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애플의 11년, 세상을 요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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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주 2022.06.23 15:14 PDT
팀 애플의 11년, 세상을 요리하다
애플의 CEO 팀 쿡(왼쪽)과 아이칸 엔터프라이즈의 창업주 칼 아이칸(오른쪽) (출처 : Gettyimages, 그래픽: 김현지)

[신기주의 인사이트 스토리] 팀 쿡과 애플 3부작
팀 쿡, 스티브 잡스의 후계자 압박 벗어나며 11년간 애플을 글로벌 1위 기업으로 만들어
넥스트 빅씽 없다는 비판 아래 회사 성장에 주력
팀쿡의 철학은 무엇이었나?

[편집자주]

지난 5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지는 '2022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을 선정하고 애플의 팀쿡 최고경영자(CEO)를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았습니다.

타임지는 팀쿡의 선정 이유에 대해 "팀은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에서 현대의 어떤 CEO보다 더 넓은 범위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애플의 제품과 정책은 세계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팀 쿡의 일은 비즈니스 뿐 아니라 철학적 지혜도 요구한다. 팀 쿡은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애플을 지휘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CEO 중 한명이며 도적적 리더십, 기술적 상상력, 환경, 인도주의 모범으로 자리잡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더밀크는 3회에 걸쳐 팀쿡의 리더십과 애플의 미래를 조망하는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더밀크 독자 여러분들이 팀쿡과 애플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팀쿡, 어떻게 애플을 세계 1위 시가총액 기업으로 만들었나?

쿡에게 요리법을 알려준 건 칼이었다.

2013년 9월 30일 저녁이었다. 애플의 CEO 팀 쿡은 아이칸 엔터프라이즈의 창업주 칼 아이칸(Carl Icahn)과 마주 앉았다. 팀 쿡은 만 2년 차 초보 최고경영자였다. 칼 아이칸은 월가의 기업 사냥꾼으로 악명이 자자한 노련한 행동주의 투자자였다. 분명 사냥꾼과 사냥감의 대면이었다.

아이칸이 애플을 향해 처음으로 이빨을 드러낸 건 2013년 8월이었다. 아이칸은 쿡의 아이폰으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10억 달러 어치의 애플 주식을 매수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린 메일이었다. 아이칸이 쿡에게 요구한 건 자사주 매입이었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주가는 무조건 오른다. 주식 시장에 풀린 주식의 총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이칸 같은 큰 손은 앉은 자리에서 큰 돈을 벌게 된다.

당시 애플의 통장엔 1700억 달러의 현금이 쌓여 있었다. 미국 기업 전체 현금 보유고의 10%에 달했다. 애플은 현금 부자였다. 그런데 2013년 8월 17일 기준 애플의 주가는 507달러였다. 애플은 이후 몇 차례 주식 분할을 했다. 2022년 주가를 기준으로 당시 주가를 환산하면 대강 20달러 안팎이 된다.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퇴임하고 별세한 2012년 8월과 9월의 주가에서 거의 변동이 없었다. 사실 1997년부터 2012년까지 이어진 잡스의 눈부신 치세에도 애플 주가는 내내 지금 기준으론 10달러 안팎에 불과했다.

잡스는 아이칸 같은 월스트리트의 양복쟁이들을 혐오했다. 애플의 혁신이 열매 맺은 사과를 월가의 사냥꾼이 훔쳐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애플의 현금은 애플의 혁신을 위해 쓰여질 애플의 미래였다. 아이칸은 애플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잡스의 후임자가 자사주 매입을 거부할 것이라고 여겼다. 주가 상승을 미끼로 주주들을 현혹시켜서 팀 쿡을 흔들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였다. 행동주의 투자자의 전형적인 공격 패턴이었다. 2013년 9월 30일의 저녁 식사는 사냥꾼이 사냥감을 공격하기 전에 상대방을 탐색하는 전야제였다.

2013년 4월 포브스 표지모델이었던 칼 아이칸 (출처 : 포브스)

사냥꾼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쿡은 사냥감이 아니었다.

쿡은 요리사였다. 쿡은 아이칸과 대면하기 전에 이미 오마하의 현인에게서 조언을 들었다. 워런 버핏은 당연히 아이칸의 전략을 꿰뚫고 있었다. 쿡은 아이칸의 주장에 동의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다. 아이칸이 몇 시간씩 떠들게 내버려 뒀을 뿐이었다. 요리사에게 사냥꾼은 먹거리를 사냥해오는 일꾼이다. 아이칸의 그린 메일은 사실 쿡에겐 자사주 매입을 본격화할 좋은 구실이 돼 줄 수 있었다.

자사주 매입은 무조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주가 상승은 대체로 CEO에 대한 시장의 우호적인 여론 형성으로 이어진다. 자사주 매입은 아이칸한테도 좋지만 쿡한테는 더 좋은 일이란 뜻이다.

게다가 팀 쿡은 여전히 시장으로부터 위대한 혁신가의 후임자 자질을 의심 받고 있었다. 임기 2년이 지났지만 쿡은 자본 시장과 테크 업계가 기대하는 넥스트 빅 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팀 쿡한테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 부양은 시장의 불평불만을 한 방에 잠재울 포이즌 애플이었다. 주가만 오른다면 쿡에 대한 불신은 순식간에 환호로 바뀔 터였다.

쿡한텐 명분이 필요했다. 쿡은 잡스의 공식적인 후임자였다. 사실 잭 웰치 이후 CEO에 대한 절대 평가 기준은 혁신이나 성장 심지어 총매출이나 순이익보다도 주가 상승률이 돼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지만 잡스는 웰치와는 정반대 지점에 있었다. 《포춘》은 10년 주기로 〈CEO of the DECADE〉를 선정한다. 비즈니스의 대전환을 보여준다. 《포춘》이 뽑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CEO는 잭 웰치였다. 2000년대를 상징하는 CEO는 스티브 잡스였다. 잡스는 CEO에 대한 평가 기준을 주가 그래프에서 혁신적 제품으로 잠시나마 돌려세웠던 경영자였다. 잡스의 후임자가 대놓고 웰치의 추종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010년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와 COO였던 팀 쿡이 애플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Kimberly White/Corbis via Gettyimages )

정확하게 이 기간 동안 칼 아이칸은 팀 쿡한테 든든한 우군 역할을 했다. 2016년 1분기에 애플 주식을 전량 매도했다는 사실이 공개되기 전까지 월가에서 칼 아이칸의 별명은 애플 전도사였다. 엄밀히 따지면 아이칸은 애플 전도사가 아니었다. 쿡의 애플 전도사였다. 요리사의 충실한 사냥꾼이었다. 정확하게 이 기간 동안 팀 쿡 CEO는 시장의 의심을 털어내고 전임자에 필적하는 후계자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다.

아이칸이 애플과 결별한 뒤에도 쿡은 쉼 없이 자사주를 매입했다. 쿡이 지난 10년 동안 매입한 애플 자사주는 4670억 달러 어치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560조 원이다. 2021년 한국 정부 예산이 558조 원이었다. 덕분에 지난 10년 동안 애플의 주가는 12배 상승했다.

애플의 시가 총액은 2018년 8월 2일 1조 달러를 돌파했다. 2020년 8월 19일 2조 달러를 넘어섰다. 결국 2022년 1월 3일 팀 쿡의 애플은 세계 최초로 시가 총액 3조 달러를 초월한 기업이 됐다. 이제 아무도 감히 쿡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제 누구도 굳이 쿡에게 넥스트 빅 씽을 되묻지 않는다. 중요한 건 넥스트 빅 제품이 아니다. 넥스트 빅 상승이다.

쿡이 그렇게 세상을 요리해버렸다. 쿡에게 레서피를 알려준 건 칼이었다.

2007년 애플 본사에서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가 아이맥 컴퓨터(iMac) 및 아이라이프(iLife) 응용 프로그램 출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시 COO였던 팀 쿡과 제품 마케팅 담당자였던 필립 쉴러 (출처 : Gettyimages)

2부 예고

칼 아이칸이라는 ‘기업 사냥꾼’을 잘 요리한 결과 애플의 주가 상승은 고공행진을 합니다. 쿡이 아이칸의 손을 잡음으로써 애플 후임자 자질을 의심 받고 있던 쿡은 애플 CEO가 될 만한 명분을 얻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 시장과 테크 업계가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넥스트 빅씽’이었습니다.

2부에서는 쿡이 요리하는 애플의 ‘넥스트 빅 씽’의 실체를 좀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마케팅 담당 필립 쉴러와 디자인 담당 조나단 아이브, 소프트웨어 담당 스콧 포스톨의 집단 지도 체제아래 누구의 전략이 성공하고 실패했을까요? 쿡은 어떤 방식으로 애플의 ‘넥스트 빅씽’을 보여주었을까요? 2부에서는 팀 쿡의 방식으로 ‘넥스트 빅씽’과 애플 자본 시장을 지배하는 방법에 대해 소개합니다.

2부 기사보러가기

목차

  • 팀 쿡이 요리하는 ‘넥스트 빅 씽’?

  • 기대감은 소비자를 스스로 춤추게 한다

  • 애플과 패션 & 디자인의 만남

  • 천재 엔지니어의 ‘넥스트 빅 엿’ iOS6

  • 어쩌다 엑스칼리버가 된 아이브

  • 상상초월 첩첩산중 애플워치

  • 기술과 패션의 교차로에서 찾은 ‘넥스트 빅 스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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