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 이미 중국에 먹혔다”… IFA에서 발견한 3대 시그널
[IFA 2026 디브리핑]
시그널 1: 승자독식 시대 “3등도 못 먹고 산다”... 소니 TV 사례
시그널 2: 기술 중심에서 사용자 가치 중심으로... 에이전틱·피지컬 AI와 AI 홈
시그널 3: 한국 산업의 길… 조선·반도체·방산, VLA가 미래
더밀크의 시각: 한국 기업에 남은 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열린 유럽 최대 가전·IT 전시회 ‘IFA 2026’이 막을 내렸다. 올해 행사에는 155개국에서 24만 명이 방문했고, 2000여 개 기업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IFA 매니지먼트의 공식 결산에 따르면 이 중 약 900개사(약 50%), 전시 면적 기준 약 38%가 중국 기업이었다.
더밀크는 현장을 누빈 정구민 국민대학교 전자공학부 교수의 분석과 더밀크 취재진이 발로 뛰며 확인한 IFA 2026 정보를 토대로 이번 행사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인사이트, 핵심 시그널을 3가지로 정리했다.
시그널 1: 승자독식 시대 “3등도 못 먹고 산다”... 소니 TV 사례
정 교수는 이번 IFA 2026에서 발견한 가장 인상적인 흐름으로 거대기업화(승자독식)를 꼽았다. 과거 같으면 업계 1~5등까지 시장을 분점하며 각각 매출을 올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1,2위를 제외하면 업계 3등도 매출을 올리기 어려워진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상징하는 사건이 소니의 TV 사업 재편이다. 정 교수는 “올해 소니가 소니 TV 사업을 사실상 포기했다”며 “도저히 경쟁이 안 된다고 판단해 중국 기업 TCL에서 제품을 받고, 브랜드만 소니 브랜드인 ‘브라비아’를 붙여서 판다”고 전했다.
실제로 TCL과 소니는 지난 3월 TV·오디오 사업을 통합하는 합작사 ‘브라비아’ 설립 최종계약을 체결했다. 오는 2027년 4월 출범하는 이 회사의 지분 51%는 TCL이 확보, 경영군을 행사하고, 소니는 브랜드·기술로만 영향력을 유지하는 구조다.
이미 글로벌 TV 시장에서 TCL은 1위 삼성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상태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7%, TCL은 14%로 2위를 기록했다. LG는 다른 중국 기업 하이센스(13%)에 이어 4위(9%)로 밀려난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시그마인텔은 TCL이 소니와 손잡을 경우 합산 TV 출하량이 약 3450만 대에 달하게 돼 세계 1위 삼성전자(약 3530만 대)와의 격차를 100만 대 미만으로 좁힐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유럽과 일본 기업은 사라졌으며 한국 기업들은 지위마저 위태로워진 것이다.
중국 제품의 가장 큰 무기는 역시 가격이다. 화질 등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기술적 차이가 거의 없어진 가운데, 저렴한 제품을 선보이기 때문에 경쟁이 안 된다는 것. 정 교수는 “100인치 기준으로 LG전자 OLED가 3000만원대, 삼성 QLED가 2000만원대인데, 중국 QLED는 1000만원”이라며 “일반 소비자들은 중국 제품을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독일 소비자가전산업협회(GFU) 역시 IFA 2026 오프닝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글로벌 시장의 5대 변화 요인 중 첫 번째로 중국 브랜드의 글로벌화를 꼽았다. 중국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 기업들의 브랜드 가치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프리미엄 카테고리에서도 중국 제품이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시그널 2: 기술 중심에서 사용자 가치 중심으로... 에이전틱·피지컬 AI와 AI 홈
기술 트렌드 측면에서 이번 IFA 2026를 관통하는 핵심 흐름은 사용자를 이해하는 디바이스로 정의할 수 있다.
모든 제품에 AI가 탑재(온디바이스 AI)되며 기기들이 서로 연결되기 때문에 사용자를 더 잘 이해하고 최적화된 기능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은 보이지 않게 두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사용자 가치 중심 흐름과도 일맥상통한다.
기기에 탑재된 AI는 사용자가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실행하는 에이전틱 AI로 진화하고, 가전·웨어러블을 넘어 로봇 등 피지컬 AI로 확장되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용자의 맥락과 의도를 선제적으로 이해하는 ‘AI Home’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샤오미가 시연한 ‘‘Human×Car×Home’이 대표적이다. 퇴근길에 집으로 출발하면서 에어컨 온도를 미리 조절해 두거나 운전자가 집을 나서며 차에 탑승하면 휴대전화가 말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연결되고, 집의 조명과 TV, 에어컨이 꺼지는 식으로 제품 트렌드가 발전하고 있다.
사용자 가치 중심 흐름은 다른 제품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됐다. 삼성전자 갤럭시 Z 폴드8의 ‘나우 브리프·나우 넛지(AI가 사용자의 화면 맥락과 상황을 이해해 필요한 정보를 요약하고 다음 행동을 먼저 제안하는 기능)’, 사용자 습관을 학습해 세탁·세척 과정을 자동 조정하는 밀레의 ‘G8 다이아몬드 오토비전’, 상황별 맞춤 대응을 수행하는 LG ‘씽큐 클로(실행형 AI 에이전트)’ 등이 대표 사례다.
정 교수는 LG 씽큐 클로에 대해 “예전에는 ‘지금 온도가 얼마야’라고 묻고 온도를 대답하는 단순 정보 제공이었다면 지금은 ‘밖이 30도니까 실내 온도를 낮추기 위해 에어컨을 켤게요’라고 먼저 제안하고 실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며 “추천과 실행의 방식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IFA에서는 AI·로보틱스·웨어러블 제품의 강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로봇 분야에서는 유니트리·UBTECH·애지봇·엔진AI·갤봇 등 중국 기업이 역대 최대 규모의 휴머노이드를 전시하며 이 흐름을 주도했다.
정 교수는 중국 로보틱스 생태계와 관련 “2019년 테슬라 상하이 공장 가동을 계기로 형성된 자율주행·로보틱스 인프라가 이 생태계 확장의 기반이 됐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기술을 복제해 재현하는 걸 넘어 이제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어 “중국 기업들이 필요한 로보틱스 부품을 모두 나열해 놓고 ‘당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줄게’라고 제안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그널 3: 한국 산업의 길… 조선·반도체·방산, VLA가 미래
“중국에서 배워야 합니다. 이미 유럽 경제는 중국한테 먹혔어요.”
정 교수는 이번 IFA 2026에서 발견한 글로벌 산업의 지형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강력한 기술력 기반의 제조업으로 지탱했던 독일과 유럽의 경제가 중국의 부상에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 완성차 업체들이 IFA 2026 전시에 나오지 않은 것 역시 업체들의 상황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위치는 어디에 있을까? 정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 산업 중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건 조선·반도체·방위산업 세 가지뿐”이라며 “자동차는 현재 ‘세모(중간)’이며 가전은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런 분류는 기업 실적으로도 확인된다. 삼성전자는 2026년 2분기 영업이익 89.5조원(+1812%)을 기록했는데, 이는 대부분 반도체 회복이 이끈 실적이다. 가전(DA) 부문은 2026년 소폭 적자로 전환했다.
LG전자의 가전 부문(H&A)은 영업이익 6859억원(+9.7%)으로 상대적으로 선방했지만, 강력한 도전에 직면한 상황이다. 현대차는 매출이 늘었음에도 영업이익은 20.8% 줄었다. 관세 등 여러 대외 요인이 영향을 미친 상황이다.
정 교수는 3대 산업 외 미래 성장 산업의 핵심 기술로 VLA(비전-랭귀지-액션)를 꼽았다. 앞으로 로보택시, 로보틱스, 휴머노이드 등 피지컬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될 기술인 VLA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저희 대학원생들도 모두 VLA를 연구하고 있다”며 “미국이나 중국보다 이 분야 기술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미래 경쟁력을 갖추려면 기술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다.
더밀크의 시각: 한국 기업에 남은 시간
유럽 경제의 심장 독일에서 진행된 이번 IFA 2026은 한국에도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AI 기술을 주도하는 미국, 시장을 집어 삼키고 있는 중국의 부상 속에서 한국 기업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소니의 항복이 보여주듯 브랜드 프리미엄만으로는 더 이상 방어선을 지킬 수 없고, 반도체가 벌어주는 시간도 무한하지 않다. 자동차, 가전에서 밀리고 있을 때 다음 전장인 피지컬 AI를 먼저 잡아야 한다.
동시에 한국 가전 대기업의 2026년 2분기 실적은 이 압박이 이미 수익성에 반영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삼성전자 전사 영업이익은 반도체 회복에 힘입어 급증했지만, 정작 가전 부문은 적자로 전환했다. LG전자 가전 부문은 비교적 선방했으나, 중국 가전사들의 종합가전화·저가 볼륨 경쟁이라는 구조적 압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단순 스펙 경쟁에서는 중국 기업의 추격 속도를 따돌리기 어렵다. IFA 2026에서 발견한 시그널처럼 사용자가 실제로 체감하는 가치, 즉 시간 절감, 편의성, 신뢰할 수 있는 사후관리를 설계하는 역량으로 한국 기업들이 승부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이 축적한 경험과 브랜드 신뢰는 여전히 유효한 자산이다.
그런 관점에서 LG전자가 로봇 액추에이터 사업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하는 것 역시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AI, 로보틱스, 웨어러블은 IFA에서 발견한 다음 10년이 걸린 영역이다. 한국이 이 새로운 성장축에서 자신만의 좁고 깊은 영역을 얼마나 빨리, 얼마나 명확하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음 라운드의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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