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비전프로, 극장 산업 붕괴 재촉할 것"
[SXSW 2024] 김종민 XR 큐레이터 겸 프로듀서
SXSW2024 'XR 경험' 부문 유일한 한국 초청 작품 '단이전' 제작
"기술과 콘텐츠 경계 없다... 관객과 소통 인터랙티브 콘텐츠 계속 발전"
"XR 콘텐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나와야... 오타쿠 문화에 해답"
비전프로를 써 본 후에 느낌은 (기존의 콘텐츠 제작 방식만을 고수한다면) 극장이 더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어요. 영화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해야할 시기가 곧 올 것입니다.김종민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XR 큐레이터 겸 프로듀서
올 초 애플이 야심 차게 내놓은 '비전프로'에 대한 반응은 호불호가 확연하게 갈린다. 일부에서는 '공간 컴퓨터'의 등장이 차원이 다르다고 평가하는 반면, 너무 무겁고 가격이 비싸 상용화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그렇다면 비전 프로를 경험하고 실험해 본 콘텐츠 전문가는 어떤 인사이트를 얻었을까?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린 SXSW2024 XR 전시관에서 만난 김종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XR 큐레이터 겸 프로듀서(PD)는 "애플 비전 프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며, 콘텐츠 업계의 판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비전프로를 처음 착용해 본 소감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제 극장이 없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 산업에 종사하면서 극장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영화계는 과거 필름이 디지털로 넘어갈 때와 같은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며 "영화인들은 개인화 된 기기를 타깃으로 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경험적인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올 것이다"고 내다봤다.
비전프로에 대한 일부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서도 인정한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화과정(Calibration)을 거치는 것이다. 10분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그 싱크를 맞춘 이후에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며 "애플의 '공간 컴퓨터'라는 설명과 그 목적에 부합하는 기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가령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는 것처럼, 비전프로는 메타가 퀘스트를 통해 추구했던 방향과 기술적 성과와는 완전히 다른 범주에 있다는 것이다. 김 프로듀서는 "삼성, LG, 퀄컴, 구글은 물론 중국 기술 기업들도 이것을 뜯어보고 연구하고 있다"며 "영화를 비롯한 콘텐츠도 비전 프로의 성능에 맞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변화의 흐름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술과 콘텐츠 경계 없다... 인터랙티브 콘텐츠의 발전
김 PD는 SXSW2024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화가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가상 현실로 재해석한 영화 '단이전: 미인도 이야기'를 전시 작품으로 선보였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단이 제작하고, 유상현 감독이 연출한 단이전은 한국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XR 경험 부문에 초청됐다.
모션캡처 기술을 도입한 이 작품 미인도 등 신윤복의 그림 15점을 소개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주인공 '단이'를 비롯한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VR를 활용한 스토리로 풀어냈다. 명화 속 캐릭터들이 현대적으로 각색된 전통음악과 춤을 통해서 흥겨운 뮤지컬과 같은 이야기로 되살아나도록 연출한 작품으로 현지 참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김종민 PD는 인공지능(AI)의 등장과 콘텐츠와의 관계에 대해 "AI와 XR을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어졌듯이 콘텐츠와 기술도 하나의 묶음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크리에이터가 기술을 통해 한 차원 다른 형태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렇게 새로운 스토리텔링에 도전하는 과정 속에서 기술이 발전하기도 하면서 시너지를 낸다는 것이다.
김 PD는 "이런 시뮬레이션이 엄청 강화되고 있다. 이야기 속 경험들이 점점 더 개인화하는 트렌드로 바뀌고 있다"면서 "콘텐츠와 관객이 상호간에 소통하면서 XR 분야가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 속에서 반란군의 입장이 되어 영화를 경험해본다고 상상해보라. 얼마나 실감나고 재미있을까"라며 "관객들도 이런 기술적인 발전과 스토리텔링 방식에 익숙해져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XR 콘텐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나와야... 오타쿠 문화에 해답"
김종민 PD는 "콘텐츠 제작 측면에서 이런 기술의 발전은 감독들에게 천국이 열린 것과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에는 한번 작품을 만들게 되면 아쉬운 부분이 보여도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스토리라인 하나만 있다면 하나의 세계관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거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시기가 왔다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 마블 시리즈, 범죄의 도시 등 스토리 세상을 만들고 유저들이 뛰어들 수 있는 판이 만들어지면 작품과 관객이 호흡하면서 업데이트될 수 있다.
이처럼 새로운 방식의 콘텐츠는 어떻게 수익화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그는 "또 다른 솔루션이나 관점을 가진 사람이 비즈니스화에 대한 방안을 들고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인공지능과 XR과 같은 기술의 도입은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현재의 영화 배급방식은 넷플릭스와 같은 OTT에 고전하고 있다. 이젠 체험형 비즈니스 모델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김 프로듀서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오타쿠' 문화를 언급했다. 오타쿠는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초기에는 만화, 애니메이션 등 특정 대중문화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의미로 사용됐다.
기존 TV, 방송, 영화 등 대중 매체처럼 펼치는 방식은 불가능하지만 오타쿠 처럼 관심있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특정 주제에 대한 인프라가 생긴다. 이런 커뮤니티가 움직이고 생태계가 살아나면서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PD는 "기존 틀에 끼워넣기는 어렵다. 기존 방식은 전문가가 만든 콘텐츠를 대중이 내려받는 형태였다면 이젠 사용자 중심으로 콘텐츠 소비 방식이 역전되고 경계도 흐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같은 비즈니스 모델로는 콘텐츠가 발전하기 어렵다"며 "상상력을 갖고 도전적인 실험을 해야한다. 이런 에너지와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이 오타쿠"라며 "유저들이 커뮤니티를 만들고 팬클럽도 만들면서 자생적으로 움직임이 일어날때 (인터랙티브 콘텐츠) 생태계가 살아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로 다섯번 째 SXSW에 참가했다는 김종민 프로듀서는 "현재 XR 전시나 관련 콘텐츠는 정체기에 있는 것 같다"며 "더욱 파격적인 상상력과 실행력이 필요하다. 생성AI를 기반으로 테마파크 등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들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SM엔터테인먼트 계열사인 스튜디오 리얼라이브의 이사로 최근 합류했다. 김 프로듀서는 "생각해왔던 프로젝트들을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기대해달라"고 덧붙였다.
👉김종민 XR 큐레이터 겸 프로듀서는?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제작자로 활동해 왔다. 백남준아트센터와 영화 제작사를 거치며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를 기획했다. 국내 최고 XR전문가로 손꼽히는 그는 영화아카데미 KAFA+ VR 영화제작지원사업에서 만든 작품 ‘붉은 바람’이 미국 선댄스영화제 뉴프론티어 공식초청작으로 선정되는 등 XR 작품 제작에도 힘써오고 있다.
2020년 칸 영화제 XR 피칭 선정작이자 2023년 SXSW XR 부문 경쟁작인 ‘파인드 윌리’를 제작했고, 한프 공동제작 VR 시리즈 프로젝트인 ‘미싱 픽쳐스’를 제작하기도 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XR 부문 ‘비욘드 리얼리티’ 총책임자로 활약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