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명문대 나와 고추장이나 판다고?... 우리가 파는 건 경험입니다”
[뉴욕의 도전자들] 뉴욕 기반 유망 스타트업 ‘인뎁스 인터뷰 시리즈’ 2편
프리미엄 한국·아시안 식품 이커머스 ‘김씨마켓’... 매출 50배 껑충
장 조지 등 유명 미슐랭 레스토랑도 고객… 아마존처럼 고객에 집중
미 현지인 고객 비중 55%... ‘좋은 식품’ 설명하는 컨텐츠에 공들여
라이언 김 대표 “고객에게 최상의 경험 제공하고파”
화창한 금요일 뉴욕 브루클린 네이비 야드(Navy Yard).
맨해튼 동쪽으로 흐르는 이스트 리버가 내려다 보이는 ‘김씨마켓(Kim'C Market)’ 사무실에 이른 아침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프랑스 출신 스타 셰프 ‘장 조지 봉게리히텐(Jean-Georges Vongerichten, 이하 장 조지)’이 프리미엄 한국 식품을 보고 싶다며 오전 7시 30분에 그의 틴빌딩(TIN Building) 총책임자를 보낸 것이다.
그의 이름을 딴 프렌치 레스토랑 장 조지는 ‘세계 다이닝의 수도’로 불리는 뉴욕에 있는 여러 미슐랭 레스토랑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식당으로 꼽히는 곳이다. 2006년 발행된 미슐랭 가이드 뉴욕 첫 에디션에서 최고 등급인 3스타에 선정된 후 유명세를 탔고, 명성을 이어가며 뉴욕, 라스베이거스, 마이애미를 비롯해 상파울루, 런던 상하이까지 총 50여 개 지점을 둔 글로벌 레스토랑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제품들은 모두 샘플로 구입해 가져가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걸 계속 사용할지는 결정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좋은 식재료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 누구보다 까다로운 미각을 가진 ‘미식의 왕’ 장조지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설탕을 첨가하지 않고, 한국산 과일과 조청으로 맛을 낸 잼 6종을 포함해 고추장, 간장 등 전통 장류에 이르기까지 이날 샘플로 가져간 45종의 제품 중 44종이 선택됐다. 모두 한국산 원료로 만들어진, 한글 상표가 붙은 품목들이었다. 요리에 사용할 뿐 아니라 월스트리트 인근에서 운영하는 프리미엄 아시안 식품 스토어 ‘머컨타일 이스트(Mercantile East)’에서 이 제품을 직접 팔겠다는 결정이었다.
“한국 프리미엄 식품의 상품성, 김씨마켓의 식품 소싱(Sourcing, 조달) 능력을 인정받은 셈이죠. 놀라운 건 우리가 먼저 판매 영업을 한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유명 쉐프들끼리 서로 정보를 교류한 후 김씨마켓에 직접 제품 문의를 해온다는 게 라이언 김(김대용) 김씨마켓 대표의 설명이었다. ‘믿을만한 원료로 만든 프리미엄 한국 식품을 미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다’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9년 이커머스(e-commerce, 전자상거래) 업체 김씨마켓을 설립한 지 3년만에 이룬 쾌거였다. 그사이 회사 매출은 50배로 급증했다.
김씨마켓이 뉴욕 파인 다이닝(fine dining) 업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김씨마켓을 특별하게 할까. 커머스의 본질은 무엇일까.
브루클린 김씨마켓 본사에서 김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자기소개를 해준다면?
한국 식품 중심 프리미엄 아시안 푸드 이커머스 ‘김씨마켓’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라이언 김이다. 한국 이름은 김대용이다. 2019년에 서비스 시작해 어느덧 3년이 넘었다.
김씨마켓 설립 전 미국에서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UC버클리대에서 경제학·통계학을 전공한 후 뉴욕대 정치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뉴욕에서 은행에 다니면서 은행 내 컨설팅 업무, 신용파생투자상품 리스크 관리를 했었고, 미국 상무부 내 인구통계국(US Census Bureau)과 공공 정책 자문 회사 등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창업 계기가 궁금하다.
이민자로서의 삶에 대한 자각이 컸다. 미국 이민 가족의 상당수는 미국으로 유학 왔다가 직장을 구해 자녀를 낳고 가족을 꾸렸거나 부모 자식 세대 한 가족만 건너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계나 방계 친척이 없으니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한 명이라도 아프면 큰일이 난다.
개인적 경험인데, 뉴욕에 살고 있던 처 고모부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미국에 다른 가족이 없었고, 처고모와 어린아이 둘만 남겨진 상황이었다. 내가 그 아이들을 돌봐줘야 했다. 뉴욕에서 태어난 아이들로 다른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처럼 미국에서 자라야 했다.
건강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계기였다. 식품 성분표를 자세히 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아이들에게 막상 좋은 걸 먹이려고 알아봤더니 양질의 식품이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 미국 식품법은 재료의 원산지를 밝히도록 강제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식품 고르기가 어렵고, 안전성이 의심되는 식품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김씨마켓을 시작했다. 첫 오피스는 맨해튼 월가 근처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였고 ‘죽장연’에서 만든 고추장, 된장, 간장과 ‘청오건강'에서 만든 들기름, 참기름 5가지로 시작했다. 일반 마켓에서 판매하는 대량 생산 제품과는 다른 상품들이었다. 예컨대 된장이나 간장도 메주, 물, 소금만을 사용해 3년 이상 발효해 만드는 특별한 품목들이었다.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미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좋은 한국 식품으로 먼저 시작한 셈이다. 지금은 취급 품목이 늘어 가짓수가 600개에 달한다.
주변 반응은 어땠나?
“미국 명문대까지 나왔는데 고추장 팔고 있냐?” 어머니가 안타까워하며 그러시더라. “한인마트가면 훨씬 싼 제품들 많은데 누가 그런 프리미엄 제품을 사냐”는 얘기도 자주 들었다.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미국 현지에서 경험해 보면 알지 않나. 좋은 식품을 온라인으로 살 수 있는 서비스가 거의 없었다. 김씨마켓을 시작하기 전 잠재 고객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었는데, 주말에는 한인마트에 들러 그곳에서만 판매하는 한국 식품을 사고, 다른 품질 좋은 상품은 홀푸드 같은 다른 마켓에 또 들러 장을 보는 사례가 대다수였다. 그래서 정말 좋은 한국 식품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
김씨마켓 식품의 품질이 좋다는 걸 고객들이 어떻게 아나?
제품 소싱(Sourcing, 조달) 못지않게 컨텐츠에 집중했다. 상품의 설명을 자세히 기록하고, 생산자가 누구인지, 재료는 뭔지, 이 생산자는 왜 이렇게 식품을 만드는지 컨텐츠로 만들었다. 해당 식품, 식재료로 요리하는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예컨대 장독대에서 장을 숙성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다. 이런 제조 과정과 설명을 접하면 고객들도 이 식품의 품질이 좋다는 걸 알 수밖에 없다.
외국 고객들도 이런 컨텐츠를 매우 좋아한다. ‘코리안 바베큐는 이렇게 먹는다’고 알려주면 ‘저 소스(쌈장) 맛있겠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노력은 자연스럽게 ‘검색 엔진 최적화(SEO, Search Engine Optimization)’로 연결됐다. 구글에서 프리미엄 코리안 푸드를 검색하면 김씨마켓 페이지가 상단에 뜬다. 구글 검색 첫 페이지에 뜨는 김씨마켓 제품, 키워드가 470개다. 고객 획득 비용(Customer Acquisition Cost)이 없는 셈이다. 광고 없이도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여기에 있다.
타깃 고객층, 고객 데모그래픽(Demographic, 통계) 정보가 궁금하다.
김씨마켓의 컨텐츠는 도시에 살고 있는 30대 여성이 구어체로 상품에 관해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프리미엄, 오가닉, 몸에 좋고 건강한 식품을 선호하는 소득 수준이 높은 고객이 주요 타깃이다.
초기에는 미국인 고객이 80%에 달했고, 지금도 5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팬데믹 기간에 오프라인 마트를 방문할 수 없었던 현지 한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많이 알려졌고, 계속 찾아주셔서 전체 비중에서 현지인 비중이 다소 낮아졌다. 한인분들은 물론, 현지 미국인분들도 애용해 주신다.
가격, 빠른 배송보다 품질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초기에는 저녁 7시까지 주문하면 아침 7시까지 배송하는 서비스도 해봤다. 뉴욕에서는 당일배송도 해봤다. 그런데 고객 반응을 살펴보니 빠른 배송에 놀라워하지만, 품질을 더 중요하게 여기더라. 그래서 품질에 더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전국 단위 배송은 USPS(미국 우체국)나 UPS 서비스 등을 활용한다. 물론 빠른 배송과 낮은 가격도 중요하지만, 이 부분은 향후 회사를 더 키웠을 때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품질에 집중했기 때문에 세일즈맨 없이도 김씨마켓 식품이 미슐랭 스타 쉐프 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본다.
가격, 편의성에 집중하게 되면 똑같은 상품을 가지고 경쟁하게 되고, 결국 일반 한인마트, 아시안 마트와 차별성이 없어진다. 김씨마켓은 직접 한국에서 식품을 수입하며 생산자 인터뷰까지 해서 컨텐츠를 만든다. 이런 상품은 김씨마켓에서만 구할 수 있다.
고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품목은 무엇인가?
가장 매출 비중이 큰 품목은 쌀이다. 한국 프리미엄 쌀품종 ‘골든퀸3호’ 등 고급 쌀을 현미상태로 가져와서 우리가 직접 정미해 판매한다. 한국 쌀 품종이 300종 가까이 되는데, 우리는 그중 최고 품종 10여 가지를 골라, 섞지 않고 각각의 단일품종으로 공급하고 있다.
쌀은 정미하면 산패(산화 현상) 일어나며 신선도와 맛이 떨어진다. 그래서 김씨마켓은 가장 신선한 상태로 쌀을 공급하기 위해 미국 현지에 정미 시설을 갖췄다. 현미에서, 3분도, 5분도, 7분도, 백미에 이르기까지 고객이 원하는 분도수에 맞춰 프리미엄 쌀을 제공한다.
쌀을 소량으로 정미하고, 포장해 제공하는 건 까다로운 품질 관리 절차, 수작업을 필요로 한다. 한국에서 백미를 대량으로 가져와 그대로 판매하면 제품 설명에 별도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 없고, 정미 절차 및 포장재 등 기타 비용이 줄어 이윤은 더 남을 것이다. 그러나 고객에게 우리가 제공하고 싶은 건 최상급 품종의 쌀을 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신선하게 맛볼 수 있도록 하는 경험이다. 결국 제품 및 판매 철학의 문제로 이어진다. 아무나 김씨마켓을 흉내 낼 수 없는 이유다.
이런 품질 관리, 고객 중심 철학이 있기 때문에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에서 미국 1위, 전 세계 33위 식당에 이름을 올린 뉴욕 한식당 ‘아토믹스(Atomix)’를 포함한 여러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김씨마켓의 쌀을 쓰는 것이다.
아토믹스가 맨해튼 록펠러센터에 새롭게 오픈한 ‘나로(Naro)’, 현대자동차그룹이 뉴욕 미트패킹 지구(Meatpacking District)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제네시스하우스(Genesis House), 숯불갈비 레스토랑으로 미슐랭에 오른 ‘꽃(Cote)’, 미슐랭 셰프 김훈이 셰프가 운영하는 ‘메주(Meju)’도 김씨마켓 쌀을 사용한다.
고객에게 최고의 제품을 제공하는 것, 그게 김씨마켓이 생각하는 ‘고객경험(CX, Customer Experience)’이다.
김씨마켓만의 경쟁력, 전략이 있다면.
내부적으로는 고객을 7개 그룹으로 나눠서 각각의 특성에 맞게 관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스타트업은 확장가능하지 않은(non-scalable)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때론 무모해 보일 정도로 제품, 서비스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고객에 그만큼 집중하고 있다.
초기에 고객이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그 고객에게 답장을 두 시간 들여서 직접 쓴 적도 있다. 우리가 실수한 부분도 있지만, 우리가 의도한 게 무엇이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그 고객은 김씨마켓을 떠나지 않았고, 매우 만족하고 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김씨마켓을 추천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한 달 뒤 보내왔다.
미국에서 한인·아시안 프리미엄 식품 이커머스가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식품 시장 규모는 1.3조달러에 달한다. 최근 이커머스가 많이 보급됐지만, 아직 미국 시장에서 침투율은 10% 수준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아시안 푸드 마켓은 1300억달러 규모 시장이다. 그러나 침투율은 2%에 불과하다. 성장 잠재력이 엄청나다. 중요한 건 미국 내 아시안 인구가 히스패닉보다 더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안 가정은 평균 수입도 다른 인종에 비해 높다. 반면 아시안 푸드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이커머스 플레이어는 거의 없다.
미국 내 아시안 그로서리(Groceries, 식료품) 이커머스 스타트업 ‘Weee!’가 누적으로 8억5000만달러를 유치하는 등 현지 벤처 투자업계에서도 이 분야를 주목하고 있다. 지역마다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시안 마켓이 여럿 등장하고 있지만, 이들이 제공하는 상품은 매우 대중적이며 비슷비슷하다. 고객이 원하는 품질 기준은 더 높아질 것이고, 건강과 경험에 대한 고객 니즈 역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본다. 김씨마켓이 추구하는 ‘아시안 프리미엄 식품 이커머스’가 성공한다고 믿는 이유다.
한인이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갖나?
매우 중요하고 의미가 크다. 한국인은 똑똑하고 직업윤리도 훌륭하고, 성취욕도 있다. 스스로 동기 부여도 잘한다. 안타까운 건 사실상 섬나라에 가까운 한국 땅에서만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은 해외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서로 돕고 좋은 파트너십도 만들 수 있다. 선배 창업가들이 조언도 해주고 뛰어난 인재를 도울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미국에 더 많은 한인 스타트업이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씨마켓이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문제는 무엇인가?
커뮤니티가 무엇인지에 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단순한 이커머스 플랫폼을 넘어선 가치를 제공하고 싶기 때문이다. 김씨마켓은 ‘어떻게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서 출발했다. ‘건강(wellness)’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종에 상관없는 건강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
미국 일반 가정을 보면 먹는 것을 통한 건강 관리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가격, 맛, 특히 단맛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시아는 다르다. 아시아의 프리미엄 식품으로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많은 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씨마켓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싶다. 프리미엄 푸드 컬처, 라이프 스타일을 계속 만들어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