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스타게이트 코리아는 없다... 오픈AI-한국 파트너십의 이면
[세기의 딜] 샘 알트만 방한과 삼성-SK 협력의 본질
HBM은 삼성·SK가 만들지만 구매 결정권은 오픈AI 아닌 엔비디아에 있어
한국의 약점은 비싼 땅·전기·통신 지연과 앵커 오프테이커 부재
MOU가 아니라 에너지·시스템 통합·수요 확보 역량이 관건
지난 10월 1일, 추석을 앞두고 샘 알트만 오픈AI CEO가 내한, 이재명 대통령을 예방하고 삼성전자와 SK그룹과 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한국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 "30년 메모리 1위 입지 재확인", "국가 간 AI 동맹의 전략적 모델" "‘엔비디아 바라기’ 끝, 삼성·SK 전략 새로 짠다" 등의 찬사가 쏟아졌다. 오픈AI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이 같은 계약을 확인했다.
분명 긍정적인 소식이다.
그러나 이 화려한 발표의 이면와 실체를 들여다보면, 엔비디아-오픈AI 거래의 맥락에서 한국 기업들이 처한 실제 위치는 한국이 기대하는 것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확한 위치 선정과 민첩함에서 골이 나온다. 추석을 앞둔 '정치적' 수사를 제외하고 냉정히 판을 읽고 행동해야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오픈AI-엔비디아 140조원 세기의 딜 시리즈]
1편 : 엔비디아의 전략적 도박... 오픈AI에 140조원을 거는 이유
엔비디아-오픈AI 거래가 보여주는 진짜 게임의 법칙
오픈AI와 삼성, SK와의 딜의 실체를 이해하려면 먼저 엔비디아와 오픈AI의 1,000억 달러(약 140조원) 거래를 이해해야 한다.
'판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이 거래의 본질은 엔비디아는 오픈AI가 10기가와트 규모의 자체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도록 자금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오픈AI는 엔비디아의 투자를 받은 자금으로 엔비디아의 GPU를 구매하거나 리스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오픈AI가 하드웨어를 직접 소유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오픈AI는 GPU를 직접 소유하지 않았나? 그렇다. 오픈AI는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받으면서 이들의 클라우드로부터 칩을 임대해 사용해왔다.
하지만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앞으로는 달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자신의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려는 것이다. HBM은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구성요소다. 손영권 하만 의장에 따르면 엔비디아가 판매하는 4만달러짜리 GPU 모듈을 열어보면 내용물의 70%가 메모리일 정도다. 이 구조에서 HBM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 삼성그룹과 SK그룹을 찾았다.
공식 발표의 이면: 오픈AI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재명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샘 알트만 CEO가 대통령실에서 만난 후 한국 언론에는 수많은 '찬사급' 보도가 쏟아졌다. 대통령실, 삼성전자, SK그룹, 오픈AI는 한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뉴스 소스다. 이들이 모여 악수 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 언론에서 대서특필할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글로벌 AI 생태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오픈AI 측의 발표가 중요한 이유다.
오픈AI의 공식 발표는 한국에서의 이벤트가 끝난 후 10월 1일(현지시간) 나왔다. 발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월 90만장 DRAM 웨이퍼 생산을 목표로 첨단 메모리 칩 생산을 확대한다. ② 오픈AI는 한국에서 차세대 AI 데이터센터 개발을 모색하기 위한 일련의 협약을 체결했다. ③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MoU를 맺어 수도권 밖에서 AI 데이터센터 구축 기회를 모색한다. ④ SK텔레콤과 별도 파트너십을 맺어 한국에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탐색한다. ⑤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SDS와 협약을 맺어 추가 데이터센터 용량 기회를 본다는 내용이다.
인상적이다.
그러나 언어를 자세히 뜯어보면 전형적인 '레토릭'에 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표문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약속' 없이 'explore(모색한다)', 'evaluate(평가하다)', 'assess(평가하다)' 등 대부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내용들이다. 한국에서 차세대 AI 데이터센터를 개발한다가 아니라 개발을 모색한다(to explore developing)는 것이다.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암시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런 발표를 외교적 수사로 인식하며 '아무것도 안 일어날 것이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삼성과 SK가 월 90만장 DRAM 웨이퍼 생산을 목표로 한다고 발표한 것인데 "누가 이것을 살 것인가?"에 대한 내용은 없다. 때문에 발표는 공허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이 메모리를 정작 사야할 대상인 엔비디아가 이 협상에 빠졌기 때문이다.
HBM 구매의 주체는 엔비디아이지 오픈AI가 아니다. 엔비디아는 GPU 및 AI 가속기를 설계하면서, 해당 칩에 적합한 HBM 메모리를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메모리 기업에 주문해 받아 사용한다. 엔비디아의 최신 GPU(호퍼, 블랙웰 등)는 SK하이닉스의 HBM3E 및 HBM4를 필수 부품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TSMC는 HBM 공급망의 중간에서 패키징(조립)과 로직 다이 생산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SK하이닉스가 HBM DRAM을 생산하면, TSMC는 첨단 패키징 기술(CoWoS)을 이, GPU와 HBM을 한 패키지로 조립하는 공정(integration)을 맡는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복잡한 퍼즐
AI 칩 생산 생태계에서 '엔비디아'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엔비디아가 오픈AI에 자금을 제공하고, 오픈AI는 엔비디아 GPU를 구매하며,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로부터 HBM을 구매한다. 한국 기업들은 이 사슬에서 부품 공급자의 위치에 있다. 오픈AI는 자체 GPU가 없으며, HBM에 대한 구매 결정권도 없다. 따라서 오픈AI가 삼성이나 SK와 'HBM 공급 파트너십'을 맺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설령 오픈AI가 브로드컴과 협력하여 자체 칩을 개발한다 해도, 그것은 수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다. 그리고 그 칩이 성공적으로 개발되고 양산된다 해도, 파운드리 선택은 TSMC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 파운드리는 아직 최첨단 공정에서 수율과 신뢰성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오픈AI 같은 고객이 자신의 핵심 칩을 삼성에 맡길 만큼 리스크를 감수할 이유가 있을까?
더구나 엔비디아-오픈AI 전략적 제휴에 따라 오픈AI가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GPU를 갖춘다고 해도 더욱 엔비디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AI '생태계' 구성상 파운드리나 HBM 사업에서 한국과 오픈AI의 직접 협력은 의미가 크다고 볼 수는 없다. 엔비디아가 HBM 구매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구조에서 SK그룹과 삼성전자의 오픈AI와의 파트너십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샘 알트만은 보도자료에서 "한국은 놀라운 기술 인재, 세계적 수준의 인프라, 강력한 정부 지원, 번창하는 AI 생태계 등 AI 글로벌 리더가 될 모든 재료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긍정적 찬사이지만 그는 방문하는 모든 나라에서 비슷한 언급을 한다. 일본에 가면 일본을 칭찬하고, 중동에 가면 중동을 칭찬하며, 한국에 오면 한국을 칭찬한다. 이것은 관계 구축의 일부이지, 실질적 평가가 아닐 수 있다.
샘 알트만과 오픈AI는 '외교적 찬사' 외에는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지만 딱 한가지 받아낸 '약속'이 있다. 이 것을 위해 방한한 것이며 샘 알트만이 이번 방한에서 원하는 성과였다.
삼성그룹과 SK그룹이 챗GPT 엔터프라이즈 상품과 API 제품을 자사에 적용한다는 내용이었다.(Samsung and SK will also look to deploy ChatGPT Enterprise and API capabilities into their operations to improve workflows and support new forms of innovation). 즉 한국의 대표 글로벌 기업들인 삼성전자와 SK그룹이 '챗GPT 엔터프라이즈'를 도입하기로 한 빅뉴스이자 큰 성과다.
그룹내 솔루션, 사내용으로만 도입해도 큰 성과인데 만약 삼성과 SK의 다양한 서비스와 제품에 적용되면 파급력은 상상 초월이다.
오픈AI 샘 알트만은 사인 행사와 발표로 이재명 대통령, 이재용 삼성 회장, 최태원 SK 회장의 '체면'을 세워줬고 챗GPT 엔터프라이즈 제품의 삼성, SK에 판매라는 실질적 이익을 얻어갔다.
샘 알트만의 방한에 이은 한국측의 발표에 따라 AI 데이터센터 건설, 즉 '스타게이트 코리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오픈AI는 이번 방한에 적잖은 성과가 있었음에도 한국에 '스타게이트 코리아' 건설을 확언하지 않았다. 특히 이번 발표가 강력한 실행 계획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외교적 수사'로 그칠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자금'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점 때문이다.
누가 얼마를 투자하는지. 삼성과 SK가 오픈AI에 투자하는지. 오픈AI가 한국에 투자하는지. 한국 정부가 자금을 제공하는지 여부가 모두 미지수다. 한국 정부와 삼성, SK 모두 자기자본으로 모든 것을 해낼 생각이 없다. 정부는 '지원과 인센티브를 줄 수 있지만 세금을 직접 투자할 수는 없다. 삼성과 SK는 현재 시점으로 리스크가 큰 AI 데이터센터 건설에 막대할 자금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
한국은 이번 발표 중 '스타게이트'란 말이 나왔기 때문에 '오픈AI'가 대규모 투자하고 운용할 것이라는 추측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픈AI는 그럴 생각이 없으며 그들도 돈이 없다. 이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한계 때문이다.
중동의 계산법이 바뀌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오픈AI, 소프트뱅크, 오라클이 발표한 5,000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 구조를 냉정하게 보면 이해가 빨라진다.
손정의가 소프트뱅크를 통해 주도한다고 하지만 그 자금의 상당 부분은 중동 등 외부 투자자 조달에 의존하고 있다. 소프트뱅크 자체가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픈AI는 자체 자금을 스타게이트에 투입하지 못한다. 향후 10년간 약 1조 달러를 인프라에 투자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 오픈AI의 수익 규모를 고려하면 이것은 불가능한 수준의 레버리지다.
결국 오픈AI는 스타게이트를 통해 손정의 회장으로부터 자금 유입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손정의 회장도 자금이 충분하지 않아서 난항을 겪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전통적으로 손정의 회장은 '비전 펀드' 조성 시기부터 사우디, UAE 등 중동의 국부펀드를 주요 자금원으로 활용해왔다.
그런데 중요한 변수가 생겼다. 중동의 계산이 바뀌고 있는 것. 사우디아라비아, UAE, 카타르 등은 국가별로 AI 데이터센터 유치 내지 건축 계획을 가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를 위해 중동 순방에서 중동에 '스타게이트' 등 AI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사우디는 네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대규모 AI 허브를 구축 중이며, UAE도 자체 데이터센터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손정의 회장의 '비전펀드' 등을 통해 미국 혁신 기업에 투자하고 투자 수익 뿐 아니라 '혁신 방식'을 배우고자 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AI는 혁신기술을 넘어서 국가 안보의 핵심 역량이자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만한 경제, 산업의 토대가 될 기술이다. 그들은 이제 단순히 투자 수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에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술 주권을 확보하려 한다.
때문에 스타게이트가 미국이나 다른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짓는다면, 중동 입장에서는 자국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이 더 전략적인 판단이다. 그리고 해외에 짓는다고 해도 '전략적' 위치여야 하고 확실한 이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엔비디아'가 참여해야 한다.
지금까지 오픈AI는 스타게이트UK, 스타게이트 노르웨이, 스타게이트 UAE 등 3개의 미국 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중동인 UAE를 제외하고 영국과 노르웨이에서 발표했는데 모두 '엔비디아'가 핵심 파트너로 참여했다.
스타게이트에 충분한 자금이 확보된다 해도 그 데이터센터가 한국에 지어질 가능성은 낮은 것이 현실이다. 바로 한국은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입지로서 구조적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구조적 약점: 땅값, 전기, 통신
스타게이트 관계자들은 이미 한국 데이터센터의 구조적 약점을 파악하고 있다.
우선 한국의 토지 가격이 비싸다는 점이다.
기가와트 단위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해서는 광활한 부지가 필요하다. 한국의 토지 가격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며 특히 전력망과 통신망에 접근 가능한 지역은 더욱 비싸다. 전력망에 접근 가능한 땅들은 천문학적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 구로구의 한 야산(초등학교 운동장 크기)은 2023년 3월 1,000억 원에 매입된 후, 단 2년 만에 400억 원이나 오른 1,400억 원에 다시 매매 돼 큰 화제가 됐다. 이 땅 부지에서 사업자가 한국전력과 80MW 규모 전력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단순 야산이었지만 전력망 접근성이 높아 ‘데이터센터 부지’ 자격을 얻자 엄청난 땅값 상승이 일어난 예다. 신규 데이터센터에 대용량 전력공급이 가능한 인프라와 연결된 땅은 일반 공장용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프리미엄이 붙게 된다. 한국에서는 대형 데이터센터가 필요로 하는 전력·통신 인프라 접근성이 담보된 부지는 제한적이라 거래 가격이 일반 토지에 비해 수십~수백배에 달할 정도로 비싸게 형성 돼 있다.
둘째는 전기요금이 비싸다는 점이다.
데이터센터는 전력 비용이 운영비의 핵심이다. 기가와트 단위 데이터센터는 연간 수억 달러의 전기료를 지불하기 때문. 그러나 한국의 일반 산업용 전기요금은 데이터센터 운영에 경쟁력이 없다.
실제 한국의 (2025년 기준) 산업용 전기요금은 평균 MWh(메가와트시)당 122.1달러로 미국(80~84달러), 중국(83달러)보다 50% 이상 비싸다. 반면 텍사스주(약 kWh당 78원, 한화 60달러 미만) 및 조지아주(84원) 등은 한국의 절반 이하로 전기요금이 형성돼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중동 국가는 정부 보조와 천연가스·재생에너지를 바탕으로 산업용 전력 단가가 kWh당 0.05달러(약 67원) 선으로, 미국 대비 절반·한국 대비 3분의 1 이하다.
데이터센터 운영비에서 전력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40~60%에 달하며, 기가와트(1GW=1,000MW) 단위 초대형 데이터센터는 연간 수억 달러의 전기요금이 소요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고가의 전기료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에서 굳이 AI 데이터센터를 운영할 필요성이 낮다.
심지어 미국·UAE 등은 재생에너지(태양광, 풍력 등) 발전단가가 크게 낮아지고 있고, 대용량 전력 사용자(데이터센터)에게 특화 요금제와 세금 감면을 제공하는 반면, 한국은 전력 도매가와 연동된 요금구조와 복잡한 인허가로 비용 경쟁력이 약화 돼 있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로 인해 단기간에, 심지어 정치적으로도, 전기요금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셋째는 통신 인프라다.
데이터센터는 전 세계와 초저지연으로 연결되야 한다. 특히 AI 추론 서비스는 밀리초 단위의 지연도 사용자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지리적 위치와 통신 인프라는 미국이나 유럽을 주요 시장으로 하는 글로벌 데이터센터에 불리한 상황이다.
한국 데이터센터는 관리형 광케이블(managed optical fiber) 사용 비율은 62%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글로벌 트래픽·AI 워크로드 폭증에 대응할 만한 ‘다크 파이버’(Dark Fiber, 미사용 광섬유) 등 유연한 직접 회선 보유는 제한적이다.
AI 및 데이터센터 분야 국내 전문가들도 “국경 간 광역 연결성(해저 케이블 등) 확보에 전략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유럽(아일랜드, 네덜란드, 프랑스 등)은 글로벌 접점(인터넷 익스체인지, IXP)이 밀집해 세계 주요 대륙과의 물리적 거리·통신 경로상 강점을 보이지만, 한국은 미국 본토·유럽과 비교해 거리적 한계와 연결 경로 다양성 부족으로 글로벌 ‘초저지연’ 경쟁에서 불리하다. 국내에서는 초저지연 인터넷(ultra low-latency) 구축 수요가 점점 늘고 있지만 AI 추론, 글로벌 실시간 트래픽 등 대규모 국제 서비스를 위한 전문 인프라와 접촉 지점(해외 IX, 대형 해저케이블 등)은 아직 한계가 있다.
한국 내 데이터센터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 문제는 앵커 오프테이커의 부재다. 데이터센터를 추진하고 있는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 문제(앵커 오프테이커의 부재)를 가장 크게 지적한다.
앵커 오프테이커란 데이터센터의 핵심 고객으로, 대규모 용량을 장기간 계약하는 주체를 말한다. 보통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앵커 오프테이커 역할을 한다.
한국에는 하이퍼스케일러가 없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있지만 이들의 클라우드 사업 규모는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이 작은 수준어서 기가와트 단위 데이터센터의 앵커 오프테이커가 될 수 없다. 글로벌 오프테이커를 확보하지 않으면, 한국 내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공실률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광주 데이터센터의 실패가 이것을 증명한다. 광주시와 한국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첨단 데이터센터를 건설했다. 그러나 앵커 오프테이커를 확보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가동률이 낮아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설은 최신이지만 이용할만한 고객이 없다.
그렇다면 왜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들이 한국에 오지 않는가? 앞서 언급한 1, 2, 3번의 이유 때문이다. 비싼 땅값, 높은 전기요금, 통신 지연, 그리고 지리적 위치 등이다.
한국은 아시아 시장을 서비스하기에도 일본이나 싱가포르보다 불리하다. 중국 시장은 방화벽 때문에 어차피 접근이 어렵고 동남아시아는 싱가포르가 허브 역할을 하며, 일본은 자체 시장이 크다.
만약 오픈AI-삼성-SK 파트너십으로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짓는다는 계획이 나온다면, 똑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앵커 오프테이커는 누구일까? 계약 당사자인 삼성과 SK가 자체적으로 어느정도 사용을 '보장'해줘야 가능한 일이다. 삼성은 이번 계약에 '건설사'들이 대거 참여했고 플로팅 데이터센터 건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삼성의 '어떤' 계열사가 오프테이커가 될지는 미지수다. SK그룹도 '부지 재활용' 외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게될지 알 수 없다. 삼성과 SK가 오프테이커가 된다고 해도 그들의 수요는 100메가와트도 안 된다.
결국 오픈AI가 오프테이커가 되야 한다. 하지만 오픈AI는 미국과 중동, 유럽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 오픈AI 오프테이커가 되기 위해선 한국에 충분한 AI 수요가 있어야 한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으며 오픈AI도 관심이 있는 제조AI 등의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해야 가능한 일이다.
글로벌 오프테이커가 확보되지 않으면 광주 데이터센터의 실패가 반복될 것이다. 화려한 준공식과 언론 보도가 있겠지만, 몇 년 후에는 저조한 가동률과 누적 적자를 걱정하게 될 것이다.
가까운 일본이 더 나은 옵션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일본은 토지는 비싸지만 전력 인프라가 우수하고, 태평양 해저 케이블의 주요 허브로서 통신 연결성이 뛰어나다. 도쿄와 오사카는 이미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주요 데이터센터 허브로 자리잡았다.
물론, 지난 10월 1일 방한에서 SK텔레콤은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서남권에 오픈AI 전용 AI 데이터센터를 공동 구축해 '한국형 스타게이트(Stargate Korea)'를 실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일명 스타게이트 코리아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발표에는 엔비디아-오픈AI 딜 같이 구체적 내용(10기가와트, 2026년 하반기 첫 1기가와트 가동, Vera Rubin 플랫폼 배치, 단계적 투자 구조 등)이 명시 돼 있지 않다. 상황에 따라 건설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국은 AI 시대에도 부품 공급자에 머무르는가?
엔비디아-오픈AI 거래를 보면 가치사슬의 구조가 명확하다. 오픈AI는 인프라 주권을 확보하려 한다. 클라우드 제공업체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데이터센터를 소유함으로써, 컴퓨팅 자원의 배분과 우선순위를 스스로 결정하려 한다. 엔비디아는 단순한 칩 공급자가 아니라 인프라 금융을 제공하고, 기술 표준을 정의하며, 생태계 전체를 조율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구조에서 한국 기업들은 HBM과 DRAM을 공급한다. 이것은 중요한 역할이며, 한국 기업들이 이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AI 시대에도 한국은 '부품 공급자'의 위치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뜻한다.
부품 공급자의 문제는 밸류체인에서 협상력이 제한적이다. 엔비디아가 설계를 바꾸면 따라가야 하고,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가격에 맞춰야 하며, 엔비디아의 생산 일정에 맞춰 공급해야 한다.
더 높은 가치사슬로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스템 통합자나 최종 솔루션 제공자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데이터센터 전체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능력, AI 워크로드를 최적화하는 소프트웨어 역량, 전력과 냉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 기술 등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좋은 부품을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역량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한국 기업의 경험과 기술 역량은 떨어진다. 그동안 글로발 공급망 구조에서 '부품 공급자'의 위치에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AI 전략 : 냉정한 자기 평가와 생태계 혁신이 필요한 시점
오픈AI-삼성-SK 파트너십 발표는 한국이 글로벌 AI 경쟁에서 중요한 플레이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하지만 그 상징은 AI 시대에도 한국은 '설계자'가 아닌 부품, 특히 '메모리 공급자'로서의 위치라는 상징이다.
더 높은 가치사슬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더 빠르고 용량이 큰 HBM만이 아니라 시장이 원하는 솔루션을 제시해야 한다. 전체 시스템의 효율성 제고, 즉 에너지 절감, 냉각 문제의 해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통합 등이다.
한국은 제조 강국으로서, 시스템 통합 능력을 가진 기업, 에너지 효율 기술의 선도자로서의 위치를 선점해야 한다.
우선 에너지 기술 확보에 더 집중해야 한다. 젠슨 황 CEO는 "컴퓨팅 부족 시대에서 에너지 부족 시대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10기가와트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려면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며, 이 전력을 어떻게 확보하고 효율적으로 공급하느냐가 AI 인프라의 핵심 제약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 전력의 절반 이상이 화석 연료에서 나온다. 재생에너지는 간헐적이고, 배터리는 계절적 변동을 감당하지 못하며, 원자력은 건설에 7년에서 8년이 걸린다. 천연가스는 1년에서 2년이면 발전소를 지을 수 있어서 현재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10기가와트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냉각 문제를 야기한다. 전통적인 공랭식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액침 냉각이나 직수 냉각 같은 혁신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전력 관리도 마찬가지다. 수백만 개의 GPU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순간적인 전력 변동을 관리하며, 전체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은 복잡한 엔지니어링 과제다. 한국이 이런 분야에서 기술적 리더십을 확보한다면, 부품 공급자가 아니라 시스템 제공자로서의 입지를 가질 수 있다.
시스템 통합 역량도 구축해야 한다. 단순히 HBM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전체 AI 서버 시스템을 설계하고 최적화하는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냉각, 전력을 통합하는 턴키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면, 부품 공급자가 아니라 시스템 제공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에너지 현실을 보면, 전기요금은 상대적으로 높고 신규 발전소 건설은 어렵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더디고 원자력은 정치적 논란에 휩싸여 있다. 효율적인 냉각 시스템, 전력 관리 기술, 액침 냉각이나 직수 냉각 같은 차세대 기술, 재생에너지와 데이터센터의 통합, 소형 모듈 원자로 등의 차기 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기술적 우위를 가졌다는 뉴스도 들리지 않는다.
실체 있는 전략으로 나아가기
비판과 분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체적인 대안과 실행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기업들과 정부가 '탁상공론'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글로벌 시장의 실제 수요를 파해야 한다. 텍사스, 실리콘밸리, 두바이의 현장에서 고객과 직접 대화하고, 그들의 진짜 필요를 이해해야 한다.
또 작지만 실질적인 프로젝트부터 시작해야 한다. 수백억 달러 규모의 MOU보다, 수백만 달러 규모지만 실제로 실행되는 프로젝트가 더 가치 있다. 작은 성공을 쌓아서 신뢰와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무엇보다 장기적 관점을 유지하라. AI는 몇 년 안에 끝날 트렌드가 아니다. 정권이 교체된다고, 집권당이 바뀐다고 정책이 바뀌거나 목표가 바뀌어야할 것이 아니다. AI는 수십 년간 지속될 패러다임 전환이다. 단기적인 매출보다 장기적인 역량 구축에 투자해야 한다. 인재 양성, 기술 개발, 생태계 구축이 우선이다.
샘 올트먼과의 사진은 시작일 뿐이다. 진짜 게임은 지금부터다. 현장으로 가서,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실제 문제를 해결하고, 작지만 확실한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쌓인 경험과 신뢰가 다음 30년의 우위를 만들 것이다. 붐업이 아니라 비즈니스로, 발표가 아니라 실행으로 답해야 할 때다.
[오픈AI-엔비디아 140조원 세기의 딜 시리즈]
1편 : 엔비디아의 전략적 도박... 오픈AI에 140조원을 거는 이유