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혁명보다 훨씬 크다”... 세계 최대 벤처투자자가 본 AI시대 성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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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익 2025.10.01 15:18 PDT
“인터넷 혁명보다 훨씬 크다”... 세계 최대 벤처투자자가 본 AI시대 성공법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의 공동 창업자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 (출처 : Stripe 유튜브 캡처, a16z, Gemini 편집)

[마크 앤드리슨 X 존 콜리슨 대담] 세계 최대 VC의 인사이트
왜 여전히 실리콘밸리인가?... 신뢰와 위험 감수 문화, 해자가 되다
닷컴 버블에서 AI 열풍까지… 역사와 투자자 심리는 반복된다
미래 전망: AI가 재편하는 생산성과 일자리
더밀크의 시각: 속도가 경쟁력… 실리콘밸리에서 배우라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VC) 중 하나인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의 공동 창업자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이 현재의 AI 열풍과 미래 기술의 방향에 대해 심도 깊은 진단을 내놨다. 

1일(현지시각) 공개된 스트라이프(Stripe) 공동 창업자 존 콜리슨(John Collison)의 팟캐스트 ‘치키 파인트(Cheeky Pint)’에 출연, 자신의 생각을 공유한 것이다. 그는 기술 투자자 찰리 송허스트(Charlie Songhurst)도 함께한 이번 대담에서 닷컴 버블의 경험을 거울삼아 현재의 AI 혁명을 분석하고 미래를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앤드리슨은 웹 브라우저 ‘넷스케이프’를 개발한 창업가로서 인터넷 혁명의 태동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이후 투자자로서 소셜 미디어, 클라우드, AI에 이르는 거대한 기술 주기를 모두 겪었다. 

그가 제시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명확하다. 기술 시장의 거품(bubble)과 침체(downturn), 그리고 투자 심리는 주기적으로 반복되지만, 그 속에서도 혁신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인 원칙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혁신이 진공 상태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실리콘밸리 같은 특정 지역이 가진 고유한 ‘문화(신뢰와 위험 감수)’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탄생한 혁신은 예측 가능한 ‘경제 패턴(버블과 주기)’을 거치며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기술로 발현된다는 논리다.

앤트로픽의 에이전트 코딩 도구 ‘클로드 코드(Claude Code)’ 시연 및 바이브 코드 트렌드를 배우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AWS GenAI Loft에 모인 개발자들. (출처 : 더밀크 박원익)

왜 여전히 실리콘밸리인가?... 신뢰와 위험 감수 문화, 해자가 되다

수십 년간 실리콘밸리의 종말은 단골 예언처럼 등장했지만, 앤드리슨은 왜 여전히 실리콘밸리가 대체 불가능한 혁신의 중심지인지에 대한 이유를 문화적 특성에서 찾았다. 실리콘밸리의 경쟁력은 자본이나 인재의 규모가 아닌, 수십 년에 걸쳐 유기적으로 형성된 독특한 문화에 있다는 것이다.

①FOMO가 만든 고도의 신뢰 네트워크

앤드리슨이 강조한 실리콘밸리 문화의 핵심은 ‘고도의 신뢰(High trust)’ 문화다. 단순한 유대감이 아닌 지극히 실용적인 메커니즘으로 이런 문화가 형성된 것. 이 문화의 기원이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FOMO)’에 있다는 게 그의 논리다. 

예컨대 실리콘밸리에서는 미친 아이디어를 가진 티셔츠 차림의 젊은이를 무시했다가 그가 마크 저커버그 같은 창업가가 되는 것을 목격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는 이를 ‘카테고리 2 오류(category two error)’라고 표현했다. 

앤드리슨은 “카테고리 2 오류는 훨씬 나쁘다. 당신이 망쳐버린 성공 사례에 대해 계속 전해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투자자를 고문한다”고 했다. 잠재적 성공을 놓치는 고통은 투자 실패로 인한 금전적 손실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실리콘밸리 생태계 참여자들은 본능적으로 개방적인 태도, 신뢰를 기반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일화가 1998년 당시 시스코 부사장으로 일하던 앤디 벡톨샤임이 아직 법인도 없던 구글에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짜리 수표를 써준 일이다. 이 사례는 실리콘밸리 신뢰 기반 문화의 상징이 됐다. 

②실패를 용인하는 ‘개척자 정신’

앤드리슨은 미국 동부와 서부의 문화를 비교하며 실리콘밸리의 차별성을 설명했다.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동부의 문화가 기존의 제도 안에서 안정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중시하는 반면, 서부의 실리콘밸리는 태생적으로 ‘개척자 정신(frontier spirit)’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는 “사람들이 말 그대로 태평양 때문에 멈춰야 할 때까지 서쪽으로 갔다”며 “실리콘밸리의 위대한 인재들은 대부분 실리콘밸리에서 성장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전역과 전 세계에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것을 만들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결국 실리콘밸리에서 야심 찬 스타업의 실패는 주홍글씨가 아니라 다음 성공을 위한 훈장으로 여겨지게 된다. 이와 같은 실패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창업가들이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추구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보스턴이나 유럽의 여러 도시들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제2의 실리콘밸리를 만들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앤드리슨은 개척자 정신의 부재를 지적했다.

보스턴은 한때 실리콘밸리와 대등한 기술 허브였지만,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 초기 투자 유치를 위해 서부로 와야 했던 사건이 분기점이 됐다는 것. 그는 “보스턴은 안정성은 갖췄지만 개척자 정신이 부족했다”며 “이것이 제가 개척자 정신에 집착하는 이유”라고 했다. 

시장 침체기는 오히려 실리콘밸리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시각도 드러냈다. 침체기가 오면 명성을 좇던 사람들은 떠나간다는 것이다. 앤드리슨은 2003년 무렵 농담을 인용하며 “B2B는 ‘은행으로 돌아간다(back to banking)’를, B2C는 ‘컨설팅으로 돌아간다(back to consulting)'를 의미했다”고 했다. 

인재들 중에서도 진짜배기들만 남아 생태계가 더욱 순수해진다. 실리콘밸리의 진정한 상품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그것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문화 그 자체인 셈이다.

(출처 : 셔터스톡)

닷컴 버블에서 AI 열풍까지… 역사와 투자자 심리는 반복된다

앤드리슨은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의 중심에서 창업가로, 현재 AI 열풍의 중심에서 투자자로 활동하며 두 시대를 모두 경험했다. 그는 두 시대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지만, 결정적인 차이점 또한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당신은 버블 속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나?”

앤드리슨은 ‘당신이 버블 안에 있을 때, 그것을 알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내 경험상 대답은 ‘아니오(no)’”라고 단언했다. 

기술 혁명의 초기 단계에서는 세상을 바꿀 기술이라는 거대한 서사가 전통적인 가치 평가 모델을 압도한다. 버블 붕괴를 예측하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하지만, 그들은 보통 20년 내내 같은 주장을 반복하다가 한 번 맞추게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닷컴 버블 붕괴는 단일 사건이 아니라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여러 번에 걸쳐 계단식으로 하락하는 과정이었다. 시장이 완전히 바닥을 쳤을 때 나타나는 진짜 신호는, 사람들이 더는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2003년 즈음 인터넷 스타트업은 저녁 파티에서 꺼내면 안 되는 주제가 됐다.

닷컴 버블의 진실… AI 붐과 평행 이론?

다만 앤드리슨은 닷컴 버블이 흔히 알려진 것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통신(Telco) 버블이었고, 통신 붕괴였다”고 강조했다. 

인터넷 소프트웨어 기업에 투자된 자본보다 훨씬 더 막대한 규모의 자본과 부채가 광케이블 같은 물리적 인프라에 투입됐다는 이유에서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전문가는 소수지만, 건물과 땅에 투자하는 방법을 아는 자본가들은 다수였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 

즉, 이들은 인터넷이라는 마법의 단어에 흥분해 막대한 인프라를 구축했지만, 실제 수요가 따라오기까지는 15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붕괴가 일어났다.

중요한 건 이러한 현상이 현재 AI 붐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AI 소프트웨어 자체보다 훨씬 더 큰 자본이 데이터센터와 GPU 같은 인프라 구축에 몰리고 있다. 

이에 대해 앤드리슨은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고 했다. 인터넷은 네트워크 기술이었지만, AI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컴퓨팅 기술, 즉 ‘컴퓨터 산업 V2(computer industry V2)’라는 주장이다. 

이는 80년 만에 폰 노이만 아키텍처에서 신경망으로 컴퓨터의 기본 모델이 바뀌는 혁명이며 그 잠재적 가치는 닷컴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수 있음을 시사한다.

(출처 : Shutterstock)

미래 전망: AI, 생산성과 일자리를 어떻게 재편할까

AI 산업 발전에 따른 가장 큰 우려는 이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공포에 있다. 이런 시각에 대해 앤드리슨은 확고한 기술 낙관론을 견지했다. 그는 AI를 일자리의 파괴자가 아닌, 인간의 능력을 증강시키고 전례 없는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도구로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개인을 ‘슈퍼 박사’로 만드는 도구

앤드리슨의 관점에서 AI는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 생산성’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도구다. 그는 “AI는 모든 개인을 모든 주제에 대한 슈퍼 박사(super PhD in every topic)로 만든다”고 표현했다. 

컴퓨터가 회계 단순 보조 일자리를 없애는 대신, 많은 사람이 엑셀을 통해 기본 회계 처리를 할 수 있게 된 것과 같은 원리다. AI가 거의 모든 직업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할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앤드리슨은 AI가 가져올 생산성 향상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변화에 저항하는 사회적, 제도적 경직성이라고 주장했다.

더밀크의 시각: 극적인 변화냐  패배냐… 실리콘밸리에서 배우라

성공한 거대 기업이 결국 관료주의의 덫에 빠지는 현상을 비판한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앤드리슨은 “사람들은 극적인 고통을 피하기 위해 만성적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즉, 기업들이 큰 고통을 피하고 싶어 극적인 변화를 선택하지 않고, 천천히 쇠퇴하는 길을 걷게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거대 기업의 관료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처방으로 앤드리슨은 ‘일론 머스크 방식(the Elon method)’도 언급했다. 

머스크 방식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요한 사람들은 엔지니어이며 진실을 얻기 위해서는 오직 현장의 엔지니어와만 이야기해야 한다’, 둘째, CEO의 역할은 ‘매주 회사 발전에 가장 중요한 병목 현상이 무엇인지 해결하는 것’이다. 셋째, ‘마케팅 대신 창업자의 컬트적 개성을 통해 회사를 이끈다’는 내용이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방법이지만,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거대한 조직을 스타트업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게 앤드리슨의 평가다. 

AI 시대에 글로벌 성공을 만들어 내려면 앤드리슨의 분석처럼 한국의 생태계 역시 개척자 정신을 배양, 창의적인 인재들이 마음껏 도전하고 실패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조성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AI가 모든 개인을 슈퍼 박사로 만들 것이라는 그의 전망에서 힌트를 얻어 재교육 시스템을 구축, 변화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안정적인 관리와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대기업 문화도 일정 부분 타파할 필요가 있다. AI 시대에는 속도가 곧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 방식처럼 속도와 실행력을 갖출 수 있을지 냉철하게 자문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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