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EV 물 들어왔다’ SK시그넷, 텍사스 공장 준공 “미 초급속 1위” 굳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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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Kim 2023.06.07 15:00 PDT
[르포] ‘EV 물 들어왔다’ SK시그넷, 텍사스 공장 준공 “미 초급속 1위” 굳히기
SK시그넷 공장 전경 (출처 : 더밀크 김세진)

[더밀크 현장 르포] 텍사스주 플레이노 소재 SK시그넷 공장 취재
200억원 들여 공장 건설… 텍사스, 협력사 많고·인력 수급 양호
초급속 충전기 집중 전략… 미국 내 양산은 SK시그넷이 최초
“미국 초급속 1위 입지 강화”... 변수는 테슬라∙중국

“유럽은 지금 들어가기에 늦었죠. 하지만 미국은 지금 기회가 무궁무진합니다.”
오승준 SK시그넷미국법인 대표

👉 미국 전기차 뜨자 EV 충전 시장도 '빅뱅'

전기차(EV) 충전소 시장은 최근 연 30%가량 성장하고 있다. 독보적 1위가 없는, 이른바 블루오션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금이 올해와 내년 대거 풀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 세계 각 분야 기업이 충전소 시장에 뛰어드는 추세다.

미국 시장 진출 기업 목록에는 한국 기업도 있다. SK시그넷은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기업 중 하나다. SK시그넷은 SK㈜가 지난 2021년 약 2900억원에 인수한 EV 충전기 제조사다.

현재 미국에서 초급속 충전기(200kW급 이상) 기준 점유율 1위다. 폭스바겐그룹 자회사 일렉트리파이아메리카(EA), 이브이고(EVgo) 등 미국 상위 전기차 충전사업자(CPO)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SK시그넷은 미국 텍사스주에 생산 공장(SK Signet Manufacturing Texas, SSMT)을 준공했다. 오는 7월부터 양산을 시작, 350kw 이상 초급속 충전기 생산량을 늘리고, 미국과 유럽 시장을 집중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더밀크는 5일 11시(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 플레이노(Plano)시에 위치한 준공식 및 공장 현장을 취재했다.

SK시그넷의 신제품 V2 (출처 : 더밀크 김세진)

텍사스 공장, 부지 1만5345평·건물면적 3840평 규모

텍사스주 댈러스 중심지에서 약 40분을 달리니 미국 특유의 기다랗게 늘어선 건물에 ‘SK Signet’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플레이노에 있는 텍사스 생산 공장(Manufacturing Texas, SSMT)이었다.

SSMT은 총 부지 1만5345평, 건물면적 3840평 규모를 자랑한다. 충전기를 연간 총 1만기까지 생산할 수 있다. 기존 한국 영광 공장 생산분을 더하면 연간 2만기 생산 체제를 구축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SK시그넷은 2018년부터 미국 내에서 초급속 충전기 생산을 시작, 현재까지 약 2500기 이상의 초급속 충전기를 미국 전역에 구축했다.

이 공장을 짓는 데는 총 1500만달러(약196억원)가 들었다. 건설 기간은 약 6개월, 준비 기간까지 합쳐 총 1년 만에 작업이 이뤄졌다. 미국에서 볼 수 없는 속도였다.

SK시그넷은 특히 초급속 충전기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높은 마진율과 기술력이 필요, 비교적 경쟁률이 낮기 때문이다. 최대 400kw출력을 지원하는 신제품 V2는 대당 가격이 약 1억원에 달한다. 1대로 250kw, 150kw를 충전할 수 있다.

운영소 입장에서 250kw, 150kw 기기를 따로 구비했을 때 비용은 약1억3000만원이 든다. 설치 공간도 더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V2가 경제적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테슬라는 모델3 기준 최대 250kw까지 충전할 수 있다.

준공식 행사에는 미국 EV업계 관계자, SK그룹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성황리를 이뤘다. (출처 : 더밀크 김세진)

회사 매출 81% 미국에서 발생... 텍사스 장점 많아

공장 입지는 왜 텍사스로 정했을까? 신정호 SK시그넷 대표(CEO)는 5일 인력 수급 문제, 기업친화적인 규제 환경, 협력사가 텍사스에 많은 점을 꼽았다.

미국은 중요한 시장이다. 2022년 기준 회사 매출 중 81%가 미국에서 발생할 정도다. 또 미국 정부의 보조금 수령 여부가 미국 시장 사업 성패의 핵심으로 꼽힌다. 보조금을 받으려면 미국에서 부품과 완제품 대부분을 생산해야 한다. 텍사스주 최저임금은 7달러대 수준으로 미국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숙련된 노동자도 풍부하다. 텍사스 댈러스의 인구는 1200만명으로 평균 연령은 31.8세다. 신정호 SK시그넷 대표는 “정밀부품 특성 상 세심한 작업을 요하는 경우가 많은데, 텍사스에 이를 잘하는 히스패닉, 베트남계 인구가 많다”고 말했다. 현재 26명을 채용 중이며 2026년까지 180명 규모로 증원할 예정이다.

존 먼스 플레이노 시장이 V3 제품을 시연하고 있다. (출처 : 더밀크 김세진)

“비싼 거 팔겠다”... 타깃은 초급속 충전기

통상 전기차 충전기 시장은 충전속도에 따라 초급속 충전기, 완속 및 급속에 주력하는 기업으로 나뉜다. 출력용량은 완속은 7~11kW, 중속은 20~40kW, 급속은 50kW 이상이다. 통상적으로 200kW 이상부터는 초급속 충전기로 분류한다. SK시그넷은 미국에서 초급속 충전기 시장을 노린다. 그 중에서도 350kW이상이다.

이날 준공 행사에서는 V2 제품을 활용해 현대 아이오닉5와 기아 EV6를 동시에 충전하는 모습을 시연하기도 했다. V2제품은 단일포트에서 최대 400kW까지 출력이 가능한 초급속 충전기 제품이다. 올해 CES 2023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날 시연에 사용된 V2제품의 파워캐비넷은 1기당 최대 600kW까지 출력할 수 있어 디스펜서 2대로 4대까지 동시에 초급속으로 충전할 수 있다. V2로 현대 전기차 아이오닉5을 충전하면 약 15분에 80%까지 완전 충전이 가능하다. SK시그넷에 따르면 유럽에선 400kW급 초급속 충전기가 개발됐지만, 미국에서 개발, 양산되는 건 SK시그넷이 처음이다.

V2는 올 7월부터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신정호 SK시그넷 대표는 5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여러 기업들로부터 주문을 받았다”면서 “곧 수주 계약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곽기홍 SK시그넷 생산공장 공장장이 생산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 : 더밀크 김세진)

한미 정부·SK그룹 관계자 준공식 참여... 힘 실어

이날 준공식에는 그레그 에벗(Greg Abbott) 텍사스 주지사를 대신해 아드리아나 크루즈(Adriana Cruz) 경제개발국장, 존 먼스 텍사스주 플레이노시 시장, 김준구 주미국대사관 공사 등 한미 양국 정부 관계자도 대거 참석했다.

텍사스 플레이노시는 이번 공장 건설 과정에서 100만달러 규모의 인센티브를 비롯해 인력 채용, 안전시험 인허가 과정 등을 지원했다. 신 대표는 “플레이노에 공장을 짓는다 하니 전담팀까지 꾸려줬다”면서 “이번 행사에서도 시장이 직접 리허설에 참여해 연습하는 등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주 주지사(공화당)는 “SK시그넷이 이런 의미 있는 투자를 위해 텍사스주 플레이노를 선택한 것이 자랑스럽다”면서 “이런 기업 덕분에 주에서 새로운 제조 일자리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장차 텍사스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EV 인프라를 발전시킨다”고 말했다.

유정준 SK미주대외협력총괄 부회장과 서영훈 SK㈜ 첨단소재투자센터 그룹장 등 SK그룹 관계자도 참석해 그룹 내 주력 성장산업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SK그룹에서는 SK네트웍스와 SK E&S가 충전 운영소와 급속 충전기 제조 사업을, 2021년 8월 인수한 SK시그넷이 초급속 충전기 제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유정준 부회장은 “SK시그넷의 생산시설은 전기차 보급 확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제조업과 운송업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밖에 SK시그넷의 주요 고객사이자 미국 주요 전기차 충전소 운영사인 이브이고(EVgo), 테라와트인프라스트럭쳐(Terrawatt Infrastructure)를 비롯해 반도체 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츠(Texas Instruments), 글로벌 케이블 기업 후버앤수너 등 다양한 협력사 관계자 150여 명이 참석했다.

존 먼스 플레이노 시장(왼쪽 세번째), 오승준 SK시그넷아메리카 사장(왼쪽 네번째), 신정호 SK시그넷 대표(왼쪽 다섯번째), 아드리아나 크루즈 텍사스주 경제개발국장(왼쪽 여섯번째), 유정준 SK 부회장(왼쪽 일곱번째) 등 주요 인사들이 5일(현지시각) 준공식에 참여했다. (출처 : SK시그넷)

올해 매출 2배 확대 목표… 테슬라∙중국은 위협 요소

SK시그넷은 미국 텍사스 공장에 구축한 400kW급 초급속 충전기 생산 체제를 바탕으로 미국내 초급속 충전기 시장에서 입지를 확고히 한다는 계획이다. 2022년 SK시그넷의 매출 1626억원 중 미국에서 발생한 매출이 80% 이상(1329억원)이다. 올해 매출은 2022년말 기준 2배 성장한 3200억원이상, 2025년엔 1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승준 SK시그넷 미국법인 대표는 “올해 생산량은 이미 거의 다 판매했다”고 밝혔다. 신정호 대표도 “연 30% 성장이 가능한 분야”라면서 “거의 확실하게 올해 목표치를 달성할 것”고 말했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있다. 테슬라가 최근 다른 브랜드의 전기차에도 자사 충전소를 개방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간 테슬라는 테슬라 차량에만 충전 인프라를 제공, EV 충전 인프라 시장 데이터 집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모든 전기차에 충전소를 개방하기로 하면서 초급속 충전기 기준으로도 1위에 올라설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관계도 장기적으로 변수가 될 수 있다. 현재는 미중분쟁의 영향으로 미국이 제조업 자국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개선돼 중국의 기업 제품이 들어올 경우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가능성이 있다.

SK시그넷은 지난해 10월 이사회에서 생산 공장에 초기 1500만불(약 213억원)을 투자하기로 의결했다. 이후 공장 증설에 3700만불까지(약 500억원)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다. SK시그넷은 2017년 8월 초기 벤처·중소기업을 위한 주식시장인 코넥스(KONEX)에 상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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