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IC 2026에서 본 중국 휴머노이드 쇼크... 이미 사람의 일을 하고 있었다
[WAIC 2026 현장 리포트] 실전 공장·물류 현장에 즉시 투입된 300여 대의 휴머노이드 군단
제조·공급망·정부 지원의 삼위일체… 중국, 추격자 벗어나 '피지컬 AI 룰 메이커' 등극
분절된 한국 생태계 향한 경고… 연구실 벗어나 '현장 실증 및 실행 속도' 사수해야
지난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바르셀로나의 MWC와 라스베이거스의 CES를 찾으며 글로벌 기술의 최전선을 지켜봐 왔다. 하지만 이번 7월,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 2026) 현장에서 느낀 감정은 놀라움을 넘어선 경외심에 가까웠다.
WAIC는 중국이 AI 기술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 글로벌 기술 표준과 생태계를 주도하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최대 규모의 인공지능 행사다. 엑스포(Expo), 장장(Zhangjiang), 웨스트 번드(West Bund) 3개 클러스터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전시 면적만도 10만 제곱미터를 넘는 거대한 규모였다.
1,117개 기업이 참가해 4,486개의 전시품을 쏟아냈고, 이 가운데 세계 최초로 데뷔한 AI 모델·칩·로봇 등 혁신 제품만 351개에 달했다. 행사의 참가국은 100개국을 넘고, 140여 개의 포럼과 함께 열려 오프라인 참가자만 40만 명을 돌파해 찌는 듯한 상하이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2018년 시작으로 올해 9회차를 맞는 WAIC의 분위기는 개막식부터 확연히 달랐다. ‘세계인공지능대회 고위급 글로벌 거버넌스 회의(High-Level Conference on Global AI Governance)‘가 함께 열리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처음으로 직접 기조연설을 했다.
29개국이 참여한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AICO)‘의 창설과 함께 글로벌 남반구(Global South) 국가들을 향한 대대적인 AI 기술 지원과 개방을 선언했다. 이는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와 기술 견제 속에서 오히려 독자적 생태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글로벌 AI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국가적 선언을 한 것이다.
이번 대회가 열린 상하이 엑스포 전시관(SWEECC)은 중국 AI 산업 가치사슬의 완벽한 축소판이었다.
전시장은 4개의 핵심 구역으로 구성되었는데, AI 인프라와 전력, LLM과 AI 에이전트 중심의 ‘애플리케이션 및 생태계관(H1)‘, 모바일, 산업 AI와 더불어 화웨이를 필두로 한 반도체와 컴퓨팅 기술을 쏟아낸 ‘기술 및 혁신관(H2)‘, 그리고, 혁신 스타트업들의 거점인 ‘글로벌 커넥션관(H4)‘이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이번 대회의 하이라이트로 발걸음을 오래 붙잡은 곳은 바로 ‘체화지능관(H3)’ 이었다.
실전으로 투입되기 시작한 휴머노이드 군단
방문객들로 가장 붐비던 H3에 들어서자마자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200개가 넘는 기업이 300대 이상의 로봇을 전시해놓은, 말 그대로 거대한 ‘체화 지능(Embodied AI) 군단‘이었다.
대형 언어 모델(LLM)이 디지털 데이터로 세상을 이해했다면, 이들은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물리적 세계를 인지하고, 주변 환경을 인식해 실시간으로 최적의 행동을 추론하며 정밀한 물리적 조작을 수행한다.
‘피지컬 AI’가 자율주행차, 드론, 스마트 팩토리 등 물리 법칙이 작용하는 현실 세계의 하드웨어 시스템 전체를 아우르는 거시적 개념이라면, 체화 지능은 팔과 다리 같은 ‘육체(Body)‘를 가진 로봇이 현실 공간에서 직접 움직이도록 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시공간을 북적이고 들썩이게 만드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휴머노이드들이었다. 기존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던 화려한 춤 대신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된 사례들이 전시의 주류를 이루었다.
스마트 기기의 불량을 정확히 검수하고, 복잡한 물류를 스스로 분류하며, 인간의 일상과 산업 현장의 노동력을 대체할 구체적이며 다양한 시나리오들로 전시장 전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각양각색의 무기를 꺼내 든 로봇 기업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경쟁력을 자랑하느라 바빴다.
이제 중국이 보유한 막대한 제조 인프라를 기반으로 휴머노이드 양산 시대가 이미 개막했음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테슬라 옵티머스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꼽히는 애지봇(AgiBot) 부스는 단연 현장의 하이라이트였다. 화웨이의 천재 소년 출신 펑쯔후이가 이끄는 이 기업은 이번에 한층 진화한 신제품 4개를 선보였다.
풀사이즈 휴머노이드 플랫폼인 A3 울트라, 교육 및 연구용 플랫폼인 X2 Edu, 고하중 산업용 작업 로봇인 G2 Max, 그리고 정밀 조작 시스템인 옴니핸드 3 울트라 M을 공개했다.
흥미로운 점은 애지봇이 인간같이 다양한 물리적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을 실현하려는 거대한 목표에 앞서 우선 특정 산업 시나리오에 맞춰 최적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적 생산 물량을 빠르게 확대하고 글로벌 휴머노이드 표준을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고 있다.
또 다른 주목할만한 기업은 '갤봇(Galbot)'이었다. 지난 2025년 베이징 로봇 올림픽의 의약품 분류 챌린지에서 100% 자율 구동으로 미션을 완수하여 압도적인 차이로 우승한 바 있다. 올해 갤봇은 실전 산업에서의 적용 사례를 과시했다. 중국의 리테일 무인매장에서 고객에게 상품을 집어 전달하거나, 외부 방해 속에서도 토스트를 구워 서빙하는 작업을 매끄럽게 완수했다.
갤봇의 S1은 실제 공장 생산라인에 투입 돼 72시간의 작업을 완수했고, 50kg의 지속하중을 감당할 수 있으며 위치와 각도가 무작위로 쌓인 상자들을 운반하고 적재 가능하다. 복잡한 배경 속에서 수 밀리미터 크기의 아주 작은 나사를 인식해 구멍에 정확히 맞춘 뒤, 전동 스크류 드라이버를 집어 체결하는 모습도 시연했다.
유니트리(Unitree)는 뛰어난 동역학 제어 기술과 유연한 모션 제어를 기반으로 보행 로봇 및 휴머노이드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1990년생 왕싱싱이 창업한 유니트리는 미래소년 코난에서 튀어나온 듯한 세계 최초의 양산형 탑승 가능한 로봇인 GD01을 전시해 주목받았다. 2발에서 4발로 변형 가능한 이 로봇은 이동 및 위험한 일에 투입 가능하다.
G1 휴머노이드와 4족 로봇들이 무인 로봇 공장에서의 시연과 화려한 군무를 보인 유니트리는 모터 기술력과 자체 부품 조달망으로 로봇을 찍어내듯 양산해 낼 수 있는 기술과 역량을 어필했다.
로보테라(RobotEra)는 실무 중심의 업무와 활용을 강조하며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혁신적인 사례를 들고왔다.
칭화대 스핀오프 회사인 로보테라는 물류 파트너인 SF익스프레스와 협업, 실제 물류 창고 환경을 구현했으며 화물을 조용하고 정밀하게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시연으로 주목을 받았다.
21개의 자유도와 세밀한 촉각 센싱 기능을 탑재한 고성능 정밀 로봇 손인 XHAND 1 Pro도 공개했다. 특히 이 로봇 손을 저지연 모션 트래킹 글러브 마누스(MANUS)와 연동하여 실시간으로 정밀하게 원격 조작하는 기술을 선보이며, 휴머노이드가 미래의 반복적이고 힘든 수동 노동을 넘어 미세한 힘 조절을 필요로 하는 섬세한 집안일까지도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림엑스 다이나믹스(LimX Dynamics)는 인공지능과 전신 모션 제어 기술이 결합된 통합 로봇 라인업으로 현장을 압도했다.
전신 인터랙티브 휴머노이드 루나(Luna)는 삼바와 중국 전통무용이 결합된 유연한 군무를 선보이며 시선을 사로잡으며, 전시장 밖을 나와 런웨이를 걷듯 군중 사이를 걸으며 관람객과 상호작용하기도 했다.
휴머노이드 올리(Oli) 역시 현장에서 텔레옵(Teleoperation, 원격 조종)을 통해 태극권과 스쿼트를 흔들림 없이 소화했다. 켄타우로스 형태의 4족 휴머노이드 융합형 로봇인 트론2는 30kg에 달하는 타이어를 거뜬히 들어 올리며 강력한 하중 지지력과 정밀 제어 능력을 뽐냈는데, 관람객이 로봇을 강하게 밀치거나 발로 차도, 실시간으로 무게 중심을 잡으며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했다.
험난한 지형에서의 이동 뿐만 아니라, 고중량물 운반, 순찰 및 점검 작업을 수행할 수 있어, 향후 재난 구조나 야외 건설 현장 등에서의 B2B 수요를 예고했다.
무거운 짐을 나르는 물류 현장을 목표로 삼고 있는 캐플러(Kepler)는 실용적 산업에 적용할 하이브리드 아키텍처 4족 로봇인 기린(Qilin) 시리즈를 공개, 직접 사람을 태우는 체험도 진행했다.
실제 공장 라인을 재현하여 K3 휴머노이드 로봇이 협업 작업을 선보였고, 스마트 물류 피킹 구역에서는 로봇이 제품 식별 및 분류 작업을 자율적으로 처리했다. 촉각 피드백과 멀티모달 모델을 기반으로 카페 서비스 뿐 아니라, 옷을 개는 등 다양한 현실에서의 시나리오를 선보이며 로봇이 우리의 삶에 깊숙히 들어오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매직랩(MagicLab)은 산업 현장 및 공공 시나리오의 로보틱스 선도 기업으로 복잡한 작업 이해는 물론 즉각적이고 빠른 행동 실행을 결합한 듀얼 시스템 아키텍처 기반의 범용 체화형 대형 모델 매직-VLA K02를 공개했다.
특히, 키 180cm의 휴머노이드 매직봇 X1은 덩크슛과 탁구 랠리 같은 동작을 선보이며, 자체 설계한 초소형, 고토크 관절 모터를 장착해 제자리에서 높이 뛰어오르는 등의 역동적인 동작이 가능함을 강조했다.
게다가 바퀴형 로봇인 D1은 이미 드리미(Dreame)의 스마트 팩토리에 투입되어 자재 운송 및 생산 라인 적재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상자 쌓기 및 포장, 의류 접기 등 수많은 하위 작업들은 물론 의사결정이 장시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달성할 수 있는 복잡한 과제인 장기 호라이즌 작업에서 90%가 넘는 성공률을 기록하며 실험실 단계를 넘어선 완전 자율 워크플로 구현 가능성을 보여줬다.
중국 협동 로봇 시장의 강자 자카 로보틱스(JAKA Robotics)는 글로벌 제조사 생산 라인에 제품을 공급하며 탄탄한 사업을 이어나가는 기업이다.
이번 전시에서 산업용 협동로봇의 영역을 넘어선 혁신 제품과 시스템을 대거 선보였다. 스스로 공장 내부를 돌아다니며 공정을 넘나드는 자율이동 로봇(AMR, Autonomous Mobile Robot)은 WAIC 체화지능 우수 벤치마크 사례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122cm의 소형 휴머노이드 로봇 자카파이(JAKA π)를 공개해 관람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산업용 AI 로봇 분야의 기술적 리더십을 휴머노이드로 확장시켰다.
항저우 육룡 중 하나인 딥로보틱스(Deep Robotics)는 거대한 고압 변전소 환경으로 전시장을 꾸며, 산업용 로봇개 X30은 계단을 오르내리고 비좁은 틈새를 기어가며, 장착된 열화상 카메라와 센서로 설비의 이상 유무를 스스로 진단하는 데모를 시연했다.
이미 딥로보틱스는 실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한 극한 환경에 로봇을 투입해 캐시카우를 창출하고 있었다.
선전 기반의 서비스 로봇 분야 절대 강자인 푸두 로보틱스(Pudu Robotics) 또한 반신 휴머노이드 로봇 PUDU D7을 최초로 선보였다.
관람객이 로봇의 시점에서 촬영된 특별한 스냅사진을 즉시 받아보는 인터랙티브 체험을 제공해 호응을 얻었다. 전 세계 수만 개의 식당과 호텔, 상업 시설에 로봇을 보급하며 막대한 매출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 푸두는 서로 다른 형태의 로봇들이 하나의 통합된 AI 두뇌를 공유하여 상호작용하며 협업하는 ‘원 브레인, 멀티 임바디먼트(One Brain, Multiple Embodiments)’ 아키텍처를 선보였다.
상용 로봇 라인업인 서비스 배송 로봇 벨라봇(BellaBot), 산업용 배송 로봇 푸두(PUDU) T300, 상업용 청소 로봇 PUDU MT1 Max와 PUDU CC1 Pro를 함께 전시해 요식업, 호텔, 물류, 제조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의 업무 수행 역량을 과시했다.
이번 WAIC 2026의 H3관은 단순히 로봇을 진열해 놓은 전시장이 아니라, 각기 다른 주특기로 무장한 로봇 기업들의 치열한 전쟁터와 같았다. 천편일률적 형태가 아닌, 물류, 가사, 극한 환경, 협동 작업 등 각자의 명확한 타깃 시나리오를 들고 나온 기업들의 면면을 통해 중국 체화 지능 산업의 무서운 실력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중국은 어떻게 휴머노이드 제국을 빠르게 만들었나?
중국에서는 왜 이렇게 빠르게 휴머노이드가 폭발하고 있는가? 그 배경은 단순히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이나 젊은 창업가들의 열정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작년부터 중국을 오가며 현장에서 확인한 중국의 경쟁력은 거대한 제조 현장과 완결된 부품 공급망, 정책과 자본, 그리고 AI 모델과 로봇 하드웨어가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로 맞물려 움직이는 데 있었다.
1. 세계 최대 현실 세계의 실험장
중국 로봇 산업의 강력한 자산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의 빠른 실험과 적용을 가능하게 만드는 실증 환경이다.
서구의 일반 기업들이 시뮬레이션이나 제한된 테스트베드 안에서 로봇을 고도화하는 동안, 중국 기업들은 공장과 물류센터, 호텔, 발전소, 건설 현장을 거대한 실험장으로 활용했다.
실제 작업 라인에 로봇을 과감히 투입해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빠르게 수정했다. 실패를 반복 가능한 데이터로 전환하고, 다시 모델과 하드웨어 설계에 반영한다. 로봇 손 하나의 정교한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 수천 번, 수만 번의 반복 학습을 감당하는 집요함도 그 뒤를 받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은 로봇이 발생하는 데이터를 빠르게 축적하고, 이를 다시 제품 개선으로 연결하는 '피드백' 능력에 있다. 실험실에서 95%의 성공률을 올리는 로봇보다 공장에서 매일 수천 번 작동하는 로봇이 더 빠르게 진화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2. 제조 공급망이 만들어낸 가격과 속도
중국이 보유한 또 다른 무기는 제조 생태계다. 감속기, 액추에이터, 모터, 배터리, 센서, 제어 보드에 이르기까지 로봇의 핵심 부품을 자체 공급망 안에서 조달할 수 있다.
부품업체와 솔루션 파트너, 소프트웨어 기업이 같은 권역에 밀집해 있어 설계 변경과 시제품 제작의 주기가 주 단위로 돌아간다. 선전과 상하이, 쑤저우를 중심으로 형성된 중국의 혁신 클러스터는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다. 다른 도시에서 수 개월이 걸릴 개발 사이클을 이곳에서는 수 주 안에 반복할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은 모터와 감속기, 제어기, 센서, 소프트웨어 프레임워크를 직접 개발, 내재화했고 이는 휴머노이드의 가격을 극적으로 낮추는 기반이 됐다.
가격이 낮아지니 더 많은 생산과 실증으로 이어진다. 생산량이 늘어나면 부품 단가가 다시 하락하고, 현장에 배치되는 로봇의 수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며 더 똑똑해진다.
결국 중국의 가격 경쟁력은 부품 내재화와 반복 생산, 대규모 실증이 함께 맞물려 만들어내는 구조적 부산물이다.
중국 기업들이 비교적 낮은 가격의 휴머노이드 플랫폼을 잇달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봇 한 대에서 이익이 높지 않더라도 먼저 시장에 대량 보급해 생산 경험과 현장 데이터를 축적하고, 그 과정에서 제품의 완성도를 빠르게 높여 시장에 먼저 진입하여 리텐션하려는 전략이다.
중국의 제조 경쟁력은 단순히 싸게 만드는 능력이 아닌, 더 많이 만들고 더 빨리 수정하며 더 빠르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능력이다.
3. 정부가 시장을 만들고, 도시가 산업을 키운다
중국 휴머노이드 산업의 도약은 중앙정부와 국영기업이 첫 번째 거대 고객으로 초기 시장의 문을 열고 지원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기술이 민간 시장에서 수익성을 완벽히 증명하기 전, 궤도에 오를 때까지 발생하는 리스크를 정부가 조달 구매를 통해 직접 떠안는다.
로봇 스타트업이 상용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장벽은 기술 자체보다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사용해 줄 첫 고객을 찾는 일이다. 중국에서는 발전소 순찰, 도시 시설 점검, 물류 자동화, 재난 대응, 공공 안전과 같은 분야에서 지방정부와 국유기업이 먼저 로봇을 도입한다.
기업은 이 과정에서 초기 매출과 레퍼런스를 확보하고, 실제 현장에서 얻은 데이터를 다시 제품 고도화에 활용한다.
이렇게 정부가 마중물로 만든 시장 위에, 지방 도시들은 기업들이 고정비 걱정 없이 대량 양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산업을 본격적으로 키워내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
베이징, 상하이, 우한 등 주요 지방 지자체들은 특정 판매 목표를 달성한 로봇 기업에게 파격적인 포상금과 무료 사무실 및 공장 부지를 지원한다.
그 뿐 아니라 시장을 만들기 위해 지역 내 공장이나 서비스 업체가 휴머노이드를 적극 도입할 수 있도록 보조금을 제공하여 민간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육성한다.
각 도시들은 누가 더 많은 기업을 유치하고, 더 빠르게 실증하며, 더 큰 산업 성과를 만들 것인지를 놓고 경쟁하여 산업의 속도를 더욱 끌어올린다.
베이징은 AI 모델과 Embodied AI 연구, 상하이는 제조와 산업 적용, 선전은 하드웨어와 상용화, 항저우는 AI 스타트업 육성에 집중하며 각자의 강점을 키우고 있다. 쑤저우와 광저우, 청두, 난징 등도 로봇 산업단지와 공동 연구소, 테스트베드를 조성하며 기업과 프로젝트 유치에 뛰어들고 있다.
중국의 진정한 힘은 정부가 든든한 시장의 판을 짜고, 도시가 파격적인 인프라로 산업의 덩치를 키우고 민간으로 이어지게 하는 국가 주도의 완벽한 지원 시스템이 배후에서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성공이 또 다른 창업을 낳는 인재 생태계
또 하나 강력한 성장 동인은 중국의 대학에서 배출되는 최소 연 200만명(최대 500만명)이 넘는 기술 인재이다.
칭화대, 베이징대, 상하이교통대, 저장대, 하얼빈공업대 등 주요 대학은 AI와 로봇, 제어공학, 컴퓨터 비전 분야의 뛰어난 연구자와 엔지니어를 대규모로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인재가 많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도전을 선택하게 만드는 성공의 경험이 산업계에 축적되어 왔다는 점이다.성공한 창업가들이 롤모델이 돼 다음 세대의 도전을 이끌어내는 선순환 구조인 것이다.
알리바바와 샤오미, 화웨이, 텐센트, DJI와 같이 중국에서 창업한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며 글로벌 기술기업이 실리콘밸리에서만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동시에 그 기업들은 수많은 엔지니어에게 연구개발과 제품화, 조직 운영, 대량 생산과 글로벌 시장 진출의 경험을 제공하는 거대한 훈련장 역할을 했다. 그 안에서 성장한 인재들이 회사를 떠나 창업에 나섰고, 먼저 성공한 기업과 창업가, 투자기관은 다시 이들의 투자자와 고객, 파트너가 되었다.
한 세대가 축적한 자본과 기술, 인적 네트워크가 다음 세대의 창업을 지원하고 지지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샤오미의 레이쥔, DJI의 왕타오와 같은 창업자들은 이러한 흐름에서 탄생한 새로운 롤모델이었다. 이들의 도전으로 젊은 중국 공학자도 독자적인 기술로 세계 시장의 판도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새로운 세대가 창업을 하도록 자극했다.
그 결과 최근 중국에서는 젊은 연구자와 대기업 출신 엔지니어들이 세운 로봇 기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화웨이 출신의 1993년생 펑쯔후이는 2023년 애지봇을, 칭화대 교수인 천젠위는 같은 해 로보테라를, 1992년생 베이징대 교수 왕허는 갤봇을 창업했다. 1998년생 장저위안도 2023년 노에틱스 로보틱스를 설립했다. 이 기업들 모두 빠르게 창업 2~3년 내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이 생태계의 힘은 뛰어난 인재가 창업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은 기술과 연구 인력을 공급하고, 대기업은 제품화와 조직 운영 경험을 제공하며, 기존 기술기업과 벤처캐피털은 자본과 고객, 사업 기회를 연결한다.
먼저 성공한 창업가들은 투자와 멘토링, 인재 추천을 통해 후배 기업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실패한 창업자의 경험도 다른 스타트업과 연구기관, 투자사로 이동해 다시 산업의 자산이 된다.
이 거대한 산업을 지속해서 움직이는 심장은 성공을 위해 도전하는 젊은 공학자들의 야심과 그 도전을 다시 지원하는 세대 간의 선순환이다.
중국 AI는 이제 추격자가 아니라 ‘규칙을 만드는 자‘가 되고 있다
WAIC 2026에서의 휴머노이드는 중국 AI 산업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더 거대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기업들은 오픈AI, 구글, 앤트로픽, 엔비디아를 얼마나 빠르게 따라잡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중국 기업들은 더 이상 누구를 추격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들이 어떤 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있으며, 기술이 어디에 배치되고 어떤 고객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기업들이 강조한 것은 공장의 불량률을 얼마나 낮췄는지, 물류 동선을 얼마나 단축했는지, 에너지 소비와 신약 개발 시간을 얼마나 줄였는지였다.
대형 플랫폼 기업뿐 아니라 AI 칩, 센서, 로봇 손, 관절 모터, 산업 소프트웨어와 대학 연구팀까지 가치사슬 전체가 하나의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새로운 모델이 등장하면 곧바로 로봇과 산업 장비에 적용되고, 현장에서 발견된 문제는 다시 모델과 부품 설계에 반영된다. 중국 기업들은 기술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시장에 먼저 들어가며 기술을 완성하고 있었다.
글로벌 AI 경쟁은 실제 산업 현장과 결합하고, 사용 과정에서 데이터를 축적하며, 이를 다시 모델과 제품 개선으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누가 장악하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중국은 자신들이 가장 강한 제조업과 공급망, 산업 현장과 물리적 세계의 데이터를 중심으로 새로운 AI 경쟁의 장을 만들고 있다. 상대가 만든 경기장에서 뒤따라가는 대신, 자신에게 유리한 규칙을 직접 설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중국은 추격자의 프레임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게임의 규칙과 산업의 기준을 만들어내는 ‘룰 메이커’가 되고 있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산업 전체를 움직이는 시스템
중국의 휴머노이드 산업을 바라보며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개별 로봇의 성능 차이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격차는 기술이 연구실을 벗어나 제품이 되고, 산업 현장에 투입되며, 그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가 다시 다음 세대 기술로 이어지는 혁신의 속도에 있다.
한국에도 세계적인 제조기업과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정밀 부품, 통신 인프라와 우수한 로봇 연구진이 존재한다. 자동차와 조선, 전자, 물류, 건설처럼 로봇을 먼저 적용할 산업 현장도 충분하다.
문제는 이 역량들이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되지 못한 채 기업과 연구기관, 산업별로 분절되어 있다는 점이다.
완벽한 기술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기보다 빠르게 현장에 투입하고, 실패를 데이터로 바꾸는 능력이 중요하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위험 시설 점검, 재난 대응, 국방, 공항과 항만, 발전소와 사회기반시설 같은 분야에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대기업 역시 스타트업을 단순한 납품업체로 볼 것이 아니라, 공장과 물류센터를 실증 공간으로 열고 장기적인 생태계 조성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을 무조건 배제하거나 경쟁자로만 바라보는 접근도 현실적이지 않다. 중국은 이미 로봇 부품과 하드웨어 양산, 공급망, 대규모 실증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한국은 핵심 기술과 데이터 주권, 보안과 안전 기준은 지키되, 부품 조달과 공동 생산, 현지 실증, 제3국 시장 진출처럼 서로의 강점을 결합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과감하게 협력해야 한다. 경쟁할 분야에서는 치열하게 경쟁하고, 함께 시장을 키울 수 있는 분야에서는 전략적으로 손을 잡는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이 중국과 같은 규모로 경쟁할 수는 없다. 대신 우리의 강점에 집중해야 한다. 명확한 문제와 고객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여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기술 하나 하나가 아닌, 기술을 산업으로 전환하는 구조와 원리를 보아야 한다.
WAIC 2026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결국 AI 시대 휴머노이드 경쟁의 본질은 로봇을 빠르게 현실의 문제에 투입해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경험과 가치를 다음 제품과 산업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AI 시대가 가져올 미래는 이제 시작이며, 여전히 우리에게 거대한 기회의 땅이기 때문이다.
전진수 대표는 누구?
전진수 볼드스텝(Boldstep) 대표는 삼성전자와 SK텔레콤 등에서 약 27년간 모바일 플랫폼과 AI, XR 기술 혁신을 주도해온 테크 전문가이자 창업가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약 12년간 모바일 플랫폼 개발 및 상품화를 담당했으며, 이후 SK텔레콤 부사장으로서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ifland)' 상용화와 AI·AR·VR 기반 실감형 미디어 사업을 총괄했다. 이후 기술 스타트업 슈퍼랩스를 창업해 이끄는 등 130여 건의 국내외 특허를 출원하며 2020년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현재는 AI와 공간 컴퓨팅 기술 기반의 비즈니스를 개척하는 볼드스텝의 대표이자 Fast.B의 공동 창업자(Co-Founder)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저서 『넥스트 AI 공간 컴퓨팅』을 집필하고 컴패노이드 랩스 벤처 파트너 및 주요 기관의 기술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며 차세대 기술 패러다임을 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