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USA 드론’ 총동원령…한국은 왜 선택받지 못하나
[기고] 모리스의 드론 패권전쟁 ②
미국, 중국산 드론 퇴출 뒤 ‘연 100만 대 생산’ 총동원령…자본·관세·군 공장까지 투입
DJI 드론 신호로 조종사 위치까지 노출…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메이드 인 USA’ 공급망
한국산이 탈락하는 이유는 기술·가격 아닌 인증과 대응력…미국 공장 완성 전이 마지막 기회
전쟁의 모습이 바뀌고 있습니다. 수백만 달러짜리 전차와 미사일을 위협하는 것은 이제 수천 달러짜리 드론입니다.
미국은 지금 '총동원령' 상태입니다. 펜타곤의 조달 방식이 바뀌고, 실리콘밸리의 자본과 인재가 국방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중국산 부품을 배제한 자리에서는 모터·배터리·카메라·반도체를 둘러싼 새로운 공급망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드론은 지금 전쟁과 제조업, AI와 자본, 국가안보와 산업정책이 한꺼번에 만나는 최전선입니다.
더밀크가 ‘모리스의 드론 패권전쟁'을 기획한 이유입니다.
이 연재는 새로운 드론과 무기를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펜타곤이 왜 수십만 대의 드론을 오디션으로 구매하는지, 중국 없이 드론을 만들 수 있는지, 자율비행과 군집 소프트웨어가 전쟁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돈과 사람이 왜 다시 국방으로 몰리는지를 추적합니다.
[모리스의 드론 패권전쟁] ① 세계 최강 미군에 드론이 없다니…30만 대 ‘전쟁 공장’이 열린다
지난 5월, 한국의 한 파트너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국 드론 기업 파워러스(Powerus)가 한국에서 모터 공급업체를 찾고 있으니, 믿을 만한 회사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틀 뒤에는 미국의 다른 파트너도 파워러스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과 미국의 파트너가 거의 동시에 같은 회사의 모터 조달 문제를 이야기했다. 파워러스가 그만큼 다급하게 모터 공급업체를 찾고 있다는 뜻이었다.
파워러스는 미 육군에서 드론 작전을 수행한 브렛 벨리코비치(Brett Velicovich)가 창업한 회사다. 미 국방부가 최대 6만 대의 드론을 구매하는 ‘드론 지배 프로그램(DDP)’의 건틀릿 2에 도전하고 있었다.
드론을 설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미 국방부에 납품하려면 중국산 모터와 배터리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에서 국방부 기준에 맞는 드론용 모터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업체가 드물다는 점이었다. 수주에 성공하더라도 모터를 확보하지 못하면 드론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파워러스가 다급하게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공급업체를 찾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러던 지난 6월,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미국 드론 부품업체 언유주얼 머신즈(Unusual Machines)가 파워러스에 3,000만 달러를 투자한 것. 언유주얼 머신즈는 미국에서 드론 모터를 생산하는 몇 안 되는 기업이다.
미국산 모터가 필요한 드론 회사에 미국 모터 제조사가 대규모 자금을 넣었다. 단순한 재무적 투자라기보다 향후 생산과 공급망 협력 가능성을 열어둔 전략적 결합으로 읽힌다. 공식적인 모터 공급계약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의미는 명확했다. 미국산 모터가 필요한 파워러스와 모터를 생산하는 언유주얼 머신즈가 지분 관계로 묶인 것이다.
한국까지 왔던 파워러스의 모터 조달 기회는 결국 미국 기업의 투자로 마무리됐다. 미국은 중국산 부품을 배제하는 동시에 투자와 인수를 통해 자국 드론 공급망을 빠르게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 사례는 미국 드론 공급망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흐름을 보여준다. 미국 기업들은 필요한 부품을 구매계약으로만 확보하지 않는다. 부품업체를 인수하고, 부품업체는 고객이 될 드론 회사에 투자하며 잃어버린 공급망을 확보하고 있다.
짧은 드론 영상, 21세기 전쟁의 모든 것을 바꿔놓다
미국이 중국산 드론을 밀어내기 시작한 배경을 이해하려면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공개된 짧은 영상 하나가 드론을 바라보는 서방의 시선을 바꿔놓았다.
영상에는 DJI 매빅으로 추정되는 드론이 이륙했다가 조종사 근처로 돌아와 착륙하는 모습이 담겼다. 몇 초 뒤, 드론이 내려앉은 바로 옆에 포탄이 떨어졌다. 영상을 올린 사람은 우크라이나 최대 DJI 판매업체를 운영하던 타라스 트로이악(Taras Troiak)이었다.
타라스 트로이악은 "러시아군이 체르노빌 일대에 DJI의 드론 탐지 장비인 ‘에어로스코프(AeroScope)’를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군이 DJI 드론을 띄우면 러시아군이 드론뿐 아니라 조종사의 위치까지 알아낼 수 있다는 경고였다.
에어로스코프는 원래 공항이나 경기장 주변에 침입한 드론을 찾아내기 위해 DJI가 개발한 보안 장비다. 비행 중인 DJI 드론의 신호를 수신해 기체의 위치와 비행 정보, 조종자의 위치를 화면에 표시한다.
문제는 민간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기술이 전장에서는 적군의 드론 조종사를 추적하는 장비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영상의 진위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DJI도 러시아군에 데이터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논란이 던진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드론이 이륙할 때마다 조종사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신호가 전파로 나가고, 제조사가 그 신호를 읽는 장비까지 판매한다면 그 드론을 전쟁에서 믿고 사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DJI 드론이 내보내는 신호를 숨기기 위한 개조가 확산했다. 결국 DJI는 2022년 4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에서 제품 판매를 중단했다.
*아래 영상 : 2022년 3월 우크라이나의 DJI 리셀러 타라스 트로이악이 공개한 영상. DJI 드론이 착륙한 직후 착륙 지점 인근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방의 안보 당국은 중국산 드론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드론은 단순 촬영 장비가 아니었다. 위치와 영상, 비행 정보를 수집하고 전송하는 ‘날아다니는 센서’였다.
이런 인식이 생기니 세계 드론 시장의 상당 부분을 중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발견하게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위험을 각국 국방 당국의 눈앞에 펼쳐 보였다.
미국이 자국 드론 산업을 다시 키우겠다고 나선 배경에도 이 장면이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중국산 드론의 위험을 가장 크고 끈질기게 주장한 주체는 정부가 아니었다. 중국 기업과 경쟁하던 미국 드론 업계였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중국산 드론 배제를 정부 주도의 안보 정책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중국산 드론을 미국 시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워싱턴을 움직인 것은 미국 드론 기업들이기도 했다.
과정은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2023년 미 하원에는 DJI의 신규 제품이 미국 통신망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중국공산당 드론 대응법(Countering CCP Drones Act)’이 발의됐다. 스카이디오(Skydio), 브링크(BRINC), 틸(Teal) 등 평소에는 서로 경쟁하던 미국 드론 기업들이 청문회와 성명을 통해 법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당시 브링크에서 동료들과 DJI 배제 전략을 논의했던 회의가 지금도 떠오른다. DJI는 자사 제품에 데이터 보안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안은 2024년 9월 미 하원을 통과했고, 핵심 내용은 그해 말 국방수권법(NDAA)에 반영됐다. 2025년 12월,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외국산 드론과 주요 부품을 국가안보 위협 목록인 ‘커버드 리스트(Covered List)’에 올렸다. 신규 외국산 드론은 미국 판매에 필요한 통신장비 인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올해 8월에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관세까지 부과됐고, 지난달에는 같은 규제 논리가 로봇으로 확대됐다.
법안 발의에서 국방수권법, 판매 인증 차단, 관세 부과까지. 미국은 4년에 걸쳐 중국산 드론이 들어오는 문을 하나씩 닫았다.
미국 드론 업계에도 중국산 배제는 국가안보의 문제인 동시에 생존의 문제였다. 워싱턴에서는 안보와 산업의 이해관계가 겹칠 때 정책이 빠르게 법이 된다.
그런데 중국산 드론이 들어오는 문을 모두 닫고 나서야 미국은 더 근본적인 문제와 마주했다. 중국산은 막았지만, 정작 드론과 부품을 대량으로 생산할 공장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용어설명]
에어로스코프(AeroScope): DJI가 만든 드론 탐지 시스템. DJI 드론이 비행 중 송출하는 신호를 수신해 기체 위치, 고도, 속도와 함께 조종자의 위치까지 실시간으로 표시한다. 공항·경기장 등의 보안용으로 판매됐다.
Countering CCP Drones Act: 2023년 발의된 미국 법안. 중국 DJI 등의 신규 통신·영상 장비를 FCC 인증 대상에서 배제하는 내용. 2024년 하원 통과 후 핵심 내용이 국방수권법(NDAA)에 반영됐다.
FCC Covered List: 미 연방통신위원회가 국가안보 위협으로 지정한 장비 목록. 등재되면 신규 FCC 인증(미국 판매 허가)이 불가능하다. 2025년 12월 모든 외국산 드론·핵심 부품이, 2026년 7월 이동형 로봇이 추가됐다.
미국이 드론을 대량생산하지 못하는 이유
자폭 드론 한 대를 분해하면 핵심 부품은 크게 여섯 가지로 나뉜다.
(1) 기체를 띄우는 모터와 프로펠러, (2) 모터의 속도를 조절하는 전자식 변속기(ESC), (3) 전력을 공급하는 배터리 셀, (4) 표적을 찾는 카메라와 짐벌, (5) 비행을 통제하는 비행컨트롤러, (6) 조종 신호를 주고받는 통신 장비 등이다.
최근에는 자율비행을 처리하는 에지 AI가 기체에 탑재되면서 반도체가 일곱 번째 핵심 부품으로 떠올랐다.
반도체는 미국이 비교적 자신 있는 분야다. 퀄컴(Qualcomm) 등이 드론용 칩을 공급하고 있어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성할 수 있다. 문제는 나머지 부품이다.
지난 10년 동안 드론 부품의 가격을 가장 낮추고 생산량을 가장 크게 늘린 곳은 중국 선전(심천)이었다. 중국의 경쟁력은 DJI라는 완제품 기업 하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DJI 아래에는 모터와 배터리, 카메라, 변속기 등을 대량 생산하는 수천 개의 공장이 있다. 이 생태계가 저렴한 가격과 빠른 납기를 앞세워 세계 드론 부품 시장의 표준을 만들었다.
미 국방부는 건틀릿 2부터 중국산 모터와 배터리 사용을 금지했다. 말로는 ‘중국산 부품을 미국산으로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제조 현장에서는 드론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문제다. 모터나 배터리 하나만 바꿔도 기체의 무게와 소비전력이 달라진다. 그러면 기체 구조와 비행시간, 제어 소프트웨어까지 다시 조정하고 시험해야 한다.
미국산 대체 부품도 품목마다 상황이 다르다.
소형 프로펠러는 미국 내 공급망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반면 대형 프로펠러는 구하기가 훨씬 어렵다. 드론이 커질수록 공기역학 설계가 복잡해지고, 가벼우면서도 강한 카본 복합소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품을 일정한 품질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많지 않다. 모터 역시 미국 제조사가 몇 곳 있지만 생산량과 가격 면에서는 아직 중국 업체를 따라가기 어렵다.
배터리 셀은 더 심각하다. 생산 기반이 사실상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때문에 최근 미국의 드론용 배터리 기업들이 한국을 찾기 시작했다.
실리콘 음극 배터리를 만드는 미국 기업 앰프리어스(Amprius)는 대전의 한국 협력사들과 미국 국방수권법 요건을 충족하는 생산망 구축에 나섰다. 한국 배터리 스타트업 리베스트(LiBEST)와 연간 100만 셀 규모의 공급 협약을 체결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도 미국 정부 및 방산업체들과 드론용 배터리 공급을 논의하고 있다. 미국이 새로 그리는 드론 공급망 지도에서 한국이 가장 먼저 자리를 잡기 시작한 분야가 배터리인 셈이다.
9월 3일부터 적용되는 미국의 드론 관세도 공급망을 바꾸기 위해 설계됐다. 25kg을 초과하는 대형 드론과 핵심 부품에는 100%, 소형 드론과 기타 부품에는 25%의 관세가 부과된다.
대형 드론에 더 높은 관세를 매긴 데는 이유가 있다. 대형 드론에 들어가는 모터와 배터리는 가격이 비싸고 기술 진입장벽도 높다. 미국은 중국산 완제품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고부가가치 부품의 생산시설까지 미국으로 끌어오려는 것이다.
다만 모든 외국 기업에 같은 벽을 세운 것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 등 동맹국 기업은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면 관세율 상한을 15%로 낮출 수 있다.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약속한 기업에는 투자 규모에 따라 관세를 면제하는 길도 열어뒀다.
구조는 분명하다. 중국산에는 높은 장벽을 세우고, 동맹국에는 조건부 통로를 열어두며, 미국에 직접 투자하는 기업에는 시장 안으로 들어올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미국의 드론제조 총동원령 .. 정부, 민간기업, 대학, 스타트업이 동시에 움직인다
언유주얼 머신즈의 3,000만 달러 투자는 미국이 드론 공급망을 확보하는 첫 번째 방식을 보여준다. 이 회사는 올랜도 공장의 모터 생산 능력을 늘리는 동시에, 자신들이 만든 모터를 사용할 드론 기업에 투자했다. 단순히 공급계약을 맺는 데 그치지 않고 지분 관계로 고객사를 묶은 것이다.
언유주얼 머신즈는 이전부터 인수를 통해 사업 영역을 넓혀왔다. 지난해 6월에는 호주의 드론 모터 설계기업 로터 랩(Rotor Lab)을 인수했다. 지난 5월에는 캘리포니아 토런스의 드론 배터리 팩 전문기업 업그레이드 에너지(Upgrade Energy)를 약 5,200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이 전략의 힘은 기존 고객망에서 나온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집계에 따르면 건틀릿 1에서 선정된 11개 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미 언유주얼 머신즈의 고객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이 회사에서 모터를 구매했다. 배터리 사업까지 추가되면 같은 고객에게 모터와 배터리를 함께 판매할 수 있다.
배터리 팩을 미국에서 조립한다고 공급망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팩 안에 들어가는 배터리 셀은 여전히 아시아에서 들여와야 한다. 앰프리어스가 대전에서 한국 기업들과 생산 협력망을 구축하고, 리베스트와 공급 협약을 맺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유주얼 머신즈의 확장 방향은 분명하다. 모터에서 배터리로, 부품 공급에서 완제품 드론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로 이동하고 있다. 인수를 통해 설계와 생산, 부품과 고객을 한 공급망 안에 넣는 것이다. 한 기업이 추진하는 이 수직계열화는 미국이 국가 차원에서 구축하려는 드론 산업 생태계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여기에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얽혀 있다. 언유주얼 머신즈의 자문단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참여하고 있다. 파워러스에도 트럼프 형제가 투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와 규제로 외국산 드론을 밀어내는 사이, 대통령 가족은 미국 내에서 커지는 드론 공급망에 투자자와 자문역으로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 방식은 공장 자체를 사들이는 것이다. 방산 제조기업 암카(Amca)는 지난해 3억 달러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10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이 회사가 만드는 것은 드론 완제품이 아니다. 보잉과 록히드마틴에 부품을 공급하던 기존 공장들을 인수한 뒤 AI와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생산성을 높인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드론 기업뿐 아니라 ‘드론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제조 능력’에 돈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자동화가 필요한 이유는 생산 물량에 있다. 미 국방부가 DDP를 통해 구매하려는 드론에 필요한 소형 모터만 400만 개가 넘는다. 단일 프로그램의 수요가 이 정도다. 기존 미국 공장의 생산방식과 능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다.
민간 기업이 필요한 물량을 만들지 못하면 군이 직접 생산에 나선다.
미 육군은 ‘스카이 파운드리(Sky Foundry)’라는 자체 드론 생산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올가을까지 월 1만 대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생산 방식은 군과 민간이 역할을 나누는 구조다. 텍사스 레드리버 군수창과 같은 군 시설에 생산라인을 설치하고, 민간 기업은 소프트웨어와 임무 장비를 공급한다.
기체와 프로펠러는 3D 프린터로 빠르게 제작한다. 병사들이 실제 훈련과 작전에서 사용한 뒤 문제점을 알려주면 이를 반영해 설계를 계속 수정한다. 의회에는 생산 목표를 연간 100만 대로 명시하자는 법안까지 제출됐다.
연방정부가 민간 제조업체를 동원하기 위한 제도도 내놨다. 미 국방부와 중소기업청(SBA)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소 공장을 군수품 생산에 참여시켰던 ‘스몰러 워 플랜츠(Smaller War Plants)’ 구상을 80여 년 만에 되살렸다.
핵심은 돈과 정보, 규제다. 연방정부가 중소 제조업체의 생산설비 도입과 공장 증설에 필요한 대출을 최대 90%까지 보증한다. 전국 공장의 생산 능력을 조사해 어느 부품이 어디에서 부족한지 파악하고, 생산 확대를 가로막는 규제도 정비한다. 우선 지원 대상에는 군수품과 드론, 자폭무기가 포함됐다.
미국 방산 공급망의 70%를 차지하는 것은 중소 제조업체다. 정부가 대형 방산업체에만 의존하지 않고, 미국 전역의 중소 공장에 드론과 무기 생산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대학도 움직인다. 피츠버그에서는 카네기멜런대학과 벤처 스튜디오 카네기 파운드리가 드론 제조사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생산 플랫폼 ASMP를 출범시켰다. 여러 드론 기업이 각자 공장을 지을 필요 없이 이곳의 생산설비와 제조 기술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ASMP 출범을 주도한 로버트 J. 슈체르바(Robert J. Szczerba) 카네기 파운드리 공동창업자 겸 CEO는 “미국의 문제는 드론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는 데 있지 않다. 드론을 대량으로 생산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록히드마틴 기술 임원 출신인 그의 말은 미국 드론 산업의 병목을 정확히 짚는다.
미국은 지금 민간과 군, 정부, 대학까지 '드론 제조 총동원령' 상태다. 방산 기업은 부품업체와 고객사에 투자하고, 필요한 기술을 가진 회사를 인수한다. 군은 직접 생산라인을 만들고, 정부는 중소 공장의 증설을 지원한다. 대학은 여러 기업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제조 기반을 제공한다.
드론 공급망을 단순한 구매계약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다. 자본을 투입하고 공장을 확보해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자체 생산 구조'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드론을 통해 미국내 방위 제조 산업을 뿌리부터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것이다.
[용어설명]
언유주얼 머신즈(Unusual Machines): 올랜도에 모터 공장을 둔 미국 드론 부품사. 나스닥 상장사이며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어드바이저로 참여하고 있다. 2025년 호주 로터 랩, 2026년 배터리 팩 전문사 업그레이드 에너지를 잇달아 인수하며 수직계열화를 진행 중이다.
암카(Amca): 항공·방산 부품 제조사들을 인수해 AI·자동화로 현대화하는 미국 스타트업. 2025년 시리즈 B에서 3억 달러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10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스카이 파운드리(Sky Foundry): 미 육군이 세운 자체 드론 생산 체계. 2026년 가을 월 1만 대 생산이 목표다.
미국 드론 방산 시장 지도에 한국 기업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얼마 전 투자를 검토하던 미국 드론 스타트업을 실사했다. 창업자와는 약 1년 동안 교류해왔고, 회사와 기술도 눈여겨보고 있었다.
실사에서 내가 집중적으로 물은 것은 부품 공급망이었다. “모터는 어디서 삽니까? 배터리는요? 카메라와 열영상 센서, 라이다는 어디 제품을 씁니까?”
창업자가 말한 공급업체들은 대부분 익숙한 이름이었다. 다른 미국 드론 기업을 조사할 때도 반복해서 등장했던 회사들이었다.
미국 드론 업체들이 비슷한 곳에서 부품을 사는 이유는 단순하다. 국방·안보 기준을 충족하면서 필요한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업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모터는 미국의 한 프리미엄 업체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 제품도 알아봤고 한국 업체도 검토했다고 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기술력도 좋은 한국산이 아니라 가격이 가장 비싼 미국산 모터였다. "왜 비싼 제품을 선택했느냐?"고 묻자 창업자는 이렇게 답했다.
“비싸더라도 인증된 제품을 삽니다. 규제를 통과한 부품을 바로 공급할 수 있는 회사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 드론 시장의 가격 결정 방식이다. 적어도 이 회사가 한국산 대신 미국산을 선택한 결정적인 기준은 가격이 아니었다. 미국 방산시장에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인증과 증빙이었다.
내가 확인한 여러 미국 드론 기업에서도 한국산 부품이 검토됐다. 그러나 상당수는 실제 공급계약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유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미국 정부의 기준을 충족한다는 증빙서류가 없고, 초기 검증을 위한 소량 주문에 대응하지 않으며, 문의에 대한 회신도 늦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확인한 사례 가운데 기술력이 부족해서 탈락한 경우는 없었다.
한국 업체들은 미국 시장에서 주로 기술적 차별성과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다. 기술은 좋은데 중국산보다 약 30% 비싸지만 미국산보다는 훨씬 저렴하다는 논리다. 소형 드론 부품은 미국산 가격이 중국산의 5~10배에 이르니, 그 중간 가격대에 한국 기업의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미국의 방산 드론 업체들이 먼저 확인하는 것은 가격이 아니다. 이 부품을 사용해 정부의 심사와 조달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1) 부품소재의 원산지를 입증할 수 있는가? (2) 블루 UAS 인증이나 등재를 위한 검증 이력이 있는가. (3) 미 국방수권법(NDAA)의 공급망 요건을 충족하는가. (4) 중국산 소재와 부품이 어디까지 포함됐는지 추적할 수 있는가 등이다.
이런 내용을 증명할 서류가 없다면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모터라도 미국 방산시장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미국이 확인하려는 것은 단순히 “중국산이 아니다”라는 사실이 아니다. 부품이 어디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며, 어떤 신호를 외부로 보내고, 그 기능을 누가 통제할 수 있는지까지 추적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 드론의 부품 하나하나를 자국 공급망으로 바꾸고 있다. 자본과 인수, 규제와 인증, 관세와 정부 조달을 한 방향으로 움직이며 중국이 장악한 시장을 되찾으려는 총력전이다. 이 속도가 계속된다면 중국과의 생산 격차도 예상보다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
한국 기업이 미국 드론 방위산업의 공급망에 진입할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미국 내 생산능력이 갖춰질수록 동맹국 기업에 열려 있는 자리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기술이 뛰어나다”거나 “미국산보다 싸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원산지를 증명하고, 국방수권법 기준을 충족하며, 소량의 검증 주문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드론 공급망 지도에 이름을 올리는 기업은 기회를 기다리는 곳이 아니라, 인증과 서류를 먼저 준비하고 움직이는 곳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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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구(Morris Koo)는 누구?
오브아이 벤처스(OVI Ventures) 창업자·대표. 실리콘밸리와 시애틀을 오가며 미국 드론·피지컬 AI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한다. 드론 회사를 안에서 키워본 오퍼레이터 출신 투자자다(링크드인).
미국 공공안전 전문 드론 1위 기업 브링크 드론스(BRINC Drones)에 초기 멤버로 합류, 전략 디자인 부사장(VP of Strategy and Design)으로 회사가 기업가치 1조 원에 이르는 성장 과정을 C레벨에서 함께했다. 미·중 드론 공급망 전쟁의 한복판에서 중국 정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 이전에는 삼성전자 협력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미국에서 석사를 마친 뒤 미국 최대 비상장 기업집단 가운데 하나인 코크(Koch)를 거쳐 컴캐스트와 HP에서 수석·팀장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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