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AI 서밋 이후... 정의선의 시간이 왔다
[샌프란시스코 AI 서밋]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왜 참석했나?
-중국 차 기업, AI 모빌리티 기업으로 진화... 소비자는 차체보다 지능과 경험을 사기 시작
-현대차는 세계 자동차 2위에 가까워졌지만, AI 혁명기에는 그 순위가 오히려 함정이 될 수 있어.
-정의선 회장이 SF AI 서밋에서 선언한 피지컬 AI 전환... 조직 변화가 관건
지난 7월 15일 중국 항저우에서 상하이로 가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경제지 실리콘밸리 특파원을 거쳐 인텔리전스 미디어 더밀크를 창업한 이후 미국과 한국을 오가고 있어서 이번에 약 15년만에 중국 땅을 밟은 것이었다.
고속도로에는 듣던대로 중국산 전기차가 대부분이었다. 미국에서도 CES 등에서 볼 수 있었던 BYD나 샤오미, 샤오펑, 지리, 리 오토, 니오 뿐 아니라 이름도 처음듣는 차가 눈에 들어왔다. 디자인이 날렵하고 외장 디스플레이나 조명 등이 새로우면 100% 중국 전기차였다. 반면 밋밋한 디자인은 그동안 알던 독일, 일본 차였다. 벤츠나 BMW, 아우디도 마찬가지였다. 도로 자체가 전시장이었다.
중국 상하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8년 만에 처음으로 개막식에 선 WAIC2026 취재를 마치자마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다. 반대 방향의 충격을 받았다. 미국 도로와 자동차가 낡아 보였다. 크고 무거운 픽업트럭, 오래된 내연기관 세단, 대시보드에 화면 하나만 크게 붙여놓은 차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도로가 한 세대 뒤처져 보였다. 미국에서 미래의 속도를 보여주는 자동차 회사는 사실상 테슬라 하나뿐이다.
샤오펑은 자기를 자동차 회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중국 도로에서 본 중국 전기차 회사들은 이미 ‘자동차’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있었다.
이에 더해 샤오펑은 공식적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하는 서류에서 자사를 '글로벌 AI 모빌리티 테크놀로지 기업'이라고 소개했다.
이 문서에서 6월 한 달에 4만 126대를 인도했다는 사실을 공시했다. 현대차가 단 4일 만에 파는 물량이다. 하지만 샤오펑은 지난 3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VLA 2.0을 정식 배포한 뒤 시승에서 구매 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이 한 달 만에 44.7% 줄었다고 밝혔다.
시장이 이 회사를 판매량으로 평가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차량에 탑재된 지능이 얼마나 빠르게 개선되는지, 그 지능이 구매와 이용 경험을 얼마나 바꾸는지를 함께 본다. 소비자는 이제 차가 아니라 지능을 산다. 자동차라는 단어는 점차 과거형이 되고 있다.
독일은 밀리는 중이다. 폭스바겐그룹은 1985년 이후 지켜온 중국 1위를 2024년 BYD에 내줬고 지난해에는 지리에도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 폭스바겐의 올해 상반기 글로벌 판매는 6.3% 줄었다. 특히 중국 판매가 30% 안팎 감소하면서 수익성과 생산능력, 고용을 동시에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이사회에서는 65만 명이 넘는 전 세계 인력을 두고 최대 10만 명 규모의 감축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독일이 특히 어려운 이유는 실적이 아니라 구조 때문이다. 자동차가 국가 제조업과 수출,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자동차를 버리는 선택지 자체가 정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더 상징적이다. 백 년 넘은 미국 자동차 기업 포드는 유럽 사업과 스페인 공장을 살리기 위해 중국 지리와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공동 개발 차량과 지리의 전기 SUV를 포드 공장에서 함께 생산한다. 과거 중국이 미국 자동차 기술을 배웠다면 이제는 미국 기업이 중국 기업의 전기차 기술과 제품 개발 속도를 필요로 하는 장면이 나타난 것이다.
일본은 사정이 다르다. 도요타는 판매와 영업이익 모두 여전히 세계 1위다. 하이브리드라는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됐고 제조 역량도 건재하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잘하고 있는 조직은 바꿀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일본의 강점이 일본의 족쇄다.
중국 도로에서 본 것은 전기차의 보급률이 아니었다. 자동차 산업의 경쟁 기준이 이미 엔진과 조립 품질에서 소프트웨어, 데이터, 자율주행, 로봇, 에너지 인프라로 이동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기준으로 보면 현대차의 경쟁자는 더 이상 도요타나 폭스바겐만이 아니다. 테슬라, 샤오펑, BYD, 엔비디아, 웨이모, 그리고 피지컬 AI 플랫폼 기업 전체가 경쟁자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대한민국 산업 발전 방향과 경쟁 구도의 현재이자 미래이기도 하다.
현대차 그리고 정의선 회장
7월 24일 샌프란시스코 미션베이의 '더 미드웨이'.
이재명 대통령이 AI 서밋에서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을 발표했다. 이날 서밋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샘 알트만 오픈AI CEO,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 혹 탄 브로드컴 CEO 등 글로벌 AI 산업을 이끌고 있는 실리콘밸리 CEO들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등 국내 대표 대기업 회장들과 이 한 자리에 모인 유례 없는 자리였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영상으로 참석했다.
실질적으로 ‘반도체’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정의선 회장은 조용히 움직였다. 눈을 사로잡았던 장면은 정 회장이 이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자세가 거의 바뀌지 않았고 몸을 앞으로 두고 고개를 들어 단상을 응시했다. 바로 옆에 앉은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이따금 다른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보인 것과 대조적이었다.
두 사람의 자세 차이가 두 회사의 처지 차이였다. 알트만에게 이 자리는 여러 일정 중 하나다. 사내외에 워낙 복잡한 이슈가 많아 머릿속도 복잡했을 것이다. 정 회장의 현대차는 얼핏 풀스택 AI 또는 반도체, AI 데이터센터와 무관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내한 때 일명 ‘깐부회동’의 멤버이기도 했다.
미국의 관세 압박이 거세졌을 때 한국 정부가 가장 무겁게 방어해야 했던 산업이 자동차였다. 새만금에 로봇과 AI 데이터센터, 수소에너지를 묶은 혁신 거점을 조성하는 9조 원 규모 투자에서도 정부와의 협력이 핵심이었다. 국가가 외교와 통상, 산업정책과 인프라를 총동원해 ‘자동차’ 산업을 지키고 다음 단계로 ‘피지컬AI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었다.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정 회장은 이번 서밋에서 현대차그룹을 '피지컬 AI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개별 기기의 지능화에서 출발해 전 공정을 AI로 연결하는 AI 팩토리를 거쳐 도시 단위 통합 지능화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 공장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해 연 3만 대 규모 생산 체계를 만들겠다는 계획까지 내놨다. 엔비디아와 로봇 레퍼런스 플랫폼을 공동 개발하고, 웨이모와 자율주행 파운드리 협력을 발표했다.
옳은 방향이다. 그런데 옳다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폭스바겐도 도요타도 이 방향을 모르지 않는다. 다들 하고 싶어 한다. 못 할 뿐이다. 엔진과 변속기, 딜러망과 부품사, 수십 년 쌓은 성공 경험이 전부 전환 비용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현대차에도 레거시는 있다. 다만 독일과 일본에 비하면 젊다. 한때 값싼 차를 만드는 후발주자로 무시당했고, 품질과 디자인과 공급망을 끌어올려 세계 3위까지 올라왔다. 현대차의 역사는 질서를 지킨 역사가 아니라 강자를 추격해 넘어선 역사다.
2위가 함정이다
현대차의 올해 상반기 폭스바겐그룹과의 판매 격차는 53만 대까지 좁혀졌다. 1년 만에 22만 대가 줄었다. 영업이익에서는 이미 앞질렀다. 세계 2위가 손에 닿는 거리에 있다.
하지만 AI 혁명기에 있는 현대차에게 자동차 세계 2위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동차라는 링 안에서 현대차는 규모로 도요타를, 가격으로 중국을, 브랜드로 독일을, 소프트웨어로 테슬라를 동시에 이겨야 한다. 그런 길은 없다. 스스로를 자동차 회사로 규정하는 순간 현대차는 여러 분야에서 잘하는 회사로 남을 수는 있어도 어느 분야에서도 1위가 되기 어렵다.
더 위험한 것은 그 다음이다. 현대차가 세계 2위에 오르는 순간 가장 위험한 질문이 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왜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판매량과 영업이익이 증명되는 순간, 조직은 기존 성공 공식에 더 강하게 매달린다. AI 전환기에 가장 위험한 것은 실패한 조직이 아니라, 아직 성공하고 있는 조직이다.
반대로 링을 옮기면 그림이 달라진다. 피지컬 AI라는 새 링에서 지금 명확한 경쟁력을 가진 회사는 테슬라 정도다. 중국 전기차 회사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현대차에는 이들이 갖지 못한 것들이 있다. 대량생산 능력과 글로벌 공급망, 제철과 부품과 건설과 물류 계열사, 그리고 보스턴다이내믹스라는 세계적 로봇 자산이다. 이 전환에 성공하면 '테슬라와 현대'의 양강 구도가 만들어진다. 1위가 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정의선 회장은 선대 회장이 해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현대차 내부가 여전히 '우리는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라고 생각한다면 회장의 선언은 연설문 안에서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바뀌어야 할 것은 슬로건이 아니라 현대차의 내부 시스템이다. 자동차 판매량 중심으로 짜인 성과 지표를 바뀌어야 하고 예산 배분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하고, 승진의 경로가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소프트웨어와 AI 인재가 자동차 조직의 지원 부서가 아니라 제품과 사업을 결정하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실패를 피하는 조직에서 빠르게 실험하고 학습하는 조직으로 옮겨가야 한다.
피지컬 AI 기업이 된다는 것은 자동차에 AI 기능을 붙인다는 뜻이 아니다. 차량, 로봇, 공장, 물류, 에너지 시스템이 데이터를 공유하고, AI가 그 물리적 시스템을 예측·제어·최적화하는 기업이 된다는 뜻이다. 현대차가 팔아야 할 것은 자동차 한 대가 아니라 이동과 생산, 물류와 에너지의 지능화된 운영체계다.
피지컬 AI 기업 전환은 로봇 회사를 인수하고 자율주행 제휴를 발표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차량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 주기, 데이터의 수집과 활용 방식, 연구개발 예산의 배분, 외부 개발자와 스타트업이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 구조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이 현대차 공장에 들어가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공장에서 축적된 제조 데이터가 차량과 물류, 건설, 에너지 시스템의 지능으로 순환해야 한다. 그래야 자동차·로봇·공장이 각각의 사업부가 아니라 하나의 피지컬 AI 시스템이 된다.
현대차에겐 그동안 하지 않았던, 시도했으나 제대로 성공해보지 못한, 일이다. 회장 한 사람의 결단이나 몇몇 미래사업 조직, 유능한 몇명의 외부 인사 영입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현대차와 기아, 모비스와 계열사에서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 모두의 몫이다. 자신들이 평생 만들던 ‘자동차’를 머릿속 부터 버리라는 시대의 명령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국가는 현대차의 전환을 뒷받침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통상 협상에서 자동차를 방어하고, 부지와 전력, AI 인프라를 마련하며, 대통령이 직접 글로벌 공급망 협력의 장을 열었다.
국가의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다. 자율주행 규제와 전력망, 데이터 활용, 인재 유입 환경은 더 과감하게 바뀌어야 한다.
정부가 통상과 외교, 산업 인프라를 통해 자동차 산업을 지키려 총력을 기울이는 만큼, 이제 현대차도 그 지원을 미래 산업의 성과로 돌려줘야 한다.
한국의 젊은 인재들이 가고 싶어 하는 회사가 '자동차 회사 현대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AI와 로봇과 에너지와 도시를 설계하는 '현대AI'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전략도 실행할 사람이 없다.
늦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봤다
미국 포드는 백 년 넘게 자동차를 만든 회사다. 그 회사가 지금 중국 회사의 플랫폼을 빌려 스페인 공장을 지키고 있다. 독일 자동차 기업은 여전히 ‘저먼 엔진’의 자존심을 잃고 싶지 않아 한다. 일본은 아직 20세기 눈부신 성공신화의 공식을 21세기로 업그레이드 하지 못했다.
지금이 현대차에 골든타임이다. 이 순간을 놓치면 현대차가 잃는 것은 순위표의 한두 계단이 아니라 혁신의 리더십 자체다. 판매량은 되찾을 수 있지만 리더십은 되찾기 어렵다. 인재가 먼저 떠나기 때문이다.
정의선 회장은 옳은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나 방향은 회장이 정해도 속도는 조직이 만든다.
국가가 현대차를 지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만큼 현대차도 국가의 미래 산업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현대차에 필요한 것은 자동차 세계 2위를 향한 추격이 아니다. 자동차 회사라는 성공의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앞으로 10년 뒤 시장이 물을 질문은 “현대차가 몇 대를 팔았는가”가 아닐 것이다. 현대차는 결국 무엇이 되었는가? 그 질문에 답할 골든타임이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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