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은 이념적 순수주의자...미중 신냉전 계속될 것”
중국 전문가 이성현 박사 “시진핑, 후진타오·장쩌민과 달라”
G2, 이념전쟁으로 갈등 영역 확장...중 ‘투이불파’ 전략 추진
기술자립, 과학기술 표방...관련 산업에 예산 초과 투입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념적 순수주의자(ideological purist)’입니다. 뼛속까지 사회주의가 옳다고 생각하며 자본주의를 믿지 않습니다.이성현 하버드대 페어뱅크 센터 방문학자(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이성현 하버드대 페어뱅크 센터(Fairbank Center for Chinese Studies) 방문학자(정치커뮤니케이션 박사)는 8일 더밀크TV ‘잭잭과 친구들’에 출연해 “시 주석은 후진타오, 장쩌민 등 과거의 다른 지도자들과는 다르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8월 중앙재경위에서 시 주석이 강조한 ‘공동부유(common prosperity, 함께 잘 살자는 뜻으로 부의 분배, 공평을 강조하는 정책)’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그의 사회주의 사상을 반영한 중장기적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 박사는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을 지낸 국내 최고 중국 전문가 중 한 명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사, 칭화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베이징에서 11년간 거주하며 미국과 중국 사회를 깊이 있게 경험하고 연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9년에 저서 ‘미중전쟁의 승자, 누가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를 펴냈다.
이 박사는 “후진타오나 장쩌민의 경우 겉으로 사회주의를 믿는 척하고 속으로는 자본주의를 동경했지만, 시진핑은 다르다”며 “중국도 성장에서 분배로 넘어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사회 안정과 공산당 집정을 고려해 공평, 민생, 복지를 강조하는 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공동부유는 과거 마오쩌둥 시절에 사용됐던 용어로 민생과 복지를 강조한다”며 “올해 3월 양회에서 발표된 ‘14차 5개년 경제계획’에서도 20개 중 3분의 1이 넘는 7개 부문에서 민생과 복지가 강조됐다. 중장기적인 발전 전략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에 관련해서는 “무역전쟁, 관세전쟁, 기술전쟁, 이념전쟁으로 갈등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며 “이미 미국과 중국은 새로운 냉전에 돌입했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대담 전문이다.
이성현 하버드대 페어뱅크 센터 방문학자(정치커뮤니케이션 박사)
진행자: 손재권 더밀크 대표
손재권 대표(이하 손): 최근 중국의 공동부유 정책이 미국에서도 큰 화제다. 시 주석이 공동부유를 강조하는 배경에 관해 설명해달라.
이성현 박사(이하 이): 시진핑 주석이 장기집권 포석을 놓는 와중에 이용한 정치적 생색내기냐 아니냐가 화두다. 학술적 설명을 드리자면 공동부유가 이번에 처음 언급된 건 아니다. 양회에서도 언급됐고, 마오쩌둥 시절에도 사용됐다. 한동안 잠잠하다가 30여 년 만에 다시 강조되는 상황이다.
공동부유는 중국이 지향하는 사회주의에 부합한다. 공평 취업이라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고, 공동부유가 강조하는 건 민생과 복지다. 중국은 아직도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 같은 걸 추진한다. 올해 양회에서 ‘14차 5개년 경제계획’ 20개가 나왔는데 이 중 3분의 1이 넘는 7개 항목에서 민생과 복지가 강조됐다. 정치적 생색내기가 아니라 중국의 중장기적인 발전 전략으로 봐야 한다. 공동부유가 일관적인 정책 노선, 방향이 될 거라는 함의가 있다.
손: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에 경제력에서나 군사력에서 세계 1위가 되는 게 중국의 목표인데, 2049년까지 계속될까.
이: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 하에서 그럴 가능성이 높다. 공동부유에 앞서 ‘선부론’이 나왔었는데 중국 인구 14억 명이 한꺼번에 부자가 될 수 없으니 일부를 먼저 만들자는 정책이다. 그런데 불평등이 심화하니 ‘공부론’이 다시 부각됐다. 중국도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에는 이미 중산층이 생겼다. 주요 도시와 다른 지역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갈 것 같다.
손: 중국이 최근 자국기업 때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성장을 희생하는 정책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이: 한국, 미국, 유럽에서 비슷한 질문이 나오고 있다. 소위 ‘시진핑 리스크’라고 하는데, 시진핑이 없어지면 이런 현상이 사라질 것인지. 예전의 좋았던 자본주의 체제의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시진핑 주석을 정의할 때 학자 그룹에서 쓰는 용어가 있다. 이념적 순수주의자(ideological purist)’라고 한다. 후진타오, 장쩌민 같은 지도자는 겉으로 사회주의를 믿는 척하고, 속으로는 자본주의 동경했다. 시진핑 주석은 다르다. 뼛속까지 사회주의가 옳다고 생각하며 자본주의를 믿지 않는다. 시 주석의 과거 연설을 찾아보면 “서방의 발전 노선을 따르지 않고 우리의 선택, 즉 마르크스를 따른 것이 100% 옳았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
시진핑 주석이 4기, 5기 임기로 계속 권좌에 있을 것이냐가 중요하다. 장기집권으로 간다면 이 현상이 지속될 것이다. 중국도 성장에서 분배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사회 안정을 도모하는 측면도 있다. 불균형 해소는 공산당 집정에도 도움이 된다.
손: 미국과 중국의 G2 대결이 이념전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 이미 무역전쟁, 관세전쟁, 기술전쟁, 이념전쟁으로 갈등 영역이 확장됐다. 2019년 11월 미국 외교 거장 헨리 키신저가 “(미국과 중국이) 새로운 냉전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냉전 수준에 돌입한 셈이다.
손: 시진핑 주석의 정책이 중국 내부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고, 젊은 세대도 동조하고 있다.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로 대변되는 중국 기업가 정신이 후퇴하는 거 아닌가. ‘유모 국가(Nanny State, 간섭과 통제가 강한 국가)’ 얘기도 나온다.
이: 그런 조짐이 보인다. 상장 폐지한 디디추싱의 지분을 중국 정부가 인수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밖에서 보는 중국과 내부에서 보는 시각은 큰 차이가 있다. 시 주석은 중국 안에서 인기가 충만하다. 똑똑하게 민족주의로 중국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있다.
이 질문은 ‘기업가가 영혼 없이 공장을 잘 돌아가게 할 수 있냐’는 질문으로 바꿔볼 수 있다. 어느 정도는 될 것 같다. 중국 공산당이 원하는 건 창조적인 노동자가 아니라 효율적인 노동자다. 창조성이 필요한 수준까지 왔을 때 중국이 발전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한 차원 높은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유모 국가 이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간섭을 귀찮아하지만, 중국에서 인터뷰를 해보면 일반 보통 중국 사람들은 “골목마다 CCTV가 설치돼 있어서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정말 다르다.
손: 실리콘밸리에도 바이트댄스 같은 중국 기업이 있는데, 상장도 막히고 하니 인재들이 이제 중국 기업에 안 가려고 한다. ‘중국몽(중국의 영광을 21세기에 되살리겠다는 움직임)’ 때문에 중국몽이 실현되지 않는 것 아닌가.
이: 가치판단의 문제인 것 같다. 중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10년 넘게 살았지만, 저는 사회주의 체제와 안 맞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의 사회주의가 확실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중국과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산업계에 계신 분들은 아무래도 중국이 일종의 먹거리이기 때문에 고민이 많다. 시진핑 리스크를 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중국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디커플링(이념적으로 맘에 안 들어도 현실적으로 타협)’하는 분들도 많이 봤다.
손: 앞으로 중국 주요 산업은 전기차, 배터리 등 하드웨어 중심으로 갈 것으로 보나.
이: 중국 정부가 앞으로 어떤 산업에 집중할지는 지난 3월에 공개된 양회 문건을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다. 집중 육성 분야로 인공지능, 양자과학, 양자 컴퓨팅, 뇌과학, 클라우드 컴퓨팅 등을 꼽았다. 이 분야에 5년 동안 연평균 7% 이상 예산을 늘려 돈을 쏟아붓게 된다. 더 중요한 분야는 10.6%씩 예산을 초과 투입하겠다고 했다. 향후 5년은 이 분야에 집중한다고 보면 된다.
중국은 기술자립, 과학기술 강국 표어를 앞세우고 있다. 이 분야에 앞으로도 엄청난 투자가 이뤄질 것이다. 첨단 4차산업이라고 보면 된다. 제조업 중에서도 첨단 제조, 자동차, 컴퓨터, 로봇, 반도체 쪽이다.
손: 미중 갈등은 계속 평행선으로 달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이: 평행선을 달릴 것이란 관찰에 동의한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지난해 중국의 인공지능 특허 출원 건수가 미국을 앞섰다. 값싼 물건을 중국이 만들고 미국에 파는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 무한경쟁이다.
중국과 미국은 핵무기 보유국이고, 핵무기는 숫자에 관계없이 국가 단위의 파괴력이 있기 때문에 핵을 가진 국가들은 쉽게 전쟁할 수 없다. 중국 내부에서도 미국에 대한 전략은 ‘투이불파’ 즉 싸우되 완전히 관계를 절단하지는 않는 전략으로 가고 있다.
미국의 국방비 지출액은 중국의 3배다. 전쟁을 해도 중국에 불리하다. 중국 내부에서는 싸우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중국이 앞서는 시기가 2028년 즈음에 올 거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면 미리 중국에 줄서야 하지 않냐는 일부 목소리가 있는 것 같은데, 한국의 수준이 그정도는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중국이냐 미국이냐를 선택하는 시기는 지났다. 한국은 87년 민주항쟁으로 민주화라는 루비콘강을 건넌 국가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됐다면 이데올로기, 가치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군사동맹 관계, 중국과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다. 군사동맹은 1등급 친구, 전략적 동반자는 2등급 친구라고 보면 된다.
사실 누구랑 더 친하게 지낼지 결정해 놓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지만, 한국은 민주화 경험이 있으니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고 본다. 2030년에 중국의 GDP(국내총생산)가 미국을 추월할 수 있지만, 이건 국가 단위에서 그렇다는 거지 삶의 질, 인권, 제도 등 소프트파워가 미국을 앞서는 건 결코 아니다. 소프트파워 측면에서는 미국이 앞으로도 50년 이상 중국을 앞서는 매력적인 국가로 남을 것으로 본다.
손: 시 주석이 종신집권 할 것으로 보이는데, 시진핑의 중국에 한국, 북한은 어떤 존재인가?
이: 먼저 북한 문제를 말씀드리고 싶다.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이 너무 많이 과장돼 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역할론’이란 담론이 우리 머릿속에 과장되게 주입돼 있다. 이와 관련해 논문을 쓴 게 있는데, 논문에 인용한 인사 대부분이 중국 측 인사다.
중국이 한국을 위해서 북한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중국 입장에서는 남 좋은 일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과장된 담론을 펴면 안 된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내년이 한중 수교 30주년이다. 1992년 수교했을 때 중국의 GDP가 세계 11위였고, 한국은 14위였다. 한국의 경제력이 중국과 대등한 시기였다. 당시 중국이 보는 한국의 가치는 엄청난 것이었다.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가 중국에 가서 강의도 하고 대접도 잘 받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중국 광둥성의 GDP가 한국 전체 GDP를 초월했다.
중국이 한국을 올려다보다가 대등하게 봤다가 아래로 보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를 서운하게 여기거나 의기소침해할 필요 없다.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하향조정된 것은 맞다. 다만 한국이 기술적 우위를 가진 반도체 등 첨단 산업 일부에는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안보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이 가진 전략적 가치는 있다.
잭: 최근 미국 증시에서 중국 기업 주가가 반 토막 났다. 중국 전문가로서 어떻게 보나 반등할 수 있을까.
이: 알리바바가 잘나갈 때 300달러 넘었다가 지금 반 토막 수준이다. 정답은 모르지만, 말씀드리고 싶은 건 중국은 아직도 불확실성이 높다는 것이다. 억만장자도 아니고 일반 중산층이라면 집세나 교육비 내야 하는데 굳이 리스크가 큰 중국에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더 잘 알고 예측 가능한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올해 8월 말까지 S&P 500이 21% 올랐다. 이 정도 상승률이라면 리스크 적은 미국 시장도 좋은 것 같다.
중국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시그널을 줄 필요도 있다. 중국에 대한 투자를 소극적으로 신중하게 해서 중국 당국이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건강한 교정 신호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