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미국' 상징하듯 히어로에서 빌런이 된, 보잉
[테크브리핑] 지금 이 시대, 왜 보잉인가?
보잉 737 맥스 기종 사고 끊이지 않아.. 결국 결함 인정.
2005년 분리, 매각했던 자회사 비싼 값에 인수
영웅(히어로)적 기업이던 보잉, 빌런 이미지로 ... 고장난 미국을 상징
정부 수주 어려워질 듯... 재탄생해서 다시 영웅될 수 있을까?
보잉이 지난 2018년과 2019년 잇따른 항공기 참사와 관련해 형사 책임을 인정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또 '효율화'를 추구한다며 분사한 회사를 비싼 값에 다시 인수했습니다. 운항 도중 상공에서 문짝이 떨어져나가고 이륙 직전 랜딩 기어가 빠지는 등 사건 사고는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한 때 슈퍼 히어로처럼 미국의 기술을 상징하며 나라를 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선한 사람을 공격하는 '빌런'의 이미지가 됐습니다. GE처럼 무너질지 모릅니다. 고장난 미국을 상징하는 것 같은 기업. 보잉(Boeing) 스토리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지난 11일(현지시간) 미 아메리칸 항공 소속 보잉 737-800 여객기가 이륙을 시도하던 중 바퀴에서 연기가 발생해 활주로에서 긴급 정지했습니다. 사고로 승객들은 긴급하게 비행기에서 내려 터미널로 이동했습니다.
미 플로리다주 탬파국제공항에서 이륙하려고 가속 중이던 아메리칸 항공 590편 바닥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랜딩기어 바퀴 부근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불꽃이 튀기도 했습니다. 비행기에는 승객 174명과 승무원 6명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습니다.
지난 8일에는 미 유나이티드 항공사 소속 보잉 757-200 항공기가 로스앤젤레스(LA)에서 덴버로 향하던 중 이륙 도중 랜딩기어 바퀴가 빠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도 부상자는 없어서 크게 보도되진 않았지만 승객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보잉은 지난 2018년 이후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아 '고장난 미국'을 상징하는 기업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보잉은 두 차례의 737 맥스8 여객기 추락사고와 관련해 '사기 혐의'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보잉은 일련의 사고로 인해 346명의 사망자를 낸 바 있습니다.
인프라 구축, 기술 개발, 인재 육성, 전략적 비전 등 기업 성장의 4대 핵심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 '추락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던 보잉. 왜 빌런이 됐을까요? 다시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요?
보잉의 문제는 폐쇄적 기업문화, 본질(엔지니어링)을 망각한 경영진
지난 2018년 인도네시아의 항공사 라이언에어, 2019년에는 에티오피아 항공사 소속 항공기가 추락해 각각 189명, 15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었는데요. 두 항공사의 사고 항공기가 모두 보잉 737 맥스 8 기종이었습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건이지만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고 당시엔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 항공사 또는 기장의 운영 미숙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기장이 영어를 못해서. 영어로된 콕핏(비행사들이 비행기를 운전하는 디지털 기기)을 이해하지 못해서"라는 편파적이고 편견에 찬 이유가 미국 언론으로 부터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미 연방항공국(FAA)이나 항공사, 항공기 제조사 등 '업계'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보잉'이나 FAA에 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조사 결과 보잉 737 맥스8 기종의 조종특성향상시스템(MCAS)이란 소프트웨어 오작동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보잉 기종의 사고가 끊이지 않고 보잉 737 맥스 기종 결함이 속속 드러나면서 보잉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되자 보잉은 '히어로'가 아닌 '빌런'과 같은 회사가 됐습니다.
보잉의 문제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다운폴: 더 보잉 케이스'에서 자세히 다뤄졌을 정도로 널리 인식됐습니다. 특히 미국 항공사 CEO들이 운행 지연 등 보잉 항공기 사고로 발생한 손실을 토로하면서 보잉에 직격타를 날렸습니다.
보잉의 1282편 사고(2024년 1월 5일 이륙 후 4880미터 고도에서 비행기 옆면에 구멍이 뚫린 사고)로 인해 약 2000억원 가량 피해를 입은 알래스카항공 벤 미니쿠치 CEO는 “좌절과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로버트 아이솜 아메리칸 항공 CEO는 "우리는 보잉에 책임을 물을 것이다. 보잉은 정말 정신 차려야 한다"고 직격타를 날렸습니다 .
미국 항공 업계의 문제는 '업계'가 좁고 폐쇄적이라는 것입니다. 방위산업, 국가보안, 안전의 키워드는 곧 '폐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 등 살아 있는 전설 같은 기업인들도 이 산업을 뚫기 까지 20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특히 보잉은 항공사가 자신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내에서는 사실상 독점 상황이고 F15 전투기 등 방위산업체도 보유하고 있어서 군사적 이유로도 보잉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업입니다. 유럽의 에어버스는 물론, 중국도 자체 항공기 제작에 가속도를 내면서 보잉의 '보호' 론은 힘을 얻었습니다. 이 같은 '산업 보호' 명분이 보잉을 망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보잉의 잇단 사고 원인으로 기술 및 엔지니어링 중심 회사에서 전문경영자 중심 CEO 등 C레벨들이 '주가 관리' 위주로 돌아서면서 기업 문화가 바뀐 것이 큰 이유로 꼽힙니다. 경영 효율화의 명복으로 핵심 부품을 아웃소싱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면서 핵심 엔지니어들이 먼저 회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자존심 상한 이들은 스페이스X, 아마존 등 플랫폼 기업으로 향했습니다.
보잉의 경영진이 '안전' 보다 에어버스와의 승리, 그리고 주주 가치에만 신경 썼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실제 보잉은 지난 2010년부터 400억 달러(약 55조3320억 원) 이상을 자사주 매입에 투입했습니다.
지난 2018년 사고 후 보잉 경영진은 “비용을 우선시한다는 비판에 동의할 수 없다. 성과나 목표를 안전과 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외쳤지만 2024년에도 보잉 사고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결국 한번 바뀐 회사의 본질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번에 주당 35달러에 인수하기로 결정한 '스피릿 에어로시스템'은 지난 2005년 '경영 효율화'를 명분으로 사모펀드에 매각, 보잉에서 분사시킨 기업입니다. 항공기 동체를 만드는 회사인데 당시 경영진은 분리, 매각을 결정한 것입니다.
물론 당시 의사결정의 시대적 배경은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이 본격적으로 '세계의 생산기지'가 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는 애플식 아웃소싱이 경영의 대세로 여겨졌습니다. 핵심 디자인과 연구개발은 내제화하고 제조는 중국으로 외주 또는 아웃소싱을 통해 해결하며 전체 시스템을 관리, 운영하겠다는 경영 전략입니다.
애플은 팀쿡이라는 당시 2인자이자 중국을 제 집 드나들듯하며 소재 부품 소싱은 물론, 생산관리까지 총책임한 인물이 있던 반면 보잉은 중국으로 아웃소싱은 하지 않더라도 워낙 많은 부품과 시스템이 얽혀 있어 한 사람이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조직이었습니다. 에어버스와의 경쟁과 주가 압박에 시달리던 보잉은 역사상 가장 큰 분리 매각을 밀어부쳤습니다. 에어버스의 지배구조는 유럽 3개 정부(프랑스, 독일, 스페인)가 대주주 또는 주요 주주가 돼 있는 준공영 기업입니다. 노조의 힘도 쎄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란 비판을 감수하고 동체 등 주요 제작 분리매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지금 양사의 결과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보잉은 분리 매각한 동체 사업부(스피릿 에어로시스템)가 '보잉 737 맥스' 비상구 덮개가 불량 상태에서 납품했고 보잉은 그대로 '조립'해서 완성품이라며 항공사(알래스카 항공)에 납품한 것입니다.
결국 보잉은 매각 19년만에 다시 스피릿 에어로시스템즈를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비싼 대가를 치루고 나서야 제자리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정부 수주 힘들어 질 듯 ... 스페이스X, 민간 항공기 제조 뛰어들까?
잇따른 안전 문제로 당국의 압박을 받고 있는 보잉은 향후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요. WSJ는 "유죄 인정이 보잉에 사업상의 어려움을 안겨줄 것"이라고 분석했는데요.
중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기업은 방위산업 계약자 자격을 상실하거나 금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뉴욕타임스도 보잉의 유죄 인정이 정부 계약 수주에 리스크 요인이 될 것으로 분석했는데요. 항공우주 분석가 로렌 톰슨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계약은 보잉 매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국방, 우주 사업에 차질이 생기면 비즈니스에 치명적일 수 있다"라고 우려했습니다.
특히 "보잉의 국방 사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다른 제조업체들이 성장하면서 쇠퇴했다"면서 "신규 국방 사업을 수주하는 데 있어서의 추가 장애물은 회사의 제품 포트폴리오에 매우 해로울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연방 데이터에 따르면 보잉은 지난해에만 229억 달러 규모의 국방부 계약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보잉은 결과에 대해 면제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보잉과 국방부가 협의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정부의 우주개발 사업을 잇따라 수주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보잉의 빈 공간을 파고들어 이 사업에 진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민간 항공 사업일지 전투기 사업일지 기대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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