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라던 워시의 반전…월가가 긴장한 잭슨홀의 진짜 메시지
65개월째 끝나지 않은 인플레…잭슨홀서 드러난 워시의 속내는?
“왜 금리를 안 올려야 하나”…비둘기인 줄 알았던 워시의 반전
3.6%도 안 높다?…월가가 긴장한 워시의 ‘두 번째 메시지’
포워드가이던스의 종말: 워시가 깨려는 연준과 ‘거울의 방’
더밀크의 시각: 워시가 선언한 ‘성장에서 물가로’의 체제 전환
📌 더밀크의 AI 핵심 브리핑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잭슨홀에서 "기저 인플레이션이 목표를 향해 충분히 빠르게 내려간다는 확신"을 인상 유보의 조건으로 제시하며, 입증 책임을 '올리자는 쪽'에서 '올리지 말자는 쪽'으로 뒤집었다. 동시에 3.6% 금리가 제약적이지 않다고 진단하고 임금-물가 경로를 부인하면서, 연준이 지키는 대상이 '성장·자산가격'에서 '물가'로 이동했음을 선언했다.
65개월째 끝나지 않은 인플레…잭슨홀서 드러난 워시의 속내는?
나는 오늘 결정이 아니라 규율에 헌신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케빈 워시, 연준 의장
워시의 의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미국의 물가가 연준이 약속한 2%를 넘긴지 65개월이 됐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졸업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 사이 연준 의장이 바뀌었고, 금리는 세 번 내렸다가 다섯 번 연속 멈춰 섰다. 그리고 시장은 "이번엔 잡힌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8월 28일(현지시각) 아침, 와이오밍 잭슨홀의 연단에 선 케빈 워시 앞에는 두 종류의 청중이 있었다. 하나는 시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자신의 동료들인 연준 위원들이었다.
이 연설이 중요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케빈 워시의 진짜 의도를 알아야 했다는 것. 7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견 이후 시장에는 새 의장이 정말로 물가를 잡을 생각이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퍼졌다. 당연했다. 그는 금리인하를 요구했던 트럼프가 세운 인물이다.
그 의심은 실제 숫자로 나타났다. 30년 만기 미 국채금리는 8월 들어 5.31%까지 올라 2007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연준이 금리인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하지 않았지만 시장은 금리 인상을 요구했다. 결국 재무부가 직접 채권시장에 개입해 금리를 끌어내리려 했을 만큼 상황은 불편했다.
“왜 금리를 안 올려야 하나”…비둘기인 줄 알았던 워시의 반전
우리는 기저 인플레이션이 우리의 목표를 향해, 분명하게, 충분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다. 그것이 우리의 임무.케빈 워시, 연준 의장
워시 의장은 9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웠다. 다음 수를 미리 알려주지 않겠다는 그의 원칙을 다시 확인한 문장이었다.
'기저 인플레이션'.
유가나 식료품처럼 변동성이 큰 일회성 요인을 제거한 물가의 핵심 몸통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시장이 연준의 정책을 바라본 전제는 "물가가 다시 올라가야 연준이 인상한다"였다. 하지만 워시의 발언은 "물가가 충분히 빠르게 내려간다는 확신이 없으면 인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에 가깝다.
언뜻 보면 비슷한 주장처럼 보이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지금까지는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 증거를 대야했다. 하지만 워시의 말 대로라면 이제는 올리지 말자는 쪽이 증거를 대야 하는 상황이다. 동결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안전한 선택'이 아니라 "왜 동결을 해야 하는가"를 해명해야 하는 선택이 된 것이다.
월가의 충격은 컸다. 금리인하를 원하며 비둘기로 인식되던 워시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월가는 심지어 "워시가 스스로 퇴로를 좁혔다"는 말까지 나왔다. 인플레이션이 확실히 둔화되는 기조가 없다면 9월 결정에서 금리동결이 나올 경우 이 연설이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최근 인플레이션이 나쁘지 않았지만 워시는 이를 추세로 인정하지 않았다. 실제 그는 "물가의 밑바닥 흐름이 의미 있게 개선됐다는 신호로는 읽지 않는다."고 말했다.
근거는 평균이 아닌 분포에 있다. 연준이 기준으로 삼는 물가 바구니에는 199개 품목이 담겨 있다. 이 가운데 약 54%가 1년 전보다 3% 이상 올랐다. 팬데믹 이전 20년 동안 3% 오른 평균은 32%에 불과했다. 최근 6개월만 봐도 49%라는 점에서 인플레이션이 더 가속화되고 있다는 신호로 인식된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임금 인상에 대한 연준의 인식 변화다.
그는 그동안 연준의 인내를 정당화해온 임금 인상 상승률이 "오랫동안 미래 물가의 믿을 만한 선행지표가 아니었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까지 연준의 논리는 '고용시장의 둔화는 임금 상승세를 약화시키고 이것이 결국 물가를 내리는 촉매가 된다'는 경로였다.
워시가 그 뼈대를 치운 것이다.
3.6%도 안 높다?…월가가 긴장한 워시의 ‘두 번째 메시지’
시장에는 워시의 발언이 '게임의 규칙'을 바꾸겠다는 것과 다름 없었다.
실업률이 오르지 않아도 금리를 올릴 수 있고, 임금이 내려가도 승리를 선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워시가 꺼낸 두 번째 발언은 더 불편했다. 그는 현재 약 3.6% 수준의 정책금리가 경제를 조이고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용과 대출 시장에서 정책이 제약을 가하는 신호가 거의 보이지 않아 전반적인 금융여건을 '제약적'이라 부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현재의 기준금리보다 더 높은 금리를 경제가 감당할 수 있다'는 발언과 다름없다. 실제 그가 열거한 미국 경제의 상태는 이 진단을 뒷받침한다.
워시는 "미국 경제 전반의 성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하며 설비와 무형자산 투자가 약 9% 늘고 있고, S&P500 기업의 이익은 1년 전보다 20% 넘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한 실업률은 역사적으로 낮은 4.1%를 기록중이다. 고용시장의 이상 시그널에 대해서는 "노동 공급 자체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신규 고용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일축했다.
AI가 이끄는 경제 구조의 변화도 언급했다. 그는 AI를 경제와 통화정책 운용 모두를 바꿀 새로운 변수이자 잠재적으로 새로운 생산요소로 규정했다. 워시는 "미국 경제가 AI로 인해 역사적 전환점에 섰다"고 말하며 AI 관련 설비투자가 최근 민간 투자 증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표면적으로는 연준 의장이 성장을 낙관한 발언이지만 이는 사실상 긴축의 언어다. 미국 경제가 추가 금리인상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워시의 발언은 9월 연준 통화정책회의의 성격을 완전히 바꿨다. 지금까지 "금리를 올릴 것인가"에서 "무엇을 근거로 안 올릴 것인가"로 말이다. 이미 7월 FOMC에서 세 명의 위원들이 0.25% 포인트의 인상을 요구했다.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
포워드가이던스의 종말: 워시가 깨려는 연준과 ‘거울의 방’
시장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연준의 정책 금리를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2년물 국채금리는 0.1% 포인트 넘게 뛰며 4.3%를 넘어섰다. 금리인상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바라본 것이다. 실제 9월 금리인상에 대한 베팅은 전일 35.4%에서 59.7%로 급등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장기 금리였다. 그동안 가파르게 오르던 30년물 국채금리는 오히려 전혀 움직이지 않으며 단기 국채와의 스프레드가 좁혀졌다. 이 의미는 명확하다. 시장은 당장 금리의 경로는 위를 보면서도 그 긴축이 결국 장기적으로 성장과 물가를 억누를 것이라 본 것.
의외의 모습을 보인 것은 주식시장이다. 금리 인상 확률이 하루 만에 20%가 넘게 뛰었지만 다우는 사실상 보합세였고 S&P500은 0.2%, 나스닥은 0.52%의 약세만을 보였다.
이 온도차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시장은 워시의 발언을 둘로 쪼개 해석했다. 채권시장은 워시의 발언을 "예상보다 매파적이다"로 받은 반면 주식시장은 "연준이 자신감을 표할만큼 경제가 여전히 강하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점은 연준이 더 이상 '포워드가이던스'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워시는 금리에 대한 약속이 연준 자신의 손발을 묶는다는 철학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지목한 문제는 '거울의 방'이다. 연준이 다음 수를 예고하면 시장은 경제가 아닌 연준을 쳐다보고 자산가격은 연준의 전망이 반영된다. 그리고 연준은 다시 그 가격을 보고 경제를 판단한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순환이라는 것이다. 실제 워시는 7월 기자회견에서 시장이 심판이 아닌 공을 보고 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표현한 바 있다.
이에 시장의 의견은 엇갈린다. 연준이 심판이 아닌 시장에서 가장 큰 플레이어라는 것이다. 사실상 시장은 그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반영할 뿐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데이터도 이 의견을 뒷받침한다. 워시 취임 이후 미 국채 수익률이 가장 크게 움직인 경우는 모두 그가 마이크를 잡은 직후에 나왔다.
더밀크의 시각: 워시가 선언한 ‘성장에서 물가로’의 체제 전환
잭슨홀은 종종 연준의 정책전환을 예고하는 통로로 이용된다.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시달리던 시장에 2021년 잭슨홀은 11월 긴축의 개시를 알렸고 2024년 잭슨홀에서는 "정책을 조정할 때가 왔다"며 완화 사이클의 개시를 알렸다.
다만 이번 잭슨홀 미팅은 이례적이다. 워시는 정반대로 예고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가 잭슨홀이라는 통로를 쓰되, 그 통로의 용도를 '예고'에서 '규칙 선언'으로 바꾼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시장은 여전히 그것을 '예고'로 읽었다는 것이다.
잭슨홀이라는 통로를 닫는 것은 연준 의장의 의지가 아니라 시장 구조의 문제라는 뜻이다.
지난 수 십년간 시장이 학습한 가장 강력한 조건반사는 '연준풋'이었다. 시장이 무너지면 결국 연준이 금리를 내려 받쳐준다는 일종의 '보험'이었다. 경제가 완전히 침체에 빠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나쁜 경제 뉴스가 좋은 주식 뉴스'로 인식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연준의 정책축이 성장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기 저물가 시대가 유지되면서 연준의 문제는 물가가 아닌 성장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워시가 잭슨홀에서 실질적으로 선언한 것은 그 '보험'의 수익자가 성장에서 '물가'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연준이 지키는 것은 자산가격이 아닌 '물가'다.
과거에 강한 주식시장과 AI 설비투자 붐, 그리고 완전고용은 '성장'을 지켜야 하는 연준 입장에서는 안심할 이유였다. 하지만 워시의 선언은 좋은 뉴스가 좋은 뉴스인 시절은 끝났고, 좋은 뉴스가 너무 좋으면 나쁜 뉴스가 되는 구간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AI 강세장에도 이 변화는 중대한 체제의 전환점이다.
워시는 AI 설비투자를 성장에 긍정적인 힘으로 봤지만 반대로 이 힘은 긴축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금리가 오르면 AI 주식의 밸류에이션은 눌린다. 성장을 가속화하는 강세장의 연료가 곧 강세장의 브레이크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워시의 매파 전환은 과연 진심인가, 아니면 비둘기파적 전환을 위한 위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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