 실질 평균 시간당 임금은 전년 대비 0.2% 감소했다. 물가는 오르는데 개인들의 수익 성장은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다. 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후 계속된 부진이다.
이는 단순히 물가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개인 소득의 둔화에 소비 지출이 실제로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다. 문제는 수요와 임대료, 서비스, 임금과 같은 항목이 통화정책이 실제로 작동하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금리인상은 결국 수요를 눌러 가격을 낮추는 수단이다. 그런데 지금 눌러야 할 수요는 이미 차갑게 식고 있는 것이다. 금리인상으로 해결될 선을 넘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왜 아직 물가는 연준의 목표치인 2%를 한참 넘어 3.4%인 것일까?
하나의 CPI에 세 개의 인플레이션…지금 물가를 움직이는 진짜 힘
이번 인플레이션 데이터가 이전과 다른 점은 최소 세 가지의 다른 인플레이션이 목격되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가 바로 순환적 인플레이션으로 임대료나 서비스, 그리고 소비 수요에서 발생하고 금리로 제어되는 항목이다. 이번 지표에서 사실상 진정 국면에 들어선 인플레이션이다.
두 번째는 지정학적 인플레이션이다. 이른바 전쟁 물가다.
2월 말 시작된 이란 전쟁은 다섯 달째 교착 상태다. 시장은 평화 내러티브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에 대한 지렛대를 가지고 있고 여전히 해협의 물동량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 인플레이션에는 불확실성과 통계적 함정이 동시에 존재한다. 7월 휘발유 가격은 전월 대비 2.9% 하락했지만 전년 대비로는 여전히 25%나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7월 미국과 이란의 협정이 무너지면서 휘발유 가격은 다시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섰다.
더 큰 문제는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이란이 가져갔다는 점이다. 미국이 아무리 협박과 회유를 해도 이란이 여전히 강경한 이유는 해협 통제권이라는 레버리지를 사실상 이란이 독점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가 올해 실적 전망을 전격 상향한 것은 호르무즈 해협 중심의 물류 병목이 장기화될 것이란 강력한 신호다.
이 두 번째 인플레이션은 연준의 통제 밖에 있다. 이 물가는 연준이 금리를 올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아무리 금리가 올라 금융환경이 타이트해져도 전쟁이 격화돼 공급이 막히면 유가는 오르고 에너지 물가도 오른다.
그런데 이번 데이터부터 추세로 확인된 세 번째 인플레이션이 부상했다. 바로 AI 인플레이션이다.
GPU, 반도체에서 서버·전력설비·소프트웨어까지 오르는 ‘AI 물가’
AI 인플레이션.
빅테크의 막대한 자본지출에서 시작된 AI 설비투자로 인한 공급발 인플레이션이다. 자본이 흐르는 곳에 수요가 있고 그 수요는 가격 상승으로 귀결된다.
7월 CPI에서 소프트웨어 및 액세서리는 전년 대비 21%로 급등했다. 6월 17%에서 다시 오르며 추세로 확인된 것이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품목은 CPI에서 비중이 매우 작은 품목이다. 21%라는 숫자 하나로 'AI 인플레이션'을 선언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생산자물가에서 또 하나의 단서가 나왔다. 전체 물가가 0%로 멈춘 그 데이터 안에서 전자부품과 액세서리 가격이 전년 대비 28%나 오른 것. 컴퓨터와 장비 가격은 9.8% 상승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균열은 바로 여기에 있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및 부품은 전통적인 경기 순환적 품목이다. 소비 수요가 식으면 가격이 떨어지는 항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수요를 억지로 끌어올리는 요인이 있다. 바로 연간 1조 달러에 육박하는 AI 인프라 붐이다.
문제는 속도다. 관련 품목들의 물가 상승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이유는 공급 병목에 있다. 자본이 흐르고 수요가 커지는 만큼 공급이 따라주면 가격은 쉽게 오르지 못한다. 하지만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AI 인플레이션의 중심에는 메모리 반도체가 있다.
리치몬드 연은이 노동통계국(BLS)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반도체와 전자부품 생산자물가는 4월 전년 대비 26.0%가 올라 1984년 이후 가장 높게 형성됐다. 컴퓨터와 주변기기 제조가격은 2월 7.8%로 해당 시계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데이터센터 전력설비와 직결되는 스위치기어와 배전반 가격 상승률은 두 자릿수로 올라섰고 발전 및 송전 엔지니어링 서비스 가격은 5월 7.3%,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출판 가격은 8.5%로 각각 장기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AI 인프라와 관련된 가격 상승이 단순히 GPU나 메모리 반도체 한 품목에 갇혀 있지 않다는 뜻이다. 반도체에서 서버로, 서버에서 전력설비로, 전력설비에서 엔지니어링 서비스로 압력이 확장되고 있다.
더밀크의 시각: 2026년 인플레이션은 금리로 못 잡는 이유
2022년 인플레이션은 구조가 명확했다. 풍부한 유동성에 억눌린 소비 지출이 만들어내는 물가 상승. 고용은 강했고 수요가 이를 뒷받침했으며 물가는 단순히 이 메커니즘을 반영해 올랐다.
연준의 할 일은 단순했다. 원인이 수요 과열이었기 때문에 수요를 누르는 처방인 금리인상이 맞았던 것이다. 하지만 2026년의 상황은 이전과 완전히 다르다.
노동시장은 '저고용, 저해고'의 둔화에 빠졌고 실질 임금은 내려가고 있으며 수요도 차갑게 식고 있다. 반면 이란 전쟁이라는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있어 에너지 물가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있다.
여기에 AI 인플레이션이 등장했다.
물론 AI 인플레이션이 아직 '구조적으로 미국 경제 전반의 인플레이션을 부르고 있다'고 평가하기에는 이른 상태다. 구조적이라는 표현이 성립되려면 물가 충격이 AI 관련 기기와 서비스 가격을 넘어 경제 전반의 임금과 서비스 가격으로 2차 확산 전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인플레이션의 무서운 점은 지속성이다. 전쟁으로 오른 유가는 전쟁이 끝나면 내려간다. 하지만 기업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AI 인프라 투자는 다르다. 빅테크는 투자 자체가 미래 생존 여부를 가르는 군비경쟁으로 인식하고 있다. 경쟁 구조 자체가 수요를 반복해서 생성한다.
리사 쿡 연준 이사는 5월 기준으로 미 기업들이 발표한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이 1조 5000억 달러를 넘었고, 그 중 실제 집행된 것은 아직 일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미 반도체와 관련 첨단 장비 가격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아직 지출된 금액보다 앞으로 집행될 지출 파이프라인이 더 많다는 의미다.
문제는 막대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리적 제약과 병목이 가격을 더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8월 발표된 JP모건의 분석에 따르면 HBM 메모리 반도체의 과잉 공급률은 지난 5월과 비교해 비교적 개선됐지만 여전히 2028년 과잉공급률이 -22%로 2027년의 -14%와 비교해 더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물리적 제약은 전력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2025년 서버만으로 미국 상업부문 전력소비의 약 7%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하며 장기적으로 23%까지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다. 냉각 수요는 여기에 더해지는 플러스 알파다.
반도체 생산능력은 증설할 수 있다. 하지만 발전소와 송전망, 변전소는 그렇지 않다. 이 비대칭이 향후 AI 인플레이션 논쟁을 가를 핵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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