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는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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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주 2022.10.14 03:55 PDT
메타는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을까?

메타 퀘스트 프로가 전격 출시됐습니다. 하드웨어는 진일보했고 MS와도 연합했는데, 왜 시장은 메타를 의심하는걸까요?

  • 메타의 철학은 올드 프렌즈

  • 메타의 특이점은 일의 미래?!

  • 메타 퀘스트 프로의 가격은 상대적

  • 시장은 왜 메타를 의심할까?

 
슬펐습니다. 2022년 2월 56회 미국 슈퍼볼에서 공개된 메타의 광고 때문이었습니다. 슈퍼볼 광고는 비싸기로 유명합니다. 초당 2억8000만 원 짜리입니다. 메타는 2021년 10월 회사 이름을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바꿨습니다. 소셜미디어기업에서 메타버스 기업으로 정체성을 바꾼겁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메타 개명자는 당시 이렇게 말했죠. “우리 정체성에 관해 많이 생각해왔다. 나는 우리가 메타버스 회사로 여겨지기를 희망한다” 슈퍼볼에서 공개된 메타의 기업 광고는 메타가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여야 했습니다. 메타가 생각하는 메타버스를 선보이는 자리였죠. 

실패했습니다. 메타 브랜드 광고의 제목은 〈올드 프렌즈, 뉴 펀〉이었습니다. 작은 식당에서 연주하던 장난감 동물 밴드는 인기가 시들자 버려집니다. 여기저기로 팔려다니던 메일 보컬 강아지 인형은 결국 쓰레기 폐기장까지 흘러흘러가죠. 마지막 순간 강아지 인형을 구한 건 메타의 직원이었습니다. 메타 본사 현관 앞에서 메타버스 체험관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반을 들고 있게 됩니다. 누군가 장난 삼아 메타의 가상현실 헤드셋인 퀘스트2를 강아지 인형한테 씌워줍니다. 그렇게 접속한 메타버스에서 강아지 인형은 옛 동물 밴드 친구들과 만나죠. 리얼리티를 잊고 버추얼 리얼리티에서 한바탕 노래를 부릅니다. 

그래서 슬펐습니다. 메타의 메타버스는 그저 찌그러진 현실을 잊게 해주는 도피처처럼 보였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메타버스는 반세기 전 인터넷이 그랬던 것처럼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보고인 줄 알았습니다. 메타버스가 무엇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미래일거라 기대했죠. 〈올드 프렌즈, 뉴 펀〉에서 그려진 메타버스는 정반대로 부정적이고 우울한 미래였습니다. 

메타한테 부족한 건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었습니다.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스스로도 정의내리지 못한채 메타라는 이름부터 내건 겁니다. 의외로 기술 생태계의 진화는 철학적 사고를 요구합니다. 기술의 목적은 결국 인류의 미래를 바꾸는 일이니까요. 인터넷이 그랬습니다. 이건 월터 아이작슨이 쓴 《이노베이터》에 잘 나와있죠. 어떤 면에선 메타는 아직 메타버스의 원작 소설에 머물러 있었던 셈입니다. 메타버스라는 이름이 맨 처음 등장한 사이버펑크 소설인 《스노 크래시 : 메타버스의 시대》에서도 메타버스는 음울한 공간이거든요.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히로는 찌그러진 현실과 화려한 가상현실을 오가며 삽니다. 이때부터 메타버스는 늘 현실의 대구였죠. 그렇지만 1992년 소설로 2022년의 기술을 정의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메타의 특이점은 일의 미래?!

이번엔 두려웠습니다. 지난 10월 11일 열린 메타 커넥트 행사에서 메타는 한층 진일보한 가상혼합현실 디바이스인 메타 퀘스트 프로를 공개했습니다. 핵심은 일잘법이었습니다. 일 잘하는 방법 말입니다. 게다가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까지 메타 커넥트 행사에 깜짝 시켰죠. MS의 메타버스 전략은 그동안 가상공간을 활용해서 업무 효율성을 증강시키는데 집중돼 있었습니다. 서로 목표가 같죠. 

여기엔 역사적 매락이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빌 게이츠 인터넷 시대에도 엑셀과 워드와 파워포인트 같은 일잘법들을 개발해서 대박을 냈었죠. 차세대 인터넷이라고 불리는 메타버스에서도 MS는 MS한 겁니다. 그런데 MS가 밀고 있던 가상현실 디바이스인 홀로렌즈 개발이 다소 지지부진합니다.

반면 메타는 올해 들어서도 매 분기 만만찮은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하드웨어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죠. 그래서 메타버스 생태계를 확장하려는 메타의 전략과 메타버스 안에서 일잘법 시장을 장악하려는 MS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죠. 과거 IBM 하드웨어 PC와 MS 소프트웨어 윈도우OS의 연합을 연상시킵니다. 

블루와 빅브라더의 연합이 두려웠던건 아닙니다. 소비자로서 메타버스에 뛰어들기가 두려웠던 겁니다. 메타버스가 이렇게 회사라면 사장님들 말고는 도대체 누가 접속하고 싶어할까 싶었죠. 사티아 나델라 나회장님이나 마크 저커버그 마사장님이나 손대표님 입장에선 메타버스의 시장성을 일에서 찾는 게 합리적입니다. 나과장이나 마대리나 신사원 입장에선 접속이라고 쓰고 출근이라고 읽어야 하는 메타버스라면 그냥 버스 타고 출근하는 편이 낫습니다.

분명 〈올드 프렌즈, 뉴 펀〉의 메타버스보단 긍정적입니다. 여기서 메타버스 헤드셋은 현실 도피용이 아니라 더 나은 현실을 만들어주는 도구니까요. 이름 그대로 증강 현실 디바이스인 겁니다. 메타가 B2B 시장부터 공략하려고 하는 것도 스마트한 전략이죠. 그래서 줄리 스위트 액센츄어 CEO가 메타측 증인으로 나섰죠. 

그렇지만 이런 현실 증강 효과에도 불구하고 일개 소비자로선 퀘스트 프로를 내돈내산해서 MS 팀즈의 워크룸에 접속해서 오피스365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정말 하나도 안 듭니다. 게다가 1499.99달러라는 가격까지 고려하면 말할 것도 없죠. 프로 버전이라는걸 감안해도 215만원이라는 가격은 소비자들이 메타버스에 자발적으로 뛰어들게 만들기엔 너무 높습니다.

메타는 반드시 메타버스가 대중화되는 빅뱅을 일으켜야만 합니다. 페이스북 시절 SNS 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땐 모두가 자발적으로 SNS 어장에 입수했죠. 우리에게 일거리가 아니라 즐거움을 줬으니까요. 조직이 아니라 개인을 위한 행위였으니까요. 바꿔 말하면, 메타는 아직도 메타버스의 특이점을 찾지 못한 겁니다. 

메타 퀘스트 프로의 가격은 상대적

지난 여름 더밀크 실리콘밸리 본사를 방문했다가 전세계에서 하나 뿐인 메타 스토어를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지름신이 강림하시고야 말았습니다. 메타와 레이벤이 합작한 검은색 뿔테 안경에 꽂혔거든요. 퀘스트 프로처럼 혼합현실을 경험하게 해주는 최첨단 헤드셋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안경에 약간의 테크 기능이 더해진 물건이었죠. 안경으로 간단한 사진이나 짧은 동영상을 찍는다거나 안경 다리에 달린 스피커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죠.

그런데도 메타와 레이벤의 합작품을 지른 이유는 거부할 수 없는 본능 탓이었습니다. 인간에겐 도구에 대한 본능적 욕망이 있습니다. 석기 시대 때부터 인간은 더 나은 돌도끼와 나무활을 가지면 더 우월해질 수 있었으니까요. 도구의 성능을 자신의 성능과 혼동하죠. 지름신 레이벤을 아직 당근마켓에다 내다 팔지 않은 이유는 잘 쓰지도 않는 테크 기능이 아니라 디자인 때문입니다. 멋있거든요. 멋있다는 기능은 아직 작동합니다.

이번에 발표된 메타 퀘스트 프로는 진일보한 성능을 자랑합니다. 오큘러스 시절과 비교하면 일취월장이죠. 특히 전면부의 3개 카메라와 내부의 5개 카메라는 제공하는 혼합현실이 압권입니다. 내부의 5개 카메라는 사용자의 눈코입을 쫓습니다. 메타버스 속 아바타에 사용자의 시선과 표정을 입히죠. 전면부 3개 카메라는 사용자가 실존하는 리얼리티 세계의 이미지를 총천연색으로 제공합니다. 덕분에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국내 최고의 메타버스 전문가인 최형욱 퓨처디자이너스 대표는 이런 하드웨어 성능들만으로도 메타 퀘스트 프로는 오히려 반값이라고 설명합니다.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나니 또 다시 지름신이 강림하려고 하시더군요. 전세계 시판국 22개 나라 가운데 한국이 있다는걸 알고부턴 지름신과 더 친해진 기분이었습니다. 메타 퀘스트 프로만 있으면 《스노 크래시》의 주인공 히로처럼 세계 최강의 칼잡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또 다시 기계의 성능과 자신의 성능을 혼동하기 시작한 것이죠. 

근데 퀘스트 프로는 결정적으로 멋이 없더군요. 퀘스트 프로는 전작인 퀘스트2보다 무거워졌습니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디자인은 아직은 최첨단 헬맷에 가깝습니다. 문득 에버노트 창업자 필 리빈의 혹평이 떠올랐습니다. 불편하고 멋도 없는 헤드셋을 쓰고 몇 시간씩 가상회의를 하는 이점이 뭐냐고 반문했죠.

우리가 기계의 성능에 매혹되는 건 그것이 우리 자신을 더 증강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나를 더 나은 나로 만들어주는 모든 건 멋집니다. 퀘스트 프로는 기술적으로는 멋집니다. 그렇지만 이런 의미에선 하나도 멋지지 않습니다. 그걸 쓴 내가 스스로 멋있다고 느끼질 못하니까요. 이것이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조니 아이브가 디자인 혁신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겠죠. 기술만으로는 결코 시장을 열 수 없습니다. 

시장은 왜 메타를 의심할까

오큘러스 창업자들이 가진 관심의 초점은 원래 가상현실과 게임을 접목시키는데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메타버스는 어디까지나 게임 기술이었죠. 그렇지만 마크 저커버그한테 메타버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셜 기술이었습니다. 양측의 시각차가 충돌하기 시작한건 2017년 오큘러스 개발자 컨퍼런스부터였습니다. 그때 마크 저커버그는 10억 명 메타버스 양병설을 주창했죠. 저커버그는 이때부터 오큘러스와는 별도의 가상현실 개발팀을 CEO 직속으로 뒀죠. 결국 오큘러스 창업자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페이스북을 떠나게 됩니다.

그때부터 저커버그 직속으로 메타의 하드웨어를 총괄하게 되는 사람이 이른바 마크맨으로 통하는 앤드류 보즈워스입니다. 보즈워스의 주도 아래 오큘러스는 소셜 기능이 대폭 강화된 형태의 퀘스트로 진화하게 됩니다. 사용자의 시선과 표정을 읽어내서 아바타에 입히기 위한 카메라들은 모두가 보즈워스의 작품이죠. 게임용 헤드셋이었다면 필요 없는 기능입니다. 저커버그한테 가장 중요한건 언제나 소셜입니다. 메타버스에서도 변함 없습니다. 

정작 저커버그는 현재의 소셜 전쟁에선 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광고 시장은 침체되고 있는데 주도권은 틱톡이 가져가버렸죠. 메타의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60% 이상 곤두박질쳤습니다. 메타의 주가가 떨어지는 이유는 메타가 메타버스로 갈아타서가 아닙니다. 연간 1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메타버스에 쏟아붓고 있어서만도 아니죠. 저커버그의 야망처럼 메타버스로 소셜 광고 시장을 페이스북이 그랬던 것처럼 지배하기엔 아직 멀었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은 애플이 아이폰으로 만들어준 생태계에서 광고 시장을 장악하면 됐었죠. 이번엔 메타 스스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와 앱생태계까지 다 만들어야만 합니다. 정작 지금 당장 릴스도 틱톡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릴스는 메타가 내세운 틱톡의 대항마입니다. 숏폼 시장에서 릴스는 분명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장이 기대하는 만큼은 아니죠. 저커버그는 메타버스 시대를 열어서 역사에 남고 싶겠지만 시장은 메타한테 발 등에 떨어진 불부터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만일 트럼프 시대에 메타가 틱톡 인수에 성공했다면 지금 주가 흐름은 정반대였겠죠. 

다음주에 녹음할 더밀크 팟캐스트 〈신기주의 신미래〉에선 시카고 노던일리노이대학교의 황재진 교수와 뉴욕플래닛의 박원익 기자를 모시고 메타 퀘스트 프로와 관련해서 토론해볼 예정입니다. 10월 22일 토요일에 방송되겠네요.

메타버스의 정의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처럼 메타버스로 직진하는 메타의 전략과 퀘스트 프로라는 제품에 대한 분석과 전망도 엇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까요. 더밀크닷컴과 훌륭한 기사들과 칼럼들 그리고 뷰스레터를 통해서도 모두 담지 못한 시각들을 입체적인 토론을 통해 청취자와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아직은 슬프고 두렵고 멋없고 주가 떨어지는 메타의 메타버스는 과연 언제 즐겁고 기쁘고 멋지고 주가 폭등하는 리얼월드를 우리에게 선사해 줄까요. 메타는 과연 메타버스의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을까요? 

더밀크
신기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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