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부' TSMC 모리스 창의 경고 “자유무역은 끝났다”
미국이 만든 미국-동맹국 반도체 공급망. 균열 조짐
미국, 중국 수출 제재에 동맹국 반도체 기업 타격
중국 시장 잃나. TSMC 위기감 근원은
설상가상, 미국 대선 변수로...한국∙대만 반도체 기업 악재
더밀크의 시각: 지금 쟁점은 트럼프의 '반도체 무관세∙지원금'
반도체 대부로 불리는 장중머우(張忠謀, 모리스 창) TSMC(대만반도체제조기업) 창업자가 “반도체 자유무역이 죽었다”고 선언했다. 미국·중국 간 대립으로 글로벌 반도체 분업 체계가 무너지면서 반도체 기업의 성장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이는 반도체 동맹국인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주요 시장인 중국을 잃을 가능성,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반도체 산업에 적용중인 무관세, 보조금 지원 정책이 무효화될 가능성 등 악재가 산적하다. 모리스 창의 경고가 경종을 울리는 이유다.
26일(현지 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장 창업자는 대만 신주현에서 열린 TSMC 연례 체육대회에 참석해 “반도체, 특히 최첨단 반도체의 자유무역이 죽은 환경에서 어떻게 계속 성장할지가 우리(TSMC)의 과제”라고 우려를 전했다. 그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TSMC의 성장에 있어 ‘가장 심각한’ 도전을 앞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만든 미국-동맹국 반도체 공급망
2020년 미국의 대중 제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 세계 반도체 산업은 ‘미국이 설계하고 한국과 대만에서 생산하며 중국의 소비’로 이어지는 분업 체계가 작동했다. 미국은 한국, 대만, 일본, 네덜란드 등 동맹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고, 반도체 공급망을 공고하게 구축했다.
TSMC는 애플,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 빅테크에서 주문 받은 첨단 반도체를 생산했고, 이 반도체는 스마트폰, PC, 서버에 탑재돼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팔려 나갔다. 화웨이 같은 중국 전자 업체의 주문도 직접 수주했다.
하지만 이 체제는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들의 반도체 수출을 제한하는 데다 공급망을 자국으로 가져오려 하고 있기 때문. 2020년 이후 미국은 AI·반도체 등 최첨단 기술과 관련해 대중국 수출 통제를 시작해 매년 수위를 높이고 있다. 주요 수입국이었던 중국은 이를 우회해 최첨단 칩을 확보해 자체 제품을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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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약 60%를 차지하고, 데이터센터 핵심 부품인 인공지능(AI) 가속기의 99%를 위탁 생산하는 기업이다. 엔비디아와 함께 인공지능(AI) 열풍의 최대 수혜자지만, 이제 미중 갈등이 교차되는 지점의 중심에 놓여 있다.
중국 시장 잃나. TSMC 위기감 근원은
미국의 중국 수출 제재에 TSMC 뿐만 아니라 동맹국의 반도체 기업이 즉각 타격을 입었다.
중국은 큰 시장이다. 미·중 반도체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2019년 TSMC의 매출 가운데 약 20%가 중국 시장에서 나왔다. 하지만 현재 북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71%로 전년 동기 대비 6%포인트 늘었지만 중국 비중은 11%로 5%포인트 줄어들었다.
TSMC 반도체가 중국 화웨이 제품에 탑재된 사실이 알려졌고, 미국 상무부가 이에 대한 조사에 나서는 등 미중 갈등 직격타를 맞고 있다. TSMC는 중국의 칩 설계 회사 소프고에 출하를 중단했다. TSMC가 생산한 칩이 중국 화웨이의 인공지능(AI) 칩에서 발견돼 미국의 수출 통제를 위반할 가능성이 불거진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26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TSMC가 화웨이 AI 칩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한 제품이 소프고에서 출하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출하를 중단했다고 전했다. 중국 비트코인 채굴 업체 비트메인의 계열사로 알려진 소프고는 이날 성명을 통해 “화웨이와 어떤 사업 관계도 맺은 적이 없으며 TSMC에 조사 보고서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미국 상무부는 미국 수출 통제 위반 가능성에 대한 보고를 알지만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지는 언급할 수 없다고 했다. 최근 TSMC는 화웨이가 자체 개발해 지난해 출시한 AI 칩에 자사 반도체가 들어 있다고 미국 상무부에 통보했다. TSMC가 미국의 대중 제재를 위반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TSMC만의 이야기 아니다. 동맹국 반도체 기업 타격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업체 ASML도 마찬가지다. ASML은 지난 3분기 실적 발표에서 내년 중국 매출 비율을 20%로 예상했다. 직전 분기 중국 비율이 49%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는 라피더스도 2027년 2나노 공정 양산을 계획 중이지만, 중국 판매가 불가능할 경우 첨단 반도체 시장에 안착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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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은 미국 기업인 인텔에도 부메랑이 되고 있다. 인텔은 중국에 PC용 CPU(중앙처리장치)를 수출해 왔으나, 첨단 반도체라는 이유로 지난 5월 미 정부에서 수출 자격을 취소당했다. 중국 수출 물량 감소에 2021년 재진출을 선언한 파운드리 사업 부진까지 더해져 지난해 70억달러가 넘는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만든 메모리 반도체도 대중 제재 기업에 올라와 있는 화웨이 등에는 판매가 금지돼 있다.
더밀크의 시각: 최대 변수 대선. 지금 쟁점은 트럼프의 '반도체 무관세∙지원금'
오는 5일(현지시각)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치뤄진다. ‘대중 제재’는 누가 당선되더라도 반도체 기업에 변하지 않는 조치다. 여기에 더해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반도체 기업의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그의 반도체 무관세 정책과 지원금 취소 주장 때문이다.
트럼프 후보는 지난 25일 한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반도체 무관세 정책과 조 바이든 행정부의 ‘칩스법(반도체 지원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매겨 (한국·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제 발로 들어와 공장을 짓게 하겠다”고 말했다.
반도체는 글로벌 IT 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1997년 발효된 WTO(세계무역기구)의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무관세로 수출입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칩스법에 따라 반도체 기업은 인텔, TSMC, 삼성전자 등은 투자를 약속 받고 미국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 미국 기업인 인텔(약 1000억달러)을 제외하고, 삼성전자는 440억달러(약 61조원)를 투자하고 64억달러의 보조금을, TSMC는 650억달러를 투자해 66억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돼 있다. SK하이닉스는 투자금 38억7000만달러, 보조금 4억5000만달러다.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이 두가지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첨단 반도체를 국가 전략 자산으로 간주해 이런 협정의 예외 대상으로 만들어 관세 부과를 추진할 수 있다.
고관세와 함께 바이든 정부가 약속한 보조금을 전면 폐지하거나 축소한다면, 이를 전제로 수백억달러 투자를 추진 중인 반도체 기업들은 기존 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 높은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 등으로 미국 공장 건설비는 한국과 비교해 30% 이상 더 든다. 첨단 반도체 1개 라인 건설비가 25조원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7조~8조원이 달린 문제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이미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서 공장 착공에 들어갔다. TSMC도 미국 애리조나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미 정부 보조금은 건설 진척에 따라 지급될 예정인데 아직 들어온 것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반도체 관세’ 추진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WTO의 정보기술협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무력화해야 하는 만큼, 그에 따른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반도체 관세로 제품 가격이 상승할 경우, 애플·엔비디아 같은 미국 기업과 소비자의 부담이 커지는 것도 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