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사진으로 돌아보니...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2022년을 보여주는 22장의 사진
이태원 참사부터 전쟁의 참상,
갈수록 심해지는 이상 기후에서
월드컵에서 배운 '꺾이지 않는 마음'까지
여기 2022년의 사진 22장이 있습니다. 잊고 싶은 순간도 있고 간직하고픈 순간도 있을 거에요. 어떤 경우든 간에,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쯤은 곱씹어 볼만한 사진들을 골라 봤습니다.
차라리 잊고 싶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고 10여 일이 지난 11월 11일 일반에게 공개된 이태원의 골목 모습입니다. 주점의 간판이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 글자들은 다 떨어지고 그 글자를 지지하던 못에는 잘 보면 온통 머리카락이 한 줌씩 붙어있어요.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고 필사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0월 29일 밤 할로윈을 맞아 이태원을 찾은 젊은 청춘들은 얼마나 신이 났을 까요? 얼마나 흥겨웠을까요? 그렇게 한창 삶을 즐겨야 할 나이에 싸늘한 주검이 된 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납니다.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은 너무도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이 사진이 눈이 들어왔습니다.
3월 4일 우크라이나의 한 기차역에서 찍은 이 사진은 기차를 타고 피난을 가는 부인 야나(왼쪽)와 11개월짜리 아들을 배웅하는 남편 올레그(오른쪽)의 모습을 담고 있어요. 남아서 나라를 지켜야 하는 올레그와 그런 남편을 두고 피난을 가는 아내의 애틋한 키스가 가슴을 저미게 만듭니다.
올해도 미국에는 크고 작은 총기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텍사스 주 유발디라는 작은 도시의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고였어요. 5월 24일 한 18세 남성이 초등학교에 무단 침입한 뒤 총을 난사해 19명의 학생과 2명의 선생님을 죽인 사건입니다. 죽은 아이들은 모두 9~11세였어요.
사진은 경찰이 살아남은 아이들을 창문을 통해 구조하는 모습입니다. 달려 나오는 아이들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어요. 이 때도 가해자는 아직 학교 안에서 총을 쏘고 있었다고 해요. 이날 경찰이 학교에 너무 늦게 진입하는 바람에 피해가 더 커진 걸로 드러나기도 했죠. 언제까지 이런 비극이 계속되야 하는지 답답합니다.
2월 10일 중국 베이징의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직원이 방호복을 입고 일하고 있습니다. 2022년 베이징 겨울 올림픽이 한 창 열리고 있는 중이었죠. 중국의 '제로 코비드' 정책에 따라 완전무장한 직원의 모습이 무슨 공상과학 영화의 모습 같기도 하고 코믹하기도 하네요.
일상으로 복귀하는 원년으로 예상됐던 2022년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어쩌면 완벽하게 과거로 돌아가는 건 이제 영영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올해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계속 됐습니다. 대체 몇 번을 쐈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언론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 횟수를 세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러다가 너무 둔감해질까 걱정도 됩니다.
사진은 7월 31일 한 남성이 역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TV 화면 속에서는 김정은이 쌍안경을 통해 미사일 발사 장면을 주시하고 있네요.
카카오 남궁훈 전 대표(왼쪽)와 홍은택 대표가 10월 19일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장애'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어요.
이 사건은 3가지 이유로 놀라웠습니다.
우선은 카카오 같은 기업의 재해 복구 시스템이 형편 없다는 점이었어요. 불은 날 수 있어요. 하지만 며칠에 걸쳐 계속 먹통이었다는 건 재해 복구 시스템이 없거나 가동이 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에요. 서비스 장애 시간은 공식적으로 127시간이었습니다. 둘째는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하나의 기업에 정말 많이 의존하게 됐다는 점이었어요.
마지막으로 간만의 블랙아웃이 '연결'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주지 않았나 하는 점이에요. 연결된 세상에 사는 건 좋은 겁니다. 무엇보다도 편리하죠. 하지만 우리는 24시간 연결돼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톡'의 공해 속에서 삽니다. 어쩌면 너무 과도하게 연결돼 있는 건 아닐까요?
10월 26일 일론 머스크는 세면대(sink)를 들고 트위터 본사에 들어서는 모습의 동영상을 트윗 합니다. 이 사진은 동영상을 캡처한 거고요. 그리고 그 트윗에는 이렇게 썼어요.
"Entering Twitter HQ — let that sink in!"
의역을 하면 이런 의미 입니다. "(드디어) 트위터 본사 입성. 아직 실감이 안나." 직역을 하면 "세면대를 들여 보내줘"라는 뜻이 될 수도 있죠.
정말이지 이 트윗은 비지니스 역사상 최고의 행위예술이자 코미디가 아닐까요.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기까지 얼마나 말이 많았습니까. 산다고 했다가, 안 산다고 했다가... 결국엔 440억 달러에 인수했어요. 이 트윗을 보면 머스크는 트위터의 주인이 정말 되고 싶었던 겁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소유하게 된 거에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극단적인 기후변화
숱한 밈(meme)을 만들어낸 사진이죠. 서초동 서이초교 앞 침수된 제네시스 차 위에서 셀카를 찍고 있는 차주. 하지만 웃을 수만은 없습니다. 대체 비가 얼마나 많이 왔길래 저 지경에 이른 걸까요?
8월 8일 저녁 강남을 비롯한 서울 남부에는 시간당 100mm에 이르는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차가 잠겨서 차를 버리고 귀가한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이날 침수 피해를 본 차는 무려 5000대에 이른다고 해요. 이 중 약 1000대는 고가의 외제차였고요. 제가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저도 너무 허망해서 저러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극단적인 기후 변화는 매년 새로운 방식으로 피해를 주는 느낌입니다. 내년에는 또 어떤 날씨가 기다리고 있을지 겁이 나네요.
강남에 비가 쏟아지기 얼마 전, 유럽은 더위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영국의 여름은 원래 그렇게 덥지 않습니다. 습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올해 영국의 7월 19일 기온은 섭씨 40도를 넘었습니다. 영국 역사상 가장 더운 날씨였다고 해요.
사진 속의 두 여성은 바로 이날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분수대에 저렇게 머리를 담갔습니다.
10월 12일 케냐의 코끼리 보호구역에서 2마리의 아기 코끼리를 돌보고 있는 사육사 키아피 라쿠파나이의 모습이에요. 케냐는 40년 만의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엄마를 잃은 수많은 아기 코끼리들이 넘쳐나고 있어요. 가만 보면 사육사의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합니다. 인간이 먹을 물도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가뭄은 이 지역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합니다.
어디는 폭우로, 어디는 가뭄으로, 또 어디는 더위로 고생을 하고 있네요. 이상 기후는 갈수록 더 극단적이 되고 있습니다.
우주로, 우주로
6월 21일 전남 고흥에서 우리가 독자 개발한 한국형 우주 발사체 '누리호'가 성공리에 발사됐습니다. 한 번 실패 후 2번만에 성공했어요. 누리호의 성공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1톤 이상의 실용 위성을 자력으로 쏘아 올린 나라가 됐습니다. 또 8월에는 한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가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되기도 했어요.
이 사진은 6월 19일 새벽 미국 플로리다에서 밤하늘을 배경으로 나무를 찍은 거에요. 하늘에 빛나는 선을 그리고 있는 로켓은 그저 우연히 찍혔을 뿐입니다. 바로 스페이스X의 팔콘9 로켓이죠. 재미있는 건 이 사진을 찍은 맥 스톤이라는 사진작가의 사진에 스페이스X의 로켓이 우연히 출연한 건 이번이 2번째라고 해요. 처음 등장한 지 1년도 안돼 다시 출연한 거에요. 물론 로켓 발사장이 스톤이 사진을 찍는 플로리다주의 케이프 캐너브럴에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하지만 이제 로켓 발사는 일상이 됐어요. 실제로 올해 스페이스X는 6일에 한 번 꼴로 로켓을 발사했습니다. 내년에는 100회 발사가 목표에요. 우주는 조금씩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22장의 사진 중 유일하게 사람이 아닌 기계가 찍은 사진입니다. 보통 기계는 아니에요. 과학지 ‘네이처’는 이 사진을 찍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두고 “인류는 지금까지 이렇게 멋진 기계를 만든 적이 없었다”고 했으니까요.
7월 NASA가 공개한 여러 장의 사진 중 이 사진은 카리나(용골자리) 성운 내 NGC 3324의 우주절벽입니다. 앞으로 제임스 웹이 얼마나 더 멋진 사진들을 보내올지 기대됩니다.
K의 힘, 세계의 뺨 때리다
해체 아니에요. 활동 중단 맞습니다. BTS가 브레이크를 밟기로 했어요. 12월 13일 맏형 진의 입대를 시작으로 멤버들의 군복무도 시작됐어요.
사진은 4월 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열린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BTS가 공연하는 모습이에요. 이 멋진 청년들이 그리울 겁니다. 언젠가는 이들이 다시 합친 모습을 볼 날이 오겠죠?
쇼인줄 알았어요. 역시 배우들이라 연기를 잘 하는구나 싶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3월 27일 배우 윌 스미스가 무대 위에서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진행하던 크리스 록의 뺨을 때렸습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죠. 이유가 어떻든 간에 폭력은 용서가 안됩니다.
더군다나 스미스는 이날 남우주연상을 받았어요. 약간 정체를 겪고 있던 커리어가 다시 날아 오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 사건으로 망가져 버렸습니다. 이날 스미스의 선배 배우인 덴젤 워싱턴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악마가 찾아오는 건 인생의 최고 절정의 순간"이라고.
올해 최고의 흥행 영화는 '탑건: 매버릭'이었어요. 전세계에서 14억9000만 달러를 벌어들였죠. 톰 크루즈는 팬데믹 기간 동안 여러 번 개봉을 연기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끝내 관객들에게 다시 극장을 찾을 이유를 만들어 줬습니다. 한 번도 스트리밍 콘텐츠를 만든 적이 없는 이 시대의 진정한 마지막 영화배우라고 할 수 있어요.
9월 12일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에미상 시상식에서 '오징어 게임'이 쾌거를 올렸습니다. 배우 이정재는 남우주연상을, 황동혁 감독은 감독상을 받았어요. 비영어 최초의 드라마 수상이었죠. 내년 공개할 것으로 보이는 시즌2가 벌써 기다려집니다.
꺾이지 않는 마음
2월 19일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 한국 4인조 봅슬레이팀이 힘차게 출발하는 모습입니다. 건곤감리 디자인의 헬맷이 참 예쁘네요. 베이징 올림픽은 팬데믹 때문에 축제의 분위기가 조금 덜 느껴진 것 같아요. 다음 올림픽은 진정한 축제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12월 2일 한국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 전에서 2-1로 승리하고 16강 진출이 확정된 후 황희찬, 황인범, 김민재 선수 등이 태극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에요. 태극기 밑에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써 있습니다.
어찌 보면 올해 최고의 말이 아닐까 싶어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말이에요. 과거 우리의 응원 구호는 결과에 집중하고 무조건 승리해야만 한다는 쪽에 가까왔습니다. 하지만 '꺾이지 않는 마음'은 승리로 가는 길에는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는 진리를 마주합니다. 그 어려움을 직면하고 헤쳐나가다 보면, 이기면 좋고 이기지 못해도 괜찮다는 용기를 주죠. 1차 우루과이 전에서 비기고, 2차 가나 전에서 진 뒤에도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건 이런 마음가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음대로 고른 마지막 3장
이 글을 쓰기 위해 수천 장의 사진을 들여다 봤습니다. 그 사진들 중에는 그리 특별한 것 같지는 않은데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사진들이 있었어요. 모두 타인을 돕고 타인과 공감하며 우리는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사진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런 사진 3장을 소개합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진은 쥐들이 다른 쥐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요. 사진 왼쪽 쥐는 갇혀 있는 오른쪽 쥐를 구해주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이 사진에 '공동체의 힘'이라는 제목을 달아 올해의 사진 중 하나로 선정했죠.
재미있는 사실은 어른 쥐들은 아는 쥐가 어려움을 처했을 때만 도움을 준다는 점이었어요. 모르는 쥐는 돕지 않았습니다. 반면 어린 쥐들은 아는 쥐건 아니건 다른 쥐가 어려움에 처하면 도움을 주기위해 노력했답니다. 인간과 참 비슷하죠?
6월 23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수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수중발레 미국 국가대표 아니타 알바레스(26, 왼쪽)는 준비한 솔로 연기를 마친 뒤 물속에서 갑자기 정신을 잃었습니다. 움직임 없이 수영장 바닥으로 가라앉기 시작한 거에요. 미국 대표팀의 안드레아 푸엔테스 코치(오른쪽)는 바로 수영장으로 뛰어들었고, 알바레스 선수를 구해냈습니다. 알바레스는 응급처치를 받고 깨어났어요.
푸엔테스 코치의 필사적으로 내민 오른팔이 너무 멋져 보이지 않나요?
케이든 쉘튼(왼쪽)과 이세아 잘비스는 리틀 리그 야구 선수입니다. 8월 9일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경기에서 투수인 쉘튼은 공을 잘못 던져 타자 잘비스의 머리를 맞춥니다. 잘비스는 쓰러졌고 쉘튼은 어쩔 줄 몰라해요. 다행히도 잠시 후 잘비스는 혼자 힘으로 일어나서 1루로 걸어 나갔습니다. 하지만 쉘튼은 큰 충격을 받았고 계속 머리를 감싸 쥐고 어쩔 줄 몰라 합니다.
1루에 있던 잘비스는 투수 마운드로 걸어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쉘튼을 안아줍니다. 괜찮다고 하면서요. 사진은 그 순간을 포착했습니다. 관련 동영상 시청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