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 늘려도 공장은 똑똑해지지 않는다… 현장 경험을 AI에 연결하라
[AX 프론티어 인터뷰] 홍성학 에스티로직 대표
∙ GPU 늘려도 데이터가 흩어져 있으면 한계… 한국 피지컬AI의 과제
∙ 에스티로직, GPU 데이터베이스·온톨로지 결합해 현장 데이터 활용
∙ 숙련자의 경험을 AI의 지식으로… 불량·설비 중단 줄여야 진짜 AX
한국의 공장에는 수십 년의 경험이 쌓여 있다. 어떤 조건에서 불량이 늘어나는지, 설비가 고장 나기 전에 어떤 신호가 나타나는지, 생산량을 늘리면 원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일부는 시스템에 기록돼 있고, 일부는 숙련된 엔지니어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문제는 AI가 이 경험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느냐다.
설비 데이터는 생산 부서에, 비용 정보는 재무 부서에, 정비 이력은 별도 시스템에 흩어져 있다. 같은 설비를 부서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각각의 데이터는 있어도 이를 연결해 판단하기는 어렵다. 좋은 AI 모델과 비싼 GPU를 들여놓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한국은 '피지컬AI' 경쟁에서 이기려 한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에서는 피지컬AI에 대한 개념도 불명확하고 실제 가치를 만들어낸 회사도 많지 않다. 제조 현장에서 축적한 경험을 AI가 이해하고 행동에 활용할 수 있는 지식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성학 에스티로직(STLogic) 대표는 그 연결에 필요한 기술로 제조 ‘온톨로지’를 제시한다. 설비와 공정, 사람과 자원, 비용과 경영 목표가 어떤 관계인지 정의해 AI가 현장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구조다.
그의 주장은 명확하다. 로봇과 AI가 공장에서 제대로 일하게 하려면, 먼저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들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터는 있는데,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홍 대표가 문제를 구체적으로 인식한 계기는 한국수자원공사의 정수장 무인화 AI 사업이었다.
지역 인구가 늘었을 때 정수장 시설을 얼마나 확충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했다. 질문은 짧았지만 답을 구하는 과정은 복잡했다. 인구와 수요, 정수장의 처리 능력, 시설 운영 정보를 함께 살펴봐야 했기 때문이다. 홍 대표에 따르면 부서 네 곳이 모여 약 6개월을 들여야 답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데이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시스템에 있는 데이터를 연결하고, 각각의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오래된 기업 시스템에서는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10년, 15년 동안 기능을 덧붙이는 사이 담당자는 바뀌고 문서는 낡는다. 데이터베이스에 테이블이 남아 있어도 지금 쓰는 것인지, 어떤 업무를 위해 만들었는지 알기 어려워진다.
홍 대표는 데이터의 의미를 찾기 위해 그 데이터를 사용하는 프로그램 코드에 주목했다. 어떤 항목을 읽고, 어떤 조건으로 계산하고, 결과를 어디에 쓰는지 추적하면 실제 업무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회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접근법은 2025년 한국수자원공사 전체 시스템에 적용됐다. 개별 데이터를 모으는 작업에서 출발해, 조직이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연결하는 작업으로 확장된 것이다.
온톨로지, 공장의 ‘관계’를 AI에 가르치는 일
온톨로지는 팔란티어를 통해 잘 알려졌지만 여전히 낯선 용어다. 하지만 현장에 대입하면 이해하기 쉽다.
공장에서 특정 설비의 온도가 올라갔다고 하자. 온도값 하나만으로는 생산을 멈춰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어떤 제품을 만드는 중인지, 정상 운전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최근 정비는 언제 했는지, 이 설비가 멈추면 다음 공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야 한다.
온톨로지는 이런 관계를 정의한다. 숫자를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숫자가 업무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도록 돕는다.
에스티로직의 ‘K-AIR’는 이 구조를 만드는 플랫폼이다. 오래된 시스템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데이터를 식별하고, 각 항목의 의미와 단위, 업무상 관계를 정리해 AI가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꾼다.
홍성학 대표는 "사람이 일일이 분석하던 과정의 자동화가 온톨로지의 핵심이다"고 말했다. 이어 " 자체 GPU 데이터베이스 ‘오렌지 GRE’를 결합했다. K-AIR가 데이터의 의미와 관계를 정리한다면, 오렌지 GRE는 연결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설명햇다.
오렌지 GRE에 대해서는 기존 CPU 방식보다 300~1000배 빠르다고 설명했다.
홍 대표는 “GPU를 늘려도 현장 데이터를 가져오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병목이 생기면 성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다”며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GPU 데이터베이스와 그 데이터의 의미와 관계를 연결하는 온톨로지가 함께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오렌지 GRE와 K-AIR를 결합한 이유도 기업이 쌓아둔 데이터를 AI가 실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사례도 있다. 포스코의 원가 계산 시스템 전환 작업이 대표적이다. 홍 대표에 따르면 사람이 두 달 걸리던 분석·변환 작업을 20분 만에 수행했고, 정확도는 99.8%였다. 이 역시 해당 작업의 성과로, 전체 시스템 전환이 20분 만에 끝났다는 의미와는 구분해야 한다.
팔란티어와의 차별점, 관건은 구축 시간과 확장성
홍 대표는 팔란티어가 직접적 경쟁 상대는 아니라고 말한다. 기업의 데이터를 실제 업무와 의사결정에 연결한다는 점에서 같은 시장을 겨냥하고 있지만 온톨로지는 만드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
홍 대표는 "특정 업무의 문제를 정하고 그에 맞춰 구조를 구축하는 접근법과 비교, 에스티로직은 기업 전체의 데이터와 업무 관계를 먼저 폭넓게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이를 ‘3D 온톨로지’라고 불렀다.
K-AIR는 기업 목표, 측정값, 업무 절차, 자원, 실제 데이터의 다섯 단계로 관계를 정리한다. 현장의 설비 데이터가 어떤 업무를 거쳐 경영 지표에 영향을 미치는지 이어보겠다는 구상이다.
이 구조를 갖추면 새로운 질문이 나올 때마다 처음부터 데이터를 분석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게 홍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조직이 필요로 하는 질문의 80~90%를 미리 구축한 구조 안에서 처리하고, 나머지 예외에 대응하는 방식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에스티로직이 제시하는 차별화 전략이다. 팔란티어의 전체 기능이나 실제 구축 방식을 이 비교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고객이 얼마나 빨리, 적은 비용으로 쓸 수 있느냐다. 데이터를 연결하는 데 몇 달씩 걸리거나, 업무가 바뀔 때마다 시스템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면 도입 효과는 줄어든다.
미국에서도 팔란티어 외에 산업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업들이 있다. 키네티카는 GPU를 활용한 고속 데이터 처리에, 스타독은 온톨로지와 지식그래프를 통한 기업 데이터 연결에 강점을 둔다. 하이바이트는 공장 데이터에 설비와 공정의 맥락을 붙여 AI와 분석 시스템에 공급한다.
하지만 에스티로직은 데이터 처리와 의미 연결을 자체 GPU 데이터베이스와 온톨로지 플랫폼으로 함께 제공한다는 점을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운다. 기업의 데이터를 미리 연결해두는 방식이 필요한 답을 더 빨리 찾고, 시스템을 고치는 시간과 비용을 줄여주는지 현장에서 보여주는 분야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의 제조 경험은 저절로 AI의 자산이 되지 않아
홍 대표는 "AI가 기계를 움직이려면 먼저 현장 상황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설비의 온도가 올라갔을 때, 정상적인 변화인지 고장의 징후인지 구분해야 가동을 계속할지 멈출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
그렇게 하려면 온도뿐 아니라 작업 내용과 과거 고장 이력, 정비 기록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에스티로직의 온톨로지는 이렇게 흩어진 정보를 연결해 AI의 판단을 돕는 역할을 한다.
홍 대표는 "정보를 연결했다고 기계가 곧바로 안전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주변 상황을 감지하고 설비를 정확하게 제어하는 기술도 필요하다"며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AI에 실제 작업도 맡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점에서 한국의 제조 현장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철강 공장의 운영 경험은 잠재적인 경쟁 자산이다. 하지만 경험이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AI 경쟁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숙련자의 판단이 개인에게만 남아 있거나, 기록이 부서별 시스템에 갇혀 있다면 다른 공장이나 새로운 AI에 전달하기 어렵다.
가령 '이 소리가 나면 사흘 안에 베어링을 교체해야 한다'는 현장 지식이 있다고 하면. 이를 AI가 활용하려면 소음 데이터와 고장 이력, 운전 조건, 정비 기록을 연결해야 한다. 숙련자의 경험을 검증하고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홍 대표가 우려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홍 대표는 AI 투자 규모가 커져도 현장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AI 모델을 몇 개 도입했는지, GPU를 얼마나 확보했는지보다 실제 현장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봐야 한다”며 “고장 원인을 더 빨리 찾는지, 불량과 설비가 멈춰 있는 시간이 줄었는지, 숙련자만 알던 판단 기준을 다른 직원들도 활용할 수 있게 됐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는 아직 이런 변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현장 데이터를 공통된 기준으로 정리하고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그 기반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공 인프라에서 해외 제조·물류로
에스티로직은 공공 인프라에서 쌓은 경험을 제조와 국방, 물류 분야로 넓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한국수자원공사와 한국전력 관련 사업 경험을 토대로 시장 확대를 추진한다. 해외에서는 미국 전기차·물류 스타트업 인디고(indiGO)를 협력 창구로 삼고 있다. 회사에 따르면 2025년 12월 계약을 맺었으며, K-AIR와 오렌지 GRE를 함께 공급하는 구조다.
폭스콘의 스마트 제조와 베트남 내 페덱스 물류 사업 등을 목표 시장으로 제시했다. 이는 확보한 고객 실적과 구분되는 사업 계획이다.
경남 사천을 중심으로 한 산업 연계도 구상하고 있다. 우주항공과 방산, 기계, 조선 산업의 데이터를 연결해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 현장의 지식 기반으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에스티로직은 2013년 공간정보 분석 기업으로 출발했다. 이후 디지털트윈과 전력망 분석을 거쳐 GPU 데이터베이스, 온톨로지 플랫폼으로 사업을 넓혀왔다. 홍 대표는 기술의 새로움보다 현장에서 성과를 증명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홍성학 대표는 "한국의 피지컬AI 전략도 제조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AI가 이해할 수 있는가. 그 이해가 더 정확한 판단과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가를 중심으로 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낭비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가진 공장과 숙련자는 출발점이다. 그들이 쌓아온 경험을 AI가 배우고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 경쟁력을 결정한다. 에스티로직이 온톨로지에 거는 승부도 여기에 있다.
[더밀크의 분석] 글로벌 진출의 관건은 ‘다른 공장에서도 통하는가’
에스티로직이 풀려는 문제는 한국에만 있지 않다. 오래된 설비와 여러 시스템에 흩어진 데이터를 AI가 활용하도록 연결하는 것은 해외 산업 현장에서도 중요한 과제다.
미국의 하이바이트는 공장 데이터에 설비와 공정의 맥락을 붙이고, 스타독은 온톨로지로 기업 데이터의 의미와 관계를 연결한다. 이미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만큼 에스티로직도 해외 고객이 자사를 선택해야 할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이 회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기존 프로그램 코드를 분석해 데이터의 의미와 업무 관계를 찾아내는 자동화 기술이다. 회사 설명대로 사람이 오래 들여다봐야 했던 시스템을 짧은 시간에 분석할 수 있다면, 해외 고객에게도 구축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관건은 국내에서 거둔 성과를 다른 환경에서도 반복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해외 공장은 사용하는 프로그램과 설비, 업무 방식이 다르다. 고객이 바뀔 때마다 많은 인력을 투입해 새로 만들어야 한다면 사업을 빠르게 넓히기 어렵다. 반면 기존 기술과 모델을 재사용해 두 번째, 세 번째 고객의 도입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할 기반이 생긴다.
이런 점에서 국내에서 실적을 쌓은 산업을 중심으로 기존 고객의 해외 사업장이나 프로젝트에 동반 진출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후 현지에서 구축과 유지보수를 맡을 파트너를 확보하고 고객을 넓혀가는 것이다.
에스티로직의 인디고와의 계약은 해외 진출의 통로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다음 단계는 최종 고객이 실제 현장에 도입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운영 사례다. 국내에서 입증한 기술을 해외에서도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 검증한다면 미국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평가된다.
홍성학 대표는 누구?
홍성학 대표는 2013년 에스티로직을 창업한 산업 데이터 전문가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보통신정책을 공부했으며, SK C&C 연구원으로 일했다. 2016년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산업포장을 받았다.
에스티로직은 GPU용 AI 데이터베이스와 AI 레디 데이터 플랫폼을 만든다. 공간정보(GIS) 분석 회사로 시작해서, 디지털트윈(2016~2019), 전력망 분석(2020~2022)을 거쳐 2020년 국내 최초로 GPU 데이터베이스 '오렌지 GRE'를 상용화했고, 2025년부터 온톨로지 플랫폼 'K-AIR'로 사업을 넓혔다. 5년 안팎 단위로 기술을 하나씩 쌓아온 셈이다.
한국전력, 한국수자원공사, 서울교통공사, 국토교통부, 인천국제공항공사, 대한민국 공군 군수사령부 같은 공공기관과 포스코, 쿠팡 같은 민간기업이 주요 고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