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고 자랑하고 싶은 경험을 만들어라
차경진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의 DCX 혁신 <2>
선호도 최하위 도미노 피자가 다시 사랑 받은 비결
제품과 서비스 현재 점검...경험 디자인으로 가치 창출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Mass Customization) 저자 조세핀 교수는 소비의 진화를 설명한다. 시대에 따라 경제적 가치는 진보한다. 인류에게 첫 경제적 가치로 인지된 것은 원자재(commodity)다. 광물이나 농산물, 동식물처럼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자연에서 구한 원자재를 경제 가치를 갖는 상품(Goods)으로 만들었다.
이런 산업사회가 50~60년 지속되다가, 상품 역시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고 여겨지던 시절을 지나 가격이 경쟁 가치를 갖게됐다. 아주 오랫동안 가격경쟁력이 중요한 시대를 지났다. 그 이후 상품은 점점 맞춤화(customization)됐다. 개인의 요구에 맞춰서 상품이 제공되면서 제품보다도 서비스가 더 큰 경제적 가치를 갖게됐다.
한때는 서비스가 제품의 가치를 높여주는 요소였지만, 이제는 서비스도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 됐다. 예를 들어, 배달 서비스, 필터 교체 서비스, 정수기 케어 서비스 등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이제 서비스도 새로운 경제적 가치의 단계로 옮겨갈 때가 됐다. 서비스 또한 개인 맞춤화가 필요해졌고 이에 더해 각 고객에 맥락에 맞게 모든 서비스들이 하나의 분명한 ‘의미’를 주는 총체적인 경험의 시대가 도래했다.
잊지 못할 경험을 만들어라
내가 정수기를 구매하는 것이 단순히 필터교체가 편리해서가 구매기준이 아니라 ‘물을 잘 안 마시는 우리 가족이 물을 더 많이 마시고 도와주는, 우리 가족을 물과 함께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의미라면 어떨까?
그 의미에 맞게 정수기는 디지털세계에서 우리 가족이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이전 달보다 ‘2리터 물 더 마시기’ 가족 미션을 완료하면 미네랄 필터 교체 어워드를 준다.
가족이 물을 잘 안마셔서 걱정인데 이 언맷니즈(Unmet Needs)를 해결 해주는 정수기라면 고객은 그 제품의 팬이 될 수 있다. 고객이 제공한 정보를 활용해 필요한 것을 말하기 전에 알아보는 것이다. 고객이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고 잊지못할 총체적인 제품과 서비스들로 제공한다. 그것이 바로 고객에게 잊지못할 ‘경험(Experience)'이 된다. 경험이 경제가 제공하는 것의 중심이 되는 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고객경험 프로젝트를 자문하다보면 기업은 '경험'을 일반적인 서비스 기획과 비슷하게 바라보고 접근한다.
그러나 상품기획과 경험 디자인은 분명 다르다. 경험은 하나의 서비스를 추가로 기획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객은 무엇때문에 소비하는가?
지난 컬럼 <스타벅스가 커피보다 굿즈에 힘주는 이유는>에서 스타벅스에 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맥락을 살펴봤다.
고객 소비 동기는 총 5단계의 빅 패턴을 갖는다. 커피의 맛처럼 고객한테 당연하게 느껴지는 기능적 가치가 충족되면 그 다음 고객의 소비 동기는 품질이다. 품질은 브랜드에서 느껴지는 신뢰일 수도 있고, 실제 커피 맛에서 느껴지는 산미와 고소한 맛의 차이일 수도 있다. 품질이 만족되면 그다음 선택의 기준은 프리미엄의 가치 또는 경제적 이익이다.
예를 들면 멋진 바리스타가 스토리텔링해주는 고급스러운 드립커피가 프리미엄의 가치일수도 있다. 품질에서 비슷하다면 더 저렴한 곳을 선택하는 경제적가치가 그 다음 선택의 기준이 될수 있다.
TV를 예로 들어보자. TV의 기능적 가치는 방송이 선명하게 잘 나오는 것이다. 단순히 본질적인 기능만 제공하는 TV는 가격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이런 가성비 시장은 한국 기업이 설 자리가 없다. 중국과 동남아 지역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같은 스펙과 기능으로 더 저렴한 TV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TV 시장은 품질로 승부를 보고 있다. 우리는 과거 소니(SONY)를 사면 고장도 안 나고 최고의 품질을 만날 수 있다고 믿었다. 품질로 밀어붙이는 가전 시장은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수 있을까? 중국에서 비슷한 품질 수준으로 그리고 더 저렴한 가격으로 이미 벌써 우리 기업의 위치를 위협하고 있다.
1000만원이 넘던 85인치 TV는 요즘 270만원 대이다. 화이트프레임TV, 롤러블TV, 투명TV와 같은 기존 TV와는 다른 프리미엄 제품도 나온다. 그 다음은 뭘까?
이제까지 TV는 방송을 보는 디스플레이었다. 이제 새로운 경험과 의미를 주는 TV는 무엇일까? 방송을 보는 TV가 아니라 ‘생활 속 스크린(Life On Screen)’의 개념으로 평소에는 갤러리처럼 음악과 함께 멋진 사진이나 갤러리의 느낌으로 켜있다가, 요리를 하고 싶다고 하면 내장된 AI가 내가 평소 즐겨보던 유튜브 요리채널을 보여주는 새로운 경험과 의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에서는 세로 방향을 기본으로 하는 TV를 선보였다. 평소에는 세로 방향으로 현재 날짜와 시간, 사진을 보여주다가 영화를 감상할 때는 자동으로 가로 방향으로 회전해 가로 TV가 된다. 단순히 방송시청을 위한 TV를 넘어 인테리어 오브제나 사진 액자로 공간 변화라는 새로운 의미를 준 것이다.
엘지전자의 스탠바이미TV는 라이브쇼핑에 등장 1분 만에 품절됐다. 스탠바이미는 '나를 따르는 스크린(Follow me screen)'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주는 디스플레이다. 기존에는 우리가 TV 앞에서 같은 자리에 앉아 시청하는 형태였다면 스탠바이미는 주인을 따라다니는 개념이다.
이 제품은 집에서 옷 스타일링 라이브 방송을 하는 디지털 세대에게 맥락적 경험을 선사하고, 병원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병원 시술에 대한 맞춤형 설명서를 제공하는 상담 디스플레이의 역할을 하는 등 다양한 맥락에서 새로운 스크린 경험을 만들어가고 있다.
제품과 서비스 현재 가치를 점검하라
그렇다면, 지금 우리 기업 제품과 서비스는 지금 어떤 가치에 머물러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제품은 아직 기능적 가치를 선사하는 것에 머물러 있는가? 이제 기능적 가치에서 더 나아가 품질로 승부를 보고 있나? 아니면 이미 경제적 가치나 프리미엄 가치를 준비하고 있나?
후발주자들이 우리 제품 품질을 손색없이 재현해내고 가격 경쟁력이나 프리미엄 가치까지 똑같이 재현해낸다면, 그 다음은 이제 경험 설계로 옮겨갈 때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데이터에서 찾은 맥락을 매핑으로 탄생한 경험이 고객에게 선명한 ‘의미'로 다가간다면 그 의미는 그 어떤 후발주자들도 재현해내지 못할 것이다.
도미노, 피자 주문 앱과 로봇
그렇다면 경험은 무엇인가? 경험의 본질은 무엇인가?
경험은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고, 다시 해보고 싶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가치를 지닌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2016년 호주 브리즈번 주택가에 피자 배달 로봇이 나타났다. 군용 로봇을 개조해서 도미노의 GPS자료를 탑재한 피자배달 로봇은 네 바퀴로 시속 20km 속도를 낸다. 인도와 자전거 도로 등으로 이동하고 레이저 센서를 이용해 장애물을 피해간다.
그 때 당시 호주 사람들은 느닷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로봇이 궁금해서 도미노피자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집 주소를 입력하지 않아도 GPS 정보가 전송되기 때문에 해변에서도 주문할 수 있었다. 해변에 로봇이 도착하는 순간 오븐에서 이제 막 뺀 듯한 따뜻한 피자와 냉장고에서 이제 막 꺼낸 듯한 콜라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을 SNS에 올려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자랑하기 시작했다.
2008년 도미노는 주가가 3.8달러까지 떨어질 정도로 피자 브랜드 선호도 최하위였다.
이런 도미노피자가 2021년 430달러까지 주가가 올랐다. 도미노피자가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주문배달 방식의 디지털화다. 이들은 '제로 클릭(Zero Click)' 이라는 주문앱을 만들었다. 고객이 앱을 실행시키는 순간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주문이 되는 구조이다. 심지어 결제정보까지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 피자를 먹고 싶으면 그저 앱을 실행하면 된다.
과거 주문 데이터에 기반해 그 시간에 자주 주문하던 피자가 자동 주문되는 형식이다. 앱을 실행하면 실수로 실행한 경우를 대비하여 주문이 들어가기 전까지 10초 동안 기다려주는데, 다른 걸 먹고 싶다면 이때 버튼을 클릭해서 주문을 수정할 수 있다.
도미노가 성공한 것은 대단한 맛을 구현했기 때문도, 엄청난 기술 혁신을 보여주었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우리 고객은 언제, 왜 피자를 먹는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피자를 주문하는 사람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혁신을 시작했다.
도미노는 뉴질랜드 로봇에 에어 미국 휴스턴에서 선별된 고객을 대상으로 로봇 자동차 배달 서비스를 출시했다. 도미노가 선보인 제로 클릭 서비스와 딜리버리 로봇 기술은 이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 도구에 불과했다.
경험 디자인으로 가치를 창출하라
고객 경험이란 고객의 맥락에서 시작해 그 문제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경험으로 만들어내는 혁신이다. 우리가 경험디자인으로 새롭게 우리 가치를 옮겨가지 못하면, ‘피자’하면 당연했던 피자 브랜드의 현재가 불편한 과거가 된다. 아직 혁신하지 못한 경쟁자는 그렇게 과거로 도태된다.
고객 경험 혁신은 디지털 기술로 더 개인화 되고, 더 연결된 선명한 경험으로 만들어진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경쟁사가 먼저 시작한다. 우리 제품의 현재 위치는 명예로운 과거로 사라질 수 있다.
디지털시대에 고객을 끌기 위해선 디지털 세계에 경험을 혁신적으로 설계해야하며 이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된다. 우리는 경쟁사가 어떤 기능을 선보이는지를 보고 제품의 차별화를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할 게 아니라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객이 어떤 맥락을 가지고 있는데 그 맥락 속에는 또 어떤 언맷니즈를 가지고 있는 지부터 찾아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 마케팅에 힘을 쏟고 쿠폰과 메세지 광고 등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려고 노력중이다. 사실 고객을 기업에 락인(lock-in)하기 위해 효과가 큰 것은 많은 회사들이 시도 중인 쿠폰 이벤트보다 고객 경험을 통한 유도이다.
고객의 마음 속을 공감하며 얻어낸 경험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한번 쓰고 버리는 쿠폰보다 고객의 머리 속에 더 깊게 인지된다. 고객이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나는 시간을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것인지 가치를 주는 것은 고객을 다시 재방문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이는 재방문 뿐만 아니라 디지털 세계에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게 만들고 이에 더하여 구전 효과까지 가져온다.
차경진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기고
차경진 교수는 데이터로 고객경험을 디자인하는 전문가다.
차 교수는 한양대 경영학과 경영정보시스템 전공주임이다. 비즈니스인포메틱스학과를 맡고 있다. 경영정보시스템 박사로 석사 때에는 추천전문가시스템을 연구했고 박사과정에서는 기업의 DX(Digital Transformation) 전략을 연구했다. 2011년부터 SK, LG, 삼성, KT, 두산, LS, GS 등 대기업에서 데이터로 고객경험을 만들어가는 AI기술 및 DCX(Data Driven Customer Experience) 프로세스를 강의했다. 특히 제조업, 유통, 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 군에서 데이터 기반 고객경험 혁신을 자문한다. 현재도 국내 대기업에서 미래 디스플레이 경험, 푸드 스타일러 경험, 미래 세탁 라이프 경험, 데이터 기반 브랜드지수 개발, 스마트홈서비스 경험 등의 DCX관련 산학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현장에서 데이터 기반 고객경험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 학계에서는 한국IT서비스학회 부회장, 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 부회장, 한국경영정보학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