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말,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트럼프는 뉴욕 트럼프 타워에 일종의 정권 인수위원회 사무실을 차렸다. 수 많은 사람들이 새 대통령이 된 트럼프를 알현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 중에는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도 있었다.손 회장에겐 트럼프 타워가 뉴욕의 첫 번째 방문지는 아니었다. 트럼프를 만나기 전 한 기업을 방문했다. 뉴욕에 본사를 둔 공유 사무실 업체 위워크였다. 뉴욕 맨하탄은 차가 무지 막히는 곳. 예상보다 일정이 늦어졌고 미국의 대통령 당선인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손 회장은 위워크에 잠시만 머문 후 곧바로 트럼프 타워로 발길을 옮겨야 했다. 그가 위워크에 머문 시간은 단 12분이었다. 대신 손 회장은 위워크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애덤 뉴먼에게 차를 같이 타고 가자고 했다.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손 회장에게 투자를 받기 위해 온갖 준비를 해온 뉴먼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차에 올라탔다.이번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아니었다. 몇 달 전 둘은 인도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스타트업 인디아’라는 행사에서 였다. 둘은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관심을 가졌지만 당시 만남은 짧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트럼프 타워까지 가는 30~45분 동안 둘은 아이패드에 계획을 써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위워크가 어디까지 성장을 할 수 있는지, 손 회장이 투자를 하면 투자금은 어디에 쓸지 등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트럼프 타워로 가는 중간쯤 뉴먼이 차에서 내렸을 때 손 회장은 44억 달러의 투자를 약속한 뒤였다. 뉴먼은 미친 사람처럼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위워크 사무실로 돌아갔다.사실상의 첫 만남, 12분 간의 위워크 방문, 1시간이 채 안되는 미팅. 일종의 탐색전에 가까워야 했을 이 만남이 부른 결과는 무려 44억 달러의 투자였다. 손 회장의 이 투자는 부동산 기업인 위워크의 가치를 테크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손 회장이 거의 혼자 힘으로 끌어 올린 가치였다. 이후 위워크는 최대 470억 달러에 이르는 가치를 인정 받게 된다. 이 만남의 순간은 너무 유명해서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졌다. 훌루(Hulu)가 제작한 다큐에 따르면 손 회장은 뉴먼에게 “당신은 스마트한 사람과 미친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걸 것이라고 보는가?” 라고 물었고 뉴먼은 “미친놈”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손 회장은 “아담이 아직 덜 미쳤다”고 회답했다. 44억달러를 투자할테니 더 미치도록 사업을 확장하라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뉴먼은 이 말을 그대로 듣고 '미친' 사람이 됐다. 이 만남은 미국 스타트업 역사상 최고의 ‘잘못된 만남’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이로부터 약 3년 후 위워크는 추락을 거듭하며 IPO에 실패했다. 뉴먼은 CEO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손 회장은 위워크에 대한 투자는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 했다. 400억 달러에 가까운 가치가 사라졌다. 투자자들은 돈을 잃었고 위워크 직원들은 직장을 잃었다.월스트리트저널에서 위워크를 취재했던 두 명의 기자 엘리엇 브라운과 모린 파렐이 쓴 신간 '더 컬트 오브 위(The Cult of We : WeWork, Adam Neumann, and the Great Startup Delusion)’는 위워크의 흥망성쇠를 자세히 파고 들었다.저자는 300명이 넘는 위워크와 소프트뱅크 관계자를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책을 썼다. 어떻게 부동산 임대 기업이 테크기업 수준의 가치를 갖게 됐고, 그렇게 미국 스타트업 중 최상위권의 가치를 자랑하던 기업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추락을 하게 됐을까 라는 단순한 물음에서 출발했다. 그 답변의 중심에는 매력적이지만 사기꾼 기질이 농후한 창업자 뉴먼과 무모한 듯한 창업자를 좋아하는 투자자 손 회장의 '잘못된 만남'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