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회사 아니다 : 넷플릭스를 이해하기 위한 4대 질문
넷플릭스, 주가 폭락 전후로 회사내 큰 변화 생겨
넷플릭스는 왜 2022년 버전 넷플릭스 문화 메모를 전격 공개했을까?
워런 버핏은 왜 넷플릭스 대신 파라마운트를 간택했을까?
넷플릭스는 디지털 광고 쟁탈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공동CEO 테드 사란도스는 넷플릭스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리드가 아니라 테드입니다. 넷플릭스는 아주 최근에 넷플릭스 문화 메모를 업데이트했습니다. 넷플릭스 문화 메모는 자유와 책임이라는 부제로 유명하죠. 2009년 인터넷에 공개되자마자 한국어 해적판 번역본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았죠. 핵심을 요약하면 이겁니다. “넷플릭스는 다르다. 넷플릭스의 문화는 규칙이 없는 것이 규칙이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공동 창업자이자 공동 CEO가 2020년 저서 《규칙 없음》에서 직접 한 말입니다. 물론 넷플릭스의 규칙 없는 규칙들 중에서도 K직장인들을 가장 가슴 설레게 만든 규칙은 아마도 휴가와 관련한 규정이었을 겁니다. “규정도 없고 확인도 하지 않는다”였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업데이트된 2022년 버전 넷플릭스 문화 메모는 분위기가 좀 달라졌습니다. 자유보단 책임을 강조합니다. 규칙이 없다더니만 규칙을 덧붙였습니다. 넷플릭스는 5월을 명실상부 셀 인 메이의 달로 만들어 준 빌런입니다. 지난 4월 20일 넷플릭스 주가는 35.1%나 폭락했죠. 하루만에 시가총액이 540억 달러가 날아갔습니다. 2022년 1분기에 유료 회원이 직전 2021년 4분기보다 20만 명이나 줄어들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었죠. 사실 지난 4월 20일 어닝쇼크는 예고된 악재였습니다. 넷플릭스는 지난 1월 21일 2021년 4분기 실적 발표에서 2022년 1분기부턴 구독자가 줄어들 것 같다고 예고 했었습니다. 그때도 주가가 20% 넘게 폭락했었죠. 그렇게 시장한테 충격에 대비할 시간을 줬건만 연준의 금리인상 행보에 새 가슴이 돼 버린 투자자들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식으로 투매 대열에 동참했죠. 넷플릭스 쇼크는 5월 내내 이어진 빅테크 폭락장의 서막이었습니다.
넷플릭스 같은 유료 구독 콘텐트 플랫폼의 알파와 오메가는 유료 구독자의 숫자와 추세입니다. 가입자당 평균 수익 같은 핵심 지표가 있긴 합니다만 이것도 구독자가 있어야 주판알이라도 튕겨 볼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유료 구독자 숫자는 2022년 1분기 기준 2억2160만 명입니다. 글로벌 1등입니다만 위태위태합니다. 2위 디즈니 플러스의 추격세가 만만치가 않거든요. 이런 위기 상황인데다가 5월 주식 시장을 망친 빌런까지 됐으니 넷플릭스가 새로운 문화 메모에서 자유보다 책임을 강조하는 건 당연한 귀결처럼 보입니다. 실적 앞에선 장사가 없으니까요. 바야흐로 넷플릭스도 허리띠를 졸라맬 때가 왔다는 얘기니깐요.
넷플릭스는 왜 2022년 버전 넷플릭스 문화 메모를 전격 공개했을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번 넷플릭스 문화 메모의 2022년 버전업을 주도한 건 리드보다는 테드입니다. 테드 사란도스는 현재 리드 헤이스팅스와 함께 넷플릭스의 공동 CEO입니다. 원래는 CCO였습니다. 최고 콘텐츠 책임자였죠. 넷플릭스 문화 메모는 넷플릭스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파운딩 파더인 리드가 만든 뒤로 이 정도로 크게 업데이트된 건 거의 처음입니다. 거의 수정헌법 수준이죠. 그런데 2022년 버전 넷플릭스 문화 메모에는 테드가 언론 인터뷰에서 했던 말들이 고스란히 문구로 정리된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게 노골적으로 드러난 부분이 예술적 표현이라는 섹션입니다.
2022년 버전 넷플릭스 문화 메모의 구체적인 내용은 더밀크가 〈위기의 넷플릭스, '기업문화' 바꿨다... 이젠 '규칙있음'〉에서 알기 쉽게 정리했습니다. 넷플릭스 문화는 컬처 테크라고까지 불립니다. 기업 성장의 원동력으로 인정 받았단 의미입니다. 페이스북의 COO인 셸린 샌드버그는 실리콘벨리의 가장 중요한 혁신 가운데 하나라고 손꼽았죠. 아래 더밀크가 정리한 내용을 보시면 지금 넷플릭스의 문화가 어디에서 어디로 변화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넷플릭스 문화 메모의 맥락을 이해하려면 리드보다 테드를 알아야만 합니다. 2009년판이 리드 버전이라면 2022년판은 테드 버전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테드 사란도스는 2020년 7월부터 넷플릭스는 리드와 테드의 공동CEO체제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공동 창업자는 아닙니다. 넷플릭스의 공동 창업자는 마크 랜돌프입니다. 마크 랜돌프가 쓴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에는 실리콘벨리 로스 가토스로 리드와 마크가 카풀을 하면서 넷플릭스 창업 아이디어를 구상하던 초창기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테드 사란도스는 넷플릭스가 DVD 우편배송으로 사업을 벌여놓았지만 절대 성공하지는 못할 것만 같았던 1999년에 합류했습니다. 리드가 테드를 스카우트했죠. 당시 테드는 미국 서부 대여점들에 DVD를 배급하는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비디오 비즈니스》라는 업계 전문지의 실린 테드의 인터뷰를 보고 리드가 연락을 했죠. 사실 넷플릭스의 공동 창업주 리드와 마크는 영화 전문가도 DVD 유통 전문가도 아닙니다. 둘 다 이과적 사고에 능한 개발자들입니다. 반면에 테드는 1980년대 대학을 중퇴하고 비디오 대여점 8곳을 관리하면서 10년 넘게 콘텐츠 유통업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죠. 리드가 테드를 스카우트한 건 콘텐트와 유통을 모두 잘 아는 플랫폼 전문가를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쫓겨났던 애플로 복귀하면서 IBM출신의 물류 전문가 팀 쿡부터 스카우트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DVD 우편 대여업을 하려면 일단 어떤 영화가 얼마나 인기가 있을지 넘겨 짚어야만 합니다. 너무 과신하면 DVD를 너무 많이 주문했다 재고만 쌓이게 됩니다. 너무 소심하면 DVD를 주문을 따라잡지 못해서 수요를 놓치게 되죠. 테드한텐 시장을 읽는 촉이 있었습니다. DVD 매장을 관리하면서 얻은 통찰 같은 것이었죠. 10대 시절 고향 애리조나주에서 2번째로 문을 연 비디오 가게에서 첫 번째로 알바를 하면서 얻은 직감일 수도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테드는 라이센싱 담당자가 됩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제한된 라이센싱 비용으로 시청자가 좋아할만한 영화들을 콕콕 집어서 큐레이션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DVD 유통보다 복잡하지만 원리는 같죠. 2010년대부터 테드는 라이센싱과 오리지널을 모두 총괄하게 됩니다. 자체 투자제작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도 DVD유통이나 스트리밍 라이센싱과 원리는 같습니다. 다만 위험 부담이 말할 수 없이 크죠. 분산 투자냐 몰빵 투자냐의 차이입니다. 오리지널에 승부를 걸어서 할리우드 메이저의 아성에 도전한다는 건 리드의 결정입니다. 첫 번째 오리지널 작품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하우스 오브 카드〉로 한다는 건 테드의 선택입니다.
바로 이때 리드가 구축한 자유와 책임의 문화가 빛을 발합니다. 테드 사란도스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에게 사실상 백지수표를 제시했습니다. HBO와 넷플릭스를 저울질하던 핀처 감독한테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던 것이죠. 그런데 테드는 리드한테 계약 조건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구두로 허락을 구하거나 서류로 결제를 받는 절차도 없었죠. 자유와 책임의 원칙에 따라 테드가 자율적으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기술적 근거들은 있었죠.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넷플릭스 시청자들이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스릴러물을 좋아한다는 걸 알아냈거든요. 그렇다고 이런 정량적 데이터가 결정의 필요충분한 근거가 되진 못합니다. 결국 결정은 사람이 정성적으로 하는 것이니까요. 〈하우스 오브 카드〉가 실패하면 리드는 망하고 테드는 쫓겨나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결단인 겁니다.
테드 사란도스는 리드 헤이스팅스가 만든 넷플릭스 자유와 책임 문화의 가장 성공적인 산 증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콘텐츠 비즈니스가 어려운 건 늘 흥행을 예측하는 마법적 요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데이터만으로는 전부 설명되지 않는 어떤 결정을 수용할 수 있는 자율적 조직 문화입니다. 모든 결정에 근거 자료를 첨부해야 하는 기업 문화라면 테드 사란도스 같은 인재의 통찰과 직관은 발휘되기 어렵습니다. 자유와 책임에 근거한 넷플릭스의 자율적 기업 문화는 테드 같은 직관형 인재들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비옥한 토양입니다.
2020년 7월 테드의 공동CEO 취임은 리드식 파워풀 인재 경영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대학을 중퇴한 DVD 대여점 매니저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콘텐트 기업의 수장이 됐으니까요. 그런데 테드는 리드가 아닙니다. 테드 사란도스는 리드식 자유와 책임 경영이 가지는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넷플릭스는 주식 시장에선 유니콘으로 평가 받았지만 회사채 시장에선 쓰레기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넷플릭스의 회사채 신용 등급은 지난 10년 동안 BB+에서 크게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투자부적격 등급이죠. 원인은 테드 본인입니다. 콘텐츠 제작에 돈을 쏟아부었으니까요. 넷플릭스는 매년 천문학적인 금액을 콘텐츠 제작비로 지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2021년만 해도 190억3000만 달러를 썼죠. 2021년 넷플릭스의 매출은 300억 달러가 조금 안 됩니다. 매출의 3분의 2를 제작비로 써버린 겁니다. 2021년 영업이익은 61억9400만 달러에 불과합니다. 이러니 정크본드인게 당연하죠.
공동 CEO가 된 이상 테드는 앞으로 그럴 수가 없습니다. 리드의 최종 책임을 나눠지게 됐으니까요. 게다가 넷플릭스의 정점은 지나가 버렸으니까요. 2019년은 넷플릭스한텐 예술적인 정점이었습니다. 할리우드의 변방이었던 넷플릭스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로 작품상과 감독상까지 무려 아카데미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니까요. 2021년은 상업적인 정점이었습니다. 코로나 특수까지 누리면서 글로벌 구독자는 2억명을 돌파했고 〈오징어 게임〉이라는 전무후무한 대박을 냈습니다. 2022년부턴 코로나 특수도 끝나고 경쟁도 치열해져서 내려갈 일만 남았습니다. 이게 넷플릭스의 정점이라는 건 넷플릭스도 알고 워런 버핏도 알고 있었습니다. 몰랐던 건 억만장자 행동주의 투자자 빌 애크먼 정도였죠.
빌 애크먼 퍼싱 스퀘어 캐피털 매니지먼트 CEO는 지난 1월 넷플릭스 주가가 급락하자 310만 주를 사들였습니다. 투자자 서한에서 “시장이 우리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해줘 기쁘다”까지 언급합니다. 그러더니 지난 4월 20일 넷플릭스 폭락장에서 투매를 했죠. 빌 애크먼이 넷플릭스 투자로 날린 액수만 5300억원에 달합니다. 사실 4월 20일 넷플릭스 쇼크는 빌 애크먼의 투매도 한 원인입니다. 고래가 매물을 던지니 새우등도 터질 수밖에요.
굳이 따지자면 빌 애크먼은 5월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만든 주범입니다. 원자재 선물 투자까지 앞장서면서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있으니까요. 반면에 워런 버핏은 넷플릭스 대신 파라마운트의 주식을 대량 매집했습니다. 워런 버핏 현자의 간택에 관한 자세한 내용과 더밀크가 〈디즈니엔 역전, 버핏엔 외면... 넷플릭스 오징어 되다〉에서 자세하게 정리해뒀습니다. 빌 애크먼의 투자 포트폴리오 분석 역시 더밀크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테드 사란도스를 공동 CEO로 승진시킨 넷플릭스 이사회의 결정은 어쩌면 결정적 실수일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넷플릭스는 더 이상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으로 기업을 경영할 수 없습니다. 정크본드여도 회사채를 팔아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던 건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으니까요. 자율과 책임이란 결국 조직 문화 자체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는 뜻입니다. 규칙이 없는 대신 알아서 성과를 내길 기대하는 건 하이리스크입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나 〈오징어 게임〉이 하이리턴이 될 수도 있지만 마블과 합작했던 〈디펜더스〉 시리즈처럼 로우리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하이 리스크 문화 속에서 하이 리스크 투자로 성장을 이끌었던 테드 사란도스는 공동 CEO가 돼버렸습니다. 최종책임자가 됐으니 리스크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 테드는 넷플릭스에서 연봉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입니다. 〈야후파이낸스〉에 따르면, 테드 사란도스의 2021년 연봉은 2100만 달러에 달합니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100만 달러를 받습니다. 당연히 CEO의 연봉은 실적과 정비례합니다. 테드 사란도스가 CCO 시절처럼 할리우드의 공격수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하긴 어렵겠죠. 2022년 버전 넷플릭스 문화 메모의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가 성과가 없는 곳에 보상과 복지도 없다는 내용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보수적 신호죠. 넷플릭스는 실패도 성과라도 인정해주던 기업이었으니까요. 불리해진 사업 환경과 보수화된 조직 구조는 넷플릭스한텐 중대 변수들입니다. 리스크를 피하다 바다를 빼앗긴 결과가 될지 리스크를 피해서 안전한 항구를 찾게 된 결과가 될지 그건 테드한테 달려있습니다.
게다가 테드한텐 넷플릭스 문화의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사건이 지난해에 있었습니다. 전세계가 〈오징어 게임〉으로 환장하고 있던 2021년 10월 넷플릭스는 〈더 클로저〉로 내홍을 앓았습니다. 유명 코미디언 데이브 샤펠이 넷플릭스와 함께 만든 스탠드업 예능 〈더 클로저〉에서 트렌스젠더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겁니다. 〈더 클로저〉 논란은 넷플릭스 조직 문화를 뿌리부터 뒤흔든 큰 사건으로 비화됩니다. 넷플릭스의 직원 한 명이 《블룸버그》에 〈오징어 게임〉과 〈더 클로저〉 등의 제작비 내역을 흘린 겁니다. 여기서 〈더 클로저〉의 제작비가 〈오징어 게임〉보다 높다는 사실이 드러났죠. 《블룸버그》는 2조원의 수익을 거둔 〈오징어 게임〉에 비해 논란만 남긴 〈더 클로저〉는 실속이 없다고 비판했죠.
이때부터 〈더 클로저〉 논란은 넷플릭스 내부적으론 다양성 논쟁에서 내부 정보 유출 게이트로 전환됩니다. 심지어 테드의 내부 이메일 내용까지 외부로 유출됐거든요. 테드는 이메일에서 “〈더 클로저〉는 실제 세상엔 직접적인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씁니다. 넷플릭스의 최고경영자가 트렌스 젠더 혐오 발언의 심각성을 간과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는 부분이었죠.
테드를 비롯한 넷플릭스 경영진이 심각하게 받아들인 부분은 내부 정보와 내부 사견이 외부로 흘러나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넷플릭스는 할리우드와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제작자들을 상대로 예산 협상을 벌입니다. 상대방이 넷플릭스의 예산안을 알고 있다면 협상력이 약화됩니다. 게다가 일부 콘텐트가 논란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넷플릭스가 검열을 한다면 이것 역시 콘텐트 쟁탈전에서 불리한 요소가 됩니다. 독주 체제에서 경쟁 체제로 전환된다는 건 스트리밍 시장이 플랫폼 우위에서 콘텐츠 우위로 상전이된다는 뜻입니다. 시장이 갈수록 거칠어지는 상황에서 개인적인 신념을 이유로 회사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로운 넷플릭스 문화 메모는 창작자의 자유와 책임은 최대치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반면에 직원들한텐 큰 자유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걸 강조합니다. “만약 우리의 콘텐츠 다양성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넷플릭스가 당신에게 최적의 장소가 아닐 수 있다”고까지 말하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입니다. 공동CEO의 메시지입니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식 디지털 광고 쟁탈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2022년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중심축이 구독 경제에서 광고 경제로 전환되는 원년이 될 전망입니다. 스트리밍 시장이 이른바 FAST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죠. FAST는 Free Ad-Supported Streaming TV의 약자입니다. 최근 돈나무 언니 캐시 우드가 줍줍 투자를 해서 다시 주목 받은 로쿠나 디즈니가 폭스를 인수하면서 끼워팔기로 받은 훌루 그리고 아마존이 밀고 있는 프리비가 대표적인 FAST들입니다.
FAST의 퓨리어스한 급부상은 인플레이션 때문입니다. 물가상승 탓에 시청자들은 콘텐츠 구독료부터 줄이고 있습니다. 반면에 물가상승으로 소비재 기업들의 매출은 우상향 추세입니다. 이런 때는 콘텐트 플랫폼 입장에선 콘텐트 시청료를 소비자 대신 기업한테 전이시키는 게 돌파구일 수 있습니다. 수단은 광고입니다.
FAST와 관련한 내용은 더밀크가 뉴프론츠2022를 취재한 〈광고는 '절대' 죽지 않는다. 다만 FAST로 변할 뿐이다〉에서 정리했습니다. FAST는 2022년 하반기엔 오리지널 콘텐트까지 선보일 태세입니다. 테드와 리드의 〈하우스 오브 카드〉 전략을 벤치마크한 것이죠. 시장의 포커패는 이렇게 돌고 돕니다.
넷플릭스도 이걸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FAST에 비하면 대응이 너무 슬로우했죠. 넷플릭스 쇼크를 일으켰던 지난 4월 20일 리드 헤이스팅스가 직접 나서서 광고 요금제 도입을 선언합니다. 유튜브 프리미엄이 벤치마크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유튜브처럼 광고를 볼 사람은 공짜로 보고 광고가 싫은 사람은 구독료를 내고 이용하는 비즈니스 모델이죠.
그런데 넷플릭스한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유튜브의 광고 단가는 클릭당 1달러 안팎입니다. 가장 저렴한 넷플릭스 베이직 요금제의 가격이 우리 돈으로 9500원입니다. 시청자가 광고를 10번은 클릭해줘야 대충 수지타산이 맞게 됩니다. 쉽지 않죠. 그것도 유튜브처럼 짧은 것도 아니고 2시간 짜리 영화를 보다가 광고를 클릭해준다는 건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걸 해결한 기술들이 더밀크가 취재한 디지털 콘텐츠 기술 행사인 뉴프론츠2022에서 소개되긴 했습니다. 광고가 액자식으로 보여진다거나 하는 식이죠.
이런 수단을 총동원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넷플릭스가 광고를 도입하는 순간 유료 구독자들이 무료로 전환될 건 불을 보듯 뻔합니다. 무료 독자에게 아무리 광고를 보여줘도 사라진 유료 구독으로 벌던 돈만큼은 절대 벌기 어렵다는 게 진실이죠. 가뜩이나 정크본드인데 현금 흐름이 더 안 좋아지는 겁니다. 게다가 디지털 광고 시장은 진즉 레드오션이 된지 오래입니다. 거의 너 죽고 나 살자는 오징어 게임 수준입니다. 넷플릭스가 구글과 페이스북이라는 양강과 경쟁해서 광고를 빼앗아올 수 있을거라 기대하긴 쉽지 않습니다. 자칫 유료 구독자도 잃고 광고 시장에서도 밀려나는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넷플릭스 문화 메모를 공개한 이후 넷플릭스는 직원 150명을 감축했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지난해 2021년 말 야심차게 출범시켰던 투둠 관련 인력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투둠은 넷플릭스 커뮤니티 플랫폼입니다. 의도는 좋았지만 실패했죠. 이제 넷플릭스는 실패를 용납할 수 없는 조직이 돼 가고 있는 겁니다. 실패를 용납하는 CEO 아래에서 성장한 공동 CEO가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입장이 됐다는 게 아이러니죠.
2022년 버전 넷플릭스 문화 메모에서 특히 강조된 부분은 키퍼 테스트였습니다. 이직하겠다는 직원을 잡아야 하는지 자문자답하는 게 골자입니다. 아니라면 해당 직원은 최고의 인재는 아나라는 논리입니다. 앞으로 넷플릭스는 키퍼 테스트가 난무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키퍼 테스트의 대상은 이직 예정자가 아니라 해고 대상자가 되겠죠.
사실 광고 도입은 넷플릭스의 근간이 흔들리는 변화입니다. 콘텐트 조직에 광고 영업 조직이 결합돼야 하니까요. 이제까진 구독자가 선호하거나 창작자가 애호하는 콘텐트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론 광고주에게 팔리는 콘텐트 기획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직원이 있을 수 있겠죠. 그렇다면 이미 답은 나와 있습니다. 테드가 2022년 버전 넷플릭스 문화 메모에서 답을 줬습니다. “넷플릭스가 당신에게 최적의 장소가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넷플릭스는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넷플릭스 내부에서도 위기가 자라고 있습니다.
공동CEO 테드 사란도스는 넷플릭스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 이야기는 두 도시 이야기입니다. 넷플릭스의 본사는 실리콘벨리에 있습니다. 반면에 콘텐트 관련 주요 부서는 할리우드에 있습니다. 테크놀로지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와 엔터테인먼트의 도시 로스엔젤레스가 넷플릭스를 탄생시킨 두 도시입니다. 테드 사란도스와 리드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를 지탱하는 두 도시 이야기를 상징합니다. 리드는 샌프란시스코 본사가 근거지고 테드는 로스엔젤레스가 일터죠.
이걸 스티브 잡스 식으로 말하자면 넷플릭스는 인문과 기술의 교차로에 서 있다고 묘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넷플릭스의 자유와 책임 문화는 창의성을 중시하는 할리우드 문화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스티브 잡스가 픽사와 디즈니를 합병시켜서 디즈니를 인문과 기술의 교차로에서 재건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죠. 넷플릭스의 공동CEO 체제는 넷플릭스가 교차로 위에 세워졌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구조입니다.
그런데 리드와 테드라는 공동 CEO로 문패를 바꿔 단 넷플릭스의 교차로가 한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교차로들이 많이 생겼거든요. 옆 동네 디즈니 플러스 교차로 가장 위협적이죠. 그렇다면 넷플릭스의 교차로에 교통 신호등과 안내 표지판을 좀 더 세워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광고판도 세워야 하겠죠. 그렇게 해서 테드와 리드 공동 CEO 듀오는 다가올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고 합니다. 넷플릭스 문화 메모에서 읽히는 테드와 리드의 전략은 선명합니다. 어차피 닥칠 겨울이라면 넷플릭스 컬처 테크를 업그레이드할 계기로 삼자는 겁니다. 특히 테드는 자유의 정점에서 자유의 맹점도 목격한 당사자니까요.
그래서 위기 타개의 선봉엔 아무래도 리드보단 테드가 서 있는 모양새입니다. 넷플릭스의 성장을 이끌었듯이 위기마저도 돌파해낸다면 아마 공동CEO에서 공동 딱지를 뗄 수 있을 겁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처럼 리파운더로 불릴 수도 있겠죠. 아니라면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처럼 냉정한 평가를 받을 겁니다. 과연, 넷플릭스 컬처 테크는 위기에서도 빛을 발할까요.
넷플릭스의 미래에 관해선 더밀크가 계속 인사이트를 전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더밀크 신기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