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GPU 없이 슈퍼컴 1위… 박영선·주영섭 “생태계 설계 대전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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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익 2026.07.17 08:37 PDT
중국, GPU 없이 슈퍼컴 1위… 박영선·주영섭 “생태계 설계 대전환해야”
중국 슈퍼컴퓨터 '라인샤인' (출처 : 웨이보 캡처)

[3대 메가프로젝트 분석 웨비나] 5000조원 AI 자본전쟁
중국, 9년 만에 세계 1위… 박영선 위원장 “AI 생태계 설계하는 국가로”
주영섭 교수 “문제는 데이터센터 15GW… 버티컬 AI로 승부해야” 제언
더밀크의 시각: 분열의 언어에서 분업의 언어로

글로벌 AI 패권 경쟁이 전례 없는 규모의 자본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빅테크를 중심으로 연간 1조달러(약 1300조원) 상당의 AI 인프라 투자를 단행하고 있으며 중국도 향후 5년 간 2조위안(약 450조원)을 AI 데이터센터 및 컴퓨팅 인프라 구축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에 한국 정부는 향후 10년 동안 민간 주도로 5000조원을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에 쏟아붓는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더밀크는 역대 최대 규모로 평가되는 3대 메가프로젝트의 중요성을 고려해 프로젝트의 본질을 분석하고 실질적인 성공 방정식을 모색하기 위한 특별 웨비나를 14일 개최했다. 

이날 웨비나 패널 디스커션에 나선 박영선 재정경제부 전략경제자문단 위원장(전 중소밴처기업부 장관), 주영섭 서울대학교 특임교수(전 중소기업청장)는 정부 정책 수립 및 산업계 경험을 토대로 구체적인 국가 전략을 제시했다. 

미·중 AI 패권 갈등과 자본 경쟁 격화 속에서 시스템과 생태계 중심 경쟁으로 전환하고, 여러 산업과 기술 분야에 걸쳐 있는 국가 AI 전략을 하나의 비전 아래 연결, 통합해야 한다는 게 핵심 메시지였다.

액상 프로방스 프랑스 경제포럼에 참석한 박영선 위원장이 AI 반도체 정책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출처 : 박영선 위원장)

중국, 9년 만에 세계 1위… 박 위원장 “AI 생태계 설계하는 국가로”

박 위원장은 "중국의 기술적 성장은 한국서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이다"고 강조했다. 주장의 구체적 근거로 지난 6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발표된 세계 슈퍼컴퓨터 500 순위를 제시했다.

중국의 ‘라인샤인(LineShine)’ 슈퍼컴퓨터가 9년 만에 세계 1위 자리를 탈환한 것. 더욱 놀라운 점은 라인샤인이 미국의 최첨단 GPU를 단 한 장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중국이 자체 개발한 기술만으로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데 있다.

라인샤인은 HPL 벤치마크에서 2.198엑사플롭스를 기록해 기존 1위였던 미국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엘 캐피탄(1.809엑사플롭스)’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혼합정밀도 벤치마크 등 다른 결과까지 고려하면 ‘AI 연산 세계 최고 성능’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업계에 충격을 던지기엔 충분했다.   

박 위원장은 “이는 엔비디아 중심의 전 세계 AI 컴퓨팅 공식과 생태계에 던지는 첫 번째 구조적 도전”이라며 “미국의 GPU 수출 제재가 더 이상 중국에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자체 CPU뿐 아니라 인터커넥트, 독자 운영체제(OS), 컴파일러까지 통합해 고성능 컴퓨팅(HPC) 생태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박 위원장은 “중국의 메모리 기술 역시 한국의 턱밑까지 바짝 쫓아왔다”며 초고속 연산을 보조하는 DDR5 및 HBM(고대역폭메모리) 기술에서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고 짚었다. 

향후 10년간 바뀔 대한민국의 산업지도 (출처 : 더밀크 (각사 발표 종합))

이와 맞물려 박위원장은 "지난 한 달간 외국계 자본이 국내 주식을 지속적으로 매도한 자금이 홍콩이나 상하이 주식시장의 중국 기술 기업 쪽으로 흘러 들어갔을 개연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이제 단순한 반도체 칩 공급 국가에서 벗어나 ‘시스템을 파는 나라’, 나아가 ‘AI 생태계를 전체 설계하는 국가’로 국가 경쟁력의 무게중심을 이동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내놓은 5000조원 규모의 프로젝트도 "국가 비전 아래 개별 사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반도체 및 전력(K-에너지) 생태계 전략이 미흡하며 활용보다는 지나치게 하드웨어 공급에 치우쳐 있다고 꼬집었다. 

박 위원장은 "메가 프로젝트로 디테일을 전면 보완하고, 국가 안보 관점에서 기술·산업·금융·에너지를 통합하는 전략적 접근을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주영섭 교수가 세바시 무대에서 CES 2025 핵심 메시지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출처 : 주영섭 교수)

주영섭 교수 “문제는 데이터센터 15GW… 버티컬 AI로 승부해야”

주영섭 서울대 특임교수는 먼저 현재 시장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AI 거품론’을 과장된 것으로 일축하며 "AI 대전환은 인류와 산업 전반을 바꾸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고 말했다. 정부의 방향성은 맞다는 것이다.  

주 교수는 지역 특성과 국토 균형 발전을 안배하는 정부 정책 방향도 동의했다. 그러나 전력과 인력 수급 등 병목 현상은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봤다.

특히 ‘15GW(기가와트) 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에 대해서는 수요를 따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1GW의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 약 500억달러(약 75조원)가 소요돼 15GW를 지으려면 무려 100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비용 뿐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전력, 수력 등 인프라가 선결되야 한다는 이유다.

주 교수는 "이 거대한 시설을 돌릴 만한 일감(AI토큰)이 결국 구글, 오픈AI, 앤트로픽 등 미국 범용 AI 기업의 선구매 수요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국내에서 그게 상응하는 AI 수요를 창출하지 않으면 AI데이터센터는 효과가 반감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주 교수는 이어 “대한민국은 범용 AI가 아니라 우리 산업에 특화된 ‘버티컬 AI’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제조업을 근간으로 하는 한국 산업 구조의 강점을 살려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 스마트 팩토리 등을 포괄하는 피지컬 AI 분야의 글로벌 주도권을 확실하게 확보하고, 국가가 집중적으로 리소스를 수집 및 배분하고 조율하는 ‘민관 합동 AI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개발한 피지컬 AI용 파운데이션 모델 ‘GEN-0’ 을 탑재한 로봇이 레고를 조립하고 있다. 사람처럼 정교한 힘 조절, 움직임이 가능하다. 완성해야 할 목표 형태를 인지해 스스로 계획을 세우며 실수를 수정할 수 있다. (출처 : Generalist AI)

더밀크의 시각: 분열의 언어에서 분업의 언어로

중국의 AI 굴기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공의 공식 자체가 바뀌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술 규제와 관세 압박에 맞서 중국이 택한 것은 특정 반도체 하나의 국산화가 아니라 기술 자강, 곧 칩부터 모델과 응용까지 생태계 전체를 동시에 밀어 올리는 전략이었다.

엔비디아가 막히자 화웨이의 칩이 자랐고, 그 칩 위에서 자국 모델이 돌아갔으며, 딥시크처럼 적은 자원으로도 프런티어에 근접하는 모델이 나왔다. 하나의 부품이 아니라 층과 층이 서로를 끌어올리는 동반 성장, 이것이 중국이 증명한 새 공식이다.

이 공식은 한국의 5000조 메가프로젝트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한국의 인프라 투자는 여전히 메모리 반도체와 단일 하드웨어 공급에 무게가 쏠려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부품을 만들지만, 그 부품 위에서 돌아갈 시스템과 소프트웨어, 그리고 그것들을 엮는 생태계는 한국의 것이 아니다.

한국은 그동안 '패스트 팔로어'에 머물러 온 것에 대한 내부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한국의 문제는 따라가는 것(패스트 팔로어) 자체가 아니라 제품만 따라가고 산업의 규칙은 바꾸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이 전략(마인드셋)이 바뀌지 않으면 5000조원 투자는 더 정교한 부품 공장을 짓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

박 위원장과 주 교수가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처럼 지속 가능한 경쟁력은 하드웨어 공급자에서 자체 AI 시스템의 설계자로, 나아가 생태계 전체를 설계하는 국가로 체질을 바꿀 때 비로소 생긴다.

중국이 규제라는 위기를 생태계 도약의 계기로 삼은 것처럼, 한국도 이 투자를 부품의 확장이 아니라 층위의 상승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려면 개별 프로젝트를 하나로 꿰는 국가 단위의 비전과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지금 반도체와 전력, 데이터센터, 피지컬AI는 서로 다른 그룹이 서로 다른 권역에서 따로 발표한 개별 사업으로 흩어져 있다.

그러나 이 넷은 본래 하나의 사슬이다. 반도체가 전력을 부르고, 전력이 데이터센터를 떠받치며, 데이터센터가 피지컬AI를 돌린다. 이 사슬을 하나의 국가 비전 아래 연결하지 못하면, 각 부처와 지자체, 기업이 따로 움직이며 자원이 분산되고 속도가 늦춰진다.

기술 대전환 국면에서 가장 값진 자원은 자본이 아니라 속도이고, 그 속도는 민관이 함께 신속하게 결정하는 거버넌스에서 나온다.

지역을 대결 구조로 보는 분열의 언어로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하는 분업 구조를 파악할 수 없다. 이제는 지역 간 대결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분업의 언어가 필요하다.

한국이 이 전환에서 붙잡아야 할 승부처는 분명하다. 순수 소프트웨어와 파운데이션 모델에서 미국의 밀도를 정면으로 이기기는 어렵지만, 제조 현장이라는 실물과 데이터를 쥔 영역에서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두꺼운 조건을 가졌다. 정부가 이미 제시한 피지컬AI 7대 선도 분야, 곧 AI 팩토리와 AI 로봇, AI 자동차, AI 선박, AI 가전, AI 드론, AI 반도체는 하나같이 한국이 실물을 쥔 산업이다.

관건은 이 일곱을 모두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으로 어디에 먼저 걸지 실행 우선순위를 냉정하게 가리는 일이다. 모든 곳에 조금씩 걸면 어느 곳도 임계 규모에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정책은 디테일이 더 중요하다.

결국 시간과 자본의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AI 대전환은 가장 정확한 판단을 가장 빨리 실행하는 쪽이 가져가고, 늦으면 자본을 아무리 쏟아도 따라잡기 어려운 시간 격차가 벌어진다.

기술과 산업, 금융과 에너지를 하나의 유기체로 융합하고, 정부와 민간이 함께 빠르고 효율적으로 결정하는 체계를 세우는 것, 그것이 5000조원을 부품의 확장이 아니라 생태계의 도약으로 바꾸는 유일한 길이다. 중국은 위기를 공식 전환의 계기로 삼았다.

5000조원을 도약의 계기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가장 비싼 부품 공장을 짓는 데 쓸 것인가. 지금은 그 답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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