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기 존슨 애질리티 로보틱스 CEO, 미래 노동을 새로 쓰다

reporter-profile
김기림 2025.03.06 13:00 PDT
페기 존슨 애질리티 로보틱스 CEO, 미래 노동을 새로 쓰다
페기 존슨 애질리티 로보틱스 CEO (출처 : Business Wire/ 편집: 더밀크 김현지)

[CEO포커스] 페기 존슨
인간과 협업하는 로봇의 탄생... '디지트' 산업 노동력 문제 해결 핵심으로
퀄컴 엔지니어 출신... 매직 리프 회복시킨 후 애질리티 로보틱스 CEO로
사람 중심 포용적 리더십의 전략가

혁신은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포용적 성장을 이끌고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다.
페기 존슨 애질리티 로보특스 CEO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며, 이제 제조업 공장을 넘어 가정에서도 로봇을 만날 날이 머지않았다. 기술 성숙도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산업에 로봇이 투입될 것이며, 이는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작업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더 큰 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MWC2025 기조 연설자로 나선 페기 존슨(Peggy Johnson), 애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 CEO는 "혁신은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포용적 성장을 이끌고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혁신의 중심에는 로봇이 있다.

2016년 설립된 애질리티 로보틱스는 인간형 로봇 '디지트(Digit)' 개발사로, 오레곤 주립대학의 연구를 기반으로 탄생했다. 이들은 양다리와 팔을 갖춘 인간형 로봇을 제작하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힘을 증강하는 로봇 파트너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애질리티 로보틱스는 페기 존슨 CEO, 데미언 셸턴 공동 창업자, 조나단 허스트 공동 창업자가 이끌고 있다. GAI(General Artificial Intelligence)와 인간형 하드웨어를 결합한 가장 주목받는 스타트업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족 보행 모바일 조작 로봇(MMR) '디지트'는 업무 수행을 목적으로 설계된 최초의 다용도 인간 중심 로봇이다. 회사는 미국 오레곤에 세계 최초의 인간형 로봇 대량 생산 공장인 로보팹(RoboFab™)을 완공했으며, 연간 1만 대 이상의 로봇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디지트는 단순한 자동화 기계가 아니라, 생산 공정, 리테일, 로지스틱스, 접객 서비스 등 인간과 협업이 필요한 산업 전반에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전망이다.

인간과 협업하는 로봇은 더 이상 SF 속 상상이 아니다. 인간의 노동력을 보완하고, 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한 작업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할 휴머노이드 로봇. 그리고 그 혁신을 이끌고 있는 애질리티 로보틱스와 페기 존슨 CEO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질리티 로보틱스 '디지트' (출처 : 애질리티 로보틱스)

페기 존슨의 여정, 엔지니어에서 CEO까지

페기 존슨은 미국의 기술 산업을 대표하는 베테랑 경영인이다. 퀄컴에서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업 개발 책임자를 거쳤고, 2020년에는 AR(증강현실) 스타트업 매직 리프(Magic Leap)의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했다. 2024년 3월부터 애질리티 로보틱스의 CEO로 선임되어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1960년 캘리포니아주 알함브라에서 태어난 페기 존슨은 15명의 자녀를 둔 대가족에서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조용히 주변을 관찰하며 배우는 성격이었던 그는, 가족과의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협업과 책임감을 익혔다고 회고한다.

존슨은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에서 전기공학 학사 학위(BSEE)를 취득하며 공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학 신입생 시절 우연히 공대 사무실에 들렀다가, 직원들의 권유로 공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수학과 과학에 흥미를 갖고 있었던 존슨은 이 계기로 공학으로 전환했고, 이는 훗날 기술 업계 리더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존슨은 대학 졸업 후 제너럴 일렉트릭(GE)의 군사용 전자장비 부서에서 엔지니어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반도체 및 통신 기업 퀄컴으로 옮겨 1980년대 후반부터 약 24년간 몸담으며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냈다. 퀄컴 재직 시절 존슨은 엔지니어로 출발해 사업 부문으로 전환하는 이색적인 경로를 밟았다. 

기술팀과 고객사 비즈니스팀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며 전문용어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던 소통 능력이 높이 평가받아, 엔지니어에서 비즈니스 담당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

이후 퀄컴에서 무선통신 기술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스토어 등 신기술 관련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영업·마케팅·사업 개발 등 다양한 부서의 리더십 역할을 수행하며 경영 감각을 키웠다. 결국 퀄컴 경영진 집행위원회(Executive Committee)의 일원으로 발탁될 정도로 회사 핵심 인물로 발돋움했다. 

2014년,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의 직접 영입 제안으로 존슨은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업 개발 담당 부사장(EVP)으로 임명되어 거액의 사이닝 보너스(약 780만달러)를 받을 정도로 큰 기대를 모았다. 이 자리에서 존슨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성장 전략 수립과 인수·합병(M&A), 전략적 제휴를 총괄하며 회사의 변화를 주도했다. 

그는 입사 후 약 6년 동안 40건이 넘는 스타트업 투자와 인수 작업을 이끌었고, 그 중에는 2016년 프로페셔널 소셜네트워크 링크드인을 262억달러에 인수한 초대형 거래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사내 벤처투자 조직인 M12(마이크로소프트 벤처 펀드)를 출범시켜 유망 기술 기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강화하는 등, '딜메이커(Deal-maker) 총사령관'으로 불릴 만큼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

위기 극복의 리더십, 매직 리프 사례

2020년 8월, 존슨은 실리콘밸리의 주목받는 스타트업 매직 리프(Magic Leap)의 CEO로 선임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매직 리프는 한때 혁신적인 AR 헤드셋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존슨은 직접 매직 리프 이사회에 본인을 추천하여 이 자리를 얻었을 만큼 열의를 보였는데, 안정된 대기업 임원 자리에서 벗어나 위기의 스타트업을 이끌겠다는 결정은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과 원격 업무가 확산되던 시기에 취임한 존슨은, 취임 직후 소비자 대상 사업을 기업(B2B)용으로 전환하는 대대적인 전략 수정에 착수했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해 자금을 절약하고, 기존 투자자들로부터 3.75억달러의 긴급 자금을 유치하여 파산 위기를 넘겼다.

이후 매직 리프 2 헤드셋을 출시하여 의료, 제조, 국방 등 산업 현장 중심의 AR 활용에 집중함으로써 기업용 공간컴퓨팅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는 성과를 거두었다. 약 3년간의 재임 동안 존슨은 매직 리프의 방만한 경영을 추슬러 엔터프라이즈 중심 기업으로 탈바꿈시켰고, 2023년 10월 해당 미션을 마무리 지은 뒤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2024년 3월, 존슨은 로봇 스타트업 애질리티 로보틱스의 CEO로 취임하며 또 한 번 커리어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애질리티 로보틱스는 존슨을 영입하며 대규모 양산과 글로벌 사업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존슨의 합류로 창업 CEO였던 데미언 쉘턴은 사장직으로 이동해 그를 보좌하게 되었고, 회사는 캘리포니아와 펜실베이니아에 새 거점을 마련하며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다.

애질리티 로보틱스는 존슨에게 있어 새로운 도약의 무대다. 이 기업은 물류창고용 2족 보행 로봇 '디지트'을 개발하여 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에 앞장서고 있으며, 아마존 등의 투자와 협업을 통해 빠르게 성장 중이다.

존슨은 취임과 함께 1억 1000만달러 규모의 투자 유치를 마무리하며 기업 가치 12억달러(유니콘 기업 등극)를 달성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 오리건주에 연간 1만 대 이상의 로봇을 생산할 수 있는 대형 공장 '로보팹(RoboFab)' 건설을 추진하여 향후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존슨이 가진 풍부한 산업 네트워크와 사업 개발 경험이 애질리티 로보틱스의 전략적 파트너십 확대와 추가 자본 확보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로봇 생산을 스케일업하여 폭발적인 수요에 대응하고, 판매와 파트너십, 자금 조달에 주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히며 회사의 다음 단계 성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

애질리티 로보틱스 '디지트' (출처 : 애질리티 로보틱스)
리더십의 핵심은 상대의 이야기를 깊이 듣고 그 입장에서 이해하는 능력이다.
페기 존슨

페기 존슨의 리더십, 사람 중심 기술과 포용의 경영 철학

페기 존슨의 리더십 스타일은 사람과 기술의 조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엔지니어로서 기술 혁신을 추구하면서도, 그는 "기술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성취하려는 일을 보조하는 것이어야지 대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매직 리프 시절 여러 인터뷰에서 존슨은 첨단 기술도 결국 인간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활용되어야 지속 가능하다고 역설해왔다. 이러한 신념은 그가 로봇 산업에 뛰어든 현재에도 이어져, AI와 로보틱스의 발전이 인간 노동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반복적이고 위험한 일은 로봇이 맡고 인간은 보다 부가가치 높은 일에 집중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조직 운영에 있어서 존슨은 포용적이고 수평적인 문화를 지향한다. 과거 퀄컴에서 여성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 한때는 주목을 받기 위해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기도 했으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신 그는 스스로의 강점을 살리는 진정성 있는 리더십으로 방향을 틀었다. 

존슨은 "더 이상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커리어가 크게 발전했다"고 회고한다. 실제로 퀄컴 재직 시절 만난 한 멘토는 그에게 팀워크와 협업을 중시하는 문화를 심어주었고, 이는 '자신만의 리더십 스타일'을 찾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존슨은 다양한 환경의 팀원들을 포용하고 개개인의 강점을 이끌어내는 조직문화 구축에 힘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존슨이 강조하는 핵심 리더십 스킬은 의외로 간단한데, 바로 '경청'이다. 그는 "리더십의 핵심은 상대의 이야기를 깊이 듣고 그 입장에서 이해하는 능력"이라며, 상대방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해결책을 더 빨리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 실제로 동료들은 그가 신뢰에 기반한 대인 관계를 구축하는 데 능숙하다고 평가하는데, 이는 오랜 시간 경청과 공감을 중시한 태도가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존슨은 안전하고 존중이 보장된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직원들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는 기술 업계의 여성으로서 겪을 수 있는 미묘한 차별이나 불편함에도 목소리를 내왔는데, "직장에서 불필요한 불안감 없이 자기 자신으로 일할 수 있을 때 직원들은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하며 기업 문화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사람중심 철학은 그가 위기 조직을 추스르고 혁신을 이루는 과정에서 팀원의 헌신과 창의성을 이끌어낸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애질리티 로보틱스에서 페기 존슨의 합류는 로봇 산업계에 중요한 분수령으로 여겨진다. 스타트업 단계의 로봇 기업이 거물급 기술 CEO를 영입한 것은, 향후 기술 혁신의 실용화와 시장 개척에 무게를 두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산업 내 경쟁력 확보 면에서, 애질리티 로보틱스는 보스턴 다이내믹스 같은 선두 업체들과의 차별화가 과제로 꼽힌다. 디지트가 상업용 물류 로봇으로서 먼저 시장에 안착한다면, 기술력뿐 아니라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존슨은 이전까지 주로 소프트웨어와 AR 분야에서 활약해왔지만,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새로운 도전에 임하는 만큼 특유의 집요함과 현실 감각으로 승부할 것으로 보인다. 페기 존슨의 리더십 하에서 애질리티 로보틱스가 기술 혁신과 상용화 성공 두 마리 토끼를 잡아, 차세대 로봇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애질리티 로보틱스 '디지트' (출처 : 애질리티 로보틱스)
이 기사와 관련있는 기사 현재 기사와 관련된 기사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