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도 못했던 제품 만들겠다”…존 터너스의 애플, 다시 제품 회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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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권 2026.09.05 13:17 PDT
“상상도 못했던 제품 만들겠다”…존 터너스의 애플, 다시 제품 회사로
(출처 : 이미지 / 더밀크 김현지)

[디코드 애플] ① 존 터너스 CEO 취임... 스티브 애플, 팀 애플에서 존 애플로
존 터너스, 취임 첫 메시지에서 AI 대신 ‘제품’과 ‘창조’ 강조
M1 전환 이끈 하드웨어 엔지니어…팀 쿡의 확장 경영에서 제품 중심 체제로
9월 9일 첫 무대…폴더블 아이폰·새 시리가 ‘터너스 애플’의 첫 시험대

우리는 이미 개발 중인 놀라운 제품뿐 아니라, 아직 상상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함께 꿈꾸고 만들어낼 제품에도 기대가 큽니다

지난 2026년 9월 1일, 애플의 새 최고경영자(CEO) 존 터너스는 취임 첫날 직원들에게 짧은 메모를 보냈다.

팀 쿡에 대한 감사와 다음 주로 예정된 대규모 제품 출시, 이미 개발 중인 제품과 앞으로 출시할 제품에 대한 기대였다.

짧은 메시지였지만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AI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델이나 컴퓨팅 인프라, 에이전트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제품(products)’, ‘꿈꾸다(dream up)’, ‘만들다(create)’라는 단어를 골랐다.

이는 단순한 취임 인사가 아니다. 터너스가 애플의 AI 경쟁을 어떤 방식으로 풀려 하는지 보여주는 첫 단서다.

터너스가 만들려는 애플은 AI 모델이나 이를 만드는 AI 데이터센터 회사가 아니다. AI를 소비자가 매일 만지고 쓰는 제품으로 바꾸는 회사다. 구글과 오픈AI가 AI의 두뇌를 만든다면 애플은 그 두뇌가 들어갈 몸을 만든다.

애플은 단순한 제품 회사가 아니다. 아이폰과 맥을 설계해 판매하는 사업 위에 앱스토어 수수료와 광고, 클라우드, 음악·영상 콘텐츠, 애플케어와 애플원 구독이 얹어진 디지털 시대 최고의 융합 기업이다.

팀 쿡 전 CEO는 불규칙한 하드웨어 매출을 예측 가능한 반복 매출로 바꿨고, 월가는 이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15년간 애플의 시가총액을 2970억 달러에서 4조 8000억 달러로 16배 끌어 올렸다.

하드웨어 엔지니어 출신인 터너스가 맡은 일은 그래서 생각보다 어렵다. 그는 새 제품을 만드는 동시에 광고와 구독, 앱스토어 수수료를 지켜야 한다. 애플을 다시 놀라운 제품 회사로 만들어야 하지만, 팀 쿡이 구축한 ‘돈 버는 기계’도 멈춰서는 안 된다.

첫날부터 “큰 제품이 온다”

다음 주에는 엄청난 출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행사가 될 것입니다
존 터너스 애플 새 CEO,

터너스가 첫 메시지에서 가장 먼저 꺼낸 사업 이야기는 오는 9월 9일 애플파크에서 열리는 신제품 행사였다.

이번 행사는 터너스가 CEO 자격으로 오르는 첫 무대다. 차세대 아이폰과 애플워치, 에어팟과 함께 애플 최초의 '폴더블 아이폰'이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 개선된 시리 AI도 관전 포인트다.

물론 이 제품들은 터너스가 팀 쿡 체제에서 개발됐다. 그럼에도 이 무대는 중요하다. 제품보다 존 터너스 자신을 처음으로 보여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터너스는 애플에서 25년간 일했지만 일반 소비자에게는 낯선 인물이다. 애플 임원들은 외부 콘퍼런스나 인터뷰에 나서지 않는다. 대부분 제품 발표 영상 안에서 정해진 메시지만 전달한다. 터너스 역시 그동안 맥과 아이패드의 성능을 소개하는 역할로 소비자 앞에 섰다.

이제는 다르다. 그는 단순히 새 아이폰의 기능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애플의 미래를 말해야 한다. 투자자와 직원, 고객에게 자신이 팀 쿡과 무엇이 다른지 보여줘야 한다.

애플의 팬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팀 쿡 시대에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애플다운 ‘놀라움과 즐거움(surprise and delight)’을 되찾아달라는 요구다.

더 나은 카메라와 조금 더 긴 배터리만이 아니다. 다시 애플 제품을 보고 놀라고 싶다는 것이다.

존 터너스 애플 CEO의 주요 성과. 그는 2017년 WWDC에 첫 등장 이후 주목 받다가 2020년 애플 실리콘 전환을 주도하며 주요 리더십 위치로 올라섰다. 칩부터 아이폰까지 하드웨어 개발을 주도하며 차기 CEO 후보로 거론됐다. (출처 : 더밀크)

터너스 시대의 애플, 첫 조각(Cabinet)은 어떻게 구성됐나?

터너스는 온화한 성격과 안정적인 의사결정 방식 때문에 ‘팀 쿡 주니어’로 불려왔다. 하지만 그를 쿡의 복제품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쿡의 핵심 역량은 운영이었다. 제품을 정해진 날짜에 수억 대 생산하고 전 세계 매장에 공급하며 재고와 원가를 통제했다. 아이폰을 중심으로 서비스와 액세서리를 묶어 반복 매출을 만드는 것도 쿡의 작품이었다.

터너스의 핵심 역량은 제품 통합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배터리, 센서, 디자인, 운영체제를 하나의 제품 경험으로 묶는 데 강하다.

애플 이사회가 하드웨어 엔지니어를 CEO로 선택한 것은 단순한 내부 승진이 아니다. 공급망과 자본 배분만으로는 AI 시대를 돌파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애플에 필요한 사람은 더 많은 아이폰을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운영자만이 아니라 AI 시대의 새로운 기기를 설계할 제품 책임자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터너스는 취임 전부터 자신의 조직을 만들었다. 지난 4월 자체 칩 개발을 이끌어온 조니 스루지가 최고하드웨어책임자(CHO)로 승진했다. 터너스가 이끌던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조직과 스루지의 하드웨어 기술 조직이 통합됐다. "실리콘을 소유하는 것이 제품을 소유하는 것"이라는 선언이다.

터너스는 자신이 관리하던 하드웨어 조직을 스루지에게 넘기고 회사 전체 제품 포트폴리오를 보는 자리로 이동했다.

또 지난 2022년 은퇴했던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사장 로라 레그로도 다시 불러들였다. 레그로는 터너스의 오랜 핵심 부하로, 앞으로 그의 자문역이자 여러 조직을 연결하는 대리인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외 조직도 교체했다. 아메리칸 항공에서 9년간 정부 관계를 총괄했던 공화당 인사 네이트 개튼을 정부 업무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소통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8월 31일에는 잡스가 1997년 데려온 필 실러가 앱스토어와 제품 이벤트 총괄에서 물러났다. 앱스토어는 10년 만에 에디 큐 서비스 총괄에게 돌아갔다.

에디 큐는 2015년까지 앱스토어를 운영했던 인물로 이번에 존 터너스 취임에 맞춰 10년 만에 현역으로 복귀했다. 에디 큐의 복귀는 단순 인사가 아니라 팀 쿡 시대에 분산됐던 권력이 잡스 세대 원로(잡스가 인터넷 서비스 리더로 발탁)에게 재집중되는 상징적 사건으로 풀이된다.

필 실러가 물러났지만 잡스가 1997년 함께 데려온 또 다른 인물인 큐는 오히려 권한이 확대된 것. 에디 큐가 앱스토어를 다시 맡는다는 것은 애플이 AI 시대에도 앱스토어 수익 구조를 지키겠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하지만 존 터너스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는 기존 인재의 대규모 유출이다.

애플이 오픈AI를 상대로 제기한 지식재산권 소송 자료에 따르면 오픈AI에서 일하는 전직 애플 직원은 400명이 넘는다. 조니 아이브가 공동 설립한 디자인 회사 아이오를 오픈AI가 인수한 뒤 애플의 디자인과 하드웨어 인력도 이동했다.

이는 단순한 보상 경쟁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다음 시대의 대표 제품을 만드는 곳은 애플이 아닐 수 있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터너스는 내부 엔지니어들에게 애플에서도 다시 세상을 바꾸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갓 취임한 CEO의 첫 번째 고객은 소비자가 아니라 내부 임직원이다.

애플 홈페이지에 나타난 애플의 새로운 경영층 (출처 : 애플)

잡스와 쿡의 두 시대를 모두 경험한 엔지니어

터너스는 2001년 애플에 입사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을 내놓던 해다. 동시에 팀 쿡이 중국을 중심으로 공급망 혁명을 진행하던 시기였다.

그는 제품 디자인팀의 기계 엔지니어로 출발해 애플 시네마 디스플레이 설계를 맡았다. 이후 맥과 아이패드, 에어팟, 아이폰 등 주요 제품 개발에 참여했고 2013년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사장, 2021년 수석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터너스의 강점은 외부에서 영입된 스타 CEO가 아니라는 데 있다. 애플이 제품을 고르고 개발하며 양산하는 방식 속에서 25년간 성장했다. 스티브 잡스의 제품 중심 문화와 팀 쿡의 운영 중심 문화를 모두 경험했다.

그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애플 실리콘 전환이다.

애플은 2020년 맥에서 인텔 프로세서를 걷어내고 자체 설계한 M1 칩을 탑재했다. 컴퓨터의 핵심 부품을 바꾸면서 기존 소프트웨어와의 호환성을 유지해야 하는 고난도 프로젝트였다. 실패했다면 맥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전력 소비를 줄이면서 성능은 크게 높아졌고, 애플은 칩과 운영체제, 하드웨어를 하나로 설계할 수 있게 됐다. 침체됐던 맥도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전환을 제품 측면에서 지휘한 사람이 터너스다. 그는 “인텔보다 강력한 칩을 만들었다”고만 설명하지 않았다. 배터리가 오래가고 발열이 적으며 얇고 빠른 맥이라는 사용자 경험으로 기술을 번역했다.

이는 터너스의 AI 전략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그는 AI 모델의 매개변수와 벤치마크 경쟁에 애플을 끌고 가지 않을 것이다. 시리가 사용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아이폰과 맥, 에어팟, 애플워치를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만드는 데 AI를 사용하려 할 것이다.

AI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 기술이 아니라 경험을 파는 것. 터너스는 이 지점에서 쿡보다 잡스에 가깝다.

우리는 기술을 출시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제품과 기능, 경험을 출시합니다. 고객이 그 밑에 어떤 기술이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어야 합니다
존 터너스 애플 새 CEO
차기 애플 CEO 존 터너스(왼쪽)와 팀 쿡이 지난 7월 27일 로스앤젤레스 아카데미영화박물관에서 열린 애플TV '테드 래소' 시즌4 시사회 레드카펫에 나란히 섰다. 짙은 남색 정장, 흰 셔츠, 그리고 드라마의 상징인 'Believe' 배지까지 똑같이 맞춘 두 사람의 옷차림은 승계의 연속성을 시각적으로 상징했다. 쿡에게는 CEO 자격으로 참석하는 마지막 애플TV 시사회였고, 터너스에게는 후계자 지명 후 첫 공식 등장이었다. (출처 : shutterstock)

존 터너스 애플 4대 관전 포인트 ① 새 제품이 아니라 새 판을 만들어 낼까?

애플의 실질적인 3대 CEO인 존 터너스 시대를 읽는 3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새로운 제품 하나를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애플 특유의 '놀라운 경험'을 회복하고 제품들이 움직일 새로운 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애플은 모바일 중심의 iOS와는 별도로 AI 시대 운영체제인 가칭 카리스마틱(Charismatic)을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마크 거먼의 보도에 따르면 이 운영체제는 다중 사용자 환경을 지원하며 시리를 중심에 둔다. 앱을 직접 여는 대신 위젯과 음성으로 작동하는 구조다.

이 운영체제가 적용될 후보로는 스마트 디스플레이와 로봇형 탁상 기기 등이 거론된다. 다만 카리스마틱과 각각 기기들은 공식 확인하지 않은 개발 로드맵이다. 일정이 바뀌거나 제품이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방향은 중요하다.

iOS는 한 사람의 아이폰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그러나 거실과 주방에서 사용하는 AI 홈 기기는 여러 가족을 인식해야 한다. 화면을 눌러 앱을 여는 방식보다 음성과 시선, 상황 인식이 중요하다. 데스크톱에서 모바일로 이동할 때 iOS가 새로운 판을 만들었다면 모바일에서 AI 홈 디바이스로 이동할 때는 다른 운영체제가 필요하다.

터너스가 만들어야 할 것은 또 하나의 아이폰 액세서리가 아니라 시리와 여러 기기가 움직일 새로운 컴퓨팅 환경이다.

터너스의 가장 시급한 제품 과제는 시리다.

새 시리는 이전 버전보다 개선됐지만 오픈AI의 챗GPT나 구글 제미나이, 앤트로픽의 클로드와 비교하면 뒤처져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복잡한 요청을 처리하는 속도와 정확도도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애플이 반드시 세계 최고의 범용 AI 모델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애플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은 25억 대가 넘는 활성 기기다. 아이폰과 맥, 애플워치, 에어팟은 사용자의 일정과 메시지, 사진, 건강 상태, 결제 정보, 앱 사용 기록과 연결돼 있다. 사용자가 허용한다면 AI가 실제 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 도구도 갖추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시리를 말을 잘하는 챗봇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시리를 애플 생태계 전체를 움직이는 인터페이스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서 애플의 다음 전쟁이 시작된다. 터너스가 이 전환에 성공하면 애플은 AI 모델 경쟁에 늦었어도 AI를 가장 많은 소비자에게 실제로 사용하게 하는 기업이 될 수 있다. 실패하면 사용자와 앱 사이의 새로운 관문을 오픈AI나 구글에 내주게 된다.

위 영상은 애플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지난 4월 15일 미국의 테크 전문 매체 톰스가이드(Tom's Guide)와 가진 특별 인터뷰다.

존 터너스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수석부사장(오른쪽)과 그렉 조스위악 마케팅 총괄 수석부사장이 애플의 지난 50년과 앞으로의 방향을 이야기했다. 터너스는 이 자리에서 "AI는 스프린트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며 챗봇 경쟁에는 뛰어들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가 든 예시는 에어팟의 실시간 번역이었다. "사용자가 AI인 줄도 모르는 사이 경험이 좋아지는 것"이 애플의 접근법이라는 것이다. 조스위악은 스마트 안경에 대해 "디지털과 물리 세계가 결합되는 것은 필연"이라고 답했다. 이 인터뷰가 공개되고 닷새 뒤 터너스는 팀 쿡의 뒤를 이을 차기 CEO로 공식 지명됐다.

존 터너스는 차기 CEO로 지명될지 모르고 인터뷰에서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이 영상은 존 터너스의 애플이 어떻게 될지 예상하는 귀중한 자료다. 이번 시리즈 기사를 쓰는데 빼대가 됐다.

② 맥을 ‘개인용 AI 컴퓨터’로 재정의할까?

터너스 시대에 다시 중요해질 제품은 맥이다.

맥이 애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이폰보다 훨씬 작다. 그러나 AI 시대의 전략적 가치는 커지고 있다. 대용량 메모리를 탑재한 맥 스튜디오와 맥 미니는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보내지 않고 기기 안에서 AI 모델을 실행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

애플 실리콘은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하나의 통합 메모리를 공유한다. 이는 구글과 오픈AI가 데이터센터에서 AI를 제공하는 방식과 다른 길이다.

기업과 개인이 민감한 데이터와 문서를 외부 클라우드로 보내지 않고 자체 AI 모델과 에이전트를 운영할 수 있다면 맥은 단순한 개인용 컴퓨터를 넘어 ‘책상 위의 AI 서버’가 될 수 있다. 매달 외부 AI 서비스에 비용을 내지 않고도 로컬에서 업무용 모델을 돌리는 시장이 열릴 수 있다.

최근 고성능 맥에 수요가 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로 메모리와 저장장치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애플도 일부 제품 가격을 올리고 고용량 모델 공급을 제한하고 있다. 과거 세계 최대 부품 구매자였던 애플이 이제 AI 하이퍼스케일러들과 메모리 생산 능력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이다.

터너스는 M1 전환을 이끈 ‘맥 전문가’다. 그가 맥을 AI 시대의 가장 중요한 개인용 컴퓨터로 다시 정의한다면, 아이폰에 집중된 애플의 성장 구조에도 새로운 축이 생길 수 있다.

애플이 최근 공개한 맥 미니.

③ 넥스트 아이폰을 내놓을 수 있을까?

터너스가 풀어야 할 더 큰 문제는 '넥스트 아이폰', 아니 '비욘드 아이폰'이다.

팀 쿡 시대에 애플워치와 에어팟이라는 성공적인 제품군이 만들어졌지만 아이폰을 대체할 새로운 컴퓨팅 플랫폼은 등장하지 않았다. 비전 프로는 기술적으로 뛰어났지만 높은 가격과 제한된 사용 사례 때문에 대중 제품이 되지 못했다.

AI는 이 정체를 깨뜨릴 기회다.

지금까지의 스마트폰은 사용자가 앱을 찾아 실행해야 하는 도구였다. AI 기기는 사용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먼저 행동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화면을 계속 보는 대신 음성과 시선, 몸짓으로 기기를 제어할 가능성도 커졌다.

메타는 스마트 글라스를 통해 AI와 카메라를 결합하고 있다. 오픈AI도 조니 아이브와 함께 새로운 AI 전용 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AI와 연결되는 이어버드와 스마트홈 기기, 로봇 시장도 빠르게 열리고 있다.

애플 역시 스마트 글라스와 센서를 탑재한 에어팟, 가정용 스마트 디스플레이와 로봇형 기기 등을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품들이 중요한 이유는 개별 매출 규모 때문만이 아니다. 아이폰과 맥, 워치, 에어팟, 홈 기기를 시리라는 하나의 AI 인터페이스로 묶을 수 있기 때문이다.

터너스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아이폰 액세서리가 아니다. AI가 사용자를 이해하고 실제 공간에서 행동하는 새로운 제품 체계다.

④ 중국과 결별하지 않고 ‘메이드 인 차이나'를 버릴 수 있을까?

터너스의 가장 어려운 과제는 중국과의 관계다.

애플의 중국 진출은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아웃소싱이 아니었다. 애플은 중국 협력업체에 생산 설비를 제공하고 엔지니어를 파견했으며 정밀 가공과 품질 관리 방법을 전수했다. 중국 공급망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첨단 제조 생태계를 함께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은 애플 제품을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곳이 됐다. 동시에 화웨이와 샤오미 등 중국 기업들이 애플의 제조 방법론을 학습하는 기반도 만들어졌다.

2025 회계연도 중화권 매출은 약 644억달러로 전체의 15.5%를 차지했다. 중국은 판매 시장인 동시에 대체하기 어려운 생산 기지다.

미·중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애플은 인도와 베트남으로 생산을 분산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을 단기간에 완전히 떠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첫 폴더블 아이폰과 스마트홈·로봇 같은 신규 카테고리가 어디에서 생산되는지는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기존 제품만 인도와 베트남으로 옮기고 차세대 제품을 계속 중국에서 생산한다면 애플의 기술적 의존은 오히려 깊어질 수 있다.

터너스의 과제는 중국과 결별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계속 사업하면서도 중국이 없어도 신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두 번째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애플의 지역별 매출 비중. 중화권 비중은 15.5% 수준이다. 전년 17.1%보다 1.6%포인트 낮아졌다. 애플은 아이폰만의 지역별 매출을 공개하지 않는다. 글로벌 아이폰 매출은 2,096억달러로 전체 매출의 50.4%애 달한다 (출처 : 더밀크, 애플)

더밀크의 시각 : 후발주자 '재정의' 전략, AI 시대에도 통할까?

애플은 최초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었다. MP3 플레이어는 아이팟보다 먼저 있었다. 스마트폰도, 태블릿도, 스마트워치도, 무선 이어폰, 가상현실(VR) 기기도 애플이 새로 발명한 것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새로운 폼팩터 '폴더블' 스마트폰도 애플은 뒤늦게 뛰어든다.

애플이 한 일은 정해져 있었다. 경쟁사가 시장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시행착오로 힘을 뺀 뒤에야 들어가서, 기술과 소프트웨어와 디자인을 하나의 경험으로 묶어 레퍼런스 제품을 완성했다. 늦게 들어가서 "지금까지 당신들이 본 제품은 가짜다"며 정답을 정의하는 회사. 그것이 애플이었다.

제품을 발명한게 아니라 시대에 맞게 '재정의'한 시도에 가깝다.

이 전략은 하드웨어에서 통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하드웨어는 먼저 나온 제품을 뜯어보고 배울 수 있는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소니의 워크맨과 크리에이티브의 MP3 플레이어를 관찰한 뒤 아이팟을 만들 시간이 있었다. 팜과 블랙베리를 지켜본 뒤 아이폰을 만들 시간이 있었다. 시장은 애플이 정답을 준비할 때까지 기다렸다.

AI는 다르다. AI는 사용될수록 강해지는 시장이다. 데이터가 쌓이고 개발자가 몰리고 사용자가 그 위에서 워크플로우를 만든다. 시장이 굳어지는 속도가 하드웨어와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 경쟁사가 사용자와 생태계를 먼저 장악하면, 뒤늦게 더 좋은 제품을 들고 나와도 이미 굳은 습관을 깨기 어렵다. 애플이 늘 활용해온 '재정의의 시간'이 AI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터너스는 이 전략의 성공을 25년간 반복해서 목격했다. 동시에 비전 프로에서 다른 사실도 배웠다. 기술적 완성도가 시장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플의 후발주자 공식이 이번에도 통한다면, 터너스는 2027~2028년 AI 시대의 '아이폰'을 무대에 올릴 수 있다. 그것은 스마트홈 로봇일 수도, AI 안경일 수도, 아직 이름이 붙지 않은 무엇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면, 애플은 4조 달러가 넘는 초거대 기술 기업이 성장 프리미엄을 잃는 첫 사례가 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2000년대 초반 모바일에서 걸어간 궤적을 애플이 AI에서 걷게 되는 시나리오다.

시계는 흐르고 있다.

9월 9일은 존 터너스 시대의 첫 제품 발표일일 뿐이다. 진짜 질문은 그가 어떤 새 아이폰을 공개하느냐가 아니다. 핵심 관전포인트는 25년 동안 애플의 하드웨어를 만들어온 제품맨이, 이제 회사 전체의 판을 다시 짤 수 있느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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